아들은 주말이라 집에 와서 엄마 허리 잡고 겉치레 포옹 한 번 하고선 외출하고
한국의 남편은 전화로 이것 저것 안부 묻고, 친구 집에 가려 단장하고 나선 딸을
데려다 주고 와서 와인 한 잔 들고 창 밖을 내어다 보니 깊은 가을의 한 주말 오후가
더 쓸쓸하게 느껴지며, 앞 마당 우편함 옆에 나란히 서있는 "for sale" 팻말이 눈 안에
가득 들어 온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은은한 회색의 구름으로 반쯤은 가려진것 같고 그 사이 사이로
비추이는 햇살이 희망차게 보이고, 그다지 세지 않게 부는 바람은 그래도 낙엽비를 만들기에
충분하여 낙엽들이 공중에서 땅 위에서 빙빙 돌며 춤을 춘다.
난 내 인생의 7막 7장이 될런지 몇 막 몇 장이 될런지 모를 또 다른 인생의 출발을 위해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지난 주에 집을 팔기 위해 그렇게 팻말을 세웠다.

25살에 고향을 떠나 태평양을 여러 번 넘나 들며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고 하던 중
아들이 중학교 졸업한 다음 날 가방 몇 개 싸들고 두 아이 데리고 이 곳에 정착하여 기러기
엄마 생활한지가 벌써 오년이나 되었다. 그 시간들이 나에게 다가와 마치 영화의 장면
하나 하나 같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갈색 머리하고 싶고, 붉은색 머리도 하고 싶고, 컴퓨터 게임도 맘컷 하고 싶고, 귀도 뚫고 싶고 하던
아들은 이제 다 낡은 청바지 하나에 운동화 한켤레면 됐다고 하며 지난 2년간 바리깡으로 혼자
머리 박박 밀고 가끔은 담배도 살짝 살짝 피우는듯하고 지난 날의 모든 객기로 부터 자유로와줘
행복해 하는것 같다. 늘상 부모랑 티격 태격 하던 그런일들을 이젠 하라도 해도 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 보이니 참으로 세월이 약인듯하다.
쌍갈래 머리하고 그 큰 눈이 휘둥거리며 겁이 많던 딸 아이는 제법 옷 입는 센스도 있고, 내 눈
피해가며 제 눈썹 다듬을 줄 알고, 때론 엄마인 나 보다도 더 큰 소리로 자기 주장을 세울 정도로
다 큰 숙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혼자 덩그러이 자던 내 품 속으로 쏘옥 들어 오던 아이가 이젠
그 아이가 나를 안을 정도로 컷다.

그런데 우리는.....
며칠 전 책 정리를 하다가 몇 장의 사진을 보구선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도 그 사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온다.
그 사진 속에는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을 부벼대는 부성의 젊은 남자가 행복해 하며 미소 짓고있었다.
유인촌 같기도 하고 오마 샤리프 같기도 한 젊은 남자가  날렵한 몸에 청바지를 입고 그 위엔
자기 좋아하는 그 낡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그렇게 행복한 모습으로 웃고 있었다.
그 사진 속에 아들과 똑 같은 젊음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젊음의 남자는 이젠 쉰을 훌쩍 넘었고 오직 부성 하나로 지난 오 년간을 혼자서 잘 버텨냈고
남은 것은 날렵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이마에 현저하게 생긴 몇 개의 주름이고, 원하는 것은 아내의
사랑이란다.
그 사진 속 젊은 남자의 아내는, "김 조교의 두 눈은 맑은 호수와도 같고 두 손은 파뿌리의 그 하얀같고
두 발은 왕비의 발과 같다"고  하늘색 샌달을 신은 내 두 발을 바라 보며 하던 그 조교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던 그 도도함은 다 어디로 갔고, 깊어 가는 가을에 단풍진 나무와 낙옆들만 바라다 보아도
가슴 아려지는 그런 범부가 되어 있었다.

이 곳에서의 지난 세월이 그래도 축복의 세월이 아니었나 한다.
사립대학 교수 월급 뻔하니 월 $1,500 예산으로 시작한 two bedroom 이 three bedroom 되고
또 다시 single house로 변하고....
난 어느 날 아파트에 사는 것이 너무나 답답하고 지겨워서 마치 어린 아이처럼 집을 사자고 졸랐다.
그 사람은 한국 아파트 전세금 받은 것 down pay하며 집 사는 것에 동의 하였다.

난 마치 천 년 만 년 살것 같이 집 안과 밖을 열심히 꾸며 나아 갔다.
새로운 동네의 집이라 나무도 많지 않고 화단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터라, 생전 해보지도 않은
곡괭이질 수 없이 해가며 그 많은 나무들을 심어 나아갔다. 내가 좋아 하는 백목련, 자목련, 감나무,
무화과 나무, 일본 단풍나무, 배나무, 숨가쁜 향기를 뿜어 댈 라일락, 핑크빛이 좋아 심은 복숭아
나무, 울타리 아래로 무궁화, 개나리..... 정신 없이 심어 나아갔다.
어린 날의 꿈이 생각나서 현관 아래 화단에 빠알간 줄장미도 심었다. 어린 날 꿈이 어른이 되면
흰 담장 아래로 빠알간 들장미가 만발한 그런 집에서 살고 싶었던거였다. 지난 봄 그 장미꽃을
바라다 보며 얼마나 행복해 하였던가. 사진 한 장 찍고 싶어 딸 아이에게 슬쩍 언질을 했건만...
결국은 그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어 새삼 딸이 야속해 진다.
지금은 누렇게 변해 버린 노오란 꽃이 예쁜 릴리밭, 지난 가을 심은 보랏빛의 작은 송이 송이의 국화밭,
들깨밭, 고추밭, 한 때 사슴들의 식탁이 되어 버린 분홍 장미꽃밭, 작은 씨앗 하나가 떨어져 한 쪽 벽에
숲을 이룬 나팔꽃, 채송화 화분.....

새우잠 자다 이른 새벽 일어나 거실의 모든 블라인드를 거두어 올리고 부억 쪽에서 바라다 보던 동쪽
하늘의 깨어남을 난 또한 얼마나 즐겼던가.
어느 날은 저녁 노을과도 같은 붉은 빛의 태양의 기지개를
어느 날은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는 비를
어느 날은 저만큼 건너편의 고목이 바람에 괴로워하는 소리를, 어제와 같이
어느 날은 안개로 인한 완전한 단절감을
어느 날은 잔잔한 미소와도 같은 평화의 날씨를....
이루다 열거할 수 없는 기억들이, 십 년이나 이 십년 후 즈음엔 또 다른 추억으로 생각나겠지....

벌써 가슴이 설레며 맘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계룡산 한 자락의 까페에서 마주하며 담소 할 친구들이 그 곳에 있기에
슬리퍼 질질 끌며 엑스포 아파트에 가도 반겨 줄 친구가 있기에
봄날의 친구들과 언니들이 있기에
가슴 넉넉한 나의 친구 혜숙이도 그 곳에 있기에
이젠 혼자서 쓸쓸한 점심 먹을 일이 적어질 것이기에
저녁 식탁에서 울릴 젓가락 부딫치는 소리가 있을 것이기에.......

그러나
내가 늘 다니던 길 굽이 굽이마다 쌓인 낙엽으로 만추의 쓸쓸함을 기억하며
내가 늘상 이른 아침에 가서 즐기던 커피와 음악이 좋았던 그 panera bread를 기억하며
이 곳의 적막함과 안정감을 기억하며
분명 이 곳을 그리워할것임을, 난 알고 있다.

그래도
이제 사랑을 하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또 다른 사랑을 배우고
그렇게 인생의 봄날을 맞이하고 싶다.
그래 난 사랑밖에 할 줄 몰라.
나 이제 그대 곁으로 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