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동이 트기 시작 할 무렵 그리운 두 아들이 있는 LA로 떠났다.  
세계 제일의  마늘 생산지 길로이에서 마늘 냄새를 맡으며 152번 도로에 들어서면 어느듯 목가적인 전원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언제 와 봐도 항상 엄마 품속같은 포근한 느낌을 준다.
저수지 연못 위에 물안개가 피어 오르고 있다. 서서히 흐르는 안개가 환상적인 영화 속 장면 같다.  
완만한 푸른잔디의 구릉을 보면서
“부드러운 언덕들의 선을 보면 엄마 젖가슴 같애.”  
“자기 엄만 너무 늙으셨어. 어느 젊은 엄마 같겠지.”
벌써 산위에 솟아 오른 해는 호숫가를 달리는 차들을 눈부시게 하고 있었다.  

Freeway 5번 도로의  Rest Area에서 부터, 피곤한  남편대신 운전대를 잡은 1시간여 동안은 손에 힘을 얼마나 주었던지…  85마일로 달리고 있는데 뒤에 큰 SUV 가 바짝 달라 붙었다.  옆의 그이는 잠이 들어 있다. 백밀러를 슬쩍 보니 헤들라잇을  번쩍 번쩍한다. 빨리 레인을 바꿨다.  잔뜩 겁을먹고, 슬쩍 지나가는 운전사를 보니 만면에 회심의 미소를 띄며 쳐다본다.  세상에 이런…   모두들 좋은 차로 90마일 이상으로 달리고 있다.  좋은 새차가 아니면 이제  엘에이 다니기도 힘들겠다.  
다들 좋은 차로  빨리 빨리 가는데, 우리 애들은 헌차로 다니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안될텐데…  보다 안전한 차로, 튼튼한 차로 바꿔야 할텐데…  

이번 여행길엔  Lancaster의  Antelope Valley에서  California  poppy꽃을 볼 계획을 잡고 있었기에  떠나기 전 부터 흥분해 있었다. 오렌지색의  파피는 이른 아침 가장 화사하게 꽃봉우리를 피우기에  그 시간에 맞춰 서둘렀다.  랭커스터에서  벨리로 가는 길 옆에는 밝은 오렌지빛 파피꽃이 한창 잘 피어 있었다.  누가 심어 놓은 것 같이,  옛날 고국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같이  그렇게 피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공원 밖인데도 들판엔 오렌지빛의 파피꽃과 샛노란 Goldfields가 세상천지에 카펫을 깔듯 깔려 향연을 벌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탐지게 피었을까?  황홀한 오렌지빛 파피에 놀라 뛰는 가슴을 어쩌지 못하고 이곳에서, 저곳에서, 여기서, 저기서, 너도 나도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며 나도 뒤질세라 사진을 찍었다.  Trail을 따라가며 많은 사람들이 즐기며 사진 찍는 모습이 큰잔치,  Poppy Festival이다. 앞서가며 사진 찍는 중국인 부부는 신혼같다. 이곳 공원에 오면서도 곱게 차려 입고 곳곳의 아름다운 요지에서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뒤따라가며 그들처럼 사진 찍고, 나중에는 서로  마주보며 웃고, 인사했다.  

옛날 제주도에 신혼여행 갔던 생각이 났다.  택시기사는 관광가이드와 사진사를  겸하여 우리를 안내하며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제주도 한바퀴 도는 동안 항상 만나는 나이든 부부가  있었다.  한복입고 풍경을 보며 사진 찍던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난다. 그때는 그 나이든 부부를 보며 늙어 무슨 재미로  둘이 손잡고 관광 다니나  했는데, 지금 내가  어느새 그렇게 되지 않았나.  

멀리 저 너머엔 노란 Goldfields가 물감으로 그림 그린 듯 그렇게 산 밑 전체에 피어 깔려있다.  군데 군데  보라빛 루핀꽃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엄마 말에  억지로 웃으며 사진 찍는 동양여자애, 치마입고 아빠보다 앞서 뛰어가는 인형같은 어린애가 모두 귀엽다.  

벌써 30년전 4월, 이때구나.
그이와  주일날  오후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 곳이 수인산업도로  옆의 새마을 이었지.  거기엔 앞산에 진달래가 한창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어른,아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꽃동산에 올라 진달래꽃을 한아름씩 꺽어  가슴에 안고 즐겁게 놀고 있었다.  
연분홍 진달래꽃 옆에  앉아 멀리 풍경을 보며 이야기도 하고,  침묻힌 꽃술로 누가 센가  내기하던 그이는 나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천천히 말하는 그의 목소리도 떨리는것 같았다.
서로가  길들여지면  바람소리에도, 오는 소린가하며 서로 그리워 할 것 이라고. 그리고, 그리고… .  아무 대답이 없으면 Yes로 알겠노라고.

“그렇게 좋아?”  
활짝 핀 파피꽃 옆에 앉아 웃는 나를 보며 사진 찍던 그이가 묻는다.  


                                                                                
                                                                                 4월 9일 200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김 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