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어제 뭐했지 하고 물었을 때 대답할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 증상이 심각해질 때
여행을 떠나야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 여행으로 생긴 즐거운 기분이 사라지기 전에 몇 자 적습니다.

여행을 돌이키며 제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작나무 숲길,천지의 1300여 계단,밤하늘의 총총한 별,천지의 쪽빛 물,
시인 윤동주의 용정학교, 그리고 같이 여행한 여러분들.

젊은 시절 읽은 러시아 소설 때문인지
버스에서 내려 잠시 거닐던 자작나무 숲길이 그렇게도 낭만적이던데요.
그 길을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가 마차를 타고 달렸을 것 같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
그러나 그 때 느꼈던 그 느낌이 부활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브론스키 같은 뺀질한 얌체를 결코 좋아할 수없는 체질이지만
자작나무 숲길을 달리던 그 순간의 둘은  아름다움으로 봐줘도 되는 거 아닌가요.

순간의 무상함이라니!
행복의 무상함이 있으면 불행의 무상함이 있기 때문에 인생은 균형적인 것 같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을 잘 못하기 때문에
여행 전 뒷산 오르기를 몇 번 연습했건만
역시 거의 꼴지로 힘겹게 오른 서파 코스의 천지 계단
계단을 오르며 학~학대다가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드라`

옛사람의 시조를 떠올리며 결국은 또 `내 탓이요`가 정답임을 알았구요.

세 번 가야 겨우 볼 수 있다는 천지를 댓바람에 구경한 행운을 우리 팀 모두가 누렸지요
정신없이 몰려오는 운무 때문에 꼴찌로 올라간  저는 겨우 십초나 봤을까요.
다음 날 북파를 가지 않았다면 어이없었을 천지구경이었습니다.

제인문화탐방회에 가장 큰 장점은 여행코스를 때에 맞춰 변경할수 있다는 점입니다.
서파 코스가 미흡해서였는지 선배님들께서 북파 코스로 일정을 바꿨는데
날씨가 더 이상 좋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은 불볕더위
천지는 늦가을 기분좋은 쌀쌀한 날씨
파란 하늘에 뭉게 구름
짚차로 구절양장의 길을 달리는데 고산지대라 나무가 없으니 시야에 펼쳐지는 경치는
마음 속까지 후~련해지는  장관
시베리아의 끝자락인지 시작인지를 본 듯했습니다.

차에 내려서 세찬 칼바람을 맞으며 천지로 가는 길
그리운 님이 그곳에서 기다리는양 설레는 마음으로 허둥지둥 올라갔지요.
아!
오!
Wow! 
 짙은 에머럴드 쪽빛 담수 천지
애국가의 배경화면을 실제로 확인한  뭐 그런 감동




별이 쏟아지는 걸 봤습니다.
별 볼일이 없이 살다가  오리지날 별밤을 본 감회,
그래서 윤동주도 `별 헤는 밤`을 쓸 수 있었을 것만 같습니다.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동경과
별 하나의 쓸쓸함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대충 이런 내용이다가)
마지막은 어머니 어머니로 그 행은 마무리 되던가요.

저는 마침 딸을 데리고 여행을 했기 때문에
어머니로 마무리되는 시인의 그 어머니와  
얼추 어느정도 비슷한 어머니일까 반성했더이다.

여행 같이 하신 분들
아직도 쓸쓸함을 말로 유려하게 표현하실 수 있는 선배님도 계시고
말씀 없으셨어도 쓸쓸함에 정체를 아실 것 같은 선배님도 계시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생활화 되신 격조 높으신 선배님들과 하는 여행
인생 몇 樂 중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이 나이에도 여러 느낌이 소생되는 여행
공자님이 말씀하신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 자체인 것은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