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글 수 1,334
모네의 포풀러나무
Claude Monet( 1840~ 1926): 프랑스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

작업실에 있는 모네의 자화상(Self Portrait In His Atelier),
오늘 소개하는 포플러 그림 연작을
모네의 인상주의와 빛의 예술성이 최대로 발휘된 역작이자 대표작으로 꼽는다.
이것은 순간 순간 변화하는 빛의 흐름과 그 빛의 색채를
한순간에 포착하여 캔버스 위로 옮겨내고자 애 썼으며,
그러한 노력의 결정체를 바로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플러나무 연작을 제작한 1890년과 1891년은
모네가 그의 고향인 지베르니(Geverny)에 정착해서 살고 있던 시기다.
1883년에 고향인 노르망디의 지베르니(Norman, Geverny)에 정착하여
192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루앙(Rouen)성당, 건초더미, 수련 연작, 포플러나무 연작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지베르니의 아침풍경(Morning Landscape, Giverny)
모네는 피사로(Camille Pissarro, 프랑스, 1830–1903)와 함께
인상주의의 창조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가장 확실한 인상주의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여름아침의 독특한 분위기와 느낌을 유감없이 발휘한 위 그림을 포함하여
아래 포플러나무와 관련한 그림들에서
그 평가와 인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베르니의 아침풍경을 감상하는 소감이 어떤지요?

아르장퇴유 근처 프롬나드(Promenade Near Argenteuil), Oil on canvas, 1873

포플러나무 아래로 햇빛 비치는 광경(Sunlight Effect under the Poplars)

아르장퇴유 근처, 포플러 나무가 있는 풀밭
식료품과 잡화상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모네의 아버지는
화가로서의 모네의 삶을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대학에 들어가 체계적인 그림공부를 하고 싶어 하던
모네의 열정을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나 초기부터 그림에 대한 그의 확고한 인식과 열정은
넉넉지 못한 환경이 그의 창작활동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어렵던 시절에 아내 카미유(Camille Monet)를 만났으며,
아들 장(Jean)도 얻게 되었다.
그의 많은 작품들에는 그의 가족이 등장하고 있다.
모네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때마다 가족을 동반하여
함께 소풍 나온 듯,
평화로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위의 세 그림 모두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바람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햇빛과 바람이 사로잡고 있는 대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빛 고운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에 하늘과 구름,
포플러 나무와 발아래 풀밭,
그리고 그 풀숲에 어우러진 꽂들과 등장인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춤을 추고 있다.
풍경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라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하고 있는 특정 순간을 인상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에프트의 포플러나무(Poplars on the Epte), ,Oil on canvas, 1891

네 그루의 포플러나무(Poplars. Four Trees), 1891
위 두 그림 가운데
첫 번째 그림은 지면을 기반으로 사선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늘어 서있는 포플러 나무들을 강조하고 있다.
또 지면을 중심으로 수면에 비친 구름과 나무의 그림자까지
똑같이 배치되어 대칭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사물의 구분도 모호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화면에 포착된 모든 소재가
바람과 대기의 기운에 녹아들어 하나가 되어 있다.
두 번째 그림 역시
강가의 지면을 중심으로 서 있는
네그루의 포플러 나무의 밑 부분을 그린 그림이다.
물 밑의 그림자까지 선명하고 뚜렷하게 묘사하여
당시 모네가 받았던 강한 인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같은 간격으로 늘어 서 있는 포플러의 모습이
시적인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습지(늪)에서 바라본 포플러나무 풍경(Poplars, View from the Marsh)

에프트 강가의 포플러나무(Poplars on the Banks of the Epte), 1891, Oil on canvas.
두 그림의 구성과 색감, 분위기와 느낌으로 보아
이 작품은 같은 시기, 비슷한 날짜에 그린 연작 그림으로 보인다.
이 두 그림을 비교해 봄으로써,
빛의 흐름과 바람에 따라 변하는 하늘의 순간적인 느낌과
대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그런 느낌을 포착, 화폭에 담아내고자 애썼던
모네의 붓질과 숨결까지도 느껴진다.
모네의 많은 그림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해변과 강가의 밝은 대기를 즐겨 묘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화면에 담겨있는 소재뿐 아니라
햇빛과 공기의 흐름까지 신선한 색채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위 두 그림에서도 그런 느낌을 실감할 수 있는데,
화창한 어느 한 낮과 해질 무렵 노을에 물든 포플러 나무의
이 두 푸른 색채감이 신비롭고 놀랍기만 하다.

에프트 강의 굽은 길(Bend in the River Epte)
에프트 강 한 가운데에서 마치 배를 타고 그린 듯한 이 그림이야 말로
햇살 고운 빛의 색채와 진동하는 공기나,
대기의 흐름을 만끽할 수 있는 그림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모두 즐겁게 충족시켜주는
음악성 강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위 그림을 살펴보면 사물의 뚜렷한 선이나
색채의 구분으로 윤곽선을 강조한 그림이 아니다.
반면 이 풍경화는 빛의 굴절과
그에 따른 색채의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럼으로써 포플러 나무는,
바람에 잘 흔들리는 잎과, 나무 아래 풀,
그리고 미미하게 진동하는 수면까지 바람과 하나가 되어 있다.
인상주의 그룹이 해체되자
모네는 파리를 떠나 지베르니에 정착하였고,
1890년부터 동일한 대상이 다른 광선 조건에서
어떻게 변화하며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 탐구하며
지속적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던 모네의 포플러 연작을 감상 해 보았다.
당시의 모네를 포함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단조로운 기법과 사실적인 훈련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과 일상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화실을 벗어나 야외에서 펼쳐지는 풍경의 빛, 색채,
그리고 대기를 포착하고자 노력하였다.
위 모네의 포플러 연작에서
그런 인상주의 특징과 그 결정체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빛의 마술에 걸려 한평생 빛의 변화만을 찾아다녔고
그런 풍경을 표현하고자 애썼던 모네를,
인상주의의 진정한 창시자라 평가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많은 비평가들이 그를 '빛의 화가'나
'빛의 마술사'라고 찬사하는 이유일 것이다.이 시기에 제작되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포플러 관련 작품들은 전부 20여점 정도이다.
그러나 여기 소개하지 못한 다른 포플러 그림들도 무척 아름다우며
모두 인상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1874 카푸시뉴(Capucines)에서 첫번째 그룹 전시회를 가졌을 때,
한 비평가가 그의 작품 가운데 하나인
"인상 : 해돋이(Impression-sunrise)"를 보고, 인상주의 그룹으로 분류,
이 때부터 '인상파'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바로 아래, 이 그림이다.

Impression-sunrise (1872, oil on canvas)
Claude Monet( 1840~ 1926): 프랑스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

작업실에 있는 모네의 자화상(Self Portrait In His Atelier),
오늘 소개하는 포플러 그림 연작을
모네의 인상주의와 빛의 예술성이 최대로 발휘된 역작이자 대표작으로 꼽는다.
이것은 순간 순간 변화하는 빛의 흐름과 그 빛의 색채를
한순간에 포착하여 캔버스 위로 옮겨내고자 애 썼으며,
그러한 노력의 결정체를 바로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플러나무 연작을 제작한 1890년과 1891년은
모네가 그의 고향인 지베르니(Geverny)에 정착해서 살고 있던 시기다.
1883년에 고향인 노르망디의 지베르니(Norman, Geverny)에 정착하여
192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루앙(Rouen)성당, 건초더미, 수련 연작, 포플러나무 연작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지베르니의 아침풍경(Morning Landscape, Giverny)
모네는 피사로(Camille Pissarro, 프랑스, 1830–1903)와 함께
인상주의의 창조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가장 확실한 인상주의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여름아침의 독특한 분위기와 느낌을 유감없이 발휘한 위 그림을 포함하여
아래 포플러나무와 관련한 그림들에서
그 평가와 인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베르니의 아침풍경을 감상하는 소감이 어떤지요?

아르장퇴유 근처 프롬나드(Promenade Near Argenteuil), Oil on canvas, 1873

포플러나무 아래로 햇빛 비치는 광경(Sunlight Effect under the Poplars)

아르장퇴유 근처, 포플러 나무가 있는 풀밭
식료품과 잡화상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모네의 아버지는
화가로서의 모네의 삶을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대학에 들어가 체계적인 그림공부를 하고 싶어 하던
모네의 열정을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나 초기부터 그림에 대한 그의 확고한 인식과 열정은
넉넉지 못한 환경이 그의 창작활동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어렵던 시절에 아내 카미유(Camille Monet)를 만났으며,
아들 장(Jean)도 얻게 되었다.
그의 많은 작품들에는 그의 가족이 등장하고 있다.
모네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때마다 가족을 동반하여
함께 소풍 나온 듯,
평화로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위의 세 그림 모두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바람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햇빛과 바람이 사로잡고 있는 대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빛 고운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에 하늘과 구름,
포플러 나무와 발아래 풀밭,
그리고 그 풀숲에 어우러진 꽂들과 등장인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춤을 추고 있다.
풍경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라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하고 있는 특정 순간을 인상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에프트의 포플러나무(Poplars on the Epte), ,Oil on canvas, 1891

네 그루의 포플러나무(Poplars. Four Trees), 1891
위 두 그림 가운데
첫 번째 그림은 지면을 기반으로 사선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늘어 서있는 포플러 나무들을 강조하고 있다.
또 지면을 중심으로 수면에 비친 구름과 나무의 그림자까지
똑같이 배치되어 대칭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사물의 구분도 모호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화면에 포착된 모든 소재가
바람과 대기의 기운에 녹아들어 하나가 되어 있다.
두 번째 그림 역시
강가의 지면을 중심으로 서 있는
네그루의 포플러 나무의 밑 부분을 그린 그림이다.
물 밑의 그림자까지 선명하고 뚜렷하게 묘사하여
당시 모네가 받았던 강한 인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같은 간격으로 늘어 서 있는 포플러의 모습이
시적인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습지(늪)에서 바라본 포플러나무 풍경(Poplars, View from the Marsh)

에프트 강가의 포플러나무(Poplars on the Banks of the Epte), 1891, Oil on canvas.
두 그림의 구성과 색감, 분위기와 느낌으로 보아
이 작품은 같은 시기, 비슷한 날짜에 그린 연작 그림으로 보인다.
이 두 그림을 비교해 봄으로써,
빛의 흐름과 바람에 따라 변하는 하늘의 순간적인 느낌과
대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그런 느낌을 포착, 화폭에 담아내고자 애썼던
모네의 붓질과 숨결까지도 느껴진다.
모네의 많은 그림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해변과 강가의 밝은 대기를 즐겨 묘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화면에 담겨있는 소재뿐 아니라
햇빛과 공기의 흐름까지 신선한 색채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위 두 그림에서도 그런 느낌을 실감할 수 있는데,
화창한 어느 한 낮과 해질 무렵 노을에 물든 포플러 나무의
이 두 푸른 색채감이 신비롭고 놀랍기만 하다.

에프트 강의 굽은 길(Bend in the River Epte)
에프트 강 한 가운데에서 마치 배를 타고 그린 듯한 이 그림이야 말로
햇살 고운 빛의 색채와 진동하는 공기나,
대기의 흐름을 만끽할 수 있는 그림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모두 즐겁게 충족시켜주는
음악성 강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위 그림을 살펴보면 사물의 뚜렷한 선이나
색채의 구분으로 윤곽선을 강조한 그림이 아니다.
반면 이 풍경화는 빛의 굴절과
그에 따른 색채의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럼으로써 포플러 나무는,
바람에 잘 흔들리는 잎과, 나무 아래 풀,
그리고 미미하게 진동하는 수면까지 바람과 하나가 되어 있다.
인상주의 그룹이 해체되자
모네는 파리를 떠나 지베르니에 정착하였고,
1890년부터 동일한 대상이 다른 광선 조건에서
어떻게 변화하며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 탐구하며
지속적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던 모네의 포플러 연작을 감상 해 보았다.
당시의 모네를 포함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단조로운 기법과 사실적인 훈련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과 일상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화실을 벗어나 야외에서 펼쳐지는 풍경의 빛, 색채,
그리고 대기를 포착하고자 노력하였다.
위 모네의 포플러 연작에서
그런 인상주의 특징과 그 결정체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빛의 마술에 걸려 한평생 빛의 변화만을 찾아다녔고
그런 풍경을 표현하고자 애썼던 모네를,
인상주의의 진정한 창시자라 평가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많은 비평가들이 그를 '빛의 화가'나
'빛의 마술사'라고 찬사하는 이유일 것이다.이 시기에 제작되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포플러 관련 작품들은 전부 20여점 정도이다.
그러나 여기 소개하지 못한 다른 포플러 그림들도 무척 아름다우며
모두 인상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1874 카푸시뉴(Capucines)에서 첫번째 그룹 전시회를 가졌을 때,
한 비평가가 그의 작품 가운데 하나인
"인상 : 해돋이(Impression-sunrise)"를 보고, 인상주의 그룹으로 분류,
이 때부터 '인상파'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바로 아래, 이 그림이다.

Impression-sunrise (1872, oil on canvas)
2007.06.05 19:42:27 (*.133.164.45)
포플라는 가로수로 많지
포플라~하니 플라타너스 나무가 떠오르네
신흥핵교에 담가장자리루 나무가 가득 했는데...
고거이가 플라타너스 나무였어.
거기엔 꼴밤이라고 똥그랗고 딱딱한 밤만한
열매가 열려 있단다.
고것들이 가을 쯤 되면 떨어지는데
앵두처럼 열매 줄기까지 떨어져, 그러면
그걸 주워서 뱅뱅 돌리며 친구들 마팍도 때리도
뒷통수도 때리고...고것때문에 쌈도 많이 했다.
나야 뭐 워낙 순한 양이니까 애들 다칠까봐
안돌리지....ㅎㅎ
내가 한덩치 하니깐 애들이 차마 나한텐
못뎀볐겠지...ㅋ
재작년인가?
신흥핵교 동창회 한다고 해서
처음으로 갔었네~
어떤 ㅁ 이 날소개하는데..
"김순호~햐~!쟤 등치 좋았지 지금도 여전하네~!!!"
이러는거여~U~C ~!콱~!
다신 동창회 안가자녀~
아니~!
나무 야그허다가 뭰~구신 씨나락 까잡숫는 소리를...ㅉㅉㅉ(:aa)
좌우당간~나는 훼방만 놓는구나
우아한 야그덜 하시는데...
이젠 안들어올께~잘있어~(x15)
포플라~하니 플라타너스 나무가 떠오르네
신흥핵교에 담가장자리루 나무가 가득 했는데...
고거이가 플라타너스 나무였어.
거기엔 꼴밤이라고 똥그랗고 딱딱한 밤만한
열매가 열려 있단다.
고것들이 가을 쯤 되면 떨어지는데
앵두처럼 열매 줄기까지 떨어져, 그러면
그걸 주워서 뱅뱅 돌리며 친구들 마팍도 때리도
뒷통수도 때리고...고것때문에 쌈도 많이 했다.
나야 뭐 워낙 순한 양이니까 애들 다칠까봐
안돌리지....ㅎㅎ
내가 한덩치 하니깐 애들이 차마 나한텐
못뎀볐겠지...ㅋ
재작년인가?
신흥핵교 동창회 한다고 해서
처음으로 갔었네~
어떤 ㅁ 이 날소개하는데..
"김순호~햐~!쟤 등치 좋았지 지금도 여전하네~!!!"
이러는거여~U~C ~!콱~!
다신 동창회 안가자녀~
아니~!
나무 야그허다가 뭰~구신 씨나락 까잡숫는 소리를...ㅉㅉㅉ(:aa)
좌우당간~나는 훼방만 놓는구나
우아한 야그덜 하시는데...
이젠 안들어올께~잘있어~(x15)
2007.06.05 22:59:54 (*.39.115.127)
순호야,
니 안들어오면 나 울란다.
이미 잔뜩 울려놓거선..
신흥...
정말 가보고 싶다.
수인아,
네가 중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이었다면....
아쉽다.
너 덕에 그림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오네.
우리의 미술 선생님
계속 부탁드립니다요.(x8)
니 안들어오면 나 울란다.
이미 잔뜩 울려놓거선..
신흥...
정말 가보고 싶다.
수인아,
네가 중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이었다면....
아쉽다.
너 덕에 그림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오네.
우리의 미술 선생님
계속 부탁드립니다요.(x8)
2007.06.06 03:11:18 (*.172.221.40)
경서나
됴와?...........::p
수논 역쉬 수노여.
우린 초딩때, 너무 얌전했나뵈어.
재밌어요.::d
정례~
sunrise그림, 우리 게리에서 봤었지.
위 그림보다는, 많이 어두웠고, 지는 해만 강열했어.
토욜에, 저녁같이 할 수 있을래나....(:t)
됴와?...........::p
수논 역쉬 수노여.
우린 초딩때, 너무 얌전했나뵈어.
재밌어요.::d
정례~
sunrise그림, 우리 게리에서 봤었지.
위 그림보다는, 많이 어두웠고, 지는 해만 강열했어.
토욜에, 저녁같이 할 수 있을래나....(:t)
2007.06.06 03:19:25 (*.172.221.40)
옛날에, 기차타고 대성리 지나가다 보면
포풀라가 수없이 자라고 있는 곳이 있었지.
그것들은 바람에 얼마나 환호하며, 비비며
박수치며, 깔깔대던지......
한 번쯤 그 곳에서 내려
걷고 싶었는데....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이 마음을 흔든다.(:c)
얘들아, 나
오늘 저녁 뱅기로 라스베가스 가서
토욜 1시에 돌아온다.
그곳에서 컴 할수 있을지 모르갰어.
한글이 깔렸는지도 모르겠고
잘 지내, 모두 들.(:f)
포풀라가 수없이 자라고 있는 곳이 있었지.
그것들은 바람에 얼마나 환호하며, 비비며
박수치며, 깔깔대던지......
한 번쯤 그 곳에서 내려
걷고 싶었는데....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이 마음을 흔든다.(:c)
얘들아, 나
오늘 저녁 뱅기로 라스베가스 가서
토욜 1시에 돌아온다.
그곳에서 컴 할수 있을지 모르갰어.
한글이 깔렸는지도 모르겠고
잘 지내, 모두 들.(:f)
2007.06.06 04:46:15 (*.219.253.233)
수인아,
쩔쩔매느라
공적인 일로 꼭 만나야 할 사람들 약속을 아직도 해 놓지 못했네.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낮에 처리될 수 있는지 결정되는데로, 전화할께.
바라기는 토요일 낮까지 다 처리되었음 싶다.
그럼 저녁이 용이하니까.
쩔쩔매느라
공적인 일로 꼭 만나야 할 사람들 약속을 아직도 해 놓지 못했네.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낮에 처리될 수 있는지 결정되는데로, 전화할께.
바라기는 토요일 낮까지 다 처리되었음 싶다.
그럼 저녁이 용이하니까.
2007.06.07 02:55:38 (*.209.173.101)
수인아
또 좋은 그림들, 글 잘 감상했어.
너희들 또 만나는 거야? 샘난다.
나도 갈까? 못 갈것도 없는데... (:l)(:l)
또 좋은 그림들, 글 잘 감상했어.
너희들 또 만나는 거야? 샘난다.
나도 갈까? 못 갈것도 없는데... (:l)(:l)
2007.06.12 00:01:10 (*.140.157.145)
수인님...모네 그림 잘 감상했습니다.
설명도.. 너무 글이 좋고요..음악도 좋고요.
동기님들 글도 좋습니다...늘 감탄합니다.
마네가 아꼈던 모네...그는 인간성도 좋았던 화가였나봅니다.
세잔느도 모네를 좋아했고...피사로도 그를 아꼈다지요..
1890년은 고흐가 죽던해(7월)인데....정신병에 시달리던 고흐.너무 안됐어요.
의사인 피사로,가제등과 고흐가 다투고 했다지요.. ,
Pissaro의 풍경화도 좋더군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화가 Pissaro도 멋있는 예술가이고요..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비스마르크의 신흥 프러시아가,유럽을 호령하던 프랑스를,
보불전쟁에서 처음으로 패배시킨이후라, 슬픈 시기라고 합니다..프랑스에게는...
패배당한 조국 프랑스에서, 미술작품들이 시민들에게 위로를 준것같습니다.
그때 모네의 작품들이 큰 역할을 한것같습니다...제 생각입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그럼 이만
설명도.. 너무 글이 좋고요..음악도 좋고요.
동기님들 글도 좋습니다...늘 감탄합니다.
마네가 아꼈던 모네...그는 인간성도 좋았던 화가였나봅니다.
세잔느도 모네를 좋아했고...피사로도 그를 아꼈다지요..
1890년은 고흐가 죽던해(7월)인데....정신병에 시달리던 고흐.너무 안됐어요.
의사인 피사로,가제등과 고흐가 다투고 했다지요.. ,
Pissaro의 풍경화도 좋더군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화가 Pissaro도 멋있는 예술가이고요..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비스마르크의 신흥 프러시아가,유럽을 호령하던 프랑스를,
보불전쟁에서 처음으로 패배시킨이후라, 슬픈 시기라고 합니다..프랑스에게는...
패배당한 조국 프랑스에서, 미술작품들이 시민들에게 위로를 준것같습니다.
그때 모네의 작품들이 큰 역할을 한것같습니다...제 생각입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그럼 이만
2007.06.13 04:19:05 (*.172.221.40)

모네의 전시회 소식입니다.
클로드 모네의 작품세계를
초기부터 말기에 이르는 시기별 대표작품을 선보이는, 국내 첫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는 20여 점에 달하는 <수련> 연작과
지베르니 정원의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 전시의 중심 축을 이룬다.
이 전시는 모네 예술의 단면을 손쉽게 이해토록 하기 위해
5개의 테마로 구성되었다.
모네 예술의 결정판이라 여겨지는 <수련>을 필두로
모네 작품의 주된 소재를 구성하는 초기부터
모네의 삶의 반을 차지한 지베르니의 정원,
그의 가족을 그린 인물화,
그리고 모네의 눈에 비친
유럽의 풍경을 담은 유럽의 빛이 주된 구성이다.
2007.06.14 21:41:28 (*.47.198.170)
수인후배!
모네그림 잘 봤어요.
모네의 연작들을 보면서 그의 열정과
끊없는 탐구심에도 감동합니다.
시간마다 바뀌는 건초더미의 내리는 빛의
움직임을 지칠 줄 모르고 그려내는 그런......
여기 포플러에서도......
수련에서도........
도를 닦듯 그렇게 에술을 닦아내는 구도자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하여
또 그림에서 빛이 납니다.
예술 행위를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큰 본 보기란 생각이 드네요.
고마와요
모네그림 잘 봤어요.
모네의 연작들을 보면서 그의 열정과
끊없는 탐구심에도 감동합니다.
시간마다 바뀌는 건초더미의 내리는 빛의
움직임을 지칠 줄 모르고 그려내는 그런......
여기 포플러에서도......
수련에서도........
도를 닦듯 그렇게 에술을 닦아내는 구도자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하여
또 그림에서 빛이 납니다.
예술 행위를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큰 본 보기란 생각이 드네요.
고마와요
2007.06.15 07:41:30 (*.204.58.53)
수인아~
그림 감상 잘 했다.
햇살이 점점 뜨거워지는 초여름에 어울리는 그림이다.
모네 전시회에 가고 싶어진다.
볼것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은데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도 들고~
오늘 새벽에 집 옆 산에 잠깐 올라갔다왔어.
역시 자연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아주 귀한 선물이야.
이렇게 그림 자주 올려주어 너무 좋다.
고마워.(:y)(:l)
그림 감상 잘 했다.
햇살이 점점 뜨거워지는 초여름에 어울리는 그림이다.
모네 전시회에 가고 싶어진다.
볼것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은데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도 들고~
오늘 새벽에 집 옆 산에 잠깐 올라갔다왔어.
역시 자연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아주 귀한 선물이야.
이렇게 그림 자주 올려주어 너무 좋다.
고마워.(:y)(:l)
2007.06.17 22:58:44 (*.222.111.206)
수인후배~
모네의 포플러 연작을 올려 놓았을때
포플러 나무가 주인공이 된 일화를 올리려고 했었는데
타이밍을 놓치고....이제서야...들어왔네요.
그 이야기인즉
모네가 르네 감페르에게 이 포플러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했다는군요
어느날 지베르니에 가까운 리메츠라는곳을 산책하고 있을 때,
에프트 강이 굽이진 강변의 멋있는 포플라 가로수에 매료되었다는군요
그래서 또 그곳을 찾았나봅니다
그러던 어느날 줄기에 빨간 헝겊이 매어져 있는 나무를 발견했답니다.
우리 요즈음도 차압딱지가 붙듯이 이 가로수가 경매에 붙여져
가까운 제재소에서 제재를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경매의 연기 신청을 했으나 각하되자, 겨우 발견한 해결책이란
낙찰가능성이 가장 많은 입찰 희망자에게 교섭하여 그가 지불한
액수보다 더 많은 금액을 낼 터이니,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업자를 찾아가서 부탁했답니다.
이렇게해서 모네의 대표적인 연작 <포플라 가로수>가 탄생 했다합니다.
테이트 갤러리에 있는 <포플라 가로수>는 1890년 여름 제작한 작품이고
이 연작 중 가장 일찍 그린 작품의 하나 이고
이듬해인 1891년에도 이 연작을 계속하여, 1892년 3월에는
뒤랑-뤼엘의 화랑에서 이 작품 가운데 6점을 선택하여 발표했답니다.
모네는 "빛의 사냥군"이었고 에프트 강변의 포플라 가로수는 이 사냥군이
쳐둔 덫 같은 것일지도 모르고 시간을 바꾸고, 날을 바꾸고, 날씨를 바꾸고
장소를 바꾸고, 화폭의 크기와 형태를 바꾸고, 모든 변수항에 있는
조건을 대입해 간거라는군요.
사냥감으로 뽑힌 포플라 가로수가 강이 굽이진 정도에 따라,
굽이지면서 화면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쭉 곧은 줄기와 나무 끝에
뭉친 것이 그리는 무브망을 뼈대로 하여 짜여지는 빛의 변용을
하늘과 물빛의 대화로 까지 환원 시켰고
그래서 포플라 나무는 그 구실에 지나지 않을 만큼.................
꽤 두껍게 칠해지고, 분방하게 그어진 필촉의 부각이 그늘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다시 말해서 그늘 속에까지 색채를 추구했답니다.
아!.....빛의 화가 모네가 말이죠....
가끔 인사동 겔러리에 들려 유화를 대하면
동양화를 조금 공부한 나는 이질감과 더불어 유화가 갖는 질감에
부러움도 느끼기도하고....반대로 거부감도 느끼곤 했지요.
그러나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훌륭한 작품을 대하면
정신을 빼앗깁니다......그림 ...음악....글......모든것에.
수인후배도 그림 , 글 , 음악을 사랑하니
할일이 많아지겠어요.............우리가 빠져들고 가고싶은 길이니....
모네의 포플러 연작을 올려 놓았을때
포플러 나무가 주인공이 된 일화를 올리려고 했었는데
타이밍을 놓치고....이제서야...들어왔네요.
그 이야기인즉
모네가 르네 감페르에게 이 포플러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했다는군요
어느날 지베르니에 가까운 리메츠라는곳을 산책하고 있을 때,
에프트 강이 굽이진 강변의 멋있는 포플라 가로수에 매료되었다는군요
그래서 또 그곳을 찾았나봅니다
그러던 어느날 줄기에 빨간 헝겊이 매어져 있는 나무를 발견했답니다.
우리 요즈음도 차압딱지가 붙듯이 이 가로수가 경매에 붙여져
가까운 제재소에서 제재를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경매의 연기 신청을 했으나 각하되자, 겨우 발견한 해결책이란
낙찰가능성이 가장 많은 입찰 희망자에게 교섭하여 그가 지불한
액수보다 더 많은 금액을 낼 터이니,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업자를 찾아가서 부탁했답니다.
이렇게해서 모네의 대표적인 연작 <포플라 가로수>가 탄생 했다합니다.
테이트 갤러리에 있는 <포플라 가로수>는 1890년 여름 제작한 작품이고
이 연작 중 가장 일찍 그린 작품의 하나 이고
이듬해인 1891년에도 이 연작을 계속하여, 1892년 3월에는
뒤랑-뤼엘의 화랑에서 이 작품 가운데 6점을 선택하여 발표했답니다.
모네는 "빛의 사냥군"이었고 에프트 강변의 포플라 가로수는 이 사냥군이
쳐둔 덫 같은 것일지도 모르고 시간을 바꾸고, 날을 바꾸고, 날씨를 바꾸고
장소를 바꾸고, 화폭의 크기와 형태를 바꾸고, 모든 변수항에 있는
조건을 대입해 간거라는군요.
사냥감으로 뽑힌 포플라 가로수가 강이 굽이진 정도에 따라,
굽이지면서 화면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쭉 곧은 줄기와 나무 끝에
뭉친 것이 그리는 무브망을 뼈대로 하여 짜여지는 빛의 변용을
하늘과 물빛의 대화로 까지 환원 시켰고
그래서 포플라 나무는 그 구실에 지나지 않을 만큼.................
꽤 두껍게 칠해지고, 분방하게 그어진 필촉의 부각이 그늘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다시 말해서 그늘 속에까지 색채를 추구했답니다.
아!.....빛의 화가 모네가 말이죠....
가끔 인사동 겔러리에 들려 유화를 대하면
동양화를 조금 공부한 나는 이질감과 더불어 유화가 갖는 질감에
부러움도 느끼기도하고....반대로 거부감도 느끼곤 했지요.
그러나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훌륭한 작품을 대하면
정신을 빼앗깁니다......그림 ...음악....글......모든것에.
수인후배도 그림 , 글 , 음악을 사랑하니
할일이 많아지겠어요.............우리가 빠져들고 가고싶은 길이니....
2007.06.18 08:16:40 (*.172.221.40)
은희언니~
포풀러 연작에 얽힌, 일화 잘 읽었어요.
혜경 언니 말처럼,
모네의 열정과 끊임없는 탐구심에 감탄하고, 또 감동합니다.
그림, 음악, 글......이런 것에 매료 되기도 하지만
영혼의 갈망은 어찌하구요?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갈망(주님과의 관계)과
제 마음 먹은대로 되어지지 않는 그림 때문에
요즘 제가 좀 낙담 해 있어요.
한달 전부터, 어느 한국교회에서
미술강의가 있어서 출석하고 있답니다.
교수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 출신(45년생)에 뉴욕으로 유학오셨고
미국아이들에 비해, 엄청 뒤쳐진 자신의 그림-특히 창의력에 낙망했답니다.
그래서 Art History로 전공을 바꾸었고
지금은 여기, 유명한 예술 대학(OTS)의 미술과 교수이지요.
그림도 많이 그렸더군요. 주로 추상의....
곧 은퇴하신다고 하는데
수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강의 듣고, 스케치도 하고, 다음엔 야외에 나가기로 했답니다.
그러나, 어찌 이런 것만이 제 인생이겠어요?
끝없는 물음표입니다.::s
그리고 죄송합니다::$(:l)
포풀러 연작에 얽힌, 일화 잘 읽었어요.
혜경 언니 말처럼,
모네의 열정과 끊임없는 탐구심에 감탄하고, 또 감동합니다.
그림, 음악, 글......이런 것에 매료 되기도 하지만
영혼의 갈망은 어찌하구요?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갈망(주님과의 관계)과
제 마음 먹은대로 되어지지 않는 그림 때문에
요즘 제가 좀 낙담 해 있어요.
한달 전부터, 어느 한국교회에서
미술강의가 있어서 출석하고 있답니다.
교수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 출신(45년생)에 뉴욕으로 유학오셨고
미국아이들에 비해, 엄청 뒤쳐진 자신의 그림-특히 창의력에 낙망했답니다.
그래서 Art History로 전공을 바꾸었고
지금은 여기, 유명한 예술 대학(OTS)의 미술과 교수이지요.
그림도 많이 그렸더군요. 주로 추상의....
곧 은퇴하신다고 하는데
수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강의 듣고, 스케치도 하고, 다음엔 야외에 나가기로 했답니다.
그러나, 어찌 이런 것만이 제 인생이겠어요?
끝없는 물음표입니다.::s
그리고 죄송합니다::$(:l)
2007.06.18 13:33:51 (*.222.111.206)
수인후배~
내가 30대때 고만고만한 애들 셋을 키우던때 이야기를 하지요
그 시절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은 우유먹이는 열풍이 불던 시절이라
전업주부인 여인네들도 모두 모유를 마다하고 우유들을 먹였지요...대부분...
그러나 특별한 모성이 있어서가 아니라...나는 아이들 셋을
모두 젖을 먹여 키우고 하느라 ....기회를 만들어 주는 선 생님께
다니던 화숙도 그만두고....그 다음엔 이런 저런 핑계 때문에
아예 그림은 잊어버리고 살았지요.
그러다 남편직장따라 이사다니다 서울 강남으로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아파트란 곳에 이사를하고..... 그 많던 일이 한꺼번에 줄어들고
40중반에 내 시간이라는것이 조금 생겨 그림을 다시 시작했었답니다.
그래 너무 행복하기도하고 그동안 목말랐던 ....갈증에서 물을 만났으니
개자원 화전도 밤을 새워 통독하고 연습하고
다른것은 몰라도 비싼 물감과 화선지는 아까운줄 모르고
써 버리곤 했었지요......그래서 그나마 몇몇 작품들이 졸작이나마
남아있는데....
그때는 그림이 잘되던지 안되던지 그런것은 별로 염두에 두게
되질 않더라구요.
그냥 다시 붓을 잡을 기회가 나에게 주워졌다는게 고마웠지요.
그리고 얼마후 시부모님들이 연로해지시고 아버님이 치매끼가 생기자
아들로는 독자인 우리부부는 마땅히 부모님을 모시게되고
그후 10년 다시 붓을 들 기회가 사라지게 되어었지요.
그리고 지금 이 나이가 되고보니 열정도 열망도 육체적인 조건도
흐려져 있더군요....시계가 흐릿해서 보이는것도 자신없고
판단력은 더더구나 퇴보일로에 처해있고....당연히 자신감이 없어집디다
그런데 요즈음 그런생각을 합니다.
안하는거 보다는 그래도 무언가 하고있는것은
내 영혼을 일깨워서 고추세우는 일이라고
그것이 주님(영혼)을 향해 가는 일과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일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육체와 정신이 아예 동떨어진것이 아니라고 믿는 나는
건강한 정신이나 육체가 우리영혼에 갈길을 잡아준다고 믿기때문에
그러니 그걸 지탱하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노력은 해봐야 한다고 믿고
하고싶은것을 열심히 하다보면
영혼의 안식처도 생길것같고........그래서 신앙인으로서도 행복하지않겠나
하네요....수인후배....
속세를 떠나 수도자나 수행자로 머물고 있는 오로지 종교에
헌신하는 분들도...........본인이 항상 지니고있는 화두...
자기가는길이...이것이 무엇인가...라네요.
내가 30대때 고만고만한 애들 셋을 키우던때 이야기를 하지요
그 시절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은 우유먹이는 열풍이 불던 시절이라
전업주부인 여인네들도 모두 모유를 마다하고 우유들을 먹였지요...대부분...
그러나 특별한 모성이 있어서가 아니라...나는 아이들 셋을
모두 젖을 먹여 키우고 하느라 ....기회를 만들어 주는 선 생님께
다니던 화숙도 그만두고....그 다음엔 이런 저런 핑계 때문에
아예 그림은 잊어버리고 살았지요.
그러다 남편직장따라 이사다니다 서울 강남으로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아파트란 곳에 이사를하고..... 그 많던 일이 한꺼번에 줄어들고
40중반에 내 시간이라는것이 조금 생겨 그림을 다시 시작했었답니다.
그래 너무 행복하기도하고 그동안 목말랐던 ....갈증에서 물을 만났으니
개자원 화전도 밤을 새워 통독하고 연습하고
다른것은 몰라도 비싼 물감과 화선지는 아까운줄 모르고
써 버리곤 했었지요......그래서 그나마 몇몇 작품들이 졸작이나마
남아있는데....
그때는 그림이 잘되던지 안되던지 그런것은 별로 염두에 두게
되질 않더라구요.
그냥 다시 붓을 잡을 기회가 나에게 주워졌다는게 고마웠지요.
그리고 얼마후 시부모님들이 연로해지시고 아버님이 치매끼가 생기자
아들로는 독자인 우리부부는 마땅히 부모님을 모시게되고
그후 10년 다시 붓을 들 기회가 사라지게 되어었지요.
그리고 지금 이 나이가 되고보니 열정도 열망도 육체적인 조건도
흐려져 있더군요....시계가 흐릿해서 보이는것도 자신없고
판단력은 더더구나 퇴보일로에 처해있고....당연히 자신감이 없어집디다
그런데 요즈음 그런생각을 합니다.
안하는거 보다는 그래도 무언가 하고있는것은
내 영혼을 일깨워서 고추세우는 일이라고
그것이 주님(영혼)을 향해 가는 일과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일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육체와 정신이 아예 동떨어진것이 아니라고 믿는 나는
건강한 정신이나 육체가 우리영혼에 갈길을 잡아준다고 믿기때문에
그러니 그걸 지탱하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노력은 해봐야 한다고 믿고
하고싶은것을 열심히 하다보면
영혼의 안식처도 생길것같고........그래서 신앙인으로서도 행복하지않겠나
하네요....수인후배....
속세를 떠나 수도자나 수행자로 머물고 있는 오로지 종교에
헌신하는 분들도...........본인이 항상 지니고있는 화두...
자기가는길이...이것이 무엇인가...라네요.
2007.06.18 14:43:23 (*.47.198.170)
은희언니,
저도 자기 사랑이 곧 주님을 사랑할 수있는 가장
빠르고 바른 길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고싶은것을 열심히" 할 수있게 되면 끝갈 때 없는
기쁨과 행복감이 곧바로 주님께 감사 또 감사로
이어지는게 아닌 가 합니다.
가정을 보살피면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주위 관계를
유지하면서 또 그림도 잘 그리려는 생각은 환상 입니다.
인간의 한계 라는게
그 때 그때 마다,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하고싶은 일들을
놓을 수 밖에 없지요.
그것이 언제 이던지, 우리가 다시 우리가 열심히 하고싶은 일들로
돌아 갈 수있다면 그건 신의 축복이며 충분이 감사 하여야 할
일입니다
수인후배,
주님과의 그 어떤 완벽한 관계를 그리기 보다는 그냥 착한
자녀 노릇 하면 그 것도 나쁘진 않지 않을 까요?
그리구,
제 선생님이 항상 말 합니다.
어려우니까 fine art를 하는 것이지
하기 쉰운 거라면 무슨 할일이 없어 붙잡고
애를 쓰겠느냐구.........
말 됩니까?
저도 자기 사랑이 곧 주님을 사랑할 수있는 가장
빠르고 바른 길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고싶은것을 열심히" 할 수있게 되면 끝갈 때 없는
기쁨과 행복감이 곧바로 주님께 감사 또 감사로
이어지는게 아닌 가 합니다.
가정을 보살피면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주위 관계를
유지하면서 또 그림도 잘 그리려는 생각은 환상 입니다.
인간의 한계 라는게
그 때 그때 마다,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하고싶은 일들을
놓을 수 밖에 없지요.
그것이 언제 이던지, 우리가 다시 우리가 열심히 하고싶은 일들로
돌아 갈 수있다면 그건 신의 축복이며 충분이 감사 하여야 할
일입니다
수인후배,
주님과의 그 어떤 완벽한 관계를 그리기 보다는 그냥 착한
자녀 노릇 하면 그 것도 나쁘진 않지 않을 까요?
그리구,
제 선생님이 항상 말 합니다.
어려우니까 fine art를 하는 것이지
하기 쉰운 거라면 무슨 할일이 없어 붙잡고
애를 쓰겠느냐구.........
말 됩니까?
2007.06.18 16:48:32 (*.172.221.40)
은희언니, 혜경언니~
이제는 제 시간을 가지고
제가 하고픈 일을 하고 살 수 있는
모든 여건이 허락 되어있는데
정말 군말도 많지요?
욕심일까요? 자주 좌절이 되고
세월을 허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마 요즈음,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고
제가 영적으로 down되어 있어 그런가 봅니다.
절 위해 도와주시는 언니들과 친구들이 있어
곧 다시 힘을 낼 겁니다.
Thank you! (:l)
이제는 제 시간을 가지고
제가 하고픈 일을 하고 살 수 있는
모든 여건이 허락 되어있는데
정말 군말도 많지요?
욕심일까요? 자주 좌절이 되고
세월을 허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마 요즈음,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고
제가 영적으로 down되어 있어 그런가 봅니다.
절 위해 도와주시는 언니들과 친구들이 있어
곧 다시 힘을 낼 겁니다.
Thank you! (:l)
2007.06.18 23:23:51 (*.222.111.206)

<생따드레스의 해변>
Claude MONET 1867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Illinois
1865년 살롱전에 출품된 모네의 작품에는 <썰물 드는 에브만>과 <옹플뢰르의 센느강 어귀>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2년후, 이 화가는 <생따드레스 해변>- 위의 그림-에서 변함없이 요트들이며 바다를 그리고 있었다.

<정원의 여인들>은 1867년 살롱전에서 퇴자를 맞았지만 1년후 에밀졸라는 이 그림을 기억해내고 이렇게 썼다.
"밝은 색 옷을 입은 여자들이 정원 산책로를 거닐며 꽃을 꺾는모습이 그려져있다. 여자들의 흰 치마폭 위로 곧장 내리꽂히는 햇살은 화사함을 더해준다. 나무 한 그루에서 뻗어나온 옅은 그림자가 마치 널찍한 회색 모포처럼, 오솔길과 여자들의 옷에까지 침투해 있다. 이보다 더 기묘한 효과가 있을까"
카미유는 <정원의 여인들> (1866-1867)에서 또한번 모델이 되어주었다. 왼쪽 제일 끝에 서있는 인물이 바로 그녀이다
2007.06.19 16:06:23 (*.172.221.40)
은희 언니~
모네의 1860년대와 90년대의 그림에
많은 변화가 엿 보입니다.
1890년대 이후의 지베르니 시절이
그 만의 독특한 인상적인 화풍을 완성한 시기 인 것 같습니다.
Haystack, 수련, 포풀라연작 등.
빛에 의한 색채의 변화가
점점더 세심하여, 대기의 움직임-바람까지 표현 된 것을 보면요.
오늘 오후, 산길을 달려 내려 가
퍼시픽 하이웨이(1번 도로)를 달려
말리부와 산타모니카 해변을 한바퀴 돌고
진짜 이태리 식당의 피자와 파스타 맛을 보았지요.
오 솔레미오~ 노래도 듣구요.
낮에 그림도 한 장 그렸어요.
산타모니카에서 뉴욕으로부터 걸려 온
친구 전화로 많은 위안도 되었고요;:)
모네의 1860년대와 90년대의 그림에
많은 변화가 엿 보입니다.
1890년대 이후의 지베르니 시절이
그 만의 독특한 인상적인 화풍을 완성한 시기 인 것 같습니다.
Haystack, 수련, 포풀라연작 등.
빛에 의한 색채의 변화가
점점더 세심하여, 대기의 움직임-바람까지 표현 된 것을 보면요.
오늘 오후, 산길을 달려 내려 가
퍼시픽 하이웨이(1번 도로)를 달려
말리부와 산타모니카 해변을 한바퀴 돌고
진짜 이태리 식당의 피자와 파스타 맛을 보았지요.
오 솔레미오~ 노래도 듣구요.
낮에 그림도 한 장 그렸어요.
산타모니카에서 뉴욕으로부터 걸려 온
친구 전화로 많은 위안도 되었고요;:)
2007.06.19 16:41:41 (*.222.111.206)

"Champ de coquelicots à Giverny"
Claude MONET 1885
Virginia Museum of Fine Arts, Richmond, Virginia
저는 황홀경에 빠져 있습니다. 저에게 지베르니는 너무도 멋진 곳입니다" 1883년 모네는 뒤레에게 이렇게 썼다.
1880연대 내내, 모네는 파리에서 서북쪽으로 64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에프트 강과 센 강의 합류점에 위치한 이 마을이 점점 좋아진다고 맣은 편지를 통해 끊임없이 토로했다. 7년후 그는 "이곳보다 더 아름다운 전원이나 가옥은 어디에서도 다시 찾아볼 수 없을 것임을 확신하고"지베르니의 집을 사들였다.
"저는 지베르니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여행 중에도 모네는 오직 지베르니와 그 정원, 아들 장과 미셀, 연인 알리스, 그리고 오슈데의 아이들을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 전원에서의 내 생활을 다시 찾고 싶소.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면 정말 좋을 것 같소." (1884년 2월 12일, 보르디게라에서 알리스에게 보낸 편지) 모네-로댕 공동전시회 카달로그를 작성할 당시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그린 넉점을 묶어 '야외 인물 스켓치'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림들은 오슈데의 딸들을 그린 것이었는데, 그는 1890년 7월 11일 모리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아이들을 '내 어여쁜 모델들'이라 불렀다. 옥타브 미르보가 '아름다운 지베르니의 인물화'라고 묘사한 이 그림들은, 모네가 사생활과 작업을 접합하여 창조한 자신만의 이상적인 세계를 느끼게 해준다.
이것을 인위적인 기교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산 예술임을 간파한 미르보는, 카달로그 서문에서 그의 가정적 행복을 특히 강조하면서 이렇게 평했다. "인간의 의지를 좀먹고 용기를 파괴하는 열병,아귀다툼, 계략으로 가득찬 파리는, 모네와 같은 우직한 정관자, 사물에 내재한 생명과 자신의 위대한 열정을 상통시키는 자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시골에서 살며.....야외는 그의 스튜디오이다. 소문도, 동인이나 심사위원도, 미학도,볼썽사나운 질투도 없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그리고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수인후배여~
모네가 초기에 그림을 그릴때 곤궁한 처지에서 그만의
예술성을 갖고 버텨나가는 과정을 읽었을때
그림작품도 훌륭하지만....나는 그과정을 더 존경했었다네.
어려움이 없이 어느날 불쑥 만들어진 예술보다
많은 이야기가 있는 그런 작품들이 더 값지게 생각되어지고
또 그런 작품들은 결국 훌륭하더라구....종내에는.....
2007.06.20 00:38:01 (*.172.221.40)
은희 언니~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모네에 대해
조금 더 알아 지는 것 같습니다.
정원을 그의 팔레트라 했다지요?
야외는 그의 스튜디오가 되었으며
'소문, 동인이나 심사위원도, 미학도,볼썽사나운 질투도 없는
바로 그 곳에서......'
아~그런 모네가, 그런 것에 무심한 모네가
자유로운 예술가인 모네가....
참 좋습니다.
앞의 방에서, 올리시는
생각케 하는 詩... 잘 읽고 있습니다.
은희 언니로 인해
5기 방이 더욱...아름다운 문화 방이 되어 가고 있어요(:l)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모네에 대해
조금 더 알아 지는 것 같습니다.
정원을 그의 팔레트라 했다지요?
야외는 그의 스튜디오가 되었으며
'소문, 동인이나 심사위원도, 미학도,볼썽사나운 질투도 없는
바로 그 곳에서......'
아~그런 모네가, 그런 것에 무심한 모네가
자유로운 예술가인 모네가....
참 좋습니다.
앞의 방에서, 올리시는
생각케 하는 詩... 잘 읽고 있습니다.
은희 언니로 인해
5기 방이 더욱...아름다운 문화 방이 되어 가고 있어요(:l)
2007.06.20 22:34:25 (*.222.111.206)
수인후배~
그림을 그리는 동안
완성이 얼마만큼 잘되어가나보다........
그냥 그 시간이 행복하니 그러니 좋은거지요.
데생을 하고 색을 입히고.........
아니....그냥 마음을 그리지요.
모네의 그림 몇가지 또 올려볼까요.

La maison de l'Artiste à Argenteuil"<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집>
Claude MONET 1873
Art Institute of Chicago, Illinois

Bouquet de mauves"
Claude MONET 1880
Courtauld Institute Galleries, London
"Il me faut surtout avoir des fleurs, toujours, toujours."
"More than anything I must have flowers, always always."
"나에겐 무엇보다도 꽃이 있어야합니다. 언제나 언제나 " (클로드 모네)

"Bouquet de soleils"
Claude MONET 1881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그림을 그리는 동안
완성이 얼마만큼 잘되어가나보다........
그냥 그 시간이 행복하니 그러니 좋은거지요.
데생을 하고 색을 입히고.........
아니....그냥 마음을 그리지요.
모네의 그림 몇가지 또 올려볼까요.

La maison de l'Artiste à Argenteuil"<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집>
Claude MONET 1873
Art Institute of Chicago, Illinois

Bouquet de mauves"
Claude MONET 1880
Courtauld Institute Galleries, London
"Il me faut surtout avoir des fleurs, toujours, toujours."
"More than anything I must have flowers, always always."
"나에겐 무엇보다도 꽃이 있어야합니다. 언제나 언제나 " (클로드 모네)

"Bouquet de soleils"
Claude MONET 1881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2007.06.21 21:12:05 (*.222.111.206)

"La Promenade (Argenteuil)"
Claude MONET 1875
Private collection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계획이 있는데, 야외의 인물을 내가 이해하는 대로 풍경화처럼 그려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저의 오랜 꿈입니다." (1887년 8월 13일 뒤레에게 보낸 편지)

"La Promenade, la femme à l'ombrelle"
Claude MONET 1875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모네는, 에프트 강 어귀 강둑 위에서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쉬잔 오슈데의 모습을 보고 카미유(죽은 첫 번째 부인)와 장(그의 큰 아들)을 담은 비슷한 구도의 이 그림을 착상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1886년에 제작된 두 그림(쉬잔을 등장시킨)에서 그는 죽은 아내를 생각했을 것이다. 이때 쉬잔과 아내의 닮은 점 때문에 마음이 아파 쉬잔의 모습에서 구체적 특징을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Sous les Peupliers, effet de soleil"
<포플라 밑에서,햇빛의 효과>
Claude MONET 1887
Staatsgalerie, Stuttgart, DE
2007.06.24 08:03:17 (*.222.111.206)
수인후배~
그림,글 ,음악, ......이것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필수적인 요소이지요.
그림을 그릴때 좋은 음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기분이 빠져들어가기도 하니까요
또 글을 읽으면 어떤 촉발을 느끼기도 해서
많은 문학작품에 또 작가들에게 감사함을 느끼지요
모네전에 다녀왔지만
이곳 전시장 분위기가 수많은 인파로인해
차분하게는 감상하지는 못하겠더라구요
끝날무렵 다시 한번 가보려고해요.
화집과 기념품으로 네델란드의 튜립밭을 그린 양산을
사오고.... 그랬네요.
이곳저곳서 가져오는 그림들의 한계는 있지만
이렇게 장수한 화가의 작품은 그 수가 엄청나서
그들의 전천후 정력에 열정에 감탄을 아니 할 수가 없지요.
오늘을 끝으로 며칠은 전화사정으로 인터넷에서
물러서서 그림이나 그리려고 하지요............
어찌면 잘 된일인지도 모르구요....ㅎㅎㅎ...
요번참에 본 모네의 그림중
잘 알고있는 꿩그림 올릴게요.
내 디지탈 카메라로 화집에 있는것을 찍은거라 조명빛도
반사되고 해서 ....그렇지만 ...내가 본듯 보시와요...
아~.............
수인후배 그림도 한번 보면 좋겠다.
며칠후가 될지....모네전에서 본 작품들 찍어 올려 볼게요

1880년 캔버스에 유화 개인소장, 파리
개인소장이라고 해서.....부러워했지요....
그리고 일화....
우리집 진도견인 보리가 전에 우리밭에 찾아 날라온 꿩을
잡곤해서 꿩의 늘어진 이 모습이 리얼하게 다가오지요
그림,글 ,음악, ......이것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필수적인 요소이지요.
그림을 그릴때 좋은 음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기분이 빠져들어가기도 하니까요
또 글을 읽으면 어떤 촉발을 느끼기도 해서
많은 문학작품에 또 작가들에게 감사함을 느끼지요
모네전에 다녀왔지만
이곳 전시장 분위기가 수많은 인파로인해
차분하게는 감상하지는 못하겠더라구요
끝날무렵 다시 한번 가보려고해요.
화집과 기념품으로 네델란드의 튜립밭을 그린 양산을
사오고.... 그랬네요.
이곳저곳서 가져오는 그림들의 한계는 있지만
이렇게 장수한 화가의 작품은 그 수가 엄청나서
그들의 전천후 정력에 열정에 감탄을 아니 할 수가 없지요.
오늘을 끝으로 며칠은 전화사정으로 인터넷에서
물러서서 그림이나 그리려고 하지요............
어찌면 잘 된일인지도 모르구요....ㅎㅎㅎ...
요번참에 본 모네의 그림중
잘 알고있는 꿩그림 올릴게요.
내 디지탈 카메라로 화집에 있는것을 찍은거라 조명빛도
반사되고 해서 ....그렇지만 ...내가 본듯 보시와요...
아~.............
수인후배 그림도 한번 보면 좋겠다.
며칠후가 될지....모네전에서 본 작품들 찍어 올려 볼게요

1880년 캔버스에 유화 개인소장, 파리
개인소장이라고 해서.....부러워했지요....
그리고 일화....
우리집 진도견인 보리가 전에 우리밭에 찾아 날라온 꿩을
잡곤해서 꿩의 늘어진 이 모습이 리얼하게 다가오지요
2007.06.24 10:00:16 (*.222.111.206)
....모네의 과일 타르트.....
이 작품이 모네의 그림중에서 유명하지는 않지만, 모네가 일생에서 가장
행복을 느꼈던 순간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가 내가 먹는걸 좋아해서 그런가...타르트라고 하지만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이 듭니다.....
모네는 1882년초 망수현 해안에 위치한 푸르빌로 스케치 여행을 떠나고
"수인후배 우리도 스케치 여행 떠날때 어느 여행보다 맑은 정신이 되잖아요."
여행지인 그곳 "과일 타르트로 유명한집" 이라는 상호가 붙은 폴 영감의
식당겸 호텔에 투숙했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알리스에게 편지를 쓰지요
"이곳은 훌륭한 요리사 폴 영감의 식당으로 과일 타르트가 유명한 집이라오.
여기처럼 과일 타르트가 싸고 맛있는 곳은 아마 없을거요."
여기서 나는 마음씨 좋은 분들의 집에 머물고 있소. 그 분들은 투숙객들을
즐겁게 맞이하며 성심을 다한다오. 주변의 풍경도 너무 아름답소.........
여기 해안 자갈밭에 나가 있으면 이보다 더 바다와 가까울 수는 없을거요.
파도가 집 언저리까지 적시는 그런 곳이라오."
수인 후배 화가가 그냥 시인이 되는 그런 장면을 보는것 같지 않나요.
그냥 감동입니다......그 모든 장면들이 그려지구요.
모네는 그당시 이 스케치여행이 유익했으며 순조로운 작업과 그를 맞아주는
따뜻한 환대속에서 모네는 그가 겪고있는 금전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복의 절정을 맛보았다하는군요.
당시 모네의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정물을 그린 이 작품은 어느
풍경화와는 달리 매우 자세하게 표현되어있지요.
그냥 리얼리티 그대로입니다.
빛의 효과나 특별한 탐색도 찾아보기 힘든 즐거웠던 이야기가 있는
한 순간을 표현한 작품.......그래서 나는 유명하지는 않다지만
그래서 더 좋답니다.

....과일 타르트...1882년 캔버스의 유화...개인소장,파리
개인소장한 작품은 아마도 개인이 소장할때는 놀라운 금액으로
구입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서...그래서 더욱 부럽습니다.
이 작품이 모네의 그림중에서 유명하지는 않지만, 모네가 일생에서 가장
행복을 느꼈던 순간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가 내가 먹는걸 좋아해서 그런가...타르트라고 하지만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이 듭니다.....
모네는 1882년초 망수현 해안에 위치한 푸르빌로 스케치 여행을 떠나고
"수인후배 우리도 스케치 여행 떠날때 어느 여행보다 맑은 정신이 되잖아요."
여행지인 그곳 "과일 타르트로 유명한집" 이라는 상호가 붙은 폴 영감의
식당겸 호텔에 투숙했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알리스에게 편지를 쓰지요
"이곳은 훌륭한 요리사 폴 영감의 식당으로 과일 타르트가 유명한 집이라오.
여기처럼 과일 타르트가 싸고 맛있는 곳은 아마 없을거요."
여기서 나는 마음씨 좋은 분들의 집에 머물고 있소. 그 분들은 투숙객들을
즐겁게 맞이하며 성심을 다한다오. 주변의 풍경도 너무 아름답소.........
여기 해안 자갈밭에 나가 있으면 이보다 더 바다와 가까울 수는 없을거요.
파도가 집 언저리까지 적시는 그런 곳이라오."
수인 후배 화가가 그냥 시인이 되는 그런 장면을 보는것 같지 않나요.
그냥 감동입니다......그 모든 장면들이 그려지구요.
모네는 그당시 이 스케치여행이 유익했으며 순조로운 작업과 그를 맞아주는
따뜻한 환대속에서 모네는 그가 겪고있는 금전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복의 절정을 맛보았다하는군요.
당시 모네의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정물을 그린 이 작품은 어느
풍경화와는 달리 매우 자세하게 표현되어있지요.
그냥 리얼리티 그대로입니다.
빛의 효과나 특별한 탐색도 찾아보기 힘든 즐거웠던 이야기가 있는
한 순간을 표현한 작품.......그래서 나는 유명하지는 않다지만
그래서 더 좋답니다.

....과일 타르트...1882년 캔버스의 유화...개인소장,파리
개인소장한 작품은 아마도 개인이 소장할때는 놀라운 금액으로
구입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서...그래서 더욱 부럽습니다.
2007.06.24 10:44:11 (*.222.111.206)
...와우 ....오늘 지금 막 우리집양반 후배 교수가 픽업해서 데불고 갔네요
일요일은 그냥 하루종일 시중들어 주어야 할 일이 많은 날인데...ㅎㅎㅎㅎ
내일서부터는 전화선 공사가 있을예정이구요....
대학 창작교실이 항상 방학중에 있는데 안가려고 뭉기고 있는 이사람
대학후배이고 같이 시를 쓰는 후배여서 인지 일산서 여기까지 일부러
데리러 왔으니 꼼짝없이 실려 갔네요...ㅎㅎㅎㅎㅎ
벼란간 시간이 널널해 졌네요...그러면 자....모네의 그림 몇개
더 올려볼까요....
일요일은 그냥 하루종일 시중들어 주어야 할 일이 많은 날인데...ㅎㅎㅎㅎ
내일서부터는 전화선 공사가 있을예정이구요....
대학 창작교실이 항상 방학중에 있는데 안가려고 뭉기고 있는 이사람
대학후배이고 같이 시를 쓰는 후배여서 인지 일산서 여기까지 일부러
데리러 왔으니 꼼짝없이 실려 갔네요...ㅎㅎㅎㅎㅎ
벼란간 시간이 널널해 졌네요...그러면 자....모네의 그림 몇개
더 올려볼까요....
2007.06.24 10:46:56 (*.222.111.206)
....폴리의 초상....
1886년 캔버스의 유화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2천점(와우!!!!!)의 달하는 모네의 작품중에 몇점의 가족 초상을 제외하고는,
인물화는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해서 이그림도 올려보려해요.
모네가 작품을 위해 여행을 떠났다고 하는것은 전 그림에서도 밝혔고
이 작품도 브르타뉴 지역의 대서양과 마주한 섬 끝자락 케르빌라우왕
이라는 곳에 하나뿐인 카페에 묵으면서 그림을 그릴때
날씨가 변덕스러워 거의 비 바람이 몰려와 모네는 바람과 파도가 날리는
물보라를 상대로 화구와 캔버스를 옮기면서 그림을 그렸다는군요
당연히 이런 악천후속에서 그림을 그릴려면 도움이 필요했겠지요.
그래서 그는 폴리라는 애칭을 가진 전직 선원 히폴리트 기욤을 일당을
주고 채용해서 화구를 운반해 주거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
캔버스를 밧줄로 단단히 매주는 일을 하게했답니다.
그래 작품의 주인공인 그는 작품 소재를 찾아 다니는 동반자로서
모네 작품 제작의 산 증인이 되기도 한거죠....이왕 지사 일당 받고
일하는 직업이긴해도 이런 행운이 따라와 역사에 남는 주인공이
되는 그런일도 있군요.....운이 좋은 사람입니다...ㅎㅎㅎ
아마도 모네는 폴리라는 이 사내가 모네의 집념어린 작업에 감탄을
하는 모습을 보고.....업 되어서 이 그림을 그린듯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읽으니.....말입니다
"나는 폴리를 모델로 매우 사실적인 기법의 훌륭한 채색 스케치 한 점을
그렸다네. 마을 사람들에게 모두 보여 주었는데, 특히 기분 좋았던
것은 모두들 그를 운이 좋다며 추켜 세워줬다는 점이라네...."
이야기가 있는 그림....나는 그래서 샤갈을 좋아하기도 하지요.
1886년 캔버스의 유화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2천점(와우!!!!!)의 달하는 모네의 작품중에 몇점의 가족 초상을 제외하고는,
인물화는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해서 이그림도 올려보려해요.
모네가 작품을 위해 여행을 떠났다고 하는것은 전 그림에서도 밝혔고
이 작품도 브르타뉴 지역의 대서양과 마주한 섬 끝자락 케르빌라우왕
이라는 곳에 하나뿐인 카페에 묵으면서 그림을 그릴때
날씨가 변덕스러워 거의 비 바람이 몰려와 모네는 바람과 파도가 날리는
물보라를 상대로 화구와 캔버스를 옮기면서 그림을 그렸다는군요
당연히 이런 악천후속에서 그림을 그릴려면 도움이 필요했겠지요.
그래서 그는 폴리라는 애칭을 가진 전직 선원 히폴리트 기욤을 일당을
주고 채용해서 화구를 운반해 주거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
캔버스를 밧줄로 단단히 매주는 일을 하게했답니다.
그래 작품의 주인공인 그는 작품 소재를 찾아 다니는 동반자로서
모네 작품 제작의 산 증인이 되기도 한거죠....이왕 지사 일당 받고
일하는 직업이긴해도 이런 행운이 따라와 역사에 남는 주인공이
되는 그런일도 있군요.....운이 좋은 사람입니다...ㅎㅎㅎ
아마도 모네는 폴리라는 이 사내가 모네의 집념어린 작업에 감탄을
하는 모습을 보고.....업 되어서 이 그림을 그린듯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읽으니.....말입니다
"나는 폴리를 모델로 매우 사실적인 기법의 훌륭한 채색 스케치 한 점을
그렸다네. 마을 사람들에게 모두 보여 주었는데, 특히 기분 좋았던
것은 모두들 그를 운이 좋다며 추켜 세워줬다는 점이라네...."
이야기가 있는 그림....나는 그래서 샤갈을 좋아하기도 하지요.
2007.06.24 12:13:16 (*.222.111.206)
수련....1914년-1917년
캔버스에 유화 2미터 곱하기 2미터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수련..1907년
캔버스에 유화 81센치 셍테티엔느 근대미술관, 프랑스

원형액자가 부드럽고 아담해서 걸고싶은 잔잔하고 기품있는
그림이었답니다
1889년에서 1890년까지 모네의 물질적, 정신적 상황이 개선되었다.
조르쥬 쁘띠 갤러리에서 로댕과 함께 개최한 전시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모네의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그는 그래서 7년간 임대하던 지베르니의 저택을 구입하고 그야말로
불행하고 고통스런 시기를 끝내고 여유롭고 넉넉한 생활을 누리기 시작했다.
지베르니 저택은 한층에 방이 네개인 이층집으로 지하실과 다락방이 있었다.
옆에는 모네가 작업실로 쓰는 곳간이 있고 다른쪽에는 완만한 경사로 이어지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모네는 꽃이 활짝 핀 이 정원에서 작업했고, 지베르니 외곽 지역도 종종
화폭에 담았다.
1892년 그는 지베르니에서 알리스 오슈데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1893년은 의미있는 해였다.
모네는 자신의 집옆에서 강까가지 이어지는 대지를 구입하여 곧
정원 정비작업에 착수했다.(명성에 따라 작품값이 엄청났나보네요,,,와우)
1893년 부터 1901년까지 그는 연못을 만들고 길을 내고 정원사를 위한
집을 짓는 등 정원을 가꿨다.
지베르니의 삶의 터전을 만들고서도 모네는 노르웨이나 런던등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래도 그는 지베르니에서 40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고 미술사에
있어서 유례없는 대작인<수련> 연작도 이곳에서 제작했다.
이번 전시회에 소개된 수련 핀 연못을 그린 초기 작품은 주로 정사각형으로
모네는 1903년부터 이미 관습적인 형태의 캔버스를 거부하고 인상주의
화가들이 잘 사용하지않는 정사각형 캔버스를 선택했다.(정말 유니크하지요)
드물기는 하지만 그는 원형작품도 제작하였는데 인상주의 화가 중에
원형작품을 제작한 사람은 모네 외에는 없다.JMF.
.....이상은 열심히 화집설명을 타자하느라 수고했읍니다...ㅎㅎㅎ...
그 작품중 두개를 올립니다.
정사각 작품은 2미터 사각인데 기념품점에서 필사본을 12만원에
파는데 고민하다 안샀지요.... 아주 작은 사이즈인데 본 그림을
보다 살려니...기념으로라도 그렇더라구요...갈등이 잠간 있었지요....ㅎㅎㅎ...
캔버스에 유화 2미터 곱하기 2미터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수련..1907년
캔버스에 유화 81센치 셍테티엔느 근대미술관, 프랑스

원형액자가 부드럽고 아담해서 걸고싶은 잔잔하고 기품있는
그림이었답니다
1889년에서 1890년까지 모네의 물질적, 정신적 상황이 개선되었다.
조르쥬 쁘띠 갤러리에서 로댕과 함께 개최한 전시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모네의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그는 그래서 7년간 임대하던 지베르니의 저택을 구입하고 그야말로
불행하고 고통스런 시기를 끝내고 여유롭고 넉넉한 생활을 누리기 시작했다.
지베르니 저택은 한층에 방이 네개인 이층집으로 지하실과 다락방이 있었다.
옆에는 모네가 작업실로 쓰는 곳간이 있고 다른쪽에는 완만한 경사로 이어지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모네는 꽃이 활짝 핀 이 정원에서 작업했고, 지베르니 외곽 지역도 종종
화폭에 담았다.
1892년 그는 지베르니에서 알리스 오슈데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1893년은 의미있는 해였다.
모네는 자신의 집옆에서 강까가지 이어지는 대지를 구입하여 곧
정원 정비작업에 착수했다.(명성에 따라 작품값이 엄청났나보네요,,,와우)
1893년 부터 1901년까지 그는 연못을 만들고 길을 내고 정원사를 위한
집을 짓는 등 정원을 가꿨다.
지베르니의 삶의 터전을 만들고서도 모네는 노르웨이나 런던등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래도 그는 지베르니에서 40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고 미술사에
있어서 유례없는 대작인<수련> 연작도 이곳에서 제작했다.
이번 전시회에 소개된 수련 핀 연못을 그린 초기 작품은 주로 정사각형으로
모네는 1903년부터 이미 관습적인 형태의 캔버스를 거부하고 인상주의
화가들이 잘 사용하지않는 정사각형 캔버스를 선택했다.(정말 유니크하지요)
드물기는 하지만 그는 원형작품도 제작하였는데 인상주의 화가 중에
원형작품을 제작한 사람은 모네 외에는 없다.JMF.
.....이상은 열심히 화집설명을 타자하느라 수고했읍니다...ㅎㅎㅎ...
그 작품중 두개를 올립니다.
정사각 작품은 2미터 사각인데 기념품점에서 필사본을 12만원에
파는데 고민하다 안샀지요.... 아주 작은 사이즈인데 본 그림을
보다 살려니...기념으로라도 그렇더라구요...갈등이 잠간 있었지요....ㅎㅎㅎ...
2007.06.24 12:26:53 (*.222.111.206)
상준다는건 아니지만...댓글란 30까지 채우려 했는데요...ㅎㅎㅎㅎㅎ...
일산사는 친구가 좀 있으면 같이 밤을 지내고..
우리집 노래방기계 오래만에 가동도 할거구요
지금서부터 먹을거리 준비도 하고 하여야 겠네요
밭에나가 상추도 뜯고....고추도 따고... 하하....
며칠 그림도 그리고....쉬면서....
생각도 좀 하려구요...수인후배도 그림 열심히 그리고...
많은 활력을 찾기를 빌게요.
안녕!!!
일산사는 친구가 좀 있으면 같이 밤을 지내고..
우리집 노래방기계 오래만에 가동도 할거구요
지금서부터 먹을거리 준비도 하고 하여야 겠네요
밭에나가 상추도 뜯고....고추도 따고... 하하....
며칠 그림도 그리고....쉬면서....
생각도 좀 하려구요...수인후배도 그림 열심히 그리고...
많은 활력을 찾기를 빌게요.
안녕!!!
2007.06.24 15:00:56 (*.172.221.40)
은희 언니~
그림 올리시고, 타이핑 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어요.
상 주는 사람은 없지만서도
댓글 30번 째는 제 것이 되었네요. ㅎㅎ
이제 모처럼 언니만의 늘늘한 시간
편안하고 즐거운, 유용한 시간을 보내셔요.
그 심정 이해 하고도 남지요.
미국 와서 사는 십수년간
늘 같이 있으니...좀 그렇더군요.
그래서 저는 학교에 가는 날에는
일부러 도서관에 가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돌아오는 길에 몰에 들려 늦게 오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 밥 사먹기도 하고... 그랬답니다.
또 그가 잠시 산책이나, 다른 볼 일로 나가면
그 시간이 금새 지나 갈새라
얼른 음악 볼륨을 높이고....흐믓했었지요.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계셔도
무언가 풍성 할 것 같은, 그 기분...
이해하고도 남는답니다.::[::[
그림 올리시고, 타이핑 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어요.
상 주는 사람은 없지만서도
댓글 30번 째는 제 것이 되었네요. ㅎㅎ
이제 모처럼 언니만의 늘늘한 시간
편안하고 즐거운, 유용한 시간을 보내셔요.
그 심정 이해 하고도 남지요.
미국 와서 사는 십수년간
늘 같이 있으니...좀 그렇더군요.
그래서 저는 학교에 가는 날에는
일부러 도서관에 가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돌아오는 길에 몰에 들려 늦게 오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 밥 사먹기도 하고... 그랬답니다.
또 그가 잠시 산책이나, 다른 볼 일로 나가면
그 시간이 금새 지나 갈새라
얼른 음악 볼륨을 높이고....흐믓했었지요.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계셔도
무언가 풍성 할 것 같은, 그 기분...
이해하고도 남는답니다.::[::[
2007.06.24 15:10:01 (*.172.221.40)
제가 좋아하는 '수련'한 점 올립니다.

Water Lilies 1906
저 투명한 슬픔 위에
저 투명한 슬픔 위에 무엇이 비치는가?
연못에는 수련만 피어 있는 것이 아니다.
흰 구름꽃과 거울 같은 파란 하늘 전체가 피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응시하는 시선이
수면에 반사되는 빛처럼
반짝이는 보석으로 피어 있다.
수련꽃이여
수련꽃이여
흰 손이여, 붉은 입술이여
파란 비단 천 위에 네가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옥빛 보석이여
저 수련은 꽃 피는 식물이 아니라 물의 반죽이다.
-모네의 수련을 보며 채호기 시인이 쓴 詩 입니다-

Water Lilies 1906
저 투명한 슬픔 위에
저 투명한 슬픔 위에 무엇이 비치는가?
연못에는 수련만 피어 있는 것이 아니다.
흰 구름꽃과 거울 같은 파란 하늘 전체가 피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응시하는 시선이
수면에 반사되는 빛처럼
반짝이는 보석으로 피어 있다.
수련꽃이여
수련꽃이여
흰 손이여, 붉은 입술이여
파란 비단 천 위에 네가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옥빛 보석이여
저 수련은 꽃 피는 식물이 아니라 물의 반죽이다.
-모네의 수련을 보며 채호기 시인이 쓴 詩 입니다-
2007.06.25 21:21:55 (*.39.115.21)
은희 선배님,
후인 벗,
작년 후반기엔 고호
이번엔 모네
또 경선 벗이 올려논 피카소...
영혼이 살찌는 소리가 프 ㅇ ㅍ ㅇ...
어허!
체중 증가로 옮겨지는 거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좋은 걸 어떻해요.
어제 저녁 공영방송 (PBS)에서 고호와 피카소에 대한 예술세계를 다루더라고요.
전 같으면 다른 채널로 돌렸겟지요?
이레저레 요즈음
조금씩 예술의 진미를 님들 덕에
.
고맙습니다.
후인 벗,
작년 후반기엔 고호
이번엔 모네
또 경선 벗이 올려논 피카소...
영혼이 살찌는 소리가 프 ㅇ ㅍ ㅇ...
어허!
체중 증가로 옮겨지는 거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좋은 걸 어떻해요.
어제 저녁 공영방송 (PBS)에서 고호와 피카소에 대한 예술세계를 다루더라고요.
전 같으면 다른 채널로 돌렸겟지요?
이레저레 요즈음
조금씩 예술의 진미를 님들 덕에
.
고맙습니다.
2007.06.28 00:53:36 (*.222.111.206)
수인후배~
전화선 공사가 땅속으로 선을 견고하게 묻는
그런 작업을 할지도 모른다고해서
아주 홈피는 한동안 잊고 있어야하나보다 했더니
장마철이라 임시변통으로 ...그래도 잘 견딜거라하네요
우리2기방에 친구도 반갑게 나타나서 정서도 비슷하고 좋아하기도
하는것같아
고호도 차근차근 올리려고 하네요.
그러다 힘들면 쉬기도하고 그러죠뭐.....ㅎㅎㅎ
모든 예술가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자유인이라는 명목으로....모든것이 일반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죠
경선이 피카소에 놀라는것이나
나 또한 예술을 좋아한다고는 하나 창작을 위한 여성편력에
깊은 이해는 할 수가 없으니....그냥 평범한 아낙에 불과 한거겠지요.
그런 점에서 샤갈을 또 좋아합니다. 그도 평범치는 않았지만....
모네도 여인과의 만남이 평범치 않았으니.....
그림을 좋아하고 그냥 편견없이 작품만 보려해도 연상작용은 어쩔 수
없네요.....ㅎㅎㅎㅎㅎ....
정례후배~
수인후배가 작년후반기에 올려놓은그림 보러
찾아가서 보려다 내 컴에는 배꼽만 나와서 못 보았네요.
관심을 갖고 있는 동문들이 있다는 그 사실만도 반갑네요.
많이 즐겁지요.
반갑습니다.
전화선 공사가 땅속으로 선을 견고하게 묻는
그런 작업을 할지도 모른다고해서
아주 홈피는 한동안 잊고 있어야하나보다 했더니
장마철이라 임시변통으로 ...그래도 잘 견딜거라하네요
우리2기방에 친구도 반갑게 나타나서 정서도 비슷하고 좋아하기도
하는것같아
고호도 차근차근 올리려고 하네요.
그러다 힘들면 쉬기도하고 그러죠뭐.....ㅎㅎㅎ
모든 예술가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자유인이라는 명목으로....모든것이 일반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죠
경선이 피카소에 놀라는것이나
나 또한 예술을 좋아한다고는 하나 창작을 위한 여성편력에
깊은 이해는 할 수가 없으니....그냥 평범한 아낙에 불과 한거겠지요.
그런 점에서 샤갈을 또 좋아합니다. 그도 평범치는 않았지만....
모네도 여인과의 만남이 평범치 않았으니.....
그림을 좋아하고 그냥 편견없이 작품만 보려해도 연상작용은 어쩔 수
없네요.....ㅎㅎㅎㅎㅎ....
정례후배~
수인후배가 작년후반기에 올려놓은그림 보러
찾아가서 보려다 내 컴에는 배꼽만 나와서 못 보았네요.
관심을 갖고 있는 동문들이 있다는 그 사실만도 반갑네요.
많이 즐겁지요.
반갑습니다.
2007.06.28 01:43:45 (*.222.111.206)

The Night Watch into The Night Yawn
euzine.egloos.com
빨간 스카프의 모네 부인
클로드 모네(1840~1926) 가 자신의 부인을 그린 그림.. 작품을 완성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 카미유가 세상을 떠났고 모네는 이 작품을 평생 팔지 않고 곁에 두었다고 한다.
모네는 알고 있었을까? 그녀가 곧 자신의 곁을 영영 떠나게 된다는 사실을.. 창가에 들어 오는 빛 때문인지 죽음에 대한 예감 때문인지 그림의 전체적인 색감은 어둡다. 심지어 그녀의 얼굴조차도... 다만 그녀가 두르고 있는 붉은 스카프만이 잔잔한 생명력을 던져 주는 듯 하다.
창... 혹은 문.. 밖에 서있는 아내.. 아마 평생을 이 그림을 보며 살았을 이유가 납득이 되기도 한다. 분명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문을 열고 아내를 맞을 수 있었을 텐데..
....또 다른 곳에 실린 글에서 .....
모네의 부인 까미유 모네는 모네의 명성과는 달리 힘든 삶을 살아오다
그 이유에서인지 이 그림이 완성된 후 얼마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모네는 이 작품을 자신의 삶을 마감할때까지 곁에 두었다고 한다.
모네의 아내사랑과 자기의지가 베여있는 사연있는 작품..
일본 기모노를 입은 여인"

자기부인을 모델로 일본옷을 입은 모습을 그린 그림...
인상파화가들이 일본의 우키요에 풍속화 영향을 많이받았다고 합니다.
저 그림은 모네가 다른그림이 안팔려 경제적으로곤란할때
수집가들 이목을 끌고 비싸게
팔려고 의도적으로 그린그림이라고 합니다.
모네의 의도는 적중해서 당시로선 비싼 가격인 2100프랑에 팔렸습니다.
뭐 지금 가격도 엄청나겠지만..
일본수집가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그림중 하나라고 합니다.
르느와르가 그린 ....모네 부인상.....

모네와 19살에 만나 1867년 아들 장 아르망 끌로드 모네를 낳았고
둘째아들 미쉘 모네도 낳아 12년간 어렵고 가난한 생활을 같이했다고한다.
하지만 모네의 어느 기록에도 당시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고한다.
아마도 두번째 부인인 알리스 오슈데가 까미유의 모든 흔적들을
지우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고 추측들만 할 수 있다고한다.
그러니까 흔히 하는 말....심증은 가는데 물증은 없다....인가 보다.
까미유는 미모가 뛰어나서 르느와르를 위해서도 여러번 모델을 서주었고
그 작품주의 하나를 올려본다.
다음차에 모네의 두여인의 얽힌 이야기를 마져 올려보렵니다.
왜 우리는 (나는) 여인들이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것에
유독 시선이 갈까요?.....ㅎㅎㅎㅎㅎ....
그리고 내 연습장엔 "임종을 맞이하는 까미유"가 복사가 되는데
이곳은 가지고 올 수가 없네요.
다음차에 다시한번 시도해보려구요.....
...무언가 가슴가득한 느낌을 주는 그림인데.....
2007.06.28 08:49:21 (*.178.240.180)
요사히 딴 일을 시작하느라 못들어 온 사이
이곳??아름답고 풍요로운 모네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네요

Claude Monet
La charrette. Route sous la neige à Honfleur
1862
huile sur toile
H. 0.65 ; L. 0.925
musée d'Orsay, Paris, France
은희언니,혜경언니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아!!!
무더위에 이 그림을 보시면서 지난 겨울을 생각하면
좀 시원해지지 않을까요????
target=_blank>http://www.musee-orsay.fr/en/collections/index-of-works/resultat-collection.html?no_cache=1&S=0&zsz=9
파리에 있는 박물관 웹사이트 주소입니다
이곳에 들어 가셔서 아름다운 그림을 많이 보고 즐기시기를...
이곳??아름답고 풍요로운 모네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네요

Claude Monet
La charrette. Route sous la neige à Honfleur
1862
huile sur toile
H. 0.65 ; L. 0.925
musée d'Orsay, Paris, France
은희언니,혜경언니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아!!!
무더위에 이 그림을 보시면서 지난 겨울을 생각하면
좀 시원해지지 않을까요????
target=_blank>http://www.musee-orsay.fr/en/collections/index-of-works/resultat-collection.html?no_cache=1&S=0&zsz=9
파리에 있는 박물관 웹사이트 주소입니다
이곳에 들어 가셔서 아름다운 그림을 많이 보고 즐기시기를...
2007.06.28 09:47:43 (*.47.198.170)
Is this what you want to put it up?
Camille on Her Deathbed
1879
oil on canvas 90x68cm
Musee d'Orsay
the "la japnoanaise " is in the Boston fine art Museum( BFA)
it is 90 feet tall. very tall and big painting.
it has amazing details of kimono and the fans.
I am so happy to see it again here , EunHee Onnee!!!!

Camille on Her Deathbed
1879
oil on canvas 90x68cm
Musee d'Orsay
the "la japnoanaise " is in the Boston fine art Museum( BFA)
it is 90 feet tall. very tall and big painting.
it has amazing details of kimono and the fans.
I am so happy to see it again here , EunHee Onnee!!!!

2007.07.02 09:00:45 (*.172.221.40)
혜경 언니가 올리신, 위의 그림이
오르셰 박물관 소장인
'임종을 맞이하는 까미유'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뒤덮은 것 같아요.
오르셰 박물관 소장인
'임종을 맞이하는 까미유'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뒤덮은 것 같아요.
2007.07.02 09:34:44 (*.222.111.206)
수인후배 ~
며칠만에 이방에 들어와 보았네요..........
모네 그림중 유독 마음이 쓰여지고 숙연해지는 그림이지요
내가 이방에서 우리홈피가 나가야 할 어느 좋은 예를 보는듯해서
행복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있답니다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도하고
우리가 나이들어 사라져버리려는 감성과 지성을 그래도 다시 일깨울 수 있게
하는 일도 영혼을 맑게 하는 일이고 중요하지요.
그리고 먼저 살다 간 삶의 흔적중에서 다른 깨달음을 얻는것도 그렇지요.
예술가들이나....평범한 사람들 모두의 생전에 삶이 ...
우리에겐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교훈을 주지요.
인간의 삶이란................
나름대로 가벼운 삶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네의 12년간 두 아들을 낳고 산 까미유의 죽음을 그린 그림에 대한
글을 가져와 보았네요
.........................................
임종을 맞이하는 까미유 (1879)
"내게 너무도 소중했던 한 여인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이제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시시각각 짙어지는 색채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추적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려 하는 사람의 마지막 이미지를 보존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그 특징을 잡아내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전에
저의 깊숙한 본능은 벌써 색채의 충격에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모네, 조르주 클레망소의 글(1928)에서 인용
......................................................................
카미유의 죽음과 모네의 화가로서의 성공은 서로 어긋나는 운명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녀를 힘들게 한 것은 육체적 어려움만이 아니고 모네가 또 다른
여인을 곁에.. 그리고 마음에 두기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병이 깊어진건 아닐까요..
모네의 또 다른 여인, 미술품 수집가이자 모네의 경제적 후원자였던 사람의 아내인
알리스는 전쟁 등으로 인해 경제 사정이 나빠져 가세가 기울고.. 남편마저 사망하자
모네의 집에 얹혀 살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그 세 사람이 한 지붕 아래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 이런 저런 말들과 복잡한 일들이 생겨나고..
부유한 집안에서 충분한 교육까지 받은 교양있는 알리스란 이름의 이 여인
앞에서 까미유는 병든 자신과 비교하며 아픈 감정의 상처를 겪어야 했겠지요..
하지만 교양인답게? 알리스는 까미유를 정성껏 간호해주었고.. 그녀의 임종까지
잘 지켜주었다고... 그 뒤1892년 알리스와 모네는 결혼을 하였고..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며칠만에 이방에 들어와 보았네요..........
모네 그림중 유독 마음이 쓰여지고 숙연해지는 그림이지요
내가 이방에서 우리홈피가 나가야 할 어느 좋은 예를 보는듯해서
행복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있답니다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도하고
우리가 나이들어 사라져버리려는 감성과 지성을 그래도 다시 일깨울 수 있게
하는 일도 영혼을 맑게 하는 일이고 중요하지요.
그리고 먼저 살다 간 삶의 흔적중에서 다른 깨달음을 얻는것도 그렇지요.
예술가들이나....평범한 사람들 모두의 생전에 삶이 ...
우리에겐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교훈을 주지요.
인간의 삶이란................
나름대로 가벼운 삶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네의 12년간 두 아들을 낳고 산 까미유의 죽음을 그린 그림에 대한
글을 가져와 보았네요
.........................................
임종을 맞이하는 까미유 (1879)
"내게 너무도 소중했던 한 여인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이제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시시각각 짙어지는 색채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추적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려 하는 사람의 마지막 이미지를 보존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그 특징을 잡아내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전에
저의 깊숙한 본능은 벌써 색채의 충격에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모네, 조르주 클레망소의 글(1928)에서 인용
......................................................................
카미유의 죽음과 모네의 화가로서의 성공은 서로 어긋나는 운명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녀를 힘들게 한 것은 육체적 어려움만이 아니고 모네가 또 다른
여인을 곁에.. 그리고 마음에 두기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병이 깊어진건 아닐까요..
모네의 또 다른 여인, 미술품 수집가이자 모네의 경제적 후원자였던 사람의 아내인
알리스는 전쟁 등으로 인해 경제 사정이 나빠져 가세가 기울고.. 남편마저 사망하자
모네의 집에 얹혀 살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그 세 사람이 한 지붕 아래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 이런 저런 말들과 복잡한 일들이 생겨나고..
부유한 집안에서 충분한 교육까지 받은 교양있는 알리스란 이름의 이 여인
앞에서 까미유는 병든 자신과 비교하며 아픈 감정의 상처를 겪어야 했겠지요..
하지만 교양인답게? 알리스는 까미유를 정성껏 간호해주었고.. 그녀의 임종까지
잘 지켜주었다고... 그 뒤1892년 알리스와 모네는 결혼을 하였고..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2007.07.03 07:26:43 (*.172.221.40)
은희 언니~
알리스는 까미유를 정성껏 간호하고, 그녀의 임종까지 잘 지켜주었다는 대목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카알렛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던(혹 착각이 아닐까?) 에쉴리,
그 에쉴리의 아내, 멜라니의 임종 장면이 문득 떠 오름은
무슨 까닭일까요?
아름다운 기억, 좋은 추억만을 간직하고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일텐데... 모네는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평안하고 고운 모습이 아닌,
죽음의 고통으로 파리해져 있는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제게는....
인간의 삶이,
평범한 누구에게서나 있을 수 있는 인간의 삶에서
드라마틱한 사연을 참 많이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언니께서
인간의 삶이란................
나름대로 가벼운 삶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겁니다.
요즈음, 제 영혼이 조금씩 소생하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많이 평안 해 졌어요.(8)(:y)
알리스는 까미유를 정성껏 간호하고, 그녀의 임종까지 잘 지켜주었다는 대목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카알렛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던(혹 착각이 아닐까?) 에쉴리,
그 에쉴리의 아내, 멜라니의 임종 장면이 문득 떠 오름은
무슨 까닭일까요?
아름다운 기억, 좋은 추억만을 간직하고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일텐데... 모네는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평안하고 고운 모습이 아닌,
죽음의 고통으로 파리해져 있는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제게는....
인간의 삶이,
평범한 누구에게서나 있을 수 있는 인간의 삶에서
드라마틱한 사연을 참 많이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언니께서
인간의 삶이란................
나름대로 가벼운 삶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겁니다.
요즈음, 제 영혼이 조금씩 소생하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많이 평안 해 졌어요.(8)(:y)
2007.07.03 15:19:51 (*.222.111.206)
수인후배가 평온 해 졌다니
그모습 상상을 해 봅니다. 물론 그림도 잘 풀려나갈거고요.
나도 오랜만에 화선지가 아닌 두방에 그림을 그려보았네요
물기 번지는맛의 투명한 맛은 없지만 반대로 물기를 빨아들이는 지질이라서
재빠른 손놀림이 필요하지요. 서툰대로 이십년전에 겁도 없이 그려
이사람 저사람 돌려주던 객기를 얼굴 붉어지지만...그리워합니다.
점점 무엇하나 자신없고 확신이 안서기도 하네요.
매일 쓰는 우리말 단어도 생각이 안나....저...저 하다가...그거 있잖아.. 합니다.
아이들이 제일로 답답해 하지요.
우리집양반은 내가 하는 이야기 내용은
주어도 없이 앞 뒤를 순서없이 이야기해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답니다...ㅎㅎㅎ
그래도 글은 다시 생각하고 쓰다가 고치기도 하니 좀 나을라나요.
사는동안 주늑이 들어 그럴까요. 참는게 많아서 일까요.
요리 핑계를 대보면 좀 났긴 하네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느 사람들은 인생을 복잡하고 무겁게 생각말자고
우스개 처럼 즐겁고 가볍게 살자고 하며 달관한 듯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 내부 깊숙한 곳 어디엔가는 숨겨논 어떤걸 또 느끼지요.
사람은 어느 사람이나 삶의 양면을 다 가지고 있다는 걸...누구나가....
그게 정직한 걸거란 생각을 하지요.
평범한 사람이든 뛰어난 사람이든.................................................
우리집은 오래전 명화비디오를 수집하는게 취미였었지요.
그 중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도 있는데
스칼렛 오하라 역에 비비안리의 깜찍하고 개성있는 연기를 좋아했지요.
지금은 DBD 시대이니 한참 구식이지만 그래도 전엔 가끔 보곤 했답니다.
여성의 속성은 잘났으나 못났으나 질투심을 배제하면
별 매력이 없는 걸로 판단하는걸 들은적이 있지요.
그렇다면 멜라니나 까미유는 여성성이 부족한걸가요..........아니...
난 아니라는 생각이드네요.
상대가 어느 상대인가에 따라서 판단하고 물러서서
어쩔수 없이 견디는걸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
어느 면에서는 더 현명한 사람들이란 생각도 하지요.
모네는 전처인 까미유에게 깊은 미안함이 있었으리란 생각이 드네요.
모네는 까미유가 낳은 아들 쟝 모네와 미쉘 모네를 많이 사랑했다하고,
작은 아들인 미쉘 모네는 모네 임종직전까지 모네곁을 지키고
모네의 유일한 상속인으로 모든걸 상속 받았으나 지베르니 저택과
모든 작품을 파리 예술원에 기증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모네의 작품을 소장한
마르모땅 미술관이 탄생되게 했다고도 합니다.
모네는 초상화나 인물화는 잘 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요번 전시회에서 본 어린 두 아들의 사랑스러운 모습 올려볼게요.
그모습 상상을 해 봅니다. 물론 그림도 잘 풀려나갈거고요.
나도 오랜만에 화선지가 아닌 두방에 그림을 그려보았네요
물기 번지는맛의 투명한 맛은 없지만 반대로 물기를 빨아들이는 지질이라서
재빠른 손놀림이 필요하지요. 서툰대로 이십년전에 겁도 없이 그려
이사람 저사람 돌려주던 객기를 얼굴 붉어지지만...그리워합니다.
점점 무엇하나 자신없고 확신이 안서기도 하네요.
매일 쓰는 우리말 단어도 생각이 안나....저...저 하다가...그거 있잖아.. 합니다.
아이들이 제일로 답답해 하지요.
우리집양반은 내가 하는 이야기 내용은
주어도 없이 앞 뒤를 순서없이 이야기해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답니다...ㅎㅎㅎ
그래도 글은 다시 생각하고 쓰다가 고치기도 하니 좀 나을라나요.
사는동안 주늑이 들어 그럴까요. 참는게 많아서 일까요.
요리 핑계를 대보면 좀 났긴 하네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느 사람들은 인생을 복잡하고 무겁게 생각말자고
우스개 처럼 즐겁고 가볍게 살자고 하며 달관한 듯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 내부 깊숙한 곳 어디엔가는 숨겨논 어떤걸 또 느끼지요.
사람은 어느 사람이나 삶의 양면을 다 가지고 있다는 걸...누구나가....
그게 정직한 걸거란 생각을 하지요.
평범한 사람이든 뛰어난 사람이든.................................................
우리집은 오래전 명화비디오를 수집하는게 취미였었지요.
그 중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도 있는데
스칼렛 오하라 역에 비비안리의 깜찍하고 개성있는 연기를 좋아했지요.
지금은 DBD 시대이니 한참 구식이지만 그래도 전엔 가끔 보곤 했답니다.
여성의 속성은 잘났으나 못났으나 질투심을 배제하면
별 매력이 없는 걸로 판단하는걸 들은적이 있지요.
그렇다면 멜라니나 까미유는 여성성이 부족한걸가요..........아니...
난 아니라는 생각이드네요.
상대가 어느 상대인가에 따라서 판단하고 물러서서
어쩔수 없이 견디는걸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
어느 면에서는 더 현명한 사람들이란 생각도 하지요.
모네는 전처인 까미유에게 깊은 미안함이 있었으리란 생각이 드네요.
모네는 까미유가 낳은 아들 쟝 모네와 미쉘 모네를 많이 사랑했다하고,
작은 아들인 미쉘 모네는 모네 임종직전까지 모네곁을 지키고
모네의 유일한 상속인으로 모든걸 상속 받았으나 지베르니 저택과
모든 작품을 파리 예술원에 기증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모네의 작품을 소장한
마르모땅 미술관이 탄생되게 했다고도 합니다.
모네는 초상화나 인물화는 잘 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요번 전시회에서 본 어린 두 아들의 사랑스러운 모습 올려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