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친구.
그래서 수 년 동안 제대로 여행을 못한 친구와
배 타고 가까운 섬에라도 꼭 가고 싶었다.

토요일 아침.
우리를 태운 배는, 은빛 찬란한 아침바다를 가르며 시원하게 미끄러져 갔다.
배에서 커피 마시며, 괜히 즐거워 하하거리며 웃고.

덕적도에 닿았다.
선착장에 부는 비릿한 바람은 벌써 우리를 마비시키듯 들뜨게 했고,
우리는 서포리 해변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해송이 우거진 언덕에서 바다로 내려가,
맨 끝까지 걸어가 방파제에 걸터앉았다.

바다 건너, 저 멀리 산들이 보이고
초록으로 반짝이는 바다가 바로 눈앞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
배타고 바다로 나아갈 때, 언제나 하늘거리는 드레스을 입고 춤추고 싶다고 생각했었지.
오늘 친구는 자꾸 청포묵 생각이 난다고....
배가 고픈 걸까?
하긴 아침 식사로, 사과와 빵 조금 밖엔 못 먹었으니.
1시간도 넘게 우리는 방파제 끝에 앉아 있었다.
그 초록의 바다를, 햇빛에 점점이 반짝이는 은사시나무 같은
물빛을 가슴에 묻기 위해.

왜 일까?
바다는 같은 바다일진데, 이국에서 보는 바다와 이 곳의 바다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산 도 그렇다.
내가 사는 동네는 삼면이 산인데, 여기의 것과 모양도 비슷이 높지도 않고,
그런데 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내 나라의 산천은, 굳이 고향이 아닐지라도,
어딘지 정답고, 추억이 묻어있는 듯하여 애잔하고 그립다.
냄새와 불어오는 바람이, 그 술렁임이, 숱한 언어로 닥아 온다.

집이 몇 채 없는 동네로 올라가,
오징어를 많이 넣어 국물이 시원한 우동으로 점심을 먹고
또 바다로 나아갔다.
오후 배 시간까지 시간은 충분했다.

해변의 고운 모래사장을 걸었다.
물기가 배여 있어, 날리지도 않는 보드라운 백사장.
사람들이 없어도 심심하지 않은 바다.
끝없이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해조음.

모래톱을 밀며, 끝도 없이 겹겹으로 달려 들어오는 밀물의 바다.
오늘은 날을 참 잘 잡았다.
서해바다에서 밀물을 만난 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누군가 모래사장에 하트모양의 그림과 글자를 쓴 것이, 한차례의 밀물에
흐릿하게 남아있어, 나는 또,
지나 간 어느 날,  ‘1966년 12월12일’이라고 공설운동장 땅 바닥에
적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고.
우리는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노래도 불렀다.

전에 그렇게도 싫어했던, 가요까지...
아는 것도 없고, 그래보았자 60년대, 70년대의 노래들로.

모래 위 바위에 걸터앉았다.
계속 밀며, 마구 떼거지로 쳐들어오는 파도.
바위를 때리며, 또 하얗게 부서지며.
발밑에 물이 들어올 때까지 앉아있었다.

풋풋한 초록색의 해송이 빙 둘러있고,
눈앞에 싱싱하게 약동하는 생명의 바다가 있는 곳.
창조주께서 연출하시는 자연에의 경외감.

우리는 비우고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소중한 것들을 얻기 위해, 잠시나마 떠나는 것이 아닐까?

포구에 매어놓은 빈 배조차 휴식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곳.
오늘 바다와의 만남은, 평안이고 행복이었다.






Yesterday When I Was Young - Roy Cl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