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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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종이 땡땡땡
33년전 미국에 막 와서 오마하에 사시던 외삼촌댁에 인사하러 간일이 있었다.
그 집에 5,6살 짜리 아이들 둘이 영어만하고 우리말을 전혀 못하는데 나만 이방인의 느낌이었다.
그당시는 어찌 한국말을 못하는 아이들을 만들수가 있을까 의아했었다.
외삼촌댁이 하시는 말이 “너도 키워보면 알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아이들 넷을 연년생으로 키울때 둘이다 나가서 뛰어야 생계를 유지할 판에
아이들을 잘 돌보는 것은 사치스런 일일수 밖에 없었다.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입히지도 못하고 키웠던것이 늘 미안하다.
다행히 아이들 넷이 다 좋은 크리스챤이 되었고
남들 부러워하는 대학을 나와서 사짜가 들어가는 직업들을 갖게 된것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오직 문제라면 남들처럼 돈을 많이 벌어놓지 못했다던가
아이들이 학자금 떼 빚장이가 된것이라던가 등등이 있지만
아이들에게 한글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이 제일 맘이 아프다.
사실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 못하여 한국 말을 따로 가르칠 염도 못냈다
평생에 부러운 것 하나는 부모 자식간에 한국말로 완전히 통하는 것이다.
한국 책을 같이 읽거나, 이런 홈페이지도 같이 들어갈 정도면 얼마나 좋을까?
요즈음같이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이곳에도 한국사람들이 시시 각각으로 숫자가 느는 판에
한국말을 못하는 우리 애들을 불쌍히 보는 사람들도, 경멸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더구나 전도사를 하는 큰 아들에 관해서는 나도 정말 할말이 없다.
한국말 못하는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 나갔을때 동네 아이들이 따라 다니며 원숭이라고 놀렸단다.
어른들도 한국말 안가르쳤다고 눈쌀을 찌푸린다.
.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저절로 되는 일인데 부모님이 남동생 차지지 우리차지가 안되었던 것이 핑계가 될까?.
물론 교회에서 하는 한글 학교에 보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했었다.
뿐만아니라 아이들마다 한국에 한두번씩 방학동안에 내보내기도 했고…
그래서 큰아이는 한국말로 선교보조금을 얻는 편지도 도움을 얻어 가며 혼자 쓴 일도 있었다.
그러나 점점 세월이 가고 밑의 아이들로 내려 갈수록 한국어 실력이 줄어서 완전히 제로이다.
“한국말을 못가르친 이유”라고 변명할때 써먹는 이야기가 있다.
첫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때의 일이다.
발음이 나쁘다며 선생이 “집에서 한국말을 쓰지말라”라고 우리를 따로 불러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애만 데리고 특수교육을 시켜 발음 교정을 해 주었다.
선생들이 그 동네에 한국아이가 거의 없는 곳이어서
한국아이들이 얼마나 우수한지 아직 몰랐기 때문이어서 그런 쓸데 없는 짓거리를 했을 것이다.
경험이 마찬가지로 없었던 우리 부부는 기겁을 했다.
자존심이 상한것 보다는 미국애들에게 뒤질까가 겁이난것이었다.
아이의 장래가 달린 문제로 생각하고 한국말 사용을 단번에 그만 두었다.
워낙에 아이들은 힘든 한국말을 하려고 하지않았다.
자기들끼리 영어를 사용하는게 훨씬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부모까지 의도적으로 영어를 하니 한국말은 발붙일 곳이없었던 것이었다.
또 다른 변명은 우리가 충분히 무식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영어로 소통하기에 그렇게 불편하지 않아서 자꾸 영어로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말을 쓸일이 너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근본적이 문제였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한글학교에서 배운 말을 어디서 쓸수 있는가?
내가 만약 영어가 전혀 안되거나 집에서 살림만하고 지냈으면 아이들과 한국말을 많이 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한국말로 맘놓고 이야기하는 부러운 가정이되었을 게다.
함께 한 찬송가를 부르고 함께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얼마나 좋았을까?
이번에 딸애가 어린 손주 아들을 데리고 시카고에서 피닉스로 왔다가 돌아갔다.
오는 길엔 아기가 보채지 않고 아주 쉽게 왔다고 했다.
가는날은 그렇지 못했다. 아침녘에 낮잠을 안자더니 비행기안에서 힘들게 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했냐?했더니 하다하다 안되어 “학교 종이 땡땡땡”을 불러주었더니 잠이 들었다고… .
나는 깜짝 놀랐다.
언제 그노래를 가르쳐 준적이 있었을까?
그걸 기억해내고 불렀다니 얼마나 딸아이가 장하고 신기한가?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제대로 못가르친 죄인이 그 아이 무의식 속에서 살아나온 노래때문에 기가 났다.
그래 언젠가 나도 한국말을 가르치긴 했던거야!
다 잊어버렸어도 언젠가 다시 생각나는 날도 있을거야!
그렇지만 노래 한마디 가지고도 이리 기쁜데,
정말 모든것을 다 나눌수 있게 한국말을 유창히 가르쳤으면 얼마나 더 좋으랴
때 늦은 후회가 다시 목을타고 올라왔다.
코리언 비데오라도 보고 한어를 익히라고 다시 졸라대야겠다.
소귀에 경 읽기지만….
(2007년 2월14일)
33년전 미국에 막 와서 오마하에 사시던 외삼촌댁에 인사하러 간일이 있었다.
그 집에 5,6살 짜리 아이들 둘이 영어만하고 우리말을 전혀 못하는데 나만 이방인의 느낌이었다.
그당시는 어찌 한국말을 못하는 아이들을 만들수가 있을까 의아했었다.
외삼촌댁이 하시는 말이 “너도 키워보면 알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아이들 넷을 연년생으로 키울때 둘이다 나가서 뛰어야 생계를 유지할 판에
아이들을 잘 돌보는 것은 사치스런 일일수 밖에 없었다.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입히지도 못하고 키웠던것이 늘 미안하다.
다행히 아이들 넷이 다 좋은 크리스챤이 되었고
남들 부러워하는 대학을 나와서 사짜가 들어가는 직업들을 갖게 된것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오직 문제라면 남들처럼 돈을 많이 벌어놓지 못했다던가
아이들이 학자금 떼 빚장이가 된것이라던가 등등이 있지만
아이들에게 한글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이 제일 맘이 아프다.
사실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 못하여 한국 말을 따로 가르칠 염도 못냈다
평생에 부러운 것 하나는 부모 자식간에 한국말로 완전히 통하는 것이다.
한국 책을 같이 읽거나, 이런 홈페이지도 같이 들어갈 정도면 얼마나 좋을까?
요즈음같이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이곳에도 한국사람들이 시시 각각으로 숫자가 느는 판에
한국말을 못하는 우리 애들을 불쌍히 보는 사람들도, 경멸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더구나 전도사를 하는 큰 아들에 관해서는 나도 정말 할말이 없다.
한국말 못하는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 나갔을때 동네 아이들이 따라 다니며 원숭이라고 놀렸단다.
어른들도 한국말 안가르쳤다고 눈쌀을 찌푸린다.
.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저절로 되는 일인데 부모님이 남동생 차지지 우리차지가 안되었던 것이 핑계가 될까?.
물론 교회에서 하는 한글 학교에 보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했었다.
뿐만아니라 아이들마다 한국에 한두번씩 방학동안에 내보내기도 했고…
그래서 큰아이는 한국말로 선교보조금을 얻는 편지도 도움을 얻어 가며 혼자 쓴 일도 있었다.
그러나 점점 세월이 가고 밑의 아이들로 내려 갈수록 한국어 실력이 줄어서 완전히 제로이다.
“한국말을 못가르친 이유”라고 변명할때 써먹는 이야기가 있다.
첫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때의 일이다.
발음이 나쁘다며 선생이 “집에서 한국말을 쓰지말라”라고 우리를 따로 불러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애만 데리고 특수교육을 시켜 발음 교정을 해 주었다.
선생들이 그 동네에 한국아이가 거의 없는 곳이어서
한국아이들이 얼마나 우수한지 아직 몰랐기 때문이어서 그런 쓸데 없는 짓거리를 했을 것이다.
경험이 마찬가지로 없었던 우리 부부는 기겁을 했다.
자존심이 상한것 보다는 미국애들에게 뒤질까가 겁이난것이었다.
아이의 장래가 달린 문제로 생각하고 한국말 사용을 단번에 그만 두었다.
워낙에 아이들은 힘든 한국말을 하려고 하지않았다.
자기들끼리 영어를 사용하는게 훨씬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부모까지 의도적으로 영어를 하니 한국말은 발붙일 곳이없었던 것이었다.
또 다른 변명은 우리가 충분히 무식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영어로 소통하기에 그렇게 불편하지 않아서 자꾸 영어로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말을 쓸일이 너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근본적이 문제였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한글학교에서 배운 말을 어디서 쓸수 있는가?
내가 만약 영어가 전혀 안되거나 집에서 살림만하고 지냈으면 아이들과 한국말을 많이 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한국말로 맘놓고 이야기하는 부러운 가정이되었을 게다.
함께 한 찬송가를 부르고 함께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얼마나 좋았을까?
이번에 딸애가 어린 손주 아들을 데리고 시카고에서 피닉스로 왔다가 돌아갔다.
오는 길엔 아기가 보채지 않고 아주 쉽게 왔다고 했다.
가는날은 그렇지 못했다. 아침녘에 낮잠을 안자더니 비행기안에서 힘들게 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했냐?했더니 하다하다 안되어 “학교 종이 땡땡땡”을 불러주었더니 잠이 들었다고… .
나는 깜짝 놀랐다.
언제 그노래를 가르쳐 준적이 있었을까?
그걸 기억해내고 불렀다니 얼마나 딸아이가 장하고 신기한가?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제대로 못가르친 죄인이 그 아이 무의식 속에서 살아나온 노래때문에 기가 났다.
그래 언젠가 나도 한국말을 가르치긴 했던거야!
다 잊어버렸어도 언젠가 다시 생각나는 날도 있을거야!
그렇지만 노래 한마디 가지고도 이리 기쁜데,
정말 모든것을 다 나눌수 있게 한국말을 유창히 가르쳤으면 얼마나 더 좋으랴
때 늦은 후회가 다시 목을타고 올라왔다.
코리언 비데오라도 보고 한어를 익히라고 다시 졸라대야겠다.
소귀에 경 읽기지만….
(2007년 2월14일)
2007.02.19 00:17:34 (*.178.8.3)
-생활속의 아이들-
꾸지람속에 자란 아이 비난하는 것을 배우며
미움받으며 자란 아이 싸움질만 하게 되고
놀림당하며 자란 아이 수줍음만 타게 된다.
관용속에서 키운 아이 참을성을 알게 되며
격려받으며 자란 아이 자신감을 갖게 되고
칭찬들으며 자란 아이 감사할 줄 알게 된다.
공정한 대접 속에 자란 아이 올바름을 배우게 되며
안정속에서 자란아이 믿음을 갖게 되고
인정받으며 자란 아이 자신의 긍지를 느끼며
인정과 우정속에서 자란 아이
온 세상에 사랑이 충만함을 알게 된다.
*내가 한국에서 올때 선물받았던 이글귀가
아이들 곁에 항상 있어 씩씩하게 잘 자랐단다
너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올린다
2007.02.20 06:34:20 (*.183.209.213)
역쉬 인일 출신 어미들이라
잘들 키웠구나.
<학교종이 땡땡땡.... (8)>
어리지만 머릿속에 입력되었으니
인간의 능력은 무한대 같애~
이곳에 있으믄 한국말은 잘해도 영어를 못하고
그곳에 있으믄 영어는 잘해도 한국말은 못하니
워쩌랴~?
다음 세대들은 더 하겠지?
느이덜이나 한국말 잊지 않게 욜씸히 요기다 글올려라~ㅇ(:l)
잘들 키웠구나.
<학교종이 땡땡땡.... (8)>
어리지만 머릿속에 입력되었으니
인간의 능력은 무한대 같애~
이곳에 있으믄 한국말은 잘해도 영어를 못하고
그곳에 있으믄 영어는 잘해도 한국말은 못하니
워쩌랴~?
다음 세대들은 더 하겠지?
느이덜이나 한국말 잊지 않게 욜씸히 요기다 글올려라~ㅇ(:l)
2007.02.21 07:27:36 (*.106.7.185)
인선아 ! 네글을 읽고 위안을 받았다. 나도 한국말을 못하는 애둘을 두어서 양심에 늘 캥기고 있었거던. 주말에 한글학교에 몇년을 끌고 다니었었는데 물론 읽고 쓸줄은 알지만 (세종대왕의 비상한 두뇌에 감사할일이지) 말 하기를 싫어하고 연습해야할 동기를 주지 못했던 나 때문에지. 그래도 아직 희망은 갖고 있어. 여자에는 한국음식을 꽤나 좋아하고 남자애는 할려고 하면 하는데 아직도 해야될 이유를 모르는데 혹시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해서. 선희자 애들같이 잘 하는거 그저 부럽기만 하다. 아마 이래서 한국에서 조기유학을 보내나보지. 미국으로, 중국으로, 캐나다로, 싱가폴로, 불쌍하기도 하고,비정상인것 같고, 미래를 향한 전진인지 후퇴인지. 알쏭달쏭???
네 이야기 보면서 슬그머니 웃음을 먹는다
지금이라도 한국말을 배운다는 것은
본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터득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었어
내 경우에는 10살,5살이 채 안된 아이들을 데리고
83년초에 이민을 왔는데 학교에 입학을 하고보니
한국학생은 한사람도 없었지
우리부부도 새벽6시면 집을 나가야 했고
우리딸이 동생챙겨서 학교에 데리고 다녔지
학교(유치원과정)에 간지 1주일후에
작은아이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했는데
너희 아이가 언어장애아라 생각되니
특수학교로 보내야한다는 것이었지
너무 놀라서 물어보니 아들이 하는 말이
자기가 하는 말하고 달라서
말을 안하고 듣고 만 있었단다
그러니 아이가 얼마나 답답했겠니
한창 떠들고 웃고 해야 할 나이에 말을 한마디도 안해서
벙어리취급을 당하고 있었으니 그아이가 얼마나 힘들었겠니
그래서 학교에 전후사정이야기를 하면서 말을 평상시에는
잘 하는 아이라고 했더니 선생님도 깜짝 놀래면서
오히려 자기가 신경을 못써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옆에 있던 아이가 자기 '쌔세미스트리트'를 많이 봐서
이제는 말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웃는 아들녀석이
받았을 고통에 마음이 어찌나 아팠던지!!
그래도 모국어를 잊어버리면 안된다며
집에서는 모국어 만을 사용하는 유태인들을 보면서
조국을 기억해야한다는 생각에 그들을 본받아
우리도 집에서는 한국어를 철저히 사용했는데
아들녀석은 한글일기를 쓰라고 하면 딱 한줄쓰고는
손이 아파서 많이 쓸 수가 없다고 하며 꾀를 부리다
누나한테 매일 혼이 나고는 했었지 만
대학2학년때에 한국어강의를 듣더니 한국학생회장에 출마하고
유학생들과 어울리는데 한국에 대한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싶다면서
연세대학에 가서 한국정치학을 여름동안에 배우러 다녀오더니
한국어가 부쩍 늘었지 이제는 어디에서도 말도 잘하고 글도 쓰고하지
2004년 대통령선거 때도 민주당에서 발행된 한글로 된 책자와
포스터에 들어가는 문구는 그아이가 작성했는데 모두 흡족해 했었지
L.A에서는 스페니쉬가 많다보니 스페니쉬어로 하기에
너 언제부터 배웠니 하고 물어보니 2004년 대통령선거때
뉴멕시코에서 일하면서 그곳사람들은 스페니쉬어를 주로사용하기에
친구같이 일할려면 그들과 공통언어를 쓰는것이 좋아서 배웠단다
그러니 너희아이들도 필요할 때가 되면 배우게 되니 걱정하지 말아라
이 아침에 모든것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