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동창회!(1)

3박4일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드디어 내손에 들어온 “아카시아 향기처럼”을 단숨에 읽었다.
인일5회 동기들이 꾸민 책인데 아담하고 대견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무거운 책을 미국까지 들고 와서,
큰 돈 들여가며 각 집으로 우송하고,
우편 분실이 되어 받지 못한 내게 자기 것을 들고 와서 내게 전해 준
선희자는 극성파 천사다.

동창회라면 97년인가 오레곤 유경님이네서 모였을때
시카고 친구들이랑 함께 간일이 까마득하다.
아리조나로 이사와서 시카고 동창들 소식도 가물에 콩나듯이 드물다.
아주 가끔 함정례, 장명은, 이순자가 전화를 해주는데
이번에 고등학교 동창회를 가게 만든 장본인은 선희자도 함정례도 아니고
인일여고 홈피였다.

정례가 소개해 준 작년11월 어느날,
바로 그날 부터 하루도 안빠지고 열심히 드나들며
음악을 들었고, 시, 산문, 그림들을 보았다.
문화 생활에 허기졌던 이민생활에 이런 재미를 처음으로 맛본 것이다.
봄날에 들어가 기막힌 사사조며 시조들도 읽고
뜰안채 이야기까지 읽어보니 너무나 진진하였다.
얼마나 재미가 났는지 밤잠을 줄여가며 눈이 빨갛게 충혈이 되도록 읽었다.
아마 중독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글을 읽다보니 나도 쓰고 싶은 맘이 샘처럼 올라와, 하나 하나 써올리고
예상치 못한 격려의 댓글을 읽는동안 푹 빠져 버리게 되었다.

남편 변천사는 인기가 좋아 600번 이상 읽혔으니 얼마나 신이 났던지!
남편까지 합세하여 인일 팬이 될 뿐아니라
시카고 교회 친구들도 두명이나 재미보게 만들었다.
그동안 한달에 9-10편씩 써 대었으니 옛날엔 무슨 재미로 살았는지 알수가 없다.

1월 20일 LA 동창회 날이 되기만 기다리는 것이
꼭 어릴때 수학여행 가는 심정이었다.
너무 늙어 보일세라 머리를 염색하고, 파마를 하고,
쎄일에 30불도 안주고 파파야 색갈의 재켓과 옷한벌 일습을 사입었다.
화려한 외출준비는 그렇게 끝을 내었다.
꼭 첫사랑 애인 만나러 가는 양 설레면서..
  
김춘자 유명인사를 보고 싶었고 이수인을 만나고 싶었고
홈피에서 만난 이름들을 다 만나고 싶었다.
글을 읽고 격려해준 사람들이 반가와 해줄것도 은근히 기대되었고…

내가 쓴 글 “홀아비 사세요”의 이야기처럼 그들의 짝을 찾으려는 속셈이
좀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그거야 돈 받고 하는 일이 아닌 다음에야 천천히 생각할 수도 있고…

그날 3시경 호텔에 당도하니 희자와 후배들이 반가이 맞이하였다.
회장단이 준비해서 각 방으로 보내준 떡 바구니와 꽃도 어찌 예쁘게 꾸몄던지
인일인의 솜씨와 정성을 자랑하고 싶어진다.
얼만큼 신경들을 써서 환영하는지를 알수 있었다.

2회 선배님이 준비한 드레스를 각자 입어보느라 신나는 시간이 되었다.
참석하는 모든 동문에게 고급 드레스 한벌씩을 선물한다는,
믿기 힘든 굉장한 이야기를 들었을때 부터
괜히 들떠 자랑을 하고 다녔다.
100명 가까운 우리 모두에게 입어보기 힘든 파티복을 주신다니 모두가 믿을 수 없어하였다.
  
캐나다에서 온, 조금도 안 변한  최용화가 귀부인으로  당장 변모되었다.
내가 맡은 옷은 어깨를 온통 드러내고
빈약한 가슴을 사정없이 폭로하는 것이어서 망서렸지만
가져간 얌전한 드레스를 절대로 못 입게하는 친구들 때문에
못이기는 척 네이비 블루의 드레스를 차려입었다.
가슴을 카버하느라 휴지를 집어 넣어 보았는데  
자꾸 삐집어 나와서 중간에 빼어버렸다.
쇼올을 걸치니까 그런대로 멋지다고들 해주었다.

김성자도 여전히 애띤 얼굴이었는데 학교 때보다 더 이뻐졌다고 누가 말해준다.
처음에 날씬하고 멋진 드레스를 입었었는데
왜 다른 옷으로 갈아 입었는지는 모르지만 
스트랩 없는 드레스에 브라를 꼬매서 연결하여 쉽게 입게 만들었다.
이수인이 왔는데 하나도 기억이 없었다.
그래도 컴퓨터에서 자주 만나서 아주 궁금하던 차에 얼마나 반가왔던지!
새침한 여자다운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였고...
희자는 자기가 가져온 까만 중국식 벨벳 옷을 입었고
우리의 공주 인숙이는 작년에 입었다던 핑크빛 드레스를 차려입었다.  
머리를 아주 멋드러지게 치장을 하고…
연재는 고등학교 때의 몸매 그대로다. 아니 초등학교 때 몸매 그대로라고 희자가 우겼다.
날씬한 몸에 우아한 핑크빛의 드레스를 입었다.
우리 모두 화장을 공을 들여하고 우루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누가 우리를 60이 낼 모레인 할머니들로 보겠는가?
40년전의 생기충천의 여학생들로 되돌아가 떠들고 있지 않는가?

잔치 장소에 희자 딸이 보냈다는 티파니 선물 꾸러미가 산처럼 쌓여 있고
입장하는 사람마다 하나씩 손에 들려 주었다.
화려한 포장의 선물 때문에 모두가 입이 벌어졌다.
또 희자가 손을 썼다는 어떤 은행에서 보낸 화환도 있어서
제법 멋진 파티장 입구 분위기였다.

남편들이 17명이나 와서 준비를 도와주고
우리 더러는 몸치장만 하도록 거들지 못하게 했다나.
풍선과 3기를 위한 환갑 잔치상과 한편에 가득 쌓인 또 다른 선물과 상품들이 풍성함을 넘치게 하였다.

나중에 고상한 미소를 띈 옥진이가 소매 달린 얌전한 드레스를 차려입고 나타났고
방글대는 웃음의 은신이와 덕실이도 올라가서 드레스를 차려입고 나타났다.
옥진이 남편도 올 뻔했는데 아무도 같이 오지 않아서 마지막에  그만 두었다고…
중학교만 같이나온 혜옥이가 모습을 나타냈는데
내 머리속에 있었던 모습과 거의 변치 않는 조용하고 숫된 모습이어서 놀랐고.
동창회때마다 한 테이불이 가득차본 적이 없었다는데
이번에 오랜 숙원이 이루어 졌다고들 흐뭇해 했다.
그런데 가득찬 테이블을 둘러보며 그것 참 이상했다.
40년만에 만난 것 같지 않았다.
늘 가까이서 자주 보던 사람들을 만난것 같이 익숙하고 편했으니까.

음식이 아주 풍성하고 멋있고 맛있었다는것도 빼놓을수 없는 이야기다.
순서마다 이야기를 다 쓰자면 한이 없는데
11회 김경숙 후배가 재미나게 벌써 썼으니 나는 줄인다.
김영란 회장이 작년에 상으로 탔던 비데오로 인천에 나가서 찍어왔다는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이 파티가 성공적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전문 사회자에게 2천불 거금을 주며 부탁했다는 3부 여흥 놀이는 정말 재미있었다.
너무 춤을 오래도록 시끄런 음악에 맞추어 추게 만들어서 정신이 혼미해진것 말고는
너무나 프로페셔널하게 잘 진행했다.

마지막판에 내가 나가서 인일여고 사행시를 죽을 쑤는 바람에
분위기를 못 맞추어 부끄러웠으나 금방들 잊어먹으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자꾸 바보같은 장면이 생각이나서
그때마다 머리를 흔든다. 참 미안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