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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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죽음의 사건들
초등학교 5학년때 꾸지 큰집에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큰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큰아버지께서는 “왜 이렇게 캄캄하냐 불좀밝혀라” 하시며 운명하셨단다.
팔을 내휘두르시며 고함을 치셨다는 그말은 어린 내 마음에 비수같이 꼿혔고
평생 잊지 못하는 말한마디로 내뇌리속에 남게 되었다.
그 무서움, 그 외로움이 고스라니 느껴지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큰댁에는 삼대의 죽음이 있었다.
월남파병 갔던 사촌 오빠가 지뢰를 밟고 먼저 죽고, 할아버지께서 곧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연로해서 돌아가셨겠지만 큰아버지는 두번의 상사후에 많이 괴로워했을 것이 틀림 없다.
뱀을 잘못 잡숴 뱀독이 올라서 식중독으로 돌아가셨다지만 술을 잡수며 그 안주로 뱀을 드셨으니
집안의 불운을 삭일수 없었던게 틀림없다.
내 여동생은 서울대학 병원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한적이 있는데 그때 사람 죽는것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죽을 때 어찌 죽는것을 보면 신앙이 있었나 없었나 하는 것을 알수 있었다고 한다,
신앙안에 성숙한 사람의 경우, 죽을때 몸의 경직이 심하지 않고 부드럽고 얼굴이 편안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두려움과 고통속에 경직되어 죽기 때문에 시체만 봐도 무서웠다고 했다.
내가 미국와서 십년쯤 되었을때 내 바로 밑의 남동생이 한국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30대에 어린 두 아들을 남기고 갑자기 죽은 동생 때문에 급히 한국에 나갔었다.
그때 큰아들을 잃은 엄마를 어찌 위로해야하나 고민하며 나갔었다.
내가 나갔을떄 이미 시체는 막 파묻은 후였고, 엄마는 더이상 울지 않으셨다.
그런데 넙적다리가 완전히 까맣게 멍들었던것을 보았다.
너무나 많이 때려가며 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생이 다니던 교회 식구들이 와서 위로를 해주는데 젊은 올캐는 별로 울지 않았다.
캐톨릭 다니는 사촌이 꿈을 꾸니 내동생이 기쁜 모습으로 올라 가더라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
내 나이 51세에 두째 남동생이 간암으로 죽었다.
내 곁에 시카고에서 살던 동생이라 가장 가까왔던 동생이었다.
그의 나이 46살이었다. 일년을 암과 싸우다 결국 그 많은 돈과 시간을 병원에 바치고 가버렸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을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했다.
그가 죽던날, 그날이 그날인지도 모르고 나는 병원에 찾아가서 하루밤을 함께 지냈다.
올캐가 아주 다정하게 남편 손을 붙들고 위로해주니 내가 할일도 없고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엎드려 잠을 잤다.
동생의 배가 불러 왔는데 복수를 뺀다했으나 물 대신 피가 나왔고 급기야 혈압이 잡히지 않았다.
자다깨보니 그 마지막까지 스캔을 한다 검사를 한다고 간호원들이 끌고 나가고 있었다.
그때 동생은 우리 둘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예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침대로 돌아오자 얼마 안되어 얼굴을 잠간 들어 누구를 바라보는듯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가 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성경을 몇구절 읽어주었는데 “누나 읽지마, 머리에 안 들어와” 해서 나는 어찌할바를 몰랐었다.
나중 들으니 마지막시간에는 찬송을 불러주고 잘 지켜야한다던데 나는 임종이 처음이었고
그렇게 쉽게 갈줄은 몰랐다.
고통의 몸을 벗은 죽은 동생의 얼굴을 보니 천사같이 깨끗하고 평화로웠다. 안심이 되었다.
세탁소를 하고 있을때 단골 손님 한사람이 갑자기 잠을 자다가 돌아가셨다.
일주일에 꼭 한번씩 넥타이, 와이셔츠, 다 낡은 신사복 한벌을 세탁해가는 분이었다.
큰 교회 주일학교 교사라했는데 그렇게 몇년을 똑같은 것만 그렇게 세탁해 갔던 사람이었다.
아주 건장하고 50대 후반으로 젊었는데 그렇게 가다니 나는 믿기지 않았다.
인자하게 웃는낯의 그를 떠올리며 그의 장례식에 찾아갔다.
그랬더니 세상에, 그가 관에 누워있는데 웃고 있지않은가?
입가에 가득 웃음을 물고 잠이 들은 것이었다.
그렇게 웃는 시체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위의 사건들 말고도 여럿 죽음을 지나왔다.
내나이 벌써 이만큼 되어, 내 차례도 언제일지 알수없이 많이 가까왔다는 뜻이겠다.
나는 내 두동생과 그 미국사람이 틀림없이 천국에 갔을 줄로 믿는다.
한번씩은 죽는 길, 친구 희자 말엔 죽음을 친구로 생각하란다.
참 좋은 말이다.
좋은 곳에 가는지 확실하다면 우리 큰 아버지처럼 무서워하지 않아도 될것이다.(2006년 12월 27일) (x1)
초등학교 5학년때 꾸지 큰집에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큰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큰아버지께서는 “왜 이렇게 캄캄하냐 불좀밝혀라” 하시며 운명하셨단다.
팔을 내휘두르시며 고함을 치셨다는 그말은 어린 내 마음에 비수같이 꼿혔고
평생 잊지 못하는 말한마디로 내뇌리속에 남게 되었다.
그 무서움, 그 외로움이 고스라니 느껴지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큰댁에는 삼대의 죽음이 있었다.
월남파병 갔던 사촌 오빠가 지뢰를 밟고 먼저 죽고, 할아버지께서 곧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연로해서 돌아가셨겠지만 큰아버지는 두번의 상사후에 많이 괴로워했을 것이 틀림 없다.
뱀을 잘못 잡숴 뱀독이 올라서 식중독으로 돌아가셨다지만 술을 잡수며 그 안주로 뱀을 드셨으니
집안의 불운을 삭일수 없었던게 틀림없다.
내 여동생은 서울대학 병원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한적이 있는데 그때 사람 죽는것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죽을 때 어찌 죽는것을 보면 신앙이 있었나 없었나 하는 것을 알수 있었다고 한다,
신앙안에 성숙한 사람의 경우, 죽을때 몸의 경직이 심하지 않고 부드럽고 얼굴이 편안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두려움과 고통속에 경직되어 죽기 때문에 시체만 봐도 무서웠다고 했다.
내가 미국와서 십년쯤 되었을때 내 바로 밑의 남동생이 한국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30대에 어린 두 아들을 남기고 갑자기 죽은 동생 때문에 급히 한국에 나갔었다.
그때 큰아들을 잃은 엄마를 어찌 위로해야하나 고민하며 나갔었다.
내가 나갔을떄 이미 시체는 막 파묻은 후였고, 엄마는 더이상 울지 않으셨다.
그런데 넙적다리가 완전히 까맣게 멍들었던것을 보았다.
너무나 많이 때려가며 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생이 다니던 교회 식구들이 와서 위로를 해주는데 젊은 올캐는 별로 울지 않았다.
캐톨릭 다니는 사촌이 꿈을 꾸니 내동생이 기쁜 모습으로 올라 가더라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
내 나이 51세에 두째 남동생이 간암으로 죽었다.
내 곁에 시카고에서 살던 동생이라 가장 가까왔던 동생이었다.
그의 나이 46살이었다. 일년을 암과 싸우다 결국 그 많은 돈과 시간을 병원에 바치고 가버렸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을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했다.
그가 죽던날, 그날이 그날인지도 모르고 나는 병원에 찾아가서 하루밤을 함께 지냈다.
올캐가 아주 다정하게 남편 손을 붙들고 위로해주니 내가 할일도 없고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엎드려 잠을 잤다.
동생의 배가 불러 왔는데 복수를 뺀다했으나 물 대신 피가 나왔고 급기야 혈압이 잡히지 않았다.
자다깨보니 그 마지막까지 스캔을 한다 검사를 한다고 간호원들이 끌고 나가고 있었다.
그때 동생은 우리 둘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예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침대로 돌아오자 얼마 안되어 얼굴을 잠간 들어 누구를 바라보는듯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가 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성경을 몇구절 읽어주었는데 “누나 읽지마, 머리에 안 들어와” 해서 나는 어찌할바를 몰랐었다.
나중 들으니 마지막시간에는 찬송을 불러주고 잘 지켜야한다던데 나는 임종이 처음이었고
그렇게 쉽게 갈줄은 몰랐다.
고통의 몸을 벗은 죽은 동생의 얼굴을 보니 천사같이 깨끗하고 평화로웠다. 안심이 되었다.
세탁소를 하고 있을때 단골 손님 한사람이 갑자기 잠을 자다가 돌아가셨다.
일주일에 꼭 한번씩 넥타이, 와이셔츠, 다 낡은 신사복 한벌을 세탁해가는 분이었다.
큰 교회 주일학교 교사라했는데 그렇게 몇년을 똑같은 것만 그렇게 세탁해 갔던 사람이었다.
아주 건장하고 50대 후반으로 젊었는데 그렇게 가다니 나는 믿기지 않았다.
인자하게 웃는낯의 그를 떠올리며 그의 장례식에 찾아갔다.
그랬더니 세상에, 그가 관에 누워있는데 웃고 있지않은가?
입가에 가득 웃음을 물고 잠이 들은 것이었다.
그렇게 웃는 시체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위의 사건들 말고도 여럿 죽음을 지나왔다.
내나이 벌써 이만큼 되어, 내 차례도 언제일지 알수없이 많이 가까왔다는 뜻이겠다.
나는 내 두동생과 그 미국사람이 틀림없이 천국에 갔을 줄로 믿는다.
한번씩은 죽는 길, 친구 희자 말엔 죽음을 친구로 생각하란다.
참 좋은 말이다.
좋은 곳에 가는지 확실하다면 우리 큰 아버지처럼 무서워하지 않아도 될것이다.(2006년 12월 27일) (x1)
2006.12.28 04:30:05 (*.173.16.64)
no problem! 인선.
삶과 죽음의 길은 늘 예 있지 뭐.
글의 요정이 너와 짝짝꿍 하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지는걸(x1)
글이 쓰여질 때 많이 많이 써.
글과 친한 니가 가깝게 느껴지는데(:y)
삶과 죽음의 길은 늘 예 있지 뭐.
글의 요정이 너와 짝짝꿍 하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지는걸(x1)
글이 쓰여질 때 많이 많이 써.
글과 친한 니가 가깝게 느껴지는데(:y)
2006.12.28 04:45:06 (*.209.168.180)
경선아 너는 부지런도하다. 새벽 4시반이라니.
우린 오후 12시 반이다.
마침 시간이 많아서 자꾸 컴퓨터앞에 앉게 되네.
눈이 피로해서 좀 삼가야할것같은데
이거 중독 증상인것 아닐까?
우린 오후 12시 반이다.
마침 시간이 많아서 자꾸 컴퓨터앞에 앉게 되네.
눈이 피로해서 좀 삼가야할것같은데
이거 중독 증상인것 아닐까?
2006.12.28 05:40:30 (*.116.230.155)
인선선배님!
경선선배님 말처럼 글이 써질 때 많이 쓰세요~~~
어떨 땐 글을 쓰고 싶은데, 문장이 떠 오르지 않아
시작은 하고 끝을 못 내어 그냥 지워버릴 적이 많이 있더라구요~~~
죽음에 간한 얘기는 무거운 것 같지만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이번 미주 신년모임에 꼭 오세요~~
시카고에 "석희련"선배도 살지요?
언니도 가까이 사시나요??
함께 좀 오세요!!!
경선선배님 말처럼 글이 써질 때 많이 쓰세요~~~
어떨 땐 글을 쓰고 싶은데, 문장이 떠 오르지 않아
시작은 하고 끝을 못 내어 그냥 지워버릴 적이 많이 있더라구요~~~
죽음에 간한 얘기는 무거운 것 같지만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이번 미주 신년모임에 꼭 오세요~~
시카고에 "석희련"선배도 살지요?
언니도 가까이 사시나요??
함께 좀 오세요!!!
2006.12.28 05:56:11 (*.209.168.180)
유명인사 춘자후배님이 왠일이세요?
너무 반갑습니다.
나는 아리조나로 이사온지 2년 되었어요.
희련이를 만나보게 되겠네요.
이번에 동창회에 가려고 합니다.
가서 만나보면 너무 재미있겠어요.
happy new year!(:l)
너무 반갑습니다.
나는 아리조나로 이사온지 2년 되었어요.
희련이를 만나보게 되겠네요.
이번에 동창회에 가려고 합니다.
가서 만나보면 너무 재미있겠어요.
happy new year!(:l)
2006.12.28 13:05:25 (*.102.187.42)
제가 존경하는 김춘자선배님과 요즘 글로 감동을 주시는 이인선선배님과
곧 멋진 조우를 하시겠네요~~~~부러워요!!!
요즘 다시 인일여고 나온걸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이스하신 선배님들이 많이 계셔서요~~~~
편안하면서도 한달음에 그러나 메시지가 있는
이인선선배님의 글에 매료되어
저는 요즈음,
어딜가나 틈만 있음 인일홈을 들어오는 웃지못할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집에서도 일하는 곳에서도 가끔은 교회사무실에서까지요~~~
완전 홀릭이랍니다.ㅋㅋㅋ
두선배님께서 만나시면 처음 뵙는다 해도 밤을 새실듯~~~~
생각만 해도 공연히 즐겁습니다.
한 분은 음악, 한 분은 미술~~~
예술로도 많이 잘 통하실 거 같구요...
참으로 멋져요!!!!
죽음에 관한 가족이야기~~~~~
자알 읽고 갑니다.
샬롬!!!!!(:g)(:g)(:g)(:g)(:g)
곧 멋진 조우를 하시겠네요~~~~부러워요!!!
요즘 다시 인일여고 나온걸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이스하신 선배님들이 많이 계셔서요~~~~
편안하면서도 한달음에 그러나 메시지가 있는
이인선선배님의 글에 매료되어
저는 요즈음,
어딜가나 틈만 있음 인일홈을 들어오는 웃지못할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집에서도 일하는 곳에서도 가끔은 교회사무실에서까지요~~~
완전 홀릭이랍니다.ㅋㅋㅋ
두선배님께서 만나시면 처음 뵙는다 해도 밤을 새실듯~~~~
생각만 해도 공연히 즐겁습니다.
한 분은 음악, 한 분은 미술~~~
예술로도 많이 잘 통하실 거 같구요...
참으로 멋져요!!!!
죽음에 관한 가족이야기~~~~~
자알 읽고 갑니다.
샬롬!!!!!(:g)(:g)(:g)(:g)(:g)
2006.12.29 09:40:42 (*.209.180.1)
춘자후배는 참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군요.
신앙의 전통이 깔려있는 가정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요.
정말 퓔▤?할머님 할아버님을 두셨으니 축하드립니다.
남편도 장로님이시라구요?
얼마나 좋으시나요?
저와 남편은 각자 자기집에서 처음 믿은 사람인데
옛 성도들과 비교할수 없이 엉터리가 되어가니
가끔 걱정입니다.
아이들에게 간신히 신앙의 유산을 전하긴했는데
..........................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기만 바랄뿐이지요.
춘자후배도 하늘 축복 많이 받으세요.
어제 처음으로 해외지부에 들어가보았어요.재밌더라구요.
앞으로 거기에 글을 쓰고 싶은데
이상하게 회원가입이 안되어 고심중입니다. 이메일 주소가 어쩐다나하고요.
이메일을 다른걸로 해야하나하고 생각중이에요.(:a)
인희후배 넘 고마와요. 격려에 힘입어
좋은글을 많이 쓰고싶은 맘이
굴뚝 같아졌습니다.
신앙의 전통이 깔려있는 가정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요.
정말 퓔▤?할머님 할아버님을 두셨으니 축하드립니다.
남편도 장로님이시라구요?
얼마나 좋으시나요?
저와 남편은 각자 자기집에서 처음 믿은 사람인데
옛 성도들과 비교할수 없이 엉터리가 되어가니
가끔 걱정입니다.
아이들에게 간신히 신앙의 유산을 전하긴했는데
..........................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기만 바랄뿐이지요.
춘자후배도 하늘 축복 많이 받으세요.
어제 처음으로 해외지부에 들어가보았어요.재밌더라구요.
앞으로 거기에 글을 쓰고 싶은데
이상하게 회원가입이 안되어 고심중입니다. 이메일 주소가 어쩐다나하고요.
이메일을 다른걸로 해야하나하고 생각중이에요.(:a)
인희후배 넘 고마와요. 격려에 힘입어
좋은글을 많이 쓰고싶은 맘이
굴뚝 같아졌습니다.
죽음에 관한 생각을 너무 많이해서
그런 글을 너무 많이 쓰게 되었네. 미안해.
경선아 죽음 이야기로 도배한것
안 좋으면 다른데다 옮겨주렴.
죽음에 관한얘기는 이제 고만 쓸께
아직도 우리는 젊었으니까..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