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에 다니던 약국을 그만두고,  오랜만에 휴식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휴식기간에 약국자리를 알아보기 위하여 집사람과 이곳 저곳을 함께 다니다가
하루는 양재역 부근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양재역에서 그리 멀지않은 거리에 있는 그 유명한  도곡동의 ‘타워 팰리스’에
마눌의 고종사촌 오빠가 살고 있기에 오랜만에 그 분 댁에  들렸다 가기로 하였습니다.


이 분 댁은 단 내외분만 살고 있습니다. 자손이 없습니다.
유학시절 자동차 교통사고로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웠을 때 돈 있으시면서도 인색하셨던  부친께서 전혀
도움을 주지 아니하셔서 무지 고생을 하던차에 제 장인이 도움을 주셨답니다.


그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 섭섭함이 뼈에 사무처 석사과정만 자력으로 마치고 귀국하여 이름있는 회사에 다니다
큰 돈을 벌기위하여 직장을 사직하고 부동산에 전념을 하였답니다.
그 당시 한 참 아파트로 재미를 보던 시절이라 아파트를 사고 팔고 하면서 당신네는 지하방에서 신혼살림을 하는 등
갖은 고생을 하면서 돈벌이에 인생을 걸었다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정확한 재산을 밝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수백억 원 대의 부동산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절약은 철저하게 몸에 배여서 광고물로 들어오는 전단지는 모두 모아 적당한 크기로 절단하여 이면지로 사용하는 등
불필요한 낭비는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이 분은 타워 팰리스에 입주하기 전 까지만 해도 고물이 다 된 스텔라를 15여년이상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등산 갈 때만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시간 지키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
이 양반하고는 약속한 시간에 가 있지 못하면 누구라도 용서받지 못하지요.
이렇게 매사에 철저하고 확실한 분입니다.

타워 팰리스에는 거의 한 가구당 승용차가 2대 이상이라더군요.
반 이상이 외제차이고 배기량이 작은 자동차는 거의 눈에 띄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 분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셔서 자동차도 이제는 외제차로 바꾸셨을 것이다 지례 짐작하고 외제차 중에서
무슨 차종이냐고 끈질기게 묻고 또 물어 알아낸 것이 현대차 스타렉스였답니다.


저를 만나면 역시나 다른 사람들에게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고, 씹고,찢고, 또 마구 마구 짖습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불같이 화내거나 따지거나 싸울 정도의 농담인데도 저는 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더라구요.
의미 없는 농담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악의 없는 투정으로도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좀 웃기는 이야기입니다만 그 수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그 분 말씀대로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분이지만
저한테는 어거지 뗑강을 부리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여 가여워 보이기도 하고 귀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와는 무슨 이야기라도 스스럼없이 나누며 상담도 하고 사이좋게 지냅니다.

이 분하고 이야기를 하면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이 분 사고의 대부분은 돈과 연관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음악이야기가 나오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분의 오로지 취미는 오디오입니다.
한 짝이 1억 원에 가까운 한 쌍의 스피커를 구매하기 위하여 일본까지 가서 손에 넣기도 한답니다.
유명한 오디오 마니어인 방송인 황인영씨와도 잘 아는 사이랍니다.

타워팰리스의 그  비싼 아파트를 잠자는 방 하나만 남겨 놓고 나머지 방을 오디오 시스템 구조로 주저없이 개조,
웬만한 방송국의 영상물 세트에 못지 않는 최신의 시설은 물론이요,동양에서는 하나뿐이라는  몇 몇 값 비싼 오디오
관련기기들도 여기 저기에 설치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여리기는 그러면 뭐한다냐 여겨지더군요.
혼자서 고상하고 품위 있게 놀면 뭐하냐구요.
부인되시는 형수님은 티브이 연속극도 못 보게 하시고 래디오도 듣지 못하게 하시고
오로지 자기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만 듣게 하시는 등 남편위주의 생활에 습관들여 놓으셨다는군요.
세월이 흘러 지금은 많은 자유가 부여된 모양입니다만.

형수님은 결혼 직후에는 특별하게 하시는 취미생활도 없으셨답니다.
한 참 지난 후에야 겨우 붓글씨에 나가시는 것이 허락되는 등 깊은 궁궐생활이었겠지요.
붓글씨 배우러 밖에 나가서 보내는 동안 여러 사람들 만나고 커피도 마셔 가면서 남들 살아가는 이야기들도 듣기도 하니
너무 너무 재미나고 사는 맛도 알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숨 한 번 마음껏 쉴 수 있음에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그러니  서예에 얼마나 열심히 심취하셨겠습니까?


이런 분을 처음에 우리 부부는 참 가엽게 여겼답니다.
없는 사람들의 상투적인 생각입니다만, 돈이면 다냐? 인간답게 살아야지.
애들도 없으면서, 마눌은 감옥에 갇아 놓고선 그리 돈만 밝히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남들과 어울리며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형제간에 우의있고 동서간에 사이좋게 살아야 그게 사는 것이지 하면서
속으로 경멸하였습니다. 쥐뿔도 없는 주제에 말이죠
살다보니 남 탓 할 것 하나도 없더라고요.
각자 나름대로의 멋지고 배울만한 인생 신조들 하나 둘 이상 모두 가지고 있던데 그 또한 존중해 주어야 합디다.
사실 그 분들한테 배워야 할 것들이 한 둘이 아니람니다.

그날도 그 분은 오디오에 대하여 한 참 자랑을 하시더니만 듣고 싶은 곡 있냐고 하데요.
문득  Brook Benton 의 "think twice" 가 떠올라 그걸 청하였습니다.

Think twice before you answer, think twice before you say
이 곡을 들으니 옛날 학창시절이 떠오르면서 알 수없는 감상에 젖어 들었지요.
양주가 마시고 싶어지더군요.
그래서 올드 파를 주문했습니다.  

이 분은 술 중에서 오직 old par만을 즐겨 드십니다.
성격 독특한 분들은 유별난 면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저녁에 가로등이 저 멀리까지 늘어서 있는 양재천가를 내려다 보면서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곡을 들으며
old par 한 잔으로 낭만을 즐기십니다.

그날 저녁식사까지 얻어먹게 되었는데 물론 양주는 이야기 나누는데 빠져서는 안되고요 .
저는 술을 잘 못하고 잘 마시지도 않는답니다.
어쩌다 소주가 먹고 싶어 한 병 사 다 놓으면 한 잔 따라 마시고 남은 채로 몇 달이고 그대로 있기가 한 두 번이 아니지요.

그 때는 약국에 나갈 필요도 없고 해서 마음 푹 놓고 온더 락으로 마셔댔습니다.
남자들은 음악에 대하여 이야기도 하고, 그 분의 생활철학을 듣기도 하면서(그런 이야기는 솔직히 말해 이제는
신물이 날 지경입니다 하도 여러번 들어서) 가끔은 적절하게 맞장구도 처주어 그 분의 기분을 한껏 고조시키는 한편,
한 두번은 형수님이 평소에는 하시지 못할 말씀을 슬쩍 내가 대신 해 드리는 등으로 분위기가 부드러워 가자 그 때까지
조용히 옆에서 마눌과 이야기 나누시던 형수님께서 한 말씀 하셨습니다.

“실은 오늘 형님과 대판 다투었답니다. 서로 이혼하자는 말까지 나오는등  분위기가 이루 말 할 수없이 차가웠었는데
동생분내외가 온다고 하여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으나 집 근처까지 오셨다고 하여 할 수 없이 오시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동생 남편께서 분위기를 띄우시고 형님도 기분 좋아하니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오시길 정말 잘 하셨네요.
저의 부부싸움을 화해시켜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하시더군요.

갑자기 형수님이 가여워졌습니다.
위에서 이 분 댁의 실상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도 이 두 내외가 경제적으로는 남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가정이지만
속 사정은 평범한 우리내보다도 얼마나 문제가 많은 지를 보여드리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답니다.

저는 매우 센스가 있는 넘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일부러 술 취한 척하면서 평소에는 감히 하지도 못했을 호통을 그 형님한테 쳤습죠.
“어이  ◇△△ (그 분 이름)  당신이 뭐 잘났다고 형수님을 울리시뇨? 마음 착하신 분한테 그러면 못쓴다고 알간?!"
하면서 그동안 제가 그 분한테 당했던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떠 올리면서 마구 마구 해 대었죠.
어떤 대목에서는 그 분이 저한테 한 그대로 돌려 드리면서 사정없이 깽판을 부렸답니다.  

그리고는 형수님한테 가서는 따스하게 안아드렸습니다.
그리곤 “형수님 사랑합니다” 해 드렸지요.
가늘게 어깨가 흔들리는 듯함을 느꼈습니다.
언제 형수님이 그 분한테서 이런 정겨운 말 들으신 적이 있기는 있었나 여겨지더군요.
(실은 저도 집사람한테 살겹게 해 주지도 못한답니다. ㅋㅋㅋㅋ)


근데 왜 그랬을까요?
갑자기 인간들은 외로운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떠 오르더군요.
그리곤 알 수가 없었지만 아버님 생각이 불현듯 났습니다.
당신이 그리워집디다.


돌아가신 아버님에게 평소에 죄송했던 모양입니다.
장인에게 곰살스럽게 하지 못한 것이 꺼림직했던 모양입니다.
자기 아버님한테도 잘 해드리지 못하는데 장인 장모에게 잘 해드리는 것이 죄송스럽고  
또 애들한테 표리부동한, 위선적이라고 여겨질까바 그 간 해 드리고 싶어도 눈치를 본 모양입니다.

타인에게만 정성을 다하고, 여러가지를 배려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나 자기 식구들에게는 무심했던
내 자신에게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내 자신을 사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모양입니다
자기 자신이 무척 외로웠던 모양입니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순식간에 떠 올랐다가 재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우리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곁에 계시지 않으신지 오래됬지요.
그래서 장인께 전화하고 싶어젔던 모양입니다

집사람보고 전화드리라고 했더니 아직 귀가하시지 않으셨다는군요.
9시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으셨답니다.
몇 번을 하다가 11시경이 되어서야 전화가 연결되었습니다.
그동안에도 저는 계속 미즈와리를 들이켰지요.

“아버님 저 OO 아범입니다.  이제야 돌아오셨군요.
저 오늘 △△형님댁에 와서 저녁 맛있게 먹고 술도 넉넉히 마시고 하여  지금 기분이 너무나  좋습니다.
갑자기 아버님 생각이 나서 이렇게 전화드렸습니다.

저희들 일본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로 아버님 보살핌을 많이 받았습니다.
평소에 제대로 효도를 해 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 항상 지니고 있었고요.
그 표현도 제대로 할지를 몰라  마음만 태우다 오늘은 술기운을 빌려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장인께서는 웃으시면서 받아주신 듯 한데, 말씀하시는 어감으로는 당신께서도 기분이 좋으시다는 느낌이었던 것으로
가물 가물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아마 평소에 어쩌다 일본에서 나오시더라도 형식적인 인사만 하고 묻는 말에만 겨우 대답하는,
아주 재미없고 어떤 면에서는 거북스럽기 짝이 없던 녀석이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뜻밖의 말을 하다니
얼마나 놀라셨으면서도 고맙고 기특해 하셨을까요?

저는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온 몸이 쑤시고 머리도 깨지듯 아프고 하여 하루 종일 방구석에서 헤매고 다녔습니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답니다.

그 후로 그 분 댁에 놀러 가면 전보다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재미있게 놀다 옵니다.
물론 형수님께서는 더 더욱 반가워하시고 저는 형님에게는 전보다 더 강도 있게 대들기도 하고 또 더 세게 당하기도 하고요.

한편, 장인이 나오실 때에는 전에 없이 부드럽고  따스하게 대해 드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불편하신 몸을 일으키실 때에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드리고 웃옷도 입혀드리고 그럽니다.
전에는 집사람이 하도록 멀리 떨어져 있곤 하였습니다.

그 말 한 마디  때문에 쑥스러움이나 망설임 없이 편안하게 모실 수가 있게 되었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스스럼없는, 꾸밈없는 공경심이 생겨 나오더군요.
참으로 신기합디다.


참말로 말 한마디 꺼내기가 어렵지,  하고 나니 생각지도 못한 즐거운 일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 한마디 하는데 너무나도 긴 시간을 들여  먼 길을 돌아 왔습니다.
너무나도 말하기가 어려운 한 마디였습니다.  
어쩜 세상에서 가장 말하기 힘들었을 낱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버지한테는 아직까지도 그런 말씀 단 한마디도  들려드리지 못했음이 너무나도 아쉬웠습니다.
마음속으로 지금 아무리 불러대도 살아 계실 때 한마디만 하겠습니까?


저승에 가서 아버지 어머님 만나면 그 말씀부터 해 드릴 겁니다.
눈물이 그 말을 막기 전에.........

“사랑 합니다”






* Paul Anka 의  "Papa"  아님 20여년전에 유행하던 이름 모르는 남자 필리핀 가수가 부른 "아버지(?)"  올려주신 분께 감사드릴께요.
  이왕이면 필리핀 가수 노래가 더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