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지니아 딸네집에 온지 며칠 되지않아서 느닷없이 내 메일함에
뉴욕에 살고있는 유경임의 영어로 된 안부메일이 날아들어왔다.
유경임으로부터 메일을 받는건 물론 처음있는 일이었지.

난 지레짐작으로 누군가가 (속으로는 문자이려니 생각했지)  경임이에게 나의 미국행을 알려준줄 알았었단다.
정작 만나서 물어보니 그게 아니었다네.
작년에 (재작년인가??)  경임이가 서울 갔을때 문자로부터 나의 메일주소를 받기는 받았는데
그동안은 e-mail 잘 할 줄도 모르고 그냥 쳐박아두었다가
요즈음 문득  "아, 지금 시대에 나도 메일을 주고받고 해 봐야 되겠다."  는 자각이 들었대. ㅎㅎㅎ

그래서 우선 책 뒷장에 적혀있던 조영희의  메일로 한번 소식을 띄워본거라네.  
영어로 온 편지에 영어 자신없는 나는 한글로 대강 답장을 했고
한글 타자 못 치는 경임이는 다시 용기와 관심을 잃고........

그래서 경임이는 내가 브라질에 있는줄 알았다는거 아니냐?  ㅎㅎㅎ
브라질에 있는 아이의 전화번호가 왜 이래?  그랬다는거야. ㅎㅎㅎ

거리에 나서기를 망설이게 하는 불볕더위를 꺼리지 아니하고
처음 시도해보는 뉴욕 지하철의 두려움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내가 길 잃어버릴까봐, 아니 뒤늦게 마누라 잃어버릴까봐 조바심하는 남편의 걱정을 개의치 아니하고

나는 뉴욕 도착하는 즉시 점심요기를 마치자마자 경임이를 찾아나섰다.
일러준대로 F train 을 타고 내리라는 곳에 내려서 어렵사리 남의 핸펀으로 연락을 했더니
득달같이 데리러 나왔다.

유경임.   다들 기억이 나지?
키가 작고 살결이 하얗고 통통하고 에너지가 팡팡 솟던 아이.

세상에~~~~~~~   어쩌면 지금도 그 때하고 똑 같다니?  놀랬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여전히 팽팽하고 쌩쌩하고.........
낭랑하던 그 목소리 또한 조금도 변하지 않았더라.

이렇게 만나다니.
수십년의 세월뒤에, 또 그 멀고먼 한국과 미국과 브라질을 거쳐서
오늘 여기 이 지점에서 이렇게 만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보통 인연이 아닌거 맞지?

할 말이 많기도 하고
또한 별로 할 말이 없기도 하고

우리는 이층에 올라가서 컴퓨터를 켰다.  인일 홈페이지에 들어갔지.
경임이는 아직 우리 홈페이지 열어본 적이 없다는구나, 글쎄........

내가 요기 조기 짚어가면서 보여주고 읽어주고 그랬다.
경임이도 앞으로는 읽어보겠지.
워낙 바쁜 사람이니까 들어올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는 길은 일단 알려주고 왔다.

해 저무는 저녁나절,  경임이네 집에서부터 메트로정거장까지
운치있게 우거진 나무그늘 사이로 멋진 주택들을 바라보면서 둘이서 걸어왔다.
나도 마치 그 동네 주민인것처럼...........

한번, 두번, 세번....
내가 메트로 계단으로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서로 대여섯번 뒤돌아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또 다시 만나기로 했지만 글쎄?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나지겠지.

돌아오면서 문자 생각을 했다.
한번쯤 크게 용기를 내서 <매일 매일의 일상> 을 잠시 놔두고 여기 경임이네 집에 좀 와 보라고 하고싶다.
"너 없으면 큰 일 날것 같아도 그렇지도 않아. 그런대로 또 다 돌아간다구."
이러다가 우리 그냥 나이만 자꾸 먹어간다.

호텔에 돌아오니 더위와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는지 꼼짝하기도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