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고등학교 시절 꽤나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
결혼하기 전부터
하나씩 내 곁을 떠나 가버리고 말았는데
한명은 독일로
또 한명은 미국으로
그리곤 수녀원으로 마저 들어갔는데다
결혼과 더불어 옆지기 따라
지방에서 살다 올라 와보니
그야 말로 동창회나 해야
학창시절 친구 얼굴을 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시간의 궤적이 얼마나 큰건지
각자 가정을 이루며 사는 동안
자식농사에 남편내조와 시집 치닥거리로
정신 없이 긴세월을 보낸 탓인지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을것 같지만
막상 얼굴 대하면 웬지 서먹서먹하여
대화의 끈을 이어가는게 수월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것은
인테넷이란 매체가 요물단지인지
이 공간에서 이루어 지는 만남은
시간의 궤적을 전혀 느낄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반갑고 친밀해짐은
나만의 오바 일른지요?

근 40년 얼굴을 못보았던
인숙이도 어제 만난듯 그리고 쭉 친분을 나누고 지낸듯
정답게 다가오고
먼 지구 반대편에서 소식을 전해오는 영희도 종심이도
곁에 있는듯 가깝게 느껴지니 말입니다.

인터넷에 아직 나타나고 있진 않지만
동창들간에 잊혀지고 있을지 모르는
나의 친구 은숙이는
언제나 내마음 한구석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귀한 친구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같이 미술반을 하면서 방과후에
내내 붙여 다녔으니 누구보다도 긴 시간을
나와 함께 한 친구입니다.

소묘에 있어서는 우리학교 출신 그 누구와도 견줄 수없는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같은대학에 나란히 붙어 같이 함께 다니고 싶었던
우리들의 꿈은
은숙이의 낙방으로 서로의 길을 갈라놓고 말았습니다.

실의에 빠진 은숙이는
때맞춰 뒷집 할머니의 죽음과 맞물려
신앙에 입문하게 됩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과묵하고 진실한 은숙이는
우리엄마를 대모로 모시고 영세를 받은 후
얼마 안있다 수녀원에 입회하여 수녀의 길을 가게 됩니다.

흙에 묻힌 보석은
때맞춰 그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그의 그림소질을 알게된 수녀원에서는 꼭 수녀원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어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게 됨에
중앙대학교 예술학부에서 그림을 전공하게 합니다.

대학 졸업 후 필요에 따라 외국에나가 자료 수집도하고
영성 훈련도하며
일찌기 외국 문물도 익히게 됩니다.

나의 친구 은숙이가 소속된 수녀회는
바오로 딸 수도회입니다.
답동성당 카토릭회관에 자리잡고있는 바오로 딸 서원이
그 수도회에서 운영하고있는 서점입니다.

주로 메스컴에 관련된 일을하는 수도회여서
각종 책,인쇄물 그리고 시청각 자료등 을 제작 판매하는데
책표지 디자인에서 부터 은숙이의 손에 거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판화에도 일가견이 있어
전시회 출품도하고 작품 판매도 하며 지내고 있는데
요즘 최근에는 조각의 일종인 부조로 성물제작도 합니다.

지금은 원로 수녀님으로
총괄하는 직책만 맡어도 되는데
현역에서 노동을 동반한 세세한 작업에
일일히 수고함을
본인은 은총이라고 하니
역시 인일 출신의 수녀님은 책임김과 헌신하는 노력이 남다름을 느낄수 있습니다.

지난 해 성탄절전에
서원 디스프레이를 직접하러 인천에 내려온 은숙이를
잠시 짬을 내서 만났을때
거치른 손에 상처가 나
마음이 아팠는데
쓰임이 있어 현역에서 은퇴 안함을
너무나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말에서
은숙이의 진면목을 볼수있었고
나 엮시 능력이 되는한 뒷방 늙은이는 되지 말아야 겠다는 결심을 해보았습니다.

이글을 쓰면서 본인의 허락을 받지 않아 가슴이 조마조마한데
나중에 문제 생기지 않길 기도하면서
또한 은숙이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그리고 역동적인 열정이
우리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며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