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글은 지금은 양평에서 팬션을 하며 농부처럼, 신선처럼 살아가는 이재풍 동기의 감동적 글입니다.
다시한번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엄마를 생각나게 하며 눈물짓게 하는군요.
(jein1013에 실린글을 재풍이 동의하여 퍼 왔습니다.)

 

"오늘 점심엔 뭘 먹지?"

 

겨울 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가 계속 됩니다.
산에 오르기엔 참 좋은 날씬데 조금씩 땀이 나기도 합니다.

낙엽을 밟으며 오르는 산 길에서 오늘은 노루를 만났습니다.

"엇! 노루네!"

두 놈이 내 발자국 소리에 부리나케 산 위로 도망 칩니다.
투실 투실하게 살 찐 노루 궁뎅이를 눈으로 쫒아 갑니다.

"아.. 저 놈들 싱싱하네.
그런데 이 산엔 먹을게 많이 있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노루 궁뎅이를 보고 나니 갑자기 배가 고파 집니다.

"오늘 점심은 뭘 먹나?"

궁리 끝에 국수 생각이 납니다.
"그래..국수를 해 먹자."하고는 산을 내려 옵니다.

"어머니! 국수 국물 좀 만드세요."

"나요? 난 그런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구만요."

"아이구 어머니.. 옛날 지겹도록 끓여 대던 수제비,칼국수  이제 다 잊어 버리셨어요?"

내가 해 보기로 합니다.

마침 된장국이 조금 남아 있어 물을 부어 끓입니다.
멸치를 한 웅큼 집어 넣고 생각 해 보니 냉장고에 홍합이 있습니다.
홍합도 열 댓개 집어 넣고 마지막으로 파를 썰어 넣습니다.

"어머니! 맛이 어때요?"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맛이 기가 막히네요.
어쩜 이렇게 잘 끓이세요? 호호.."

정말로 맛이 있습니다.
한밤중 대전역 국수 맛은 저리 가라 입니다.

국수 두 그릇을 후딱 해 치우고 나니 배가 부릅니다.

삶이란게
대책없이 하루 하루를 지내는 거 라더니만
그저 이렇게 배가 부르니 기분이 느긋해 집니다.

대책없이 사는게 인생이라구?
어쩌면 맞는 얘기 인지도 모르겠네.

배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 되니...

그래도 무슨 대책이 있어야 살 수 있는게 아니야?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만.

대책 이란게
문 꼭 걸어 잠그고
줄줄이 보초 세워 놓는 거라면
꼬리를 물고 생기는 대책의 대책 세우기를 어찌 다 감당을 하누?

그럴바엔 그냥
마음의 문을 열어 놓는게 날 지도 모르지.

마음이 넓어 지는게
배 부르게 먹은 국수 두 그릇의 힘 인가요?


지금 우리 어머니는...




지금 우리 어머니는 혼자 외로이
삶의 어느곳을 지나가고 계시는 것 일까?

지난 토요일,
날씨는 따뜻하고 바람 한점 없기에
마침 찾아 온 막내 동생 가족과 마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햇빛은 밝고 감미로웠고, 동생은 고기를 굽고 있는데
문득 어머니 머리를 자세히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어머니 머리가 노르스름해 졌네..
꼭 병아리 색깔 같이 되 가네!"

어머니가 금방 받아 넘기십니다.
"늙으니까 이제 병아리가 되 가는 모양이지?"

조금 있으면 이제 84세.
그런데 기억은 왜 먼저 떠나 보내셨는지...
아들을 알아 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래도 어머니와 함께 밥 먹는 시간은 즐겁습니다.

"선생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시우? 나하고 동년배쯤 되요?
난 나이는 젊은데 아픈데는 많다오.."

"어머니도 참.. 어머니는 젊으신데 내가 더 먹었지요. 하하하...(이게 무슨 망발인가..)

소주병 속 술은 줄어가고 대신 슬픔이 차 오릅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계시니 많이 위안이 됩니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곳,
내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는 곳,
그 곳은 역시 어머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