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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

 

사랑은 느낌이고

우정은 이해다.

 

내가 왜 당신을 좋아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툴툴거리자

당신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가 어디 있냐고 했습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따져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냥 당신과 함께 있는 느낌이 좋아서 그리 되었을 뿐 입니다.

 

사랑은 술을 찾게 하는 것이고

우정은 같이 마셔 주는 것이다.

 

당신을 생각하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갈증에 시달립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으면서 그저 답답한 심정입니다.

한 잔 술이 혹시나 도와줄까 기대어보지만

이 순간의 목마름은 너무도 넓고 깊습니다.

 

우정은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고

사랑은 꾸며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당신 앞에선 늘 당당하고 의연한 척하고 싶습니다.

결코 내 마음을 다 들어내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욕심에 비해 내가 부족하고 자꾸 작게만 느껴지고

무언가 잘 안돼갈까 조바심이 나기 때문입니다.

 

우정은 무얼 할까 같이 찾는 것이며

사랑은 조용히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급하게 더듬거리기 보다는

그냥 조용히 있는 편이 오히려 내 마음이 잘 전해지는 느낌이 들고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아 무엇부터 해야 할 지 망설이지만

그냥 가만이 당신을 지켜보는 것이 더 가슴 부듯합니다.

 

사랑은 언제 떠날지 불안한 것이며

우정은 항상 옆에 있는 것이다.

 

당신이 언제 내 마음에 들어왔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지금도 무엇이 당신을 얼마나 강하게 붙들어 매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이 언제 어떤 식으로 내게서 떠나갈지도 알 수 없어

나는 항상 체념하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우정은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사랑은 사랑한다고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순간에 사랑한다 표현하는 것이 맞는 건지는 더 더욱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때 그런 것이 사랑이란 느낌이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는 정도가 고작입니다.

 

우정은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며

사랑은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는 것이다.

 

마음이 누구와 의논해가며 궁리해서 당신을 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도 모르게 어찌 할 수 없는 감정이 제멋대로 널뛰는 꼴을 보고 있는

그 감정의 주인은 저게 자신인지 남인지 구별조차 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차마 변명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비이성적입니다.

 

우정은 만나고 싶을 때 부르는 것이고

사랑은 얼굴 한번 보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늘 당신과 같이 있고 싶은 마음입니다.

당신과 같이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몇 날 같은 몇 시간을

때로는 몇 년 같은 몇 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과 같이 있는 몇 시간은 마치 몇 분인 듯 그렇게 지나가버립니다.

 

우정은 편하게 만나서 아무 생각 없이 얘기하지만

사랑은 어렵게 만나서 고르고 고른 단어로 얘기하는 것이다.

 

당신을 만나서 생각나는 대로 그냥 말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렵사리 단어를 골라 어색하게 연결해서 늘어 놓다 보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소리만 하고 있는 건지

마음에 흡족한 표현은 언제나 가능할는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우정은 주고 받는 것이지만

사랑은 주는 것이다.

 

내 마음의 정원에는 풀도 자라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힙니다.

내 영혼을 먹고 자라는 그것들은 가꾸지 않아도 항상 아름답습니다.

지난 밤사이 마음 가득 자라난 것을

오늘 당신을 만나 하나씩 하나씩 모두 건네주고 싶습니다.

 

우정은 어려울 때 알게 되고

사랑은 아침에 눈뜰 때 알게 된다.

 

아침마다 눈을 뜨기 전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당신을 불러 의논합니다.

그렇게 내 마음에 들어온 당신과 오늘 하루를 함께 할 것입니다.

 

우정은 여러 명과도 같이 하지만

사랑은 오직 한 사람과 같이 하는 것이다.

 

왜 오직 한 사람에게만 열리도록 마음이 허락하는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하필 당신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것을 인연이라 일컫는가 봅니다.

그 인연을 독점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우정은 같이 있을 때 즐거운 것이지만

사랑은 잠깐의 스침에도 며칠간 맘 졸이는 것이다.

 

잠깐의 만남 동안 별 것 아닌 얘기에도 마음을 담아 웃어주고

우연한 손길의 스침도 무언가 의미가 부여된 듯 짜릿하게 느껴지고

그러다 보면 스쳐 지나간 말 한마디나 작은 몸짓 그 하나 하나에

당신의 마음이 절절히 실려있다는 생각에 마음 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정은 쉽게 빨리 이루어져도 오래 가지만

사랑은 오랜 기간 어렵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항상 위태롭다.

 

몰래 가슴 한구석에 당신을 향한 마음을 묻고 그토록 오래 기다린 것이

언젠가 진정한 당신의 마음이 내게 다가오는 것이었지만

내 마음을 당신에게 쏟는 것은 내 자유이더라도

당신의 마음을 받을 수 있는 자유가 내게 허락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정은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며

사랑은 삶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삶의 의미가 사라질 정도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렇게 두 삶이 하나로 용해된 적이 있었던가?

이리도 힘든 사랑을 과연 나는 감히 해낼 자격을 갖추고 있기나 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