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조자들

엽렵한 미선이는 오자마자 꿈에서 깨어났지만 난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몽사몽간에 사진 1장 달랑 올려 놓고 생각해보니 그 동안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글재주도, 말재주도 없는 내가 부끄러운 마음으로 감히 인일동산에서 펴 놓은 멍석 위로 겁도 없이 올라가 감히 마이크의 ON을 켜고 말았다.
먼저 이번 여행을 계획하시고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성모님께도 함께, 그 분의 전구하심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이번 여행은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분께서 협조자를 통해서 이번 일을 이루어 주셨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할까 한다.

협조자 1 조영희

정확하게 1년 전 쯤 일이다. 종심이가 휴가차 한국에 왔을 때 미선이를 만났다.
"희정아, 우리 40일 동안 걸어서 순례하는 여행할래? 스페인인데 차는 안 타고 걷기만 한다더라.“
나는 미선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미선이가 종심이에게 책 1권을 주면서 하는 말이, 조영희의 순례기를 책으로 엮은 거란다.
“산티아고”
어디서 많이 듣던 지명인데...생각해보니 미국의 샌디에고 때문인 것 같았다. (동창회에 못 나가는 나는 전혀 감감할 수밖에)
“종심아, 내가 하루에 다 보고 줄게, 내가 먼저 좀 보자.”
왜 그 책을 그렇게 탐을 냈는지 지금에서야 알 것 같다. 책을 펴는 순간 야곱의 순례길임을 알게 되었고 이상하리 만치 가슴이 뛰면서 영희가 신문기사를 보고 느꼈던 것이 바로 이런 건가 생각하며 3번을 연거푸 읽었다. 처음엔 숨도 못 쉬고 읽고 두 번째는 감동으로 읽고 세 번째는 나도 배낭을 메고 영희와 함께 순례를 하고 있었다. 맨 나중에 영희가 눈물을 흘릴 때는 나도 함께 울었다. 그러면서 나도 이 순례 여행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영희랑 꼭 통화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미선이에게 브라질 주소를 물으니 마침 한국에 와 있다나?
세상에,,,난 너무 반가워서 얼른 전화를 했다. 사실 난 조영희랑 동창이긴 하지만 6년동안 단 한 번도 같은 반을 한 적도 없고 내 기억으론 이야기를 해 본적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책을 3번 읽고 나니 만나면 하루 종일이라도 이야기할 것 같아서 꼭 만나야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만나게 하지 않으셨다. 하느님의 계획을 감히 누가 알리요.
아마 그 때 영희를 만났다면 우린 계속 산티아고 쪽을 고집했을 것이다. 일찌감치 영희를 산티아고 순례 시키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협조자2 송미선

미선이야말로 초등학교부터 동창이지만 왕래가 많지 않았다. 미선이의 시동생과 우리 남편이 친한 친구여서 자연히 미선이의 동서와 더 가까이 지내면서 그 쪽에서 미선이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종심이가 오면 함께 만났지만 만나면 날이 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고 가끔 만나도 벽이 생기지 않는 그런 친구였다. 내 생각엔 내가 해외 여행을 한다면 친구 정분이가 있는 미국엘 제일 먼저 갈 줄로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또 나와 다르셨다. 그런데 미선이와 환상의 파트너가 될 줄이야.
미선인 활발하고 말 잘 하고 솔직하고 환경의 적응을 너무 잘 했다. 그의 뛰어난 영어 실력은 나를 감동케 하고도 남았다.(그 부분은 언젠가 자세히 얘기할 날이 있겠지만) 그 때부터는 둘이서 어디를 가도 걱정이 없었다. 정리 정돈 실력은 가히 수준급. 내 것 까지 다 정리해야 걱정이 풀리니까.
내가 여행도중 토사곽란으로 하늘나라 문턱까지 갔다 왔을 때 미선이의 지극 정성 어린 간호가 없었다면 지금 이 글도 못 쓰고 말았을 텐데..
햇반 삶아서 죽 끓이고 욕조에 뜨겁게 물 받아 들어가게 하고 갖고 있던 비상약, 소화제, 정로란, 우황청심환.. 또 무슨 한약에 아무튼 한 주먹씩 계속 먹으라고 주고 자기 스웨터까지 벗어주고... 난 솔직히 약 먹기가 겁이 났지만 혹시라도 짐이 될까봐 주는 대로 잘도 받아 먹었다.
단 하루 만에 나의 병은 아주 깨끗이 나았는데 종심간호사 말에 의하면 그건 기적 중에 기적이란다. 평생 의사 딸로 자란 나보다 더 간호를 잘 해서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미술 전공이 아니고 간호학 전공인 줄 알 뻔 했다. 냅다 까라, 뻔때, 마이나스를 연발해서 나를 하루 종일 웃게 만드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제 2의 협조자 환상의 파트너 송미선.
그의 용의주도함은 또 하나 있다. 내 청바지 속에 돈주머니를 꼭꼭 꿰매어 입히고 저도 고쟁이 속에 달고 있던 주머니 속 깊이 돈을 챙겼던 미선이.
땡큐 때려 망치(이건 미선이가 내게 가르쳐준 영어. 난 그날 하루 종일 즐거웠다. 그 말이 너무 재미있어서)
미선아, 네게는 영어로 인사할게 “Thank for your kind!”

협조자 3 이종심

너희가 산티아고 순례한다면 자기는 절대로 못 한다고 딱 잘라 말해서 우리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던 종심이.
산티아고 얘기 때부터 독일로 오라고 6주간 잡아서 오라고 주장했지만 우리는 식구들에게 크게 인심 써서 1주일 깎아 5주간으로 정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자기만의 공간과 귀한 시간을 우리에게 선뜻 내어준 착한 사람, 숙식무료 제공에 가이드에 통역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 준 협조자. 하느님은 종심이라는 협조자를 통하여 산티아고가 아닌 독일로 우리를 초대하셨다. 종심이의 희생과 사랑이 없었다면 이 여행은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난 정말 죽어도 종심이의 흉내는 내지 못할 것 같다. 단 종심 사감 선생님의 따가운 지적은 수도 없이 많이 받았다.

-세수할 때 소리 내지 말 것
-욕실 바닥에 물 흘리지 말 것
-치약은 거꾸로 세워 놓을 것
-건널목에서 길을 건널 것
-항상 차례로 줄을 설 것
-식사할 때 소리 내지 말 것
-지나가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닿으면 바로 슐디궁(excuse me)이라고 말할 것 등등

우리는 종심이한테 혼날까봐 전전긍긍했는데 그래도 좋기만 했다.
종심이 혼자 어린 양을 이끄는 목자였으니 뭘 먹일까 어느 곳을 가야 할까 그 곳까지 어떻게 가야 할까 하고 지도 펴 들고 고민할 때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안쓰런 얼굴로 쳐다보는 것밖에는...우리가 하는 일은 오직 1가지. 아침에 일어나서 얼굴 탈까봐 뽀얗게 화장하고 선글라스와 모자만 챙겨 들고 종심이 따라가면 끝이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소풍이 기다리고 있는 유치원 어린이의 마음이 이럴까? 그 새털 같은 마음을 어찌 표현할까? 아! 그 때 우리는 분명 구름 위를 걷고 있었다.
집에 오는 날 공항에서 껴안으며 눈물을 보였던 제 3의 협조자는 메일에 이렇게 보냈다. 너희가 떠난 날 아주아주 시~~원했다고...
종심아! 그래도 정말정말 고마워, 하늘만큼 땅만큼

협조자4

내가 이제나 저제나 말도 못하고 기회만 보고 있던 때에 종심이의 전화를 받은 남편은 금시초문인 이야기를 듣고 많이 황당해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 때까지 얘기도 못 꺼내고 있었으니까).. 자초지종 이야기(산티아고부터)를 들은 남편은 그 날로 산티아고를 통독하고 산티아고는 절대 못 보낸다고 하면서도 산티아고 싸이트 찾아보고 인천에도 그런 모임이 있으니 알아보라고 했었다. 야무지지 못한 마누라하고 사느라 고생이 많은 우리 남편은 독일 간다는 말에, 또 미선이랑 간다는 말에 안심하는 눈치였다.
국가경제도 가정 경제도 다 그렇고 그런 시대에 뭉텅이 돈 빼내서 간다는데도 군말없이 당장 환전해다준 남편(그 사람은 나는 환전 같은 건 못 한다고 생각하니까).. 바쁜 미선이 것 까지도 환전해주고, 공항까지 배웅해주면서 핸드폰까지 로밍 서비스 받아준 남편(쓰지도 못했지만-그 이야기는 다음에)
두 어린양들 돌보시려면 어려움이 많을 거라고 종심이한테 메일까지 보낸 남편, 정말 고마워요.


또 있다.

우리 아이들
내가 한 달 먹을 것 다 해놓고 가겠다고 말했을 때 염려 말라고 하면서 아파트 마당에 짐 들고 나와서 내가 울 때 같이 울어준 딸들. 요리책 1권 실습하느라고 재미있었다는 작은 딸.
그 곳에서 미사하기 힘들까봐 특별 미사까지 드렸다는 큰 딸.
엄마가 여행하는 건 대 환영이지만 아빠 혼자 두고 가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엄마한테 그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고 끝까지 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했던 우리 아들.
우리를 안전하게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배려해준 박주해 후배, 유럽 여행 10일 동안 동행이 되어주었던 계숙 언니와 인숙 언니(그 언니들은 인천여고 막내인데 인일여고가 1년 늦게 생겼다고 매우 애석해 했다)
그 밖에도 파리 주재원으로 가 있는 착한 미선이의 남동생과, 큰 시누이의 친구까지 3명을 3박 4일 동안 최선을 다해 대접해준 지혜롭고 착한 올케, 종심이의 독일친구들.
모두 하느님께서 미리 미리 준비하신 이번 여행 협조자들이다.
하느님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모든 협조자들에게 이 부족한 글로 큰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