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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꾼다
12. 임옥규 2005-08-11 17:10:38 | 조회 : 187
지금은 빌라에 살고 있지만 그 전에 한 7년 아파트에 살았다.
그 아파트는 북한산 왼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어서 맘만 먹으면 늘 산에 갈 수 있는 곳이었고. 남향이라서 마음이 아주 밝아지는 곳이었다.
게다가 11층이라서 시야가 확 트이는 곳이었다.
그래도 난 아파트 생활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맨날 동동거리는 바쁜 생활이라서 집안 살림이고 뭐고 관심을 가질 수도 없는 무능한 사람이었음에도 아파트는 아니다는 느낌이 참 많았다.
게다가 남들은 로얄층이니 뭐니 하는 11층에 있으면 왠지 붕 떠 있는 느낌이 들고 마음이 안정되질 않았다.
다시 집을 옮길 때 겨울이었는데, 난 비쩍 마른 나무 하나가 창 밖에 서 있는 낡은 빌라를 선택했다.
그냥 그 나무 하나 보고 선택을 했다. 게다가 1층.
봄이 되어 잎이 피고 이어 꽃이 피었다.
기막힌 색깔의 꽃을 피우는 자목련이었다. 세상에...... 기막힌 선택이었어.
게다가 1층의 생활은 나에게 무척 안정감을 주었다. 그냥 걷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되는 그런 집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분명히 남향이라고 했는데 가 보니 동쪽으로 너무 많이 기울어진 곳이었다.
그래서 거의 하루 종일 어두운 것이었다. 창 밖에는 바람이 휭휭 부는데 집 안으론 안 들어오는 곳.
그런 곳에서 5년을 살다보니 마음이 많이 우울해진다.
사람의 기를 빼앗는다고나 할까. 아무튼 마음이 건강해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졸업하고 2년 후 쯤에 근무하던 곳은 강원도가 가까운 양동이란 곳이었는데, 학교에서 제법 떨어진 목골이란 곳에서 자취를 했다.
그곳은 땅도 넓지 않고 뭐 해먹을 것도 없고 아무튼 아주 척박한 곳이어서 아주 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 곳에의 인연을 난 아주 기뻐했고 만난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고 우린 친했다.
그 동네 사는 아이들과 저녁이면 고구마를 깎아 먹거나 서리한 사과를 먹으면서 꿈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말했다.
글쎄 걱정마시라니까요. 선생님 늙으면 우리가 집 지어드릴게요.
나 큰 집은 싫어. 마당만 조금 있으면 돼.
그래도 너무 작으면 어떡해요.
집은 그냥 작아도 돼. 한 이십평이면 충분해. 그 대신 마당은 80평 할래.
에이 그래도 한 200평은 해야지요.
있잖아요, 우리는 말을 타고 저 산길을 달릴 거에요.
야 멋지다. 좋겠다. 느그들 약속 꼭 지켜야 돼.
걱정마시라니까요.
거의 25년이 지났나?
우리는 아직도 연락을 하는데 난 맨날 종주먹을 댄다.
야! 내 집 어떻게 됐어?
하지만 난 그들이 고맙다. 기쁜 꿈을 마음에 품고 살게 해 줘서,
나보다 더 늙어버린 그 아이들이 타고 달릴 산은 커녕 땅도 없지만, 그리고 아직도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한때 우리가 마음을 함께하며 순연히 웃었다는 그 기억이 나에겐 아주 소중하다.
난 별로 가진 것도 없고 앞으로도 가질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많이 갖고 싶지도 않다.
진짜 스무 평 정도면 족하다. 마당도 에이~ 그냥 스무 평으로 줄이자.
하지만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들꽃도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앞마당에 벅벅 비벼 빤 하얀 홑이불을 널 수 있는 곳.
난 그런 것을 꿈꾼다.
12. 임옥규 2005-08-11 17:10:38 | 조회 : 187
지금은 빌라에 살고 있지만 그 전에 한 7년 아파트에 살았다.
그 아파트는 북한산 왼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어서 맘만 먹으면 늘 산에 갈 수 있는 곳이었고. 남향이라서 마음이 아주 밝아지는 곳이었다.
게다가 11층이라서 시야가 확 트이는 곳이었다.
그래도 난 아파트 생활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맨날 동동거리는 바쁜 생활이라서 집안 살림이고 뭐고 관심을 가질 수도 없는 무능한 사람이었음에도 아파트는 아니다는 느낌이 참 많았다.
게다가 남들은 로얄층이니 뭐니 하는 11층에 있으면 왠지 붕 떠 있는 느낌이 들고 마음이 안정되질 않았다.
다시 집을 옮길 때 겨울이었는데, 난 비쩍 마른 나무 하나가 창 밖에 서 있는 낡은 빌라를 선택했다.
그냥 그 나무 하나 보고 선택을 했다. 게다가 1층.
봄이 되어 잎이 피고 이어 꽃이 피었다.
기막힌 색깔의 꽃을 피우는 자목련이었다. 세상에...... 기막힌 선택이었어.
게다가 1층의 생활은 나에게 무척 안정감을 주었다. 그냥 걷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되는 그런 집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분명히 남향이라고 했는데 가 보니 동쪽으로 너무 많이 기울어진 곳이었다.
그래서 거의 하루 종일 어두운 것이었다. 창 밖에는 바람이 휭휭 부는데 집 안으론 안 들어오는 곳.
그런 곳에서 5년을 살다보니 마음이 많이 우울해진다.
사람의 기를 빼앗는다고나 할까. 아무튼 마음이 건강해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졸업하고 2년 후 쯤에 근무하던 곳은 강원도가 가까운 양동이란 곳이었는데, 학교에서 제법 떨어진 목골이란 곳에서 자취를 했다.
그곳은 땅도 넓지 않고 뭐 해먹을 것도 없고 아무튼 아주 척박한 곳이어서 아주 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 곳에의 인연을 난 아주 기뻐했고 만난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고 우린 친했다.
그 동네 사는 아이들과 저녁이면 고구마를 깎아 먹거나 서리한 사과를 먹으면서 꿈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말했다.
글쎄 걱정마시라니까요. 선생님 늙으면 우리가 집 지어드릴게요.
나 큰 집은 싫어. 마당만 조금 있으면 돼.
그래도 너무 작으면 어떡해요.
집은 그냥 작아도 돼. 한 이십평이면 충분해. 그 대신 마당은 80평 할래.
에이 그래도 한 200평은 해야지요.
있잖아요, 우리는 말을 타고 저 산길을 달릴 거에요.
야 멋지다. 좋겠다. 느그들 약속 꼭 지켜야 돼.
걱정마시라니까요.
거의 25년이 지났나?
우리는 아직도 연락을 하는데 난 맨날 종주먹을 댄다.
야! 내 집 어떻게 됐어?
하지만 난 그들이 고맙다. 기쁜 꿈을 마음에 품고 살게 해 줘서,
나보다 더 늙어버린 그 아이들이 타고 달릴 산은 커녕 땅도 없지만, 그리고 아직도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한때 우리가 마음을 함께하며 순연히 웃었다는 그 기억이 나에겐 아주 소중하다.
난 별로 가진 것도 없고 앞으로도 가질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많이 갖고 싶지도 않다.
진짜 스무 평 정도면 족하다. 마당도 에이~ 그냥 스무 평으로 줄이자.
하지만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들꽃도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앞마당에 벅벅 비벼 빤 하얀 홑이불을 널 수 있는 곳.
난 그런 것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