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숙아, 더운데 <고향> 노릇 하느라 애썼다.  
12. 김춘선   2005-07-24 20:41:35  |  조회 : 91

어제는 여름 중 가장 덥다는 <대서>였다.

오뉴월 삼복 더위에 오는 손님은 호랑이 보다도 더 무섭다는 데

그 중에서도 제일 덥다는 대서에 그리도 많은 친구들을 위해

선뜻 자기네 학원을 임원회의  장소로 제공해 준 김 혜숙, 우리의 귀여운 여인~

혜숙아,

어제는 네가 우리의 <고향>이었다.

이 나이에 친정에 간들 그보다 더 푸근하고 따뜻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겠니?

원근 각지에서 모여든 친구들 배고플세라 떡이며 과일이며 집채, 물김치, 겉절이, 샌드위치, 식혜 등....

네가 차린 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니라 <사랑의 결정체>였다.

준비한 사람의 정성과 사랑이 물씬 풍기는 음식을 먹으면서

30년만에 만난 친구들과 회포를 풀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미국에서 온 임 채경은 혜숙이가 쳐 주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다가 그만 울고 말았다.

객지에서 전투를 하듯 치열하게 살던 사람들은 그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지?

우리가 함께 입을 모아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행복하던지....

<로렐라이>, <아침 이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의 노래는

그냥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우리가 공유한 추억이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노래를 통해 쏟아 놓으며 우린

친구라고 부르는 서로의 존재에 감사했고 이렇게 같이 호흡을 맞출 수 있음에 행복했다.



정 인옥은 참 대단한 친구다.

22일 저녁에 한국에 도착해서 보니엠 공연을 보고 23일에 전철을 타고 왔는데도

그 얼굴에 지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미국에 사는 친구들이 보내는 정성이 가득한 봉투까지 대신 들고

땀을 비오듯이 쏟으며 한여름 작열하는 대낮의 태양 아래 양산도 받지 않고 걸으면서도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는 인옥이의 모습은 마치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 같았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친구들에 대한 사랑, 모교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그렇게 피곤한 스케쥴을 당연한 것처럼 담담히 소화할 수 없음을 알기에 더 감동이 컸다.


미국에서 온 김 인자도 대단했지.

금요일까지 인천에 있다가 대전에 내려와서는 다시 토요일 아침 기차를 타고 그 더위에 왔으니...

친구들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더라.


어디 미국에서 온 친구들 뿐이랴.

그 동안 얼굴 보기 힘들었던 친구들을 그 폭염도 아랑곳 않고 모여들 수 있게 한 것은

이미 고향이 되어버린 유년의 기억을 공유한 친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으리라.

어제, 같이 모여서 정신없이 반가워하고 떠들고 노래부르면서

내 삶에 아주 소중한 울타리를 새로 발견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든든했다.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친구의 얼굴을 거울을 보듯이 들여다 보면서

애틋하고 살가운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곧 내 살아온 날들에 대한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나이에 이렇게 동창회에 열광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혼자 넘기에는 너무도 가파른 <중년의 고개> 밑이라서

서로 숨고르기도 같이 하며 손을 잡아 줄 동지를 찾느라 이렇게 더위도 무릅쓰는 모양이다.


아~ 이렇게 손 내밀면 잡아 줄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