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삼상23장
"1: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2: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3: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4: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5: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삼상23장1~14절에서 다윗은 여호와께 여러번 물어 보는데 다 응답받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정욕과 교만과 두 마음을 품은 자의 기도는 듣지 않으십니다.예수께서는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겨달라는 세리의 기도는 들으셨지만 바리새인의 자기 의와 외식과 위선의 기도는 듣지 않으신다 하셨습니다. 다윗은 < 내가 내 마음에 죄를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않으신다(시편66 :18)>고 기록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신하 도엑의 칼로부터 도망 나온 한 사람(아비아달)을 통해 듣게 된 놉 성읍의 참상을 내 탓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책임 소재지가 되려 하지 않습니다. 허나 다윗은 예수의 그림자를 밟고 갑니다. 죄도 없으신 예수께서 모든 질병과 저주와 사망의 근원인 죄를 내 것이라며 친히 당신 몸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수치와 조롱 끝에 죽으사 죄값을 청산하셨음이 그렇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예수께서는 지금도 공동체의 책임 소재를 묻습니다. 이 말은 공동체의 불행이 누구로부터 왔는가? 보다는 누가 이 공동체의 수난을 자기 탓이라 짊어지는가에 더 중점을 두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그런 자야말로 주께서 원하시는 책임 소재지가 되어 수난의 공동체를 놓고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놉 성읍의 참상을 자기 탓으로 여긴 다윗은 죄에 민감하여 죄를 마음에 품고 있지를 못합니다.물론 훗날 살인과 간음죄를 짓고도 뻔뻔했지만 청춘 다윗은 맑은 영성의 소유자입니다. 우리가 예수 죽음을 남의 육체가 아닌 내 육체에 지는 일은 청년기로 끝나는게 아니라 죽는 날까지,날마다입니다.
그럼 왜 주께서는 책임소재를 물으시는 것일까? 그것은 치유하사 회복시키시려 하심입니다. 알다시피 모든 인류는 죄인이기에 죄를 짓습니다. 여기에 예외 없습니다. 죄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본인의 죄 인정은 고사하고 이웃에게 전가시켜 자기 책임을 전가시키려 하니 도무지 공동체나 사회나 나라에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린 솔로몬이 성전 봉헌식때 여호와께 드린 간구에 여호와께서 응답의 말씀을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재앙과 전염병과 기근과 혹은 전쟁의 포로로 사로잡혀갔을지라도 그곳에서 자기 탓이라며 자기로 책임 소재를 삼고 기도하는 백성 한 사람만이라도 있으면 여호와께서 들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책임 소재가 분명한 그 한 사람을 통해 여호와께서는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처럼, 다윗은 사울과 달리 핑계하지 않고 자신을 책임소재지로 삼습니다. 다윗의 자기 죄인 사상은 코끝을 형제를 향해 킁킁거리지 않으니 형제를 염탐,판단,원망하다 빠지게 되는 정죄의 길을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호와께서 어찌 다윗의 묻는 기도를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책임 소재를 선명하게 한 다윗의 기도를 들으사 그일라를 구원하십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보소서 블레셋이 그일라를 쳐서 애써 농사지은 것들을 탈취 당한 소식을 전합니다 보소서! 들으소서! 구원하소서!
다윗은 왜 그 소식을 자기에게 들려주는지 잘 압니다 그렇다하여 자신의 뜻대로 서둘러 직진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 묻습니다. 그것도 두 번. 한 번은 본인을 위하여,한 번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기엔 여러모로 두려워하는 자기와 함께 한 이스라엘 양떼들을 위해서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1."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2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넘넘 신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대적 블레셋을 다윗 손에 붙히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라!
이 복은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과 동일한 복으로 오을날도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유효한 복입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욌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전능자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히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14:19~20
다윗이 자기 삶의 궤적에 놉 땅의 참상을 사울 탓이 아닌 자기 탓으로 올려 놓음으로서 그는 자기 생명을 매일 찾는 사울의 손에 넘겨지지 않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를 여호와께서는 보호해주십니다(14: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교회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주님의 동역자들이기에 원수로부터 지켜주신다는 믿음도 있어야 하지만 그 믿음의 성분이 어떤 것인지 맛보지 않으면 그저 상투적인 지식이고 구호이고 죽은 믿음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6: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7: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8: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9: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10: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11:그일라 사람을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대로 사울이 내려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12: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13: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14: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다윗이 도망자가 되고 보니 날마다 매순간마다 주를 찾게 됩니다.그러라고 여호와께서는 사울 왕을 통해 훈련 연단시키시고 있는 중이십니다. 이는 오직 다윗이 아닌 주만 나타나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런 다윗을 위해 갓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의 말씀을 들려주시더니 이젠 아비아달 손에 우림과 둠밈이 있는 에봇을 들려서 다윗 곁으로 보내주십니다. 장차 사무엘 선지자도 죽고 사울 왕도 죽어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왕으로 등극할 때에도 여호와께서는 이 우림과 둠밈이 있는 에봇을 통해 다윗 왕국을 확립시켜주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본래 다윗이 구한 이스라엘 나라의 그일라와 그 백성들을 구해야 할 자는 사울 왕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나라와 백성보담은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 있는 다윗을 잡는데 총동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구원의 능력에 있습니다. 성령의 나타남에 있습니다. 우림과 둠밈의 나타남은 성령의 나타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사울은 다윗이 그일라에 왔다 하자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고 말합니다.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한지 모릅니다.
우림과 둠밈속에 있는 보석의 빛들은 성령의 나타남입니다.
이는 대적에게 사로잡혀간 영혼들을 되찾아 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성령의 다양한 빛들의 은사 없는 십자가 군대는 뼈가 붙고 힘줄과 살은 있으되 생기가 없는 군대입니다 사울 군대처럼 그저 사율 왕국에 갇혀 다윗(성령의 기름부으심)의 어떠함을 어린 아이처럼 배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왕의 신분과 힘으로 새 순처럼 돋는 청년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허나 다윗은 그일라가 놉성읍처럼 사울에게 황폐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책임소재를 자신에게 두고 여호와께 물으며 그 물음에 응답하시는대로 순종하며 갑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