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병어회
박찬정
열세평 아파트 부엌 문턱에
엊그제 시집 온 새색시가
오도카니 앉아있다
권커니 잣거니
방안의 세 남자는
그녀의 존재를 잊었다
병어 이천원어치 사서
남자가 부엌에 섰다
도마 위에 대가리와 지느러미만 남고
한 접시 소복히 담겼다
부엌일 어설픈 새색시는 뒷전에 서 있다가
상에 수저만 놓았다.
‘제수씨도 한 점 같이 하시죠.’
‘오셔서 같이 드시지요.’
‘저 사람은 생선회 안 좋아해.’
권하는 두 사람의 소리와
가로 막는 한 사람의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나도 병어회 좋아하는데.
나도 소주 맛 아는데.
저녁상에 병어회를 먹으며
삼십칠 년 전 필름을 또 돌렸다
‘그 한 맺힌 얘기 왜 안 나오나 했다’
차마 상머리에 끼어 앉을 수 없던
수줍음 타는 새색시
닳고 닳도록 되감아 보는
젊은날의 궤적
캐나다 인선언니
사천불짜리 관은 주문하셨는지 천불 아래로 물색하고 계신지요.
노인들이 수의를 해 놓으면 오래 산다느니
영정 사진을 찍어 놓으면 오래 산다느니 그러는데
관짝을 사서 떠억커니 모셔놓으면 얼마나 오래 사시겠어요.
어여 웬만한 것으로 사셔서 오며가며 체험(?)도 하시구
때로는 평상처럼 걸터앉기도 하구
골프장에 갔다가 꺾어 온 가을 꽃을 병에 꽂아 놓기도 하구.
니나 그러라구요?
지는 골판지로 된 관에 들어갈 예정이라 걸터앉았다가는 찌브러들어요.
아침부터 심난하게 시답잖은 소리 했습니다.
근데요. 죽음을 농담처럼 하며 삶과 가까이 두는 것이 실제로 가족이나 본인에게
닥쳤을 때 충격이 작다네요. 사람나름이기도 하겠지만요.
ㅎㅎㅎ하긴 집안 어딘가에 관을 들여놓으면,
여행갈 때처럼 필요한거 한가지씩 관안에 가져다 놓을거 같아요.
내가 애장하며 기도하던 십자고상이랑 성모상 등등
하나하나 갖다놓고는 소꼽장난 하듯이 신나게 즐길것 같지않아요?
가만히 누워서 사색도 하고 또 음악도 들으면서
기도하다가 깜빡 푹 ~~한잠자고 재충전하다가...
내 명보다 더 오래살면 어떡하죠?
그러고보니 다가오는 '할로윈 데이'에 걸맞는 스토리가 된 황당엽기 ㅋㅋ
올해 '할로윈 데이'에 문앞에 와서 소리내면 안된다고 하네요.
"Trick or Treat !"하지말고 조용히 캔디나 칩스등을 받아만 가라고 ~
우린 아이들이 문앞에 와서 소리지르면 얼른 가서
준비해놓은 캔디나 칩스등을 나눠주었었는데요.
추워도 문곁에 대기하고 있다가 얼른 아이들한테 줘야될거 같아요.
참! Flu 예방주사는 맞으셨나요들?
환절기에 감기조심 하시구요 ~~
내일 오후부터 또 비가오면 온도가 한자리 숫자가 된다고 하더라구요 이곳은.
슬슬 일기예보에 눈(snow) 표시도 보이더라구요.
그래도 살겠다고 오후에 이탈리안수퍼에서 사온
깨끗하고 깔끔하게 손질된 우족 사온걸로 '우족탕' 끓이고 있어요.
삶과 죽음을 넘나들면서...
우리 시어머니는 아버님 산소 옆에 본인 가묘를 미리 만들어 두셨어요.
관은 석관으로 했고요,
아버님이랑 공유하는 비석에도 아예 어머니 함자를 미리 새겨 놓았어요.
가족 묘역을 정리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하면서 그렇게 하셨어요.
당시 어머니 연세가 70대 중반 정도 였어요.
가족묘는 본가 근처에 있어요.
집에서 나와 큰길을 건너면 바로 나오는 야트막한 동산이에요.
어머니는 89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거의 매일 본인 무덤을 돌보러 다니셨어요.
봉분에 난 잡초를 뽑고, 비석과 상석을 윤이 나게 닦고....
물론 함께 계신 증조, 고조 할아버지 산소도 늘 돌보셨지요.
제가 어머니께 여쭤봤어요.
어머니 이름이 적힌 산소에 오시면 기분이 어떠시냐고요.
"난 마음이 포근하고 좋아야.
아파트 한 채 분양 받아논 것 보다 더 든든혀"
그땐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마음을 알것 같아요.
죽음이 그리 낯설고 무서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참으로 복합적인 것이 사람 마음이네요.
ㅎㅎㅎ말이 사천 달러니 천 달러미만으로...이지
아까워서 어디 사겄어요? 당장 쌀독에 쌀이 줄어서 빈틈이 훤하게 보이는디..
울부부가 그러고 농을 주고받으면서 살고있단 말이지요.ㅋㅋ
요즘 화장하는 세일도 나오는데 이천오백 달러 미만이데요.
세부적으로 뭐는 얼마 뭐는 얼마...해가면서 ~~
조금 싼곳은 이천 달러 미만이고..
암튼 저는 화장을 선호하고 호수에 뿌려도 자연보호에 지장이 있다하니,
나무밑에 묻어달라고 아이들 한테도 미리 말해두었지요.
이곳은 수목장 이란것이 없는것 같더라구요.
이곳은 죽으면 이천오백 달러가
장례비용으로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과부세나 홀아비세로 한달에 몇백 달러 보조금도 나온다고 하네요.
이혼을 해도 그렇다고도...해서
어떤 노인들은 그거 타먹으려고 일부러 이혼해서 따로 사는
위장이혼도 한다고도..그러다가 걸리면 그동안것 다 토해내고 벌금물고 또
다시는 혜택을 못받는다 카더라 ~~하는
삼천리 스토리도 이딱하데요???ㅎㅎㅋㅋ
아파트 한채 분양 받은거 보다 더 든든하다는 춘선이 어머니 말씀 공감이 되네.
이번에 급하게 남편 보내면서 수목장으로 갔는데 두 구 샀어.
나무 밑에 한구 넣고 그 옆에 한 구는 비워있어.
내가 들어갈 자리~
난 이제 죽기만 하면 되는데~ㅎ
평소에 잘하지 못했으니 죽어서라도 그 옆에 있어줘야지 ~
외로움 많이 탔던 남편이 기다릴라나?
죽음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니 많이 도움이 돼.
또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라니까 ~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이라니까~
삶의 집착도 덜해지고 말야.
겨울에 눈이 아닌 비가 종일토록 내린다는 상상만해도
우울증에 걸릴것만 같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10월 들어서 햇볕 쨍쨍한 날은
열손가락 안에 들만큼 밖에 안되고 항상 젖어있네요.
그저 이런날은 부침개 부치면 딱 좋은데 ~~
맛이 잘 숙성된 포기김치가 없네요.
요즘은 만드는 김치마다 똑부러지게 입에 착 맞는 맛이 없으니...
예전에 노인들이 김치가 안 땡기고 맛도 없다고 하시더니만,
하긴 저도 칠순이니 그렇겠지요?
가끔 그걸 잊고 살때가 더 많으니 난 돌도리???
미틈달
박찬정
잎샘바람에
봄꽃 파르르 떨고
마른 나무 물 긷는 소리
새잎 돋는 아우성
아궁 앞 부지깽이도 뛰는 봄날
뒤란 밭 아욱 씨 뿌리는
새며느리 발자국조차 부산하다.
밭고랑에 엎드린 아낙의 어깨위로
오뉴월 긴 볕이 쏟아진다
작달비 아니라도
먼지잼 한 줄기 지나가면 좋으련만
엊저녁 노을은 야속하게 붉고
배롱꽃 지면 더위 한풀 꺾인다는데
진분홍 꽃잎은 쉬 지지도 않더라
길어지는 산 그림자 따라
산 아랫도리 마지막 드는 단풍
마른 잎 발 밑에 바스라지는 소리
마당가의 잔 국화 가리늦게 피었는데
상강은 벌써 지나고
오늘밤 첫 서리 오려는지.
봉인 뜯긴 세 계절은 가고
볕드는 창가에 기대서서
양손에 감싸 쥔 대추차 한잔이 그립다
돋움발로 고개를 빼고
기다리지 않아도
손돌이 바람에
볼 시릴 날 머지 않으리
'손돌이 바람에
볼 시릴 날 머지 않으리'...
어제 거의 열흘만에 원정골프를 갔었지요.
저희가 다니는 배추밭골프장은 연일 내리던 비로 인하여
미나리밭이 되어서 문을 닫고 대신에 다른곳을 공짜로 치게해 주어서...
해서 어젠 10도지만 햇볕쨍쨍이라서 모처럼 털벙거지쓰고 갔지요.
가는 길이 시골이라서
엉덩이 빵빵한 백마랑 갈색, 흑마도 보고
살찐 소떼들이 푸른잡초 뜯는 풍경도 보고 또
이제야 낙엽되며 노랗고 붉으딕딕하게 물드는 단풍도 즐겼지요.
벌판바람이 얼마나 춥던지 손이꽁꽁 발이꽁꽁 되어서
이건 뭘하러 이 벌판에 와서 뭔짓을 하는지 구분도 안되고 ㅎㅎㅎ
뉘기래 시켜서 왔으면 불평불만이 가득하겠지만 ~~
그래도 처음가본 곳에서 정신몽롱 상태로 마치고
19홀의 먹으러 ~~타임이 있으니 그것을 기대하면서..
모처럼, 짜장면이 7 달러한다는 서울집에 갔더니 캄캄???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월요일은 문을 안 연다네요.
그럼 우리단골이 아닌 다른 가까운 월남식당이라도...
ㅎㅎ그곳도 월요일은 영업을 안한다네요.
결국 스위스샬레로 열 명(5부부)이 가서
닭다리고기를 먹고왔다고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여봅니다.
특히 당뇨,갑상선으로 손발이 유난히 시려움을 느끼고
요즘은 잠자리에 양말을 신고서야 따뜻하게 잠에 드니
'미틈달'이 온몸에 와닿으네요.
오늘아침 이곳 온도는 영 도...
와우~ 미틈달 詩 너무 좋아. 가락 가락 표현이 너무 좋다. 신춘문예에 기고해 봐라. 무조건 붙을꺼 같아. 미틈달 좋아한다던 순호는 아프고 원래 인생이 아픈거지만 그냥 맘이 찡해지네. 나도 미틈달 왠지 정이 가. 내 생일도 미틈달이기도 하고~ 내 친구가 영양학과를 나왔는데 음식에 관한 시를 쓴다고 하더만 시집을 하나 냈어. 읽어보니 웃음이 막 나더만 ~ㅎ 그냥 용기를 주려고 잘썼다 인사로 했더만 진짜인줄 알았는지 생일날만 되면 또 내고 또 내고 하더만 4권인가 시집을 냈어. 에구~ 그애가 이 글을 읽을리 없으니 하는 얘기지만 정말 종이가 아까워. 칠순때 또 기념으로 책을 내야겠다길래 내가 안되겠길래 입바른 소리를 했단다. "야 ~ 그정도 냈음 됬어. 다른거로 기념해봐"
다음주에는 날씨가 꽤 쌀쌀해진다고 하지요.
슬슬 가을걷이를 해야겠습니다.
어제 고구마를 두 바케스 캤어요.
밭도 아닌 곳에 느즈막히 고구마순 한 웅큼 얻어 심은 결과물치고는
대견스럽습니다. 우리 동네는 멧돼지가 출몰하기 때문에 고구마를 심는 일은
조심스럽습니다만 그 곳이 멧돼지 접근이 어려운 곳이라 한번 심어봤어요.
맛까지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키위를 따고, 생강을 캐고, 당근도 캐고, 늙은 호박 세 덩이도 따 들여야 합니다.
농사 선수들은 그 정도 일은 단숨에 해치우겠지만
저는 놀이삼아 하루 한가지씩만 할겁니다.
그러고 나면 다다음주부터는 유자를 따야 하겠지요.
유자 다 따고 나면 유자청을 만들어야 하고,
김장도 몇 포기 해야겠지요.
저는 일을 후다닥 시원스럽게 못 하니 하루 조금씩만 합니다.
.
그래~ 나도 그래. 그래야 병 안나~ 누가 뭐래도 쉬엄쉬엄해. 밭에서 캔 고구마가 당도가 없어 맛이 없길래 두가지 해서 사진찍어 카톡에 올렸어. 많음 한번 해보라고~
11월 4일에 날씨좋아서 조금 멀게 근교로 골프치러 갔었지요 두 부부가...
한참 열올리고 즐기는데 전화가 오데요.
얼른 남편에게 건네고 저는 삼매경에 빠졌지요.ㅎㅎ
한참을 전화통 붙잡고 안오고 있더니만,
막내여동생이 알려온 소식이 친정엄마가 넘어지셔서 골반골절로 응급수술에 들어가신다고...
그날은 이미 와도 별볼일 없으니 내일이나 와서 지킴이 해달란다고...
이런 나쁜딸년이 어디 또 있을까요.에고 ~~
해서 금요일 일찍 토론토병원에 가서
이틀밤샘이 하고 막내여동생이 월요일은 일 안한다고해서
오늘, 일요일에 옷도 갈아입을겸해서 왔지요.
ㅎㅎㅎ참새가 잠시라도 방앗간 안들리면 어디 병나나???
혼자 아파트에 사시던것도 이젠 그럴수가 없을것 같네요.
가기 싫어하시는 요양원엔 어쩔수없이 가셔얄것 같아요.
그전에 재활병원에 가셔서 물리치료부터 받으시고 ~~
어쩌면 '위기가 곧 기회'로
더욱 건강해지실 수있지는 않으실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아파트에 가서 여동생과 대충 엊저녁에 냉장고랑 청소하고와서
마음이 조금은 개운하네요.
모두들 환절기에 건강챙기시구요 ~~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너무 폭 ~~익지는 마시구요 ㅎㅎㅎ
제가 쓰는 거제시 뉴딜신문 <주민 생애사>에 소개된 내용인데 본인의 허락을 받고 봄날에
게재합니다.
나는 그래도 운 좋은 사람입니다. 김종원 이야기
#추석이 지났다. 코로나는 여전한데 내내 묶어놓을 수도, 마냥 풀어놓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명절 연휴의 거리두기는 다시 제 궤도로 돌아갔다. 가을 날씨치고 더위가 남아있다. 약속한 카페에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먼저 와 계시네요.” “시간 자유로운 내가 먼저 와야지요 집도 가깝고.”
#그는 1949년 갯장어 잡이로 이름 난 경남 고성군 하일면에서 7남매의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열두 살부터 학교 갔다 오면 어부였던 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주낙으로 갯장어 잡는 것을 배웠다. 5월부터 추석 무렵까지 그곳에서 나는 갯장어는 맛이 좋아 일본에 수출되었다. 어부가 잡은 갯장어를 중간 상인들이 사서 바다에 띄어놓은 가두리에 모았다가 일본에서 배가 오면 전량 실어갔다. 중간상인만 큰 이득을 볼 뿐 어부에게 돌아오는 고깃값는 생계를 잇기에도 빠듯했다. 16살 나던 해 주물공장이 모여 있는 부산 대평동의 무쇠솥 공장에 취직했다. 쇳물을 다뤄야 하는 일이 왜소한 체구의 소년 종원에게는 힘들고 위험했지만 장남으로써 아버지의 짐을 나눠져야 했다.
#1971년 군 입대했다가 월남전에 파병되었다. 월남 파병은 희망자를 우선적으로 선발하고 인원이 채워지지 않으면 부대별로 할당하여 차출되는데 그도 차출된 병사 중 한 사람이었다. 스물한 살 된 장남을 남의 땅 전쟁터에 보내놓은 어머니는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바라며 치성을 드렸다. 원칙적으로 1년이면 본국으로 귀대하는데 부대의 사병이 충원되지 않아 예기치 않게 6개월을 연장 복무했다. 사병수당(미군에서 지불하는 수당은 월350불)중 일부분인 54불은 매달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되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목숨이지만 매달 모이는 54불에 미래을 꿈꾸었다. 읍내에 가게 딸린 집 한 채를 꿈꾸기도 하고, 다 하지 못 한 공부밑천으로 삼으려는 꿈을 꾸기도 했다.
#월남전의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지만 큰 부상 없이 귀국하여 제대하였다. 매달 송금된 54불이 그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지만 어려운 집안사정을 잘 아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십년동안 부산에서 판매사원을 했다. 나이 들어가며 들쑥날쑥한 수입으로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중졸의 학력으로 취직이 쉽지 않았다. 주물공장에서 일 한 경험으로 쇠를 만지는 조선소 일이라면 적응하기 쉬울 것 같았다. 거제도로 건너와 1982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했다. 거제도내에는 살림할 집을 구할 수 없어서 통영에 살림집을 얻었더니 새벽 네시에 일어나야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할 수 있었다. 통근 거리가 멀어 고생은 되었지만 통영에 살면서 그의 인생에 큰 길을 닦는 계기가 있었다.
#되뇌이고 싶지 않은 월남참전 이야기지만 생애에 가장 큰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병사도 많고 치명적 부상을 입은 사람도 많은데 천운으로 그는 목숨 보존하고 돌아왔다. 겉으로 드러난 큰 부상은 없었다. 그러나 그를 오랫동안 괴롭힌 전쟁의 상흔은 외상의 흔적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총탄을 맞고 죽어간 전우, 적군이란 이유로 총을 겨눠 목숨을 빼앗았던 1년 반의 기억이 전쟁 후유증으로 남아 그를 괴롭혔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선잠에 들었다가 악몽을 꾸고 깨면 다시 잠들지 못 했다. 술을 마셨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해야 하니 다시 누울 수 없다. 앉은 채 눈을 붙였다가 하루를 시작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이러다가는 정신병에 걸리거나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신적으로 몰두할 일을 찾았다. 그가 살고 있던 통영에 ‘연 할아버지’로 불리던 해송 이상천 선생을 찾아가 연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손재주를 눈 여겨 본 해송 선생이 제자로 삼아 연의 모든 것을 전수하고자 했으나 연 전수를 다 마치지 못하고 스승이 지병으로 작고했다. 스승은 그에게 연에 대한 기술과 많은 자료들을 넘겨주고 떠났다. 다 배우지 못한 것은 여러 문헌을 찾아보며 독학으로 배웠다. 연을 배우며 필수로 익혀야 할 것이 글씨와 그림이다. 연을 연구하고 만들고 글씨와 그림을 연습하느라 회사 다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연에 매달렸다. 연에 몰두하는 사이 서서히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났다.
#삼십대에 인연 맺은 연은 그와 평생 함께 하고 있으며 한국 전통 연 기능 보유자로 등록되었다. 국내 연뿐 아니라 세계의 연에도 관심을 갖고 수집하여 연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날리기 대회에 초대받아 참가하는 연의 권위자가 되었다. 그의 꿈은 공방을 겸한 연 박물관을 마련하여 전시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현수막 연을 제작해 달라는 지역 축제가 여러 군데 있어서 재능기부 삼아 참여해 왔는데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행사가 무산되어 주춤거리고 있다.
#그의 생애 또 하나의 큰 획이라면 문학이다. 소년시절부터 문학에 꿈이 있고 소질도 보였지만 뒷받침해줄 가정 형편이 되지 못했다. 틈틈이 독서를 하고 시상이 떠오르면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손바닥만한 수첩에 적어두며 문학에 다가갔다. 대우조선해양에 근무하던 1980년대 말, 대기업들이 기업문화에 힘을 쓰며 회사 내 여러 취미서클을 지원했다. 그의 나이 삼십대 후반에 젊은 사원들 동아리인 문학 서클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사보나 노보에 글을 올려 호평 받곤 했다. 늦은 나이지만 못 다한 공부도 했다. 그는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꾸준히 한다. 2004년 시인으로 등단하고 벌써 세 번째 시집을 낸 현역 시인이다.
#그는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월남전에서 위험한 고비가 많았는데 살아 돌아 온 것도 천운이고, 위험한 작업이 많은 조선소에서 아무런 사고 없이 은퇴한 것도 운이 좋은 것이다. 그는 지금이 생애 가장 화창한 봄날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재에 밝은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노후에 생활비 보탬이 될까 해서 마련했던 상가 건물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임대료와 연금 등으로 부부의 생계 걱정이 없으니 경제적으로 자유롭고, 은퇴하니 시간에서 자유롭고, 칠순 넘은 나이에 이만큼 건강하니 더 이상 좋은 시절이 없다는 것이다. 아들은 결혼하여 부산에서 제 식구 거느리고 착실하게 살고 있으니 자식 걱정도 안한다. 그가 꾸는 꿈이 이루어지기만 바랄 뿐이다. 연 박물관에서 우리 전통 연과 세계의 연을 구경하고 공방에서 각자 만든 연을 하늘 높이 띄우는 모습을 상상을 하며 헤어졌다. 한낮에는 여름 더위 못지 않더니 해가 기울자 반소매 옷이 춥다.
김종원씨의 꿈이 꼭 이루워졌으면 좋겠네.
그렇게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으니 연에 대한 꿈도 꼭 이루실것 같구먼.
힘들게 살면서도 시인으로 등단까지 하시고 정신까지 멋있는 분이시다.
주민 생애사를 쓰는 찬정이는 보람도 있고 인생 간접 경험도 하고 일거 양득이네.
인선이도 엄마 때문에 고생이 많았구먼.
그래도 최선을 다 해야지 한이 안남아.
기운내.
가을걷이 일기
지난주에 고구마 두 바케스 캤고,
키위가 올해 션찮지만 다 따서 포도 상자에 한줄로 깔아 후숙중
생강은 얼마나 캘지 상당히 궁금한데 좀더 있다가 캐야 한다고 하니 냅두고,
당근포기 세어보니 마흔 두개. 요즘 하나씩 캐 먹는데 맛이 아주 좋아요.
당근은 우리밭에만 있어서 이웃 두집에 몇개씩 나눠줘야 하지요.
우리 안 심은 것은 받았기 땜에 나도 갚아요..
돼지 감자는 캐도 그만 안캐도 그만인데
올해는 캐어, 씻어, 썰어, 말리는 중입니다.
12월초순에는 배추를 열 포기쯤 뽑아 김장을 하고 ,
나머지는 겨우내 밭에 서 있습니다. 왠만하면 그냥 놔두는데 밤기온이
영하 4, 5도 내려간다고 하면 부직포 이불을 덮어둡니다.
배추는 그렇게 추위를 견디면서 속 고갱이에 단맛이 들지요.
나의 이맘때의 주된 일거리인 유자가 익어갑니다. 유자 나무가 열다섯 그루 밖에 안되지만
한꺼번에 따지 않기 때문에 이주일정도는 유자에 매달립니다. 유자청도 담고.
이웃 유자 농장 주인을 아침에 만났는데 올해는 일주일 정도 늦게 따야겠다네요.
저는 밭작물이든 유자든 파종이나 수확시기를 잘 몰라서 이웃에서 하면 따라 하거든요.
게다가 동인지 발간은 해마다 요맘때 걸려 몇차례 불려나가 편집이니 교정이니 품을 팔아야 합니다.
겨울이 오나부다 했더니 다시 가을입니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습니다.
단풍잎이 떨어져 계단에 소복합니다.
바스락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아직 가을입니다.
올해는 큰맘먹고 무를 한 박스 사놓았는데
갑자기 엄마의 예기치못한 고관절골절 수술로 인하여,
엄마곁을 지키느라 비닐백에 넣어서 방치상태로...
엊저녁에 돌아온 뚯밖의 주말부부건만,
모처럼 돌아와선 공연히 분주하네요.ㅎㅎ
오늘저녁에도 번계팅(6명) 으로 나갈 일이 생겼지요.
부인이 있어도 따뜻한 밥상은 커녕 다시또 찬밥으로 때우자니
남편의 심성이 비틀어져 있네요.ㅎㅎ
저녁만 먹고 커피타임엔 얼른 집으로 돌아와서
이제껏 깍두기 담그느라 바빳네요.
삐친 남편은 초저녁잠을 자러 어느사이에 돌아보니 없네요.
깍두기의 간을 보게 하렸더니...에고 ~~~
젖은 가을여서 그런지 나무에 단풍이 제대로 들지도 못하면서
붉으딩딩 노르딩딩 색도 어줍잖게 들면서 낙엽이 우수수 ~~
게다가 가을비까지 뿌려가면서..
어느곳은 눈도 꽤 오고, 우리동네는 우박같은 것이 와그르르 ~~
올 가을은 코로나 속에서 참말로
아름답지못한 가을인것만 같습니다.
쓸데없는 낙엽만 수북하니 쌓이고 ~ ~
이렇게 가을이 지나가고 있네요.
겨울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남자들이 원래 여자들보다 속이 좁아 잘 삐지잖아. 그냥 놔둠 제풀에 풀어져. 어릴때 이야기 ~ 우린 형제가 많아(7 형제) 삐져서 밥을 안먹어도 엄마는 밥먹으라는 소리를 안하셨다. 쌀 남아 좋으니 맘대로 하라 하셨거든~ㅎ 한번은 삐져있던 세째 여동생이 상을 싹 치워버려도 먹으란 소릴 안하니까 배가 고파서 안되겠는지 "엄마, 나 그냥 밥 먹음 안돼?"
방에 불이 꺼져서 캄캄하기에 지나던 발길 잠시 멈춰 섰소. 삐져도 아는 척 안하시던 엄마는 내공 900단. 요즘 엄마들과는 비교가 불가할 겁니다.
엄마의 식욕을 돋구게 한다고
막내여동생이 4 인용의 정형외과 병동에
맛나게 끓인 곰탕과 석박지처럼 만든 깍뚜기를 과감하게 들고가서 드시게...
특히 김치보다 냄새가 지독한 깍뚜기를 ~~ㅎㅎ
모처럼 잡수시고 원기를 다소 회복하신(?)엄마가
잡수시면서도 밥을 어떻게 했느니,깍두기가 너무 시다느니 투정을 하신다고
막내가 잘 잡수시는 엄마가 좋으면서도
칭찬을 아끼는 엄마에게 섭섭함을 보내왔지요.
"엄마! 며늘한텐 뭐라 잔소리도 못하시면서 그 예쁘고 착한 딸한텐
밥이 어쩌니 깍뚜기가 저쩌니 하시고 싶으셔?
이왕이면 고맙다 맛나다 ~~헌데 거기에 뭘 어떻게 하면 더 좋았을걸... 하시지"
엄마와 함께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지요.
어제서야 꼭 2 주일만에 재활병원으로 이송되어서
오늘은 집엘 돌아왔지요. 그곳은 길어야 3 시간만 면회허용이 되어서 딱히
병원에서 엄마를 위해 할일이 별로 없게 보살피고 있으니...
그래도 내 볼일을 마치고 일주일 후엔 다시 가봐야해요.
엄마가 고관절수술을 받은 곳은 '시나이산 (Mt. Sinai) 병원,
재활병원은 구세군(Salvation Army) 소속의 Grace 병원으로
왠지 하느님이 엄마와 함께 하시고 보살피는 손길을 느낄 수가 있었지요.
빠르면 3 주에서 두세 달의 회복이 필요하지만
이젠 엄마 혼자서는 사시게 외면할 수는 없을것만 같아요.
내가 죽을때가 되면 가겠다고 하시던 요양원을 가시겠노라고 하는 엄마가
안쓰럽기도 하고 어찌해야하나 걱정도 되고...
형제들이 많아도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나' 이다보니
모든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느낌도 들고 ~~
소셜워커와 의논하다가 엄마의 행선지의 종점은
어쩌면 '우리집'으로 귀결이 될것도 같더라구요.
아들이 버젓이 있는데 왜 우리가? 하는
남편때문에 곤란할수도 잇을것 같다하니
소셜워커도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일단은 엄마상태를 봐가면서 ~~
"너는 나를 죽일놈으로 만드냐?"
토론토로 픽업하러와서 집으로 가는 길에 내뱉는...
그때까지 살지는 모르지만(결코 오래 살고싶지 않은),
나의 20년 후에 모습이 안되길 바랄 뿐이다.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멀지 않은 날 나의 모습을 떠 올려요
정신 온전히 가지고 예쁜 모습으로 가기를 바라면서요
개교60주년 기념 전시회에 가느라
동인천 역에 내렸어요 어디로 가야하지 했어요
기차에서 내려 역 광장에 오면 학교가 딱 보였잖아요
대한서림 골목이 보이더군요
그리로 가면 확실히 갈 수 있죠
인천여고 담 옆으로 가는게 지름길인 거 같아서
그 길로 갔어요
교복 입고 다니던 때가 약 50년 전이더라구요
약간 뭉클했고 부모님이 떠올랐어요
교정에 60주년 기념으로 둘레길이 생겼어요
낙옆색이 저리 예뻤었나? 사계절이 선명하게 있다는 것도 감사하네. 우리 엄마는 78세에 아버지는 76세에 가버리셨어. 너무 아쉽고 그립고~ 근데 시아버님은 97세 까지 모셨구~ 요즘은 거의 90은 넘기시던데 내맘대로도 못하고 갈때 자식들 힘들게 하고 갈까봐 것두 걱정이여~ 가시고 나면 못한것만 생각나니 힘들어도 인선이가 기운내기를 ~ 엄마 때문에 애 많이 쓰겠네.
현숙아
나는 동인천역에 내리면 한참 동서남북을 헤아려 본 후에 발걸음을 떼어야 할거야.
30년 만인 2007년 우리 홈커밍데이 한 다음날 우루루 몰려 갔었는데
그리고 또 15년이 흘렀네.
45년전 그 길이 내 머릿속으로는 훤한데 엄청 달라졌다고 하니
한참 어리버리하겠지.
인선 언니
형제분들이 언니 눈치만 보고 있겠어요. 차마 말은 못 하고.
제가 거제도에서 알게 된 분이 있는데 74세예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혼자 사시던 친정 아버지(올해 101세)
아버지 자신이 어느 자식한테든 의탁하려 하지도 않았고
형제들이 혼자 계시는 아버지 걱정은 하면서도 모시고 살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대요.
눈치만 보는 거 겠지요. 맏딸도 아니고 남동생들이 있지만
결국 마음 약한 그가 아버지를 모시고 있어요.
아버지생신에 갔다가 그날 밤 아버지 주무시는 사이
옷가지 챙기고 아버지 소지품 챙겨 차에 실어놨다가 다음날 아침 잡숫고
'우리집에 며칠 갔다 옵시다. ' 하며 모시고 온지 2년 되었대요.
백세가 넘었어도 정신이 총명하고 아침이면 아파트 앞까지 나가 차 기다렸다가
주간보호센타에서 모시러 오는 차타고 가서 하루종일 지내다 저녁에 아파트앞에 내려주면
혼자 집에 오시니 크게 힘드는 건 없는데 정신적인 부담감은 크대요
남편은 내키지는 않지만 그냥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상태.
아버지 앞으로 보훈처에서 나오는 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이 있어서
아버지가 오시던 다음달에 생활비에 보태라며
통장을 주셨는데 안쓰고 차곡차곡 모아놓는다네요.
자기도 일흔이 넘어 언제 어디가 어떨지 모르는데 아버지 모실 형편 안되면
그 돈으로 아버지 요양병원비 쓰려고 한대요.
저녁 잘 잡숫고 자던 잠에 돌아가셨으면 하다가도
막상 그렇게 되면 어쩌나 겁도 나고 그런다네요.
쌓인 낙엽들이 꼭 엄마아파트 옆에 있는
'신발박물관'의 입구에 전시해놓은 각색의 신발모양들 같으네요.
몇십 년을 지나치기만 햇지 그안에는 아직까지 한번도...ㅎㅎ
찬정님의 글을 읽으면서 눈청소를 하게 해줘서 정말로 고맙네요.
힘도 나고 용기도 생기네요.
화림선배님을 통하여 힘내서 마음을 가다듬으며 엄마와 함께하기도 하구요.
봄날의 모든님들 복많이 받으실거예요 ~~
오늘 모처럼 성당엘 갔는데, ㅎㅎ미사시간도 착각을 해서
부지런히 나서서는 빨간불에 잠시 멈춰서면서 시간이 생각나는 거예요.ㅎㅎ
덕분에 일찍가서 성체조배도 하고 고백성사도 보고...
하느님께서 엄마랑 저와 함께 하심을 느끼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답니다.
행한 만큼 값아주시는 주님~
만일 인선이가 엄마를 모시게 되면 더 많은 복을 받게 되는건 분명하지.
하지만 모든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이라고 생각해.
어제 친구가 전화 왔어
명동 성당에서 바자회를 하는데
대학에서 염색을 가르쳤었고 염색을 한 머플러가 많아서 바자회에 내놓고
수익금은 자선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네.
좋은 일 한번 해보려고 벌린 일인데 김장도 해야하지 할일도 많은데
슬슬 걱정이 되며 아플까봐 겁도 나고 괜히 벌렸나~
후회도 약간 되고~
이번에 마무리 잘하고 또 하진 말라했어.
내가 감당이 안되면 영광이 주님께 돌아가는것이 아니라 투덜거리다 안하느니만 못하게 되니까~
너무 힘에 부치면 기쁘지 않고 투덜거리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어렵다는 말씀에 완전 동의해요. 화림 언니 ~
불 꺼진 방이 을씨년스러워 보여서
무작정 들어와서 점만 찍고 나갑니다.
지금은 너무 졸려서 아무 생각도 안 나요.
피곤을 풀고 다시 들어올게요.
너무 피곤하지 않게 쉬며 쉬며 해. 글 쓰는 작업이 정신적 노동이더라구~ 옛날에 극작 한편 써 놓고 기진 맥진. 다시는 작정하고 쓰는건 안하기로 했잖아. 작가들은 참 위대해.
유자따서 보내는 일도 얼추 끝났고
오늘 오는 비가 그치고 나면 최저기온이 0도까지 내려간다기에
어제 생강을 수확했습니다.
두평쯤 되는 밭에 생강종자 만원어치 심었는데
생강을 20KG넘게 수확했어요. 그런데 시중의 생강이 다른 작물에 비해 비싼 이유가 있네요.
언듯 생각하면 수익성있는 작물 같지만 생계농이라면 생각해 볼 계산이 있습니다.
4월말이나 5월초에 심어 이맘때 캐니까 생육기간이 길지요
생강밭은 일년동안 생강 한번 심어서 수확하면 그 다음엔 시기적으로 파종할 것이 없으니
농지 이용의 경제성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깁니다.
암튼 예상외의 수확 흡족합니다. 자랑질.
암튼 몸이 다 따라줄때의 이야기이지 난 무릎 허리 안좋으니 옆집 동생이 하는데로 보는거야. 미안해서 밭을 그냥 남주겠다니까 지가 할꺼니까 신경쓰지 말라해서 심는데로 주는데로 보는거지. 그래도 고맙지. 덕분에 밭에서 나는걸로 김장도 끝냈고 ~ 생강은 1키로에 만오천인가 재료비 준거 같은데 깔때 귀찮긴 해도 심어놓아도 보기 좋고 (잎사귀가 대나무 잎처럼 예쁘잖아) 생강차도 마시니 겨우내 기분이 좋아. 어느새 12월이네. 무심한 세월~ 잘도 흘러간다.
그러면 그렇지
박찬정
산삐알 다랭이논을 다져
살림집 한 칸 지었다
마당 그득하게 비추는
서늘한 달빛과
푸릇한 별빛
여름 부르는 뻐꾸기 소리
겨울 산 부엉이 우는 소리
뒷동산 알밤 떨구는 소리
축담 아래 거저로 나는 쑥이며 냉이
내 평생 횡재라곤 모르는데
이게 웬 팔자에 없는 덤인가
이듬해 밭 갈아
이웃들이 안 심는 옥수수 씨 뿌렸다
두둑 쳐서 고구마도 심었다.
옥수수가 여물 즈음
멧돼지가 방문했다.
고구마가 순을 뻗자
고라니가 무시로 드나든다
고구마 얼굴 구경조차 못 한채
밭떼기로 멧돼지에게 바쳤다.
어이없는 웃음만이 내 몫의 수확
그러면 그렇지
내 팔자에 웬 횡재인가 했네
잘 지낸다고 하기도 뭣하고 또 못지낸다고도 못하겠구요.
재활병원에서 며칠 잘 보내고 계신듯 하시더니만,
다시 급성으로 나빠진 콩팥땀시 도루묵으로
응급으로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으로 옮겨지셨다가 내과병동으로 재입원 하셨지요.
정신도 왔다갔다 하시고, 급격히 신장이 안좋으시다고
재활병원에서 다시 응급으로 오신 후론 더욱 옆에서 간호가 필요하시다구요.
하나뿐인 아들네 두 손녀들과 막내딸의 손녀도 합세하여
주말엔 밤번을 자청해서 하면서 할머니곁을 지켜드리니 얼마나 예쁘던지요.
헌데 세 손녀들이 모두들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이들이네요.
'세상엔 공짜가 없다' 준만큼 되돌려 받는다는 말이 진리로...
오직 저만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밤번이던 낮번이던 필요한 시간엔
대책없이 이리저리로 돌려가면서 들쑥날쑥하면서 ㅎㅎㅎ
엄마랑 긴긴밤 옛적 일들로 얘기를 나누다보면,
레코드판에 금이가서 되돌이되어 같은 노래가 돌아가듯
스토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노인네가 혼자서 긴세월을 '나는 괜찮다'고 하시더니만
손녀들에 아들딸들의 불침번을 즐기시는듯한 느낌이 듦은???
"엄마 ~빨리 회복하셔서 아파트로 가셔야지요 ~"
"빨리 나아서 도로가면 뭐하냐? 다시 혼자서 밥해먹고 살아야 되는데..."
엥? 이 무슨말씀을 ~ ~ 그럼 일부러 치매이신척?
오히려 내자신이 머릿속이 엉키는 기분이 드네요.
어제 잊고 놓고간 나의 복용약 때문에 저녁에 Go Train 을 타고 집에 왔지요.
엄마덕분에 몇십 년을 살아도 타보지 못한
토론토에서 해밀턴행 기차도 타보았네요.
내일부터 며칠간은 엄마아파트에서 출퇴근하면서 엄마랑
레코드판 돌리고돌리고 하면서 놀다가 올거예요.
왠만큼 정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재활병원으로 가실지
아니면 어디로 가셔야할지는 미지수이지만 ~
자식들이 전과는 달리 이젠 엄마한테 신경을 쓰면서 살것만은 분명해진것 같아요.
그만큼 엄마가 연로해지신것 맞겠지요?
내가 90 살이라구?
아이구 언제 그렇게나 오래 살았냐!?!?
그래도 10년은 더 살다가 갈란다 ~~~
어머나!
인선 언니네 친정어머니는 사는 게 재미있으신가봐요.
우리 시어머니는 정신이 총명하실 땐 늘
'빨리 갈 데로 가야 하는데' 그러셨지요. 그래서 제가 짐짓
'어머니 가실 데가 어딘데요?' 그려면
'내가 갈 데가 한 곳 뿐이 더 있냐.' 하시면서도 6년 더 사셨어요.
늦가을 김장무우가 많이 나는 이맘때면 생각나는 일이 한가지 있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3년쯤 되던 해 늦가을, 어머니가 서울 아들네(우리집) 오셨어요.
어머니가 뭐가 먹고싶느니, 뭐 좀 하라느니 그러는 분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더욱 어려웠던 어머니가 ' 얘 ! 우리 무우시루떡 좀 해 먹자.' 그러시는데
썩 달갑지는 않았어요.
나는 무우시루떡을 먹어 본 기억도 없고 어쩐지 맛 있을 것 같지도 않았지요.
그래도 모처럼 아들네 오신 어머니가 잡수셨으면 하는 거니까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불린 쌀과 무우를 적당히 채 썰어 방앗간에 가져갔어요.
무우시루떡을 해 달라고 하자 떡방앗간 쥔여자가 대뜸 하는 말
'할머니가 촌할머니인가부네.' 그러더라구요. 무우시루떡 좀 해달랬다고
부산에서 40년을 넘게 사신 우리 어머니를 깡촌 할매로 생각하는 게 기분이 좋진 않았지요.
암튼 떡을 해다가 어머니가 잘 잡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입맛에는 별로라 조금 맛만 보았지요.
그런데 지난해 테레비 요리프로를 보니 무우시루떡을 하고
같이 출연한 게스트들이 맛있다고 먹더라구요. 건강한 먹거리라나요.
여태 멀쩡하게(이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사셨으면 이맘때 무우시루떡은 또 해드릴 수 있는데
가을무우가 많이 나는 이맘때면 무우시루떡 해먹자던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인선언니 어머님께서 지금을 즐기시는 듯해서 다행이네요 바쁘셔도 맛난 거 골고루 잘 드셔요 떡을 많이 좋아하진 않지만 어릴 때 먹던 무시루떡 생각나요 가끔 시장에 팔긴 하는데 가늘게 채썬 무가 아주 조금 들어 있어요 제대로 칼로 도마에 채 썰어서 집에서 작은 거 두 쪽 나오게 쪄 볼까 한 적도 있어요
그러면 그렇지 詩가 넘 재미있네. 서늘한 달빛과 푸릇한 별빛~ 이 표현도 좋았고, 인선이는 힘들겠지만 나중에 한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엄마한테 최선을 다하는게 좋을꺼야~ㅎ 내가 항상 돌아가신뒤에 후회를 했거든. 아버님도 그랬고 친정엄마도 그랬고 남편도 그랬네. 내가 친구에게 있을때 잘해~ 했더니 친구가 "시끄럽다, 있을때 잘하게 되냐? 너도 지금 살아계심 또 똑같이 할껄?" 해서 얜 어쩜 이리 똑똑할까? 했어~ㅎ
금요일 저녁에 집에 내려와서는,
내내 저녁만 먹고나면 잠에 취해서 비몽사몽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오늘은 피검사로 5 대롱이나 뽑았다고 왠지 몸이 더 피곤한가 ~
낮잠도 늘어지게 자고 또 저녁먹고 자고...
이거 살찌는 지름길 아닌가요?
알지도 못했던 만성신장염이 급성이 되어서 고생하시다,
다시 재활병원으로 이송되셔서 오시자마자 재활을 시키시네요.
제법 혼자 간이워커에 의지해서 화장실도 가시고...
이젠 제가 좀 여유로워져서 일주일에 이틀만 봉사하면 되어요.
오늘은 막내여동생이 심심한 콩나물김치국을 끓여갔더니
아주 달게 다 ~~드셨다고 소식을 주니 기쁘네요.
아마 그소식을 듣고는 마음이 놓여서 잠이 마구 쏟아지나 봅니다.
엄마가 뭘 해다드려도 맛없다고 이걸 음식이라고 했냐
그렇게 맛도 낼줄 모르고 할줄을 모르냐..탓을 하시면서
씹다가 뱉어내고 한두숫갈 뜨시다가 내려놓고 얼마나 속상했던지요.
"한고개 넘어가면 다 똥되는구먼 ~
남들은 이것도 못먹고 사는 사람들이 수태구먼 ~ ~"하시면서
맛없다고 안먹고 반찬투정하는 우리들한테 하시던 말씀을
내가 엄마한테 되돌려 드릴줄을 누가 알았겠나요? ㅎㅎㅎ
엄마가 "에이구 ~~'입성수 귀성수' 라고..."
인선이가 고생이 많구먼. 양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나니 가끔 뼈저리게 보고 싶을때도 있어. 근데 뭔 일이던 70안에 치뤄야지 막상 나이를 먹고 보니 일 치르는것이 너무 힘들어. 쉴수 있을때 충분히 쉬어.
오늘 오후 한 시에
코로나예방접종 3 차를 맞으러 갈거예요.
어제 많이 내린 눈이 아직도 추워서
그대로 쌓여있어요. 헌데 토요일엔 영상 14 도가 된다고 하네요.
해서 차에 잔뜩 쌓인 눈을 치우지않고 그대로 방치하고 있어요.
예방접종 하러 간다면서 눈을 안치우면 어쩌냐구요?
ㅎㅎ다른 차 한대가 차고에 있으니까 걱정없어요.
주사맞고 오는 길에 따끈한 월남국수 한그릇 먹고오려구요.
별걸 다 ~ 말하고 있는 제가 웃기지도 않겠지만요.
봄날방에 불이 꺼져서 호롱불 밝힐려구요 ~ ~
인선언니 접종 잘 하고 오셔요
요기 날씨는 춥진 않고 흐리꾸무리에
보이진 않지만 땅은 젖고 얼굴에 찬 게 닿기는 하는
복잡한(?)비가 와요
요런 날씨에 따뜻한 국물에 숙주와 국수 아삭 먹으며
후후 국물 마시면 딱이죠
3차 접종을 예약했다가도 취소하고 잔여량으로 예약없이 바로 맞기도 한다니까
15일 지나서 가까운 병원 전화해 보려고 합니다.
15일에 꼭 참석할 일이 있는데 접종 부작용으로 앓아 누우면 안되니까요.
유자도 끝냈고, 김장도 마쳤고, 큰 일은 얼추 마친 것 같습니다.
뒷산도 한해 할 일을 마친 것처럼 낙엽 진 잡목 성근 가지 사이로 찬 바람이 드나듭니다.
오늘은 눈이 올 것처럼 꾸무레했는데 비가 살짝 내리고 말데요 .
거제도는 눈이 안 오는 동네라 어쩌다 눈이 오면 교통은 마비. 난리가 납니다.
조선소 근로자들 오토바이나 자전거 출퇴근 많이 하는데 발 묶이고,
자동차도 눈길 운전이 서툴고 고갯길이 많아 다들 걸어서 다녀요.
기온이 높아 적설이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거제도에 온 후로 눈을 두 세번 보았나 모르겠네요.
목공 수업이 일욜로 바뀌었는데 코로나 확진자가 이렇게 늘어났으니 언제 또 문닫을지 조마조마하네. 늘 조심조심 ~언제 맘편히 활보하며 마스크 안쓰고 다니려나~ 꼬마들 마스크 쓴거보면 가엾어 죽겠어요.
오미크론 변종바이러스는 마스크를 안쓰면 정말로 큰일 나겠어요.
요즘 마스크를 쓰기 망정이지...
마스크 벗으면 입주위가 예전보다 더 쪼글어들어서
얼마나 늙어보이고 흉하던지요.ㅎㅎㅎ
그리고 요즘처럼 추운 날씨엔
마스크를 쓰니까 한결 덜 춥구요.
예전엔 춥다고 마스크를 쓰고나서면 다들
뭔 큰병에나 걸렸나 ~~하고 가는 사람 슬쩍 뒤돌아 보던것이
이젠 마스크 안쓴사람을 보면 오히려 걱정이 되데요.
그나저나 한국이고 어디고 전세계가
확진자가 늘고 있어서 걱정되네요.
부스터 3차접종은 맞은 팔이 얼마나 아프던지요.
손과 발에 열도 나고해서 타이레놀을 두차례나 한알씩 복용했었지요.
오늘 이곳은 영상 16도 봄날을 느끼게 했지만
강풍으로 저녁엔 온도가 뚝 떨어졌어요.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구요 ~
벌써 12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었네요.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가고 있는지 차 ~~ㅁ!!!
오늘 골프치기로 약속이 있었는데,
어젯밤부터 내리는 비가 쉬지도않고 계속...
그래도 비라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눈였다면 얼마나 많이 쌓였을지도 모릅니다.
어제 아침엔 벌써 첫서리가 하얗게 내렸었지요.
아~~고 ~ 좋은 세월이 다 지나고있고 10월도 어느사이에
"시월에 마지막 밤을 ~ ~"하면서 고해야할 듯도 싶네요.
시월의 마지막날은 '할로윈 데이'로 아마도
올해는 조금 시끌법석하게 아이들이 올것 같네요.
오늘부터 식당이나 Gym에 인원제한이 해제되어서,
예방접종 Q.R. code 와 증명사진만 있으면 마음대로...
헌데 비가 하루종일 내리고 있으니 나가기도 좀 거시기 하네요.ㅎㅎ
뒷곁에서 캐낸 도라지와 오이무침을 매콤(매운맛고추장 짱!)달콤새콤하게
그럴싸하게 무쳐놓으니(?) 따끈한 정종 한잔에 한접시 도라지무침을 먹고는
남편은 낮잠 잔다고 이층으로...
전, 이렇게 봄날에 놀러온 황당엽기녀 ㅎㅎㅎ
어제 밥을 한솥 해놓고 그대로 남아있으니
저녁엔 비빔밥이나 해먹을까봐요.
고 ~~저 먹고 자고 싸고...
갓난아기처럼 생활의 달인???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