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에 △△시니어 케어센터에 다녀왔다.
8층 복도에 도착하니 너무도 조용하여 잘못 왔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초인종을 눌렀다. 다행히 나 외에 다른 참석자가 한 분 와 계셨다.
학부모 수업 참관일에 자기 엄마를 보고 힘을 내 열심히 수업하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오늘 엄마 혼자 쓸쓸해 하실까봐 참석하였다.
12월 생신잔치를 겸한 수업참관일이다.
센터 선생님들의 노래와 율동, 속담 맞추기, 퀴즈놀이 등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춘 활동들이었다.
엄마는 나를 보시자 목소리가 높고 활기차지셨다.
“어떻게 알고 왔니? 말도 안했는데.” 하시면서 내 옆으로 다가오셨다.
귀엣말로 속담도 알려드리고, 퀴즈의 정답도 알려드렸다. 정말 아이같이 기뻐하신다.
노래 부르기 시간.
평소에도 좀 해본 듯이 선생님들이 미리 번호를 노래방 기계에다 찍어 놓으신다. 동백아가씨는 ○○아버지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은 △△어머니 노래, 동숙의 노래는 □□어머니 노래하고 말이다.
선생님이 우리 모녀에게 같이 노래 한 곡 하시란다. 평소 찬송가 외엔 노래 부르시던 것을 본 적이 없는 나는 갑자기 난감해졌다.
엄마는 “안 해.” “몰라.”만 하신다.
고향의 봄은 합창으로 했고 하실만한 곡은 벌써 다른 분의 노래여서 ‘오빠 생각’을 신청했다.
어릴 적 엄마가 부르시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생전처음, 엄마와 둘이, 게다가 여러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니 잘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난 직장 생활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참관 수업도 참석해 보지 못했었다.
그 동안 나의 빈자리를 엄마가 메워주셨는데.
엄마는 내가 어릴 적 학부모총회 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석해주시어 나의 기를 살려주셨는데.
이제 받은 것을 되돌려 드리는 시간이 되었다. 이 순간이 감사하다. 매일 매일 작은 추억을 만들면서 즐겁고 기쁜 경험들을 쌓아가리라.
저녁에 돌아오셔서도 낮의 즐거움을 기억하신다.
카레를 드시면서
“내가 니 엄마 어렸을 때 카레 먹고 와서 만들어 주었다.”
“언제?” 딸이 냉큼 묻는다.
“글세......”
내가 국민 학교 다닐 때 학교 임원 엄마들의 계모임이 있었다.
그 당시 인천에서 제법 큰 음식점 ‘무궁화 식당’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점심을 드시곤 집에 와서 먹었던 음식을 만들어 주시곤 하셨다.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돈까스 ......
그 때 생각이 나셨나보다.
엄마는 착한 치매이시다.
감사하다. 고맙다를 입에 달고 다니신다. 요즘 들어 싫어, 안해도 가끔 하시지만.
유년에 사랑을 듬뿍 받았던 다복했던 경험들이 다시 아이로 되돌려진 시간에 자연스럽게 나오는가 싶다.
은화야, 어머님의 고운 미소가 생각난다.
우리 엄마도 치매가 시작되셨는데
거울의 당신 모습을 보고 당신이 놀라신다.
아마도 기억은 예전의 나를 생각하셔서 적응이 안되시는 듯하다.
얼마전 ‘더 파더’라는 영화를 봤어.
‘앤소니 홉킨스’가 이번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인데
치매 노인의 정신세계를 보여줬어.
이 영화를 보며 엄마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어.
치매는 뇌기능이 손상되며 나타나는 증상인데
뇌의 어느 부분이 손상되느냐에 따라 증상도 달라진다한다.
엄마를 보며 나의 노년을 보는 듯하여
맘이 씁쓸해지기도 하고
‘아, 이렇게 사그라지겠구나.’ 싶기도 하다.
엄마, 하늘나라에서 환히 웃고 계실 거야!
2016년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써놨던 글입니다.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그리웠던 일이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