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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 오고 이제 퇴임이 3년 반이 남았음이 분명해지니

책꽂이에 같은 주제의 책들이 꽂히기 시작한다.

여행과 어학

어학에 대해서는 좀...... 자신도 없고 애매하다....만 그래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사실 외국 여행을 하면서 내가 내 목소리를 낸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나의 입은 나의 검지손가락이었다.

내가 말하니 그들이 알아들을 거며 그들이 말한다고 내가 알아듣겠는가?

그냥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거의 되었다.

 

영국 킹크로스 역에서 에든버러 가는 기차표를 구입할 때 어쩐지 자신이 없어서

표 끊는 곳에 가서 안 되는 영어로 물어 보았는데, 손가락으로 시간표 적혀 놓은 곳을 가리키던 청년의 비웃는 듯한 표정이 마음에 남아 있다.

에든버러 어셔홀에 옆에 있는 섹스피어 하우스라는 식당에서 용기를 내 버거를 시켰는데 도무지 알아듣지 못해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아! 버거!" 하면서 주던 또 청년의 말에 그냥 입을 다물었던 언짢은 기억도 있다.

 

우선 여행에 관한 책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기분 내키는대로 우선 아프리카에 관한 책.

여긴 아마 안 갈 것이다.

그래도 이 책들을 읽으면 다른 곳으로의 여행이 좀 쉽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남섬 북섬 트레킹에 관한 책, 남미 트레킹에 관한 책, 그 외 몇 권.

 

그 중에 오늘 읽은 책은 <느긋하게 걸어라>

조이스 럽이라는 여자가 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은 인생의 교훈들>이라는  여행기다.

이분은 일찌기 종신서원을 한 수녀님이다.

미국의 아이오와 주에 있는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여러가지 종교 행사를 주관하고 종교적 주제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이에게는 영성을 함께하는 벗이 있다.

톰 페퍼라는 남자다.

그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지내왔고, 그와 함께 이 길을 걷기로 한다.

두 사람은 일생을 종교에 몸을 바쳐 지내온 사람이었고, 따라서 이 여행은

그들에게 종교적 여행이 된다.

신앙을 더 깊게 하고 영성을 다져 그 힘을 다른 이에게 나눠주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

 

출발할 때 그녀는 60이었고 톰은 72세였다.

그들은 계획을 세우고 연습에 들어간다.

평소에 소박한 삶의 자세를 갖고 있었지만

이런 경험은 없었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모든 궁금하고 걱정되는 일을

종이에 적고 의논하고 다짐을 한다. 

그들의 아니 그녀의 걱정 중에 이런 것도 있다.

여행 중에 생긴 갈등으로 우리의 관계가 나빠지면 어떻게 하나 이런.

물론 그런 상황은 생긴다.

그러나 둘은 솔직하게 그런 상황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해결방법을 찾는다.

따로 또 같이.

 

이 책은 여정을 기록한 책이 아니고, 여정에 따른 마음의 변화나 확인에 대한 기록이다.

난 시종일관 종교적 각성으로 이루어진 이런 책의 내용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어쩐지 매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것은

이런 길은 혼자 가야 한다는 것.

여럿이 가도 어차피 혼자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는 것.

혼자 가야 여럿을 만날 수 있고, 그야말로 공동체적인 인생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좋았던 것은 38일에서 40일 동안 800키로를 걸어 순례를 끝낸 다음

근처 바닷가에 가서 한 5일 쉬면서 그 걸음을 반추하고 정리하고

벗과 나누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는 점이다.

톰은 모래밭에서 일광욕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녀는 바위돌 틈에 앉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힘든 여정을 끝내고 마치 사무를 끝내듯  그대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으면

이런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 책을 읽고 난 후 난 책꽂이에 꽂혀 있는 조 소피아 언니의

<걸어서 이천리 나의 산티아고>를 다시 꺼낸다.

언니의 책은 여러 번 읽었으나 언니의 설렘과 두려움, 기쁨, 갈등, 평화......

이런 감정들에 언제나 빙의된다.

그래서 숨을 고르게 된다.

지금도 잠시 쉬면서 차를 한 잔 마신다.

 

저번에 너무 안 좋은 상태로 갔던 소백산 산행에서 완전 그로기 상태가 되어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어 좀 두렵긴 하다.

젤 큰 원인은 게으름 때문이었다.

 

다음 주 종업식과 함께 졸업식이 끝나면 짧은 봄방학이다.

우리는 방학하는 날 떠나기로 하고 지리산 산장 예약을 했다.

이번에는 벽소령 산장, 장터목 산장으로 했다.

평소보다 하루 걷는 양이 더 많다는 뜻이다.

보통은 연하천, 세석산장으로 했었는데.

 

대장 역할을 하는 사람도 힘이 많이 빠져 무거운 배낭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나도 민폐끼치지 말아야지 이 생각 뿐이다.

한 사람은? 그 친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최소한의 짐으로 자기 먹을 것만 준비하자고 했다.

 

친구들에게 올해 겨울의 끝, 봄의 입구의 지리산을 보여주게 되길 바란다.

잘들 지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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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가는 길에 이렇게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다는 설명이 있다.

어떤 스페인 사람들은 병을 갖고 와서 담아 가기도 한다는데;; 심하다......;;

그렇게 힘들게 걷다가 마시는 포도주 한 잔

취하겠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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