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여호와께서 욥에게 질문하실 때, 별들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7월 1일(캐나다 데이) 밤 아홉시 반경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빨리 옥상으로 올라오라는 것이였습니다
부르시는 뜻대로(?) 움직이는 아내이니 귀챦아도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보니 해밀톤 베이 호숫가에서 시작한 불꽃 놀이가 한창이였습니다
조금 있으니 작은 딸도 올라왔습니다
막내 아들은 불꽃놀이 보기 위해 일부러 토론토로 나가 집에 없었습니다
생각에 큰 딸도 분명 알버타에서 불꽃놀이를 볼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색색의 빛들이 눈에 먼저 들어오고 사라진 순간,한 번의 초침이 똑딱 할 즈음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불꽃 터지는 소리였습니다
빛의 속도가 소리의 속도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이였습니다
광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하는 말이 있답니다
빛은 과거의 소식이라고...
우리들의 육안에 반짝이는 별빛들은 현재 그곳에서 반짝이는 빛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머나먼 저 과거,
머나먼 저 우주의 그 어딘가에서 출발한 빛이 지상에 살고 있는 내 눈에 포착되기까지 걸린
세월을 헤어린다는 것이 얼마나 천문학적이 숫자일 것인가? 생각해보는 건 지금 내 손안에서 읽혀지는 베드로의 편지
역시 그 세월이 짧지만 않기 때문입니다
허기사 편지가 쓰어진 후 지금에 오기까지 걸린 2000년의 시간과 수 억 광년은 게임도 안되지만서도
이렇게라도 비교해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들의 유업이 얼마나 광활한 길이이며 넓이이며 높이이며 깊음일 것인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머리 위
한 여름날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의 크기가 지구의 백 만배라는걸 인식하며 사는 사람들은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쯤 태양계를 유심히 살펴 보면 우린 더 광대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왜냐면 태양의 일 억배가 되는 별들이 싸락눈처럼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건 그렇게 태양의 일억배되는 별들로 형성된 은하계가
억!
억!
억!
천억개나 된다합니다
우리는 이런
억!
억!
억!
억억억대의 아버지 자녀들입니다
자녀에게는 권세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아 누릴 권세입니다
베드로는 편지 첫 장에서 하나님을 일컬어
우리에게 '유업'을 잇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소개하며 찬송하는 것을 봅니다
어부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그가 어찌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알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찌 자신을 감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비단 베드로에게만 던지는 질문이 아닙니다
나에게도 던지는 질문입니다
나는 어찌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알게 되어 나도 그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로 삼고 아바 아바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입은 자로 소개할 수 있는 것일까?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알게 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때문이라 합니다
자신은 그분에게 미리 아신 바가 되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따로 구별된 거룩한 자가 되었다 합니다
그걸 알아서 꼭꼭 씹어 먹는게 곧 순종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손발의 육체적인 행위 이전에 심령과 생각과 감정의 부지런한 활동을 전제합니다
그분이 나를 미리 아셨다는 말씀을 어찌 순종할 것입니까?
그것도 베드로가, 순정이가, 토론토 아름다운 교회 성도님들이 지상에 태어났으므로 아는게 아니라
천지 창조도 되기 전인 창세 전에 아셨다는 그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도대체 내 육체의 그 무엇을 움직여야 한단 말입니까?
내 육체의 그 어떤 것을 움직여야 그 말씀에 순종의 의무를 다 행한 것이 됩니까?
허나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우주적인 제 일인자인 혁명가에 의해 철저히 무너지는 혁명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제 일인자되신 예수님과 관계를 맺었다는 그 하나만으로 그는 잊을 수 없는 사건속에 연루되어야만 했습니다
특히 자신은 정말 예수님을 끝없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그분이 죽을 때 자기도 같이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그래야만하는 십자가 사건이 닥쳐오자
그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베드로는
자신이 한 말에 말할 수 없는 염증을 느끼게 되었고
자신의 감정에 말할 수 없는 통증을 느끼게 되었고
자신의 마음에 말할 수 없는 자책을 느끼게 되었고
자신이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증오를 느끼는 자가 되었습니다
허나 그것은 제 일인자 되신 예수님께 대한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는 획기적인 기회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얼마전 한 사역자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역자가 제 이인자로 지속적인 섬김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사역자도 제 일 인자의 사역자가 있고 제 이의 사역자가 있는 것일까? 의혹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생각하는 사역자는 그 사역자의 위치나 능력여부를 떠나 모두가 다 한결같이
제 일인자 되신 예수님을 섬기는 이인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제 일인자되신 예수님과 연루되어 살면서 종내는 자신의 이기적인 중심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던 제 일인자적인
성향이 죽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이후 그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됩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가장 다른 변화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그가 예수님에 관한 설교를 하게 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관한 편지를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그러한 행위와 선지자들의 행위가 별개의 행위가 아니라는 걸 익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자기 인식적인 앎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쉬운 것 같지만 쉬운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 행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놓았습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핀 대상은 자기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였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다락방에서 그 그리스도의 영을 심령에 받는 자가 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에 취하여 즉흥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허나 베드로가 쓴 편지들은 생각해보면 결코 즉흥적으로 쓴 편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도 선지자들처럼 성경을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이 그렇게까지 좌지우지하려했던 주님이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 벧전 1:20)'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신 바 되었다는 걸 알게 되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는 걸 봅니다
이처럼 순종은 행위 이전에 그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마땅히 순종해야 할 대상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 상고해야 하는 정신적인 수고입니다
허긴 그조차 내 손으로 성경을 펼쳐야 하고 내 눈으로 성경을 읽어야하는 육체의 순종이 필요하지만은 보다 더 근원적인 순종의
자리는 우리들의 심령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심령을 찢는다는게 무엇인지 예수님을 저주하면서까지 세 번 부인한 후에 비로서 알았던 것입니다
그것도 주님께서 닭 울기전에 세 번 부인하리라는 말씀을 상고하면서 말입니다
사람이 성경을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게 되면 예수님을 믿지 말라해도,
말씀에 순종하지 말라해도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니' 사도행전17장 11-12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을 모으셨음이라' 이사야34장16절
주님!
빛이 과거로부터의 소식이나 내 눈에서 반짝이듯이
성경 또한 과거로부터의 소식임에도 여전히 내 눈에서 반짝이며 빛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을 상고한 결과
믿는 이들이 많아진 것을 봅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하여 온 우주의 제 일인자되신 예수님과 그의 아버지를
알고 순종케하옵소서
이 모든 과정속에 잠시도 내 안과 밖에서 운행을 멈추지 아니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높이 높이 찬양하며....
?그대?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날이 갈수록 내가 저지른 교만에
?그대? 등뒤에 숨고만 싶어라....... 하고
고백하고 반성을 하네.
역~시~ ~그대는 인일의 딸이로세.(은근과 끈기와 인내)
남편이 한국에서 치료를 잘 받으시고 오셨나보네.
순정후배가 좀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겼겠네?
겸손을 일깨워준 순정후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