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재직중 나는 그곳 아이들에게 누누이 말했다.
"사회에 새 바람과 불어넣어주는 것은 도시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이 아니고 시골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문구를 환경정리 때 뒤에다 붙여 놓았다.
비가 오면 발목까지 빠지는 길을 걸어 십리 건 십오리 건 걸어서 학교에 오는 아이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농땡이 칠까 궁리하는 선생님들에게서 두 눈을 반짝이며 배우고자 열망하는 아이들이었다. 공부보다는 도로 가꾸기나 모내기에 동원되는 행사가 더 빈번한 시골 학교였지만 어떤 것에도 꺾이지 않는 꿈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아끼는 내 작품 <순무>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강화도에서 서울로 전학와 적응하는 그 아이 얘기가 나온다.
"불어는 시험범위까지 한 자도 빼지 않고 무조건 외었다. 기말고사 결과가 나오자 불어선생은 나에게 천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공부가 나에게는 가장 좋은 도피처였다. 어느 날 화장실 거울 속에 머리가 허연 사람이 휑한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머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반백이 되어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니 거짓말처럼 머리가 검어졌다."
그리고 나는 작품 속에서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의 목소리를 빌려 말한다.
" 난 말이여, 모낼 때마다 생각혀. 모는 씨 뿌려 자란 자리를 한 번 옮겨 주어야 하는겨. 그래야 더 단단히 뿌릴 내리고 가지를 뻗고 힘차게 자라 열매를 많이 맺는 겨. 모내지 않은 모는 그 자리에서 여리여리 하게 자라 열매도 제대로 못 맺고......."
<순무>의 무대를 강화도로 설정을 했지만 그때 그 아이들다. 이름까지 똑같은 아이도 있다.
내 책 <히말라야바위취>가 출간되고 마음이 들떠 있을 때 텔레비젼 뉴스 시간에 장관 대변인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였다. 이미 오십 줄에 들어선 중년 남자의 모습이었지만 내 눈에는 예전 14살 때 모습 그대로였다. 그 아이가 근무하는 세종시로 책을 보냈더니 어제 전화가 왔다. 아마도 출판사에다 내 전화번호를 알아낸 모양이다.
그때 그 열악한 조건에서 공부한 아이들이 놀랍게도 행시를 패스하여 고위 공부원이 되어 있었고, 한 아이는 사법고시를 패스해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또 한 아이는 고위공직에, 또 한 아이는 사업에 성공해 큰 부를 축적했다. 언제 그 친구들과 한번 만나자고 한다.
나는 도중에 학교를 그만 두어서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그 아이가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봐 주었다. 그리고 시골 촌 구석에서도 서울 아이들이 갖지 못하는 장점을 누누이 말해 주었다. 사십대 후반인 지금은 국장급 장관 대변인이지만 머지않아 장관이 되고, 또 그보다 더 윗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이다. 삼십여년 전에 나는 그 아이에게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벼를 모판에서 논으로 옮겨주는 얘기는 아주 재미있네요!
한국인.....은 당연히..... (서울사람)만이 아닙니다.
일요일 아침 이 시간에 남도지오그라피가 방영되는데요....... 여기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한국인입니다. 그들의 애국심! 그들의 자부심!
ㅎㅎ그중 강화사람들은 단위면적에서 박사교수가 가장 많이 배출된 곳입니다.(저도 외가 뿌리가 강화도에요)
게다가 순무, 인진쑥 등등 강화의 모든 물과 먹거리가 강화사람들을 감기도 안걸리게 한다고요. 더하여...
강화는 모든 자연재해가 피해가는 천혜의 섬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가 강화에서 김포로 이주해 오신,
그래서 강화에 선산이 있고 모든 친척들이 다 강화에 있어요.
돌아가신 부모님도 거기에 모셨어요.(장흥리)
강화의 모든 물과 먹거리 때문인지,
우리 친정 집안의 위장은 아무리 먹어도 탈이 나지 않고
모든지 다 소화시키는 <미제위>랍니다.
<미제위>는 큰엄마가 붙여준 별명이어요.
어린 시절 순무를 썩뚝썩뚝 썰어 밴댕이젓에 버무려 큰 독에다 담아요.
그걸 한겨울에 퍼다 먹고 또 국물에 말아먹고 그랬죠.
고향음식하면 순무가 제일먼저 생각나요.
강화에 갈 때마다
천혜의 섬이란 걸 느낍니다.
?저도 강화에 친근감을 느낍니다 난리 중에 임금님이 피난하신 데는 강화가 단지 섬이었기 때문이기 보다 당시 강화가 다양한 면면을 품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던 거 같습니다 팔만대장경 만들던 곳인가 보관 장소인가도 있고 섬이라는 입지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중요한 강화였던 거 같아요 해마다 남편 선배님 본가에서 순무김치를 보내주시는데 저 혼자만 두고두고 먹습니다 이 맛있는 걸 강화 김포 사람들만 맛있게 느끼는 거 같아요
명희야!
안녕! 쪽지 글 넘 잘 받았네
내가 아직 쪽지를 어떻게 쓰는지 몰라 답장을 못보냈네
네 안목이 적중하기까지 열심히 살았을 14살의 소년이 성숙한 모습을 보는 네 기쁨속에
나도 오늘하루는 기뻐할련다
늘 몸 조심하고 이렇게 글 사랑속에 또 만나자꾸나
그러셨군요
훌륭한 제자도 두시고
♥♥♥♥♥
초임 교사시절 선배님
제자를 향한 첫 마음 지극한 열정
첫사랑 같은 마음이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