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권칠화님!
요즈음 "불의 여신, 정이"라는 드라마가 있어 호기심을 자극하던 참에
한도요를 찾아
가마 여는 것을 처음 보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도자기는
일본인들이 제일 가져가고 싶어 안달을 했던 우리 전통의 하나 라고 들었지요.
실제로
일본의 가고시마를 여행 중 심수관 선생님의 도예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끌려온 도공 심수관에게 작위를 부여하고 도자기를 만들게 했다고요.
제가 만난 심수관 도공은 2세인데 그냥 심수관으로 부르고 있더라고요.
그런 훌륭한 도자기가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세습으로 전해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고령토 라는 흙이라든지 물 그리고 강이 있어 운반하기 좋은 조건들이 도자기 굽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 하네요.
그런 도자기를 굽는
가마를 여는 날이
잔치날이라는 것이 수긍이 갔습니다.
1200- 1300도의 높은 고열에서 구워져 나오는 작품들....
참으로 신기했습 니다.
아이고 우리 산학이는 전국구로 뛰느라 참 바쁘시네!
강화에 굿구경도 가시고 암튼 좋다는 구경은 다 하고 다닐 수 있으니 그 아니 복이신가!
항상 느끼는 맛갈스러운 글도 다 이런 다양한 경험이 농익어서 나오는 것이겠지?
몸은 괜찮은겨?
이빠진 그릇도 잘 버리지를 못해 되도록 도기는 안쓰고 싶은 우리같은 사람은
가마에서 나오자마자 깨뜨려지는 그릇들이 아까워서 구경가기도 겁난다. ㅎㅎㅎ
원래 보물이란 그 자체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희소성이 가장 중요하다니 버리고 또 버려야 명품이 되겠지?
좋은 글 잘 읽었고 이 더운 여름철을 잘 버텼구나 싶어서 안심도 되네.
요즘 들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절절한데(8월 19일이 기일이라)..............................
처음에는 그동안 지친 가족들 생각에 그만하고 가신 게 다행이다 싶더니 세월이 흐르니
예전의 씩씩하시고 자식들에게 자상하셨던 모습만 생각나고
교회에 가서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하는데 그 때마다 친정아버지가 떠 오르네.
그런데 막상 살아계신 엄마에게는 짜증도 잘 부리고 (점점 억지 말씀이 늘어나시니)
돌아서서는 후회하고~~~~~~~~~~~~~~~~~~~~~~~~~~~~~~~~~~~~~~~~~
왜 자식들은 건강하신 부모에게는 그냥 어린애가 되는 가 몰라...................................................................
유명옥 선배님!
깨뜨려 버리는 도자기들을 보면서
저는 잠깐 이런 망상에 빠졌습니다.
혹시 인간도 태어나는 순간 선별을 해 없애 버리면 어떠할까 라는 발칙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렇게하면 세상은 더 건강하고 활기차게 돌아가지 않을까 하고요.
부실한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요?
명품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그려 보았습니다.
참으로 생각해 보면
세상의 이치가 오묘합니다.
인간은 아기로 태어나 아기가 되어 이 생을 마감하니까요.
부모님이 앞서 가신 길을 나도 똑같이 걸어 가면서 새록새록 후회를 합 니다.
저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인데 하면서 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문을 외울 때
친정아버님이 떠 오른다는 선배님의 글귀가 가슴을 칩니다.
헤고오,,,산학후배애,,,
근디이,,,그곳에서 사진은 박으믄 안 되남?
으째 사진이 한장두 읎시 글을 쓸라니 더 어렵지 않큿나암??
항상 감칠맛나는 글,,,,,,,,,,,에구우,,,그 깨버린다는 순간을 생각하니 나두 모르게 찔끔하네그려,,,하하하하
밖에서 굽는 삼겹살구이냄새가 여까지 오는듯,,,,
항상 노부모님들이 계셔서 마니들 어려우시긋써요,,,,
몸불편한 노부모님들,,,지난 여름을 어찌 나셨을가싶네요....
산이 할아버지가 국어선생을 시작한 곳이 이천 양정여고였어
그래서 그곳서 삼년여를 살았었지.
신혼초 처음으로 도시가 아닌 곳에서 살아 본 고장이지.
많은 추억이 있는곳이라서 일부러 우리집 백자 그릇들도 모두 이천에서 가져왔어요.
순자후배가 궁금해하니 한도요 사진 몇장 올려볼게.
.........무형문화재 41호 대한민국 명장 14호 서 광수 명장
감사합니다, 은희언니,,제가 사진이 보고싶다능거 당연하지요?
이조백자에 대해서 마니 생각해 봤어요,
어느날 중국선물가계에 가보니,,참으로 그들의 자기들은 완벽했어요,,화려하기느은,,,,,,,,,,
어쩌면 우리의 고려자기는 중국자기의 영향을 마니 받았다고 말할수 있을것 같아요,,
그런데 왜 내 마음을 타치하지 않을가? 구태여 내가 한국사람이라서?
괜히 생각을 하게 되드라고요,,그러면서 얻어낸 것이,,,
아아,,,,,,저 어찌보면 미완성인듯 남아있는 저 많은 작품속의 공간들이 나를 그리로 불러드리는구나,,
들어와서 먼가는 더해보라고,,,또는 들어와서 쉬어보라고,,,,,,,,,,
쉼이 있는 자기,,,,바로 그게 답이였어요,
넘 완벽하여 빈 틈바구니가 없는 중국자기 내지는 고려자기보다는 더 정감이 가는,,,,,,,,,,,,
저를 위해 올려주셔서 고마워요,
좋은 곳에서 신혼을 보내셨네요,
제 평생에 딱 한번 도자기 강의 들은 적이 있어요.
김수근 건축사무소인 공간 사랑이 지어지고 얼마 안되어서(아마도 1972,3년이지 싶네요)
그 곳에서 정기적으로 문화강좌가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그 건축사무소 직원이 친구라는 친구와 함께 몇 명이 갔었지요
그 당시 박물관장이셨던 최순우(맞나?)선생님께서 일본, 중국, 한국자기의 특성에 대해서 슬라이드를 가지고 강의를 하셨어요.
근데 신기하게도 한국자기는 완벽하게 반듯한 것이 없대요.
어딘가 한군데는 비뚤어지거나 무늬가 빠지거나 하다고요.
기술이 없을 리는 없쟎아요?
우리가 예전에 배운 "파격의 미"에 대해 설명하시더군요.
전 그 후에 곧 결혼을 해서 더 이상 갈 기회도 없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답니다.
어머나!
그 유명한 최순우 박물관장의 강의를 들으셨다고요!
최순우 박물관장은 회화, 도자기, 미술, 조각등에 조예가 깊은 미술 평론가로
고유섭씨의 뒤를 이은 분으로 유명합니다.
유명한 저서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서서" 를 읽은 적이 있는데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주 부석사에 있는 무량수전....
정말로 좋은 강의를 들으셨으니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분이 1980년대 초에 작고 하셨으니
그 후로는 그 분의 강의를 들을래도 들을 수가 없었지요.
요즈음 다시 그 분의 책이 다시 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요?
산학아~많은 것을 섭렵하는 너의 모습 참 보기 좋다!!!
나도 한 때 도자기에 관심을 갖고 쫌 구워봤건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라.
저렇게 한가지를 집요하시는 분들 참 대단하시다.
명장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과 싸움을 했을꼬???
좋은 글 또 잘 읽었네.
선배님께서는
다른 사람과 달리
수채화, 종이인형에 도자기까지 두루두루 예술 방면에 조예가 깊으시네요.
역시 무엇이든지 타고나야 한다니까요?
옛날 학창시절
저는 가정시간이 너무 너무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동양자수 숙제를 내 주었는데 너무 힘이 들어 엄마가 살짝 도와주었는데
귀신같이 알아 챈 선생님이 압진을 다 뽑아 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지.......
그 후로 가정 시간이 지옥 같았다고나 할까요.
물론 재주가 없었으니 그리 되었겠지요.
그런데 2기의 박홍도 선배님은 자수를 너무 열심히 해서(얼마 전에 인사동에서 전시도 했습니다) 목 디스크에 걸렸는데도
좋아서 계속 바느질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굉장하지요?
한 우물을 파는 분들....
명장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도산학 후배!
7월 장마 끝에 도요에 다녀 왔군요.
도예 명장이시며 사기장이신 서강수 선생님 가마터에.
평생을 한 길 만을 걸어 오신 명장의 도요에서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을 지 선합니다.
현장감 있게 그려준 산학 후배의 글을 읽고 나니
큰 애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숙제 중 "자유 탐구" 를 도와 주기 위해
이천가는 시외 버스를 타고 몇 군데 큰 도요를 돌아다니며
도자기가 탄생되는 과정을 아들과 함께 지켜 보느라
땀을 삘삘 흘렸던 기억이 새롭네요.
친정 아버지께 선물 받아 온 자줏빛 도자기를
놓아 드린 산학 후배의 효심이 제법 서늘한 저녁 바람에 실려 오는 듯합니다.
조영선 선배님!
아들의 숙제를 위해 엄마가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아들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겠지요?
훗날 이런 기억이 아드님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될런지요.
경기도 이천 근처만 지나가도 엄마를 기억하면서 그리워 하겠지요.
우리 아버지는 평생을 밖에서 사셨지만
강아지를 좋아하고 꽃을 좋아해 집에는 항상 강아지가 있고 꽃들이 천지였습니다.
그런 것을 유난히 좋아하기에 딸만 주루룩이라고들 했지요.
그렇게 활동적인 아버지가 병이 들어 집에만 계시니 그 속이 어떠하신지 짐작만 하지만 ....기가막힙니다.
어렵고 무서웠던 아버지...
이제는 하루의 일과를 조근조근 들려드리면 그것도 좋아하시니
참으로 인생이 무상합니다.
요즈음 텔레비죤에서
"불의 여신 정이"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그 경기도 이천의 가마터를 다녀와 글을 쓴 것이 있어 올려봅니다.
가마를 여는 날은 굉장하더라고요.
흡사 잔칫날입니다.
세상에는 한 길만을 걸어 온 훌륭한 예인들이 있어 우리를 감동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