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0일(토요일)
오전 8시 30분 주안역 경향프라자 앞에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오늘은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남정1리 454ㅡ2 에 소재한 한도 서광수 도예공의 한도요를 탐방하러 가는 날이다.
보름 가까이 긴 장마끝에 오랜만에 보는 화창한 날씨에 29명이 모였다
 
예부터 이천군은 쌀의 고장이지만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시대 이곳의 특산물은 도자기이다.
이 고장의 흙이 고령토이고
남한강의 뱃길이 광주군의 도자기의 원료를 실어다주는 역활을 하였기에
일찌감치 고려시대부터 관요의 사기장은 세습되었다.
그 맥을 지금까지 이어온 도공이 있었으니 바로 오늘 우리가 탐방을 가는 한도요의 서광수 명장이다.
 
모양이 달처럼 둥글다 하여
달항아리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둥근 항아리의 맥을 잇고 있는 장인 중의 한분인 서광수 선생님은
대한민국 도예 명장 14호이고
경기도 무형문화재 41호 사기장이며
오늘 그 가마터가 열리는 날이다.
 
물과 불과 흙과 공기가 빚어내는 하얀 백자의 아름다움........
흙과 불을 쫓아 온 50년 도공의 면모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설레임도 좋다.
물론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서광수 선생님 내외를 본 적은 있지만
옆에서 뵐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서광수 선생님과 오래전부터 인연이 닿아 후원회장으로 있는 친구가  바쁜 중에도
가마 여는 날을 택해 친구들을 초대한 것이다.
 
차는 한강을 달리고 미사리를 지나 남한강을 달린다.
오랫동안 장마 탓인지 물색이 탁하고 흐리다.
짙은 진초록의 나뭇잎 사이로 지나가는 비인지 가끔 창문을 때린다.
장마가 너무 길다는 생각을 하며
아시아나 사고를 비롯 계속 터지는 인재며
NLL 사건 등이 과연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를 이야기하며 버스는 이천으로 이천으로 달린다.
2시간 쯤 왔을까 "한도요 가마터"라는 표지석이 우리를 반긴다.
 
잘 다듬어진 좁은 길을 45인승 버스가 조심스레 오르니
친구인 후원회장이  우리 일행을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저 만치 서광수 도공의 모습도 보인다.
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하얀 수염이 멋드러진
흡사 도인의 예사롭지 않은 면모 때문에
누구든지 일면식이 없어도 이 분이 이 가마터의 도공임을 알고도 남음이 있겠다.
산자락 아래 넓게 둥지를 튼 가마터는
넓은 마당에 매실이며 토마토등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주인의 허락도 없이 바닥에 떨어진 토마토를 주워 먹으며 전시실로 들어섰다.
 
전시실을 꽉 채운 도자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책에서나 본 달 항아리, 분 청회매병, 분 청고형항아리,청자대나무매병, 분청철화연꽃문계룡산수지, 청자당초문다완,
분청다완, 분청빗살문다완, 분청고형병, 백자목단문다완 등이 나란히 나란히 서있다.
그런데 가격표를 보고 우리는 질겁을 한다.
오천만원 사천만원 조그만 찻잔이 백만원............
우리는 서로 소곤거린다.
절대로 만지지 말라고.
정말 우리들에게는 그림이 떡일 뿐이다.
 
드디어 정오
가마가 열린다고 다들 가마터 앞에 모였다.
순 소나무만을 사용해 1200도~1300도의 고열 속에서 몇날 며칠을 담금질을 했을 자기들이 그 면모를 나타내는 순간이다.
서광수 명장은
가마를 열고 자기를 꺼내자 마자 휙 보더니 깨 버린다.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나온다.
"어마나! 아까운 저것을 어쩌나....."하며 눈을 감아버린다.
10개 중 4개만을 살려둔다.
명장의 긴 장고의 시간이 흘러 흘러간다.
 
그렇게 많이 부수고도 오늘이 잔치날이란다.
오늘 가마터를 열려고 멀리에서 오신 분들이 100여분이 넘을까?
마당에서는 삼겹살이 지글지글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구워진다.
고기 역시 이 집 아드님인 도공이 구어서일까 입에서 살살 녹는다.
안에다 차린 뷔페 음식보다 이곳이 훨씬 인기만점이다.
서광수 명장의 안사람되는 분은 앞치마를 두르고 이곳저곳을 뛰어 다니신다.
된장이며 김치가 일품이다.
이곳에서 농사 지은 고추며 배추에 된장 한숟갈 퍼넣고 삼겹살을 싸 먹는 맛은 두고두고 잊힐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도 그렇게도 잘 대접받고 맛나게 먹고 왔음에도 아드님께 인사만 하고
예쁜 사모님께 인사를 못 드리고 온 것이 오는 내내 마음에 걸린다.
 
 
올 때는 여기에 온 기념으로 도자기 하나씩을 선물받았다.
굽다가 약간 하자가 생긴 것이라는데 자줏빛 도자기가 앙징맞다.
1200도에서 몇날 몇일을 완전히 구워져야  하얀색이 나온다는데 이 자줏빛은 굽다가 실패한 것이라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그래도 예쁘기만 하다.
 
오는 길에 송림동 친정에 들러
도자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방에 놓아 드리며
실패한 작품이라 설명드리니
쓸고 닦고 보시며 환자 방에는 하얀색보다 자줏빛이 더 좋다 하신다.
편찮으셔서 바깥 출입을 못 하시는 아버님의 흐뭇해 하시는 눈을 보니 오랜만에 본의 아니게 효도를 했구나 한다. 
 
명장의 숨결이  느껴져서 저리도 좋아하시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