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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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금을 울리는 여인의 목소리와...
사진같이 정교한 그림들과...
화려한 색채와....
마치 드넓은 사막에서 낙타타고 헤매다가
어드멘가 찻집을 찾아 들어가 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울렁 거리는건 왜인지요?
잘 감상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젠 아시아쪽에 화가들에게 눈이 돌려지네
유럽의 거장이나 미국의 예술가들이 부각되던 시절은
물론 세계 경제 문화를 다 잡고 있었던 부분도 크다는 생각이야.
이제 겨우 알려지기 시작한 아시아쪽 예술가들의 활동이 알려지고 있어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한계가 있던 예술인들이 이제 개방이되어 날개를
달고 비상을 하기 시작하는구나 ..........하고 호감이가네.
순호가 어쩌다 이곳까지 나오는일이 드문데
그림도 훑어보고
안나 게르만의 노래도 좋다하는구나.
잘 감상했다니 고맙다.
즐겁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다니다 돌아오려마
김은희 선배님!
올려주신 그림들을 보는데
알함브라 궁전에 들어와 있는 착각에 빠져드는 것은 왜일까요?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강한 색채가
유럽보다는 이슬람 쪽에 가깝다고 느껴서일까요?
우즈베키스탄이나 스페인이 절대로 같은 문화권이 아닐진데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혹시 나만의 착각은 아닌지요?
위의 그림들을 보면
당연히 한 사람이 그린 그림이지
세명의 화가가 함께 그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소합니다.
동유럽
체코이었던 같습니다.
카를 다리에서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며 팔고 있었는데 그 화가들은 나라에서 인정한 유명 화가들이라고요.
참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임을 알 수 있었는데
우즈베기스탄도 그에 못지 않는 나라이네요.
모든 예술품도
국력이 강해야 제 값을 받듯이
요즈음 우즈베기스탄 여자들이 한국에 돈 벌러 와서 클럽같은 곳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동네에 술집이 많은데
가끔 그녀들이 두 세명 어울려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예쁜지 거리가 다 환해집니다.
우리 게시판도
선배님 덕분에 오랜만에 화려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산학이의 감성으로 보는 우즈벡의 화가들 그림들을
나도 그들만이 지닌 문화를 표현한 부분이 많아보여 호기심이 나더구나
물론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아 그림에서 보듯
예술가들도 많은 영향을 받았을테고
좀 더 알고싶어 찾아보았더니
구 소련시절 우즈벡 지역에 발레, 음악, 미술을 육성하느라
공장 등을 건설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까지, 예술을 육성하였는데
분리 독립 후, 소련 최고화가들이 우즈벡에 남게 되서 그대로 그 명맥을 이어가면서
우즈베키스탄의 예술이 활발하게 알려지고 있다고 하더라.
..............................................
("대체로 우즈베키스탄의 회화들은 “창의적인 조형언어로 현대인의 자화상들을 그려내고 있으며,
개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들 각각의 작가들은 자신의 독특한 기호와 독창성을 겸비하고 있다는 호평을 함께 얻고 있습니다.)
...............................................퍼옴..............
오늘 오전중에 두어시간 찾아보고 읽어보고
비가 와서 밀어두었던 빨래 하고
효소 담글 그릇 사러 나갔다 오니 아홉시가 넘어 들어왔네.
젊을때 좀 더 공부 좀 열심히 할것을...........ㅎㅎㅎ
언니가 칠십이 넘어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더라
매번 되풀이 하는말인데 무언가 좋아하는거 보고 듣는 시간이 제일로 행복하네그려
어제 중국화가들 그림도 한번 보시라고 조카가 알려주어서 찾아 보았는데
개방이후에 중국이 경제대국이 되어가니 중국화가들도 세계무대에서 자리잡아 가고 대우받고 하더라.
그들의 작품도 더 찾아보고 소개 해봐야겠네.
그리고 체코 까를다리 바로 근처에 우리 딸아이가 오래 살다 왔는데
다시 간다고 하면 쫓아가 나도 몇달 살다오면 좋겠네.
그럴 날이 올려나 모르겄지만서도............
우리나라 여성들도 한동안 일본에서 우즈벡 여성들 처럼
건너가 그렇게들 생활을 하고 살았다고 읽은것같아요.
여자들이 술집 에서 돈을 버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지뭐.
다른일을 찾기보다 쉽게 다가가기에 그렇지싶네.
산학이가 마음이 따듯하고 옳바른 생각을 지니고 있어서 가슴이 아픈걸거야 눈앞에 보이니.................
따님이 체코에서 공부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거주지가 까를 다리 근처였다고요?
너무 멋진 곳에서 살고 있으니 한국에 돌아 올 생각이 없었겠네요.
그 다리는 제게도 특별해 시를 써 둔 것이 있어 옮겨봅니다.
프라하의 볼타가 江
13개의 다리중
가장 아름다운 까를르 다리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가교인가?
30채의 聖像이
다리를 지켜주고 있네
이승의 業을 벗어야
다리를 건너
저승으로 갈텐데...
慾望을 이기지 못해
밤 마다 우는 女人
나는
그만
不倫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시종과의 사랑이
너무 고통스러워
사제를 찾아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사실을 눈치 챈
카를4세의 다그침과 고문에도
끝내 침묵한 사제
국왕은 사제의 혀를 뽑아
강물에 버리고
교수형에 처했네
後日, 聖人으로 품신된 사제
그의 동상이 있는
카를르 다리
지금
카를르 다리를 건너며
聖人의 동상을 쓰다듬으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
이승에서
그들은 무엇이 그렇게 간절해
두 손을 모으고 있는가?
惡이 있어야
善이 있다는
眞理에
世上은 그래도 아름답고
볼타가 江이 흐르는
프라하는
中世의 古風속에
더욱
더 아름답다.
(까를 대제의 왕비가 시종과 사랑에 빠지자 사제에게 고백성사를 하고, 이를 눈치 챈 왕이 사제를 다그쳤으나 묵묵부답에 화가 나, 사제의 혀를 뽑아 버리고 교수형에 처했다. 후에 사제는 성인의 반열에 오르고 까를 다리에 그의 동상을 조각해 놓았다)
2004년 6월
프라하의 카를르 다리에서
여행 간 곳에서 특별한 시상이 떠올라 시를 썼다니
산학인 달라도 확실히 다르구나............
중세 고풍스런 역사를 지닌 프라하 역사지구라고 불리어지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곳 프라하
신성 로마제국에 수도 이기도 했다고하니 짐작이 가네.
딸아이가 가끔 오면 음악이야기 스메타나, 드보르작, 그리고 카프카 이야기
프라하의 봄 축제, 다양한 건축물들의 양식들을 말해주곤했어요
프라하에서 살았으나 프라하 외곽지역 시골의 더 아름다운곳과 시골인심에 대한 생각 등등.....
그래도 영구히 살아야 할 곳은 한국이지.
우리집에 체코에서 체코어 과외선생하던 청년이 다녀가기도 했는데
우리나라도 좋다고 하더라....젊어 그런지....
(PS; 자정이 다된 시간에 산학이 시를 읽고 며칠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니 산이 할아버지 첫시집에 실린 시가 생각나서
생각난 김에 블로그에 며칠전 만들어 놓았던
딱 맞는영상 빌려다 적어놓았던 시를
올려볼가 했었는데 영상속에 글씨는 사라지고 영상만 올려져서
그냥 따로따로 올려볼게요)
....김 정웅
한 평 미만의 막오른 무대다.
대낮도 깊은 밤중이다.
빗속에 서있어도 비 밖에 있다.
사랑을 알면서도 사랑하지 못한다.
분칠한 하루가 풀려내리는 어둠 사이로
히끗히끗 눈발이 흩날린다.
몇 방울의 찬 이슬이 되는 뜬 웃음.
배우일지.......여섯
.....김 정웅
자정으로 달려가는 빗소리를 들으십니까?
대본을 고의춤에 지르고
꼭두새벽부터 달려가는 빗소리.
자정의 생철지붕 위에 딩구는 빗소리를 들으
십니까?
자정에 발걸려 넘어지는 빗소리,
넘어지면 물구나무선 채로 달려가는 빗소리
끝없이 넘어지며 달려가는 빗소리,
영4시에 다시 넘어지는 빗소리를 들으십니까?
영4시에 넘어져서 한쪽 다리를 절름거리며
대본을 고의춤에 지르고 다시 달려가는 빗소리.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무릎 언저리, 어깨 언저리, 목 언저리, 머리
언저리
아니, 아니, 가슴 언저리로 가슴 언저리로
끝없이 두런거리며 달려오는 목소리,
달려오며 넘어지며 달려오는 무서운 빗소리.
(1980년에 출간된 첫 시집 "배우일지"속에 배우일지란 제목의 시
여섯 편 중 두 편을 올려봅니다. 우리세대나 알고있는 통금시간이
있던 시절........이년후 사라졌지요 그 제도가.....
이 첫번째 시집이 우리집에도 딱 두권이 남아있네요.
식구들 ....손주들을 위해
한정판으로 몇권 칠순 기념으로 만들어 볼 참이지요)
그림엔 문외한이지만
집사람이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도서관에서 빌려 온 유명작가들의 화보집을 가끔 어깨너머로 보고있습니다.
우즈벡 화가의 작품과 해설...
신선한 느낌으로 잘 감상했습니다.
40대 초반이라는 아트트리오...
그들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은희야!
우즈베키스탄..
책 속에서 ,매스컴에서 막연히 생각했던 그 나라의 문화
회화 속에서 만나 보니 정말로 신비스럽다!
이슬람 영향을 받아서인지
색채 등이 고대 페르시안 풍 같은 느낌도 나고.
정물화 작품이 난 인상적으로 남는다.
무더위 속에서 회화 작품으로
전혀 새로운 세계로 여행시켜주고
그것도 편히 앉아서 공짜로 이런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감상의 기회를 준 은희 네 contribution에 크고 큰 박수를 보내려네.
영선아~
고마워~!!!
비가 지금 이곳은 엄청 쏟아지네
손주 산이 데리고 와야해서 나갔다 들어와 마저 쓸게
..............
영선아~
손주녀석이 여섯살이되니 이젠 주문사항이 많아지네
네가 미국가면 너도 손주 속도에 마추어 가려면 엄청 달라질라
학교가면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고하니 그땐 또 모두 섭섭하게 여겨진다고 한다만서도
이것저것 다 비위 마추어주기가 숨차네......ㅎㅎㅎ
지금 낮잠자니 잠깐 자유지싶다. 낮잠시간을 놓쳐서 좀 더 잘랑가몰러.
계성이도 쌍둥이 손주를 봤다는구나
반가운 일이지뭐냐............
그나저나 프럼빌리지에 갈날이 일주일도 안남았네.
여튼지간에 잘 다녀오려마
네 이야기 활력소가 될거라 기대하고 기다리마.
2. 이계성
은희야 ~
손주 산이랑 들어오기전에 얼른 내가 들어왔어.
너무 오랜만이네.
용숙이와 통화하던 날 밤에 작은 딸이 아가들을 낳았다하여
허둥지둥 9시간 운전을 하여 켄터키에 와 있었어.
떠날때는 고속도로변에 분홍빛 진달래대신에 조팝나무꽃들이
어울어진 초봄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은 녹음이 우거진 여름이었네.
정말 오랜만에 은희 교수의 진솔한 강의를 접하니
열성 제자이었던 옛날이 그리워지네.
영선이가 나의 마음과 똑같은 감상을 나누었으니
고마웁게 친구들 그리운 마음으로 대신할께.
감사히 대리만족하였다네.
희순이도 보이고, 영선이, 용숙이 , 그리고 최화자 모두 그리움의 눈도장 찍었네.
덕분에 인일의 보물 김혜경 후배님의 댓글 반가이 보았고
희생의 여신 김춘자 후배님과 더불어
이름이 멋있게 독특하여 제고출신의 시인 (?) 인줄 착각한 적있던
도산학 후배댓글도 잘 보았네.
참, 문정희가 많이 건강해보이니 이리 고마울수가...
고국에 있는 친구들은 물론 미국에 있는 그리운 친구들에게도
소식못전해 미안했어.
김정웅 선생님 시를 가슴시려하며 읽으니
그래도 바짝 가뭄밭이던 내 정서가 아직 덜 메말랐나봐.
우리 회장 윤순영의 열매인 주소록 받고
감사장 따로 보내려던 것이 이리 늦어졌으니 용서바래.
다시 또 쌍둥이 할미노릇하러 딸네 갈 예정이네.
여전히
계성아~
글로 다시 만나니 더 더욱 반갑구나~!!!
네가 실로 오랜만에 글을 남겼다해서
산이 점심먹이고 할아버지랑 놀라하고는 얼른 컴앞에 앉았단다.
아직도 네 목소리 여운이 남아있네.
억수로 쏟아지던 비가 주춤해서 산이 데리고 쇼핑하다
돌아오자 마자 ............시간 계산한듯 네 목소리를 듣게 된거란다
좀 늦은듯하다 했다만서도 손주들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면
태어날때 그 감동 , 그리고 서너살까지가 정말 이쁘느니라
그러니 계성아 지금이 힘들어도 손주들 사랑으로 우리도 다시 태어나는
그런 때 이지 싶구나.
고물고물 천사같은 손주들 그것도 둘을 한꺼번에 얻었으니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아기 , 산모 모두 외할아버지께서 의사시고 외할머니도 마찬가지시니
얼마나 든든하니..........행복한 아가들이다.
바깥 선생님께서 얼마나 귀히 여기실까는 어림짐작으로도 상상이 가네.
오래전부터 이곳 게시판에 그림이야기를 올려보는게 어떤가 하고
몇몇이 권하는데 공부가 부족한거 같아 자신없어 망설이다
용기를 갖고 나와 보았네.
그런 사람한테 항상 오래전서부터 고흐 올릴때도 너희집 선생님서껀
격려를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구나.
가끔 볼 기회가 있다니.............열심히 해보마.
건강해야해.........볼때까지말야.
?김은희선배님!!!
올리신 작품중에 "꿈, 깨우기, 일상 " 너무 맘에 듭니다.
올려주신음악과 함께 어울어져 기묘한 매취를 이룹니다.
김정웅님의 "배우일지, 하나"에서,,,,,
??비 밖에 서 있어도
빗속에 있고
빗속에 서있어도
비밖에 있다
사랑을 모르면서도
사랑을 하고
사랑을 알면서도
사랑하지 못한다.
??선배님, 왜 이싯귀를 음미하는데 공연히 눈에 눈물이 고이는걸까요????
너무 아름다워서입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시를 무척 좋아합니다. 편안합니다. 함축성이 재미있읍니다.
선배님, 나중에 시집 만드실때 저좀 꼭 기억해주시면 고맙겠읍니다.선배니이밈,,,,,,,,,,,,,,,,,,,,,,,,,,,,,,,,,,,,,,,,,
재화 후배~
손주랑 놀아주어야해서 좀 나중에 답글 쓸게요.
.............
손주가 낮잠을 자니 벼란간 여유가 많은 사람이 된듯싶어요....ㅎㅎㅎ
한동안 목소리 못듣던 친구도 연락이 되고 오늘은
며칠동안 침침하고 눅눅했던 기분을 단번에 날려버렸네요.
산이할아버지 청년시절 처음으로 김 홍신씨의 제안
(그시절엔 형 아우 하던때라 "형 우리친구네서 꼭 출판하세요"했지요)으로
김 홍신씨 친구 출판사인 평민사에서 처음 시집을 만들었답니다.
삼십 삼년이 지난 지금은 첫번째 시집이 동생 수녀님이 간직했던 한권하고
집에 딸아이 서고에 두었던 한권하고 달랑 두권이지요.
올 가을쯤 몇권 만들면 생각해 둘게요.
재화후배가 좋아한다던 황 동규 시인께서 첫 시집에 아주 긴 시평을 쓰셨지요.
현대문학지에 실린 시를 보시고 수소문해서 찾아 두분이 만남이 이루어 진 사연이 있었답니다.
첫시집 나올 무렵 많은 일화들이 있었던 때 이라서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가장 소중한 책이란 생각이지요.
이젠 모든일에 마무리를 잘해야 할 나이가 되었으니................
우즈베키스탄의 예술가들 특히 화가들의 관해선 내 능력으론
더 이상 알 수가 없더군요.
독립이후에 우리나라에도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고 경매싸이트가 있긴하다고 하네요.
다른 블로그에 올려 진 그림을 본 정도인데 처음 블로그로 가져와서 올리고나서
좀 더 찾아보려 검색을 해보니 52분전에 올린 블로그라고 내 블로그가 올라와 있어서
놀랬었답니다. 그만큼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것인가 봅니다.
한번 거론 했지만서도
중국이 경제대국이 되서 큰 힘이 생기니 현재 중국의 화가들이 급속도로 알려지고
런던 소더비등 경매 시장에서 몇십억의 호가를 받고 있더군요.
그런데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화가들의 그림을 보니
나름대로 강한 인상을 주고는 있지만 나같은 사람은 그 그림을 갖고싶은
그러니까 벽에 걸어놓고 가까이 두고싶지는 않더란 말입니다.
재미는 있고 눈에 확 들어오긴 하지만 .................
그래서 중국에 현대화의 기초가 된 중국현대화의 거목 우 관중화백의 그림을 우선 올려보렵니다.
위에 민쥔이니 쩡판쯔 니 발음조차 어려운 현대화가들의 그림을 며칠
모아두고 보고 또 보았지만 우 관중 화백이 우선이란 생각입니다.
1981년작 <제비 한쌍> 화선지에 수묵채색화
우 관중화백 본인이 평생의 그림중 대표작으로 꼽은 작품이라고 한다.
1919년에 태어나 2010년 6월 25일 작고하였으니
예술가로선 천수를 누린 샘이 아닐까싶다.
팔십고령 이후에도 뛰어난 작품을 내 놓았으니 그의 예술혼은 대단하지 않은가!
삶의 궤적을 읽어보아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내면서도 굽히지않고 작품을 그렸다는것도
알게되었다.
며칠 새벽녘까지 그림을 찾아보느라 새벽을 밝히고 앉아있노라니
산이할아버지가 궁금한가보다
오늘 늦은시간 중국화가 그림을 보노라 했더니 개자원화집, 팔대산인등 중국전통화를 보려니 했다한다.
젊은 한때 그 시절에 얼마간 또 그림에 빠져있던 시절이 있어서일거다.
중국 근대화가라면 장대천 화백은 잘 알고 있었으나 우 관중화백은 노신쎄미나겸 중국여행을 하는
문인들 여행에서 이십년전 잠깐 저명한 화가라는 사실만 알게되었던 일만 있었었다
오늘 작은화면으로나마 수많은 그림을 보여주니 입을 다물지 못한다.
느낌은 누구나가 같다는것에 또한번 기쁜마음으로 그림을 올리게됩니다.
우선 학생시절 국비로 유학가서 불란서에서 서양화 공부를 하고난뒤 중국전통화와 서양화를 접목한 그림을
함께 올려봅니다.
2007년 높은 경매가를 기록한 우관중의 '자오허고성'
장르:Oil on canvas
중국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히는 우관중은 동서양의 예술을 결합시켜
“유화의 중국화” “중국화의 현대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 장쑤성 이싱에서 태어나 1942년 항저우 국립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프랑스에 유학해 1947년 파리 고등미술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이듬해인 1950년 그는 조국으로 돌아와
칭화대, 중앙미술학원의 교수로서 중국 전통 화법에 서양 미술의 추상화 기법을 조합해 중국 현대미술을 개척했다.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순수미술을 주창했다는 이유로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분뇨 지게를 이젤 삼아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59살에 첫 개인 전시회를 열었고,
1992년에는 생존 중국 예술가중 처음으로 대영박물관에서 그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창장싼샤> <루쉰의 고향> 등 유화 작품과 <봄눈> <장성> 등 중국 전통화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미술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려 중국 현대미술작품 중 최고가 기록을 잇따라 세웠지만,
그는 많은 작품들을 대중이 관람할 수 있도록 공공 미술관에 기증했다.
세상을 떠나기 몇시간 전에도 올 봄에 그린 4점의 작품 가운데 한 점인 ‘몽성’(夢醒)을 아들을 통해 홍콩예술관에 기증했다.
그의 아들 우커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작품이 비싼 가격에 팔렸지만 아버지의 소원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며
“아버지는 최고의 작품들을 판매하지 않고 공공미술관에 기증해 왔다”고 말했다.
............................................퍼 옴....................................
중국이 개방되기전 훨씬전 다녀오기도 하고 그다음에도 네번씩이나
다녀온 중국여행 자유로운 개인 여행이 아니라서
중국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지 못한것이 이제와서야 안타까운 생각이드니
사람은 항상 후회의 연속을 겪으며 살지싶다.
아주 뒤늦게나마라도 훌륭한 예술가의 작품을 만나는 일도 많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은희 선배님!
소개해 주신 우관중 화백의 그림들을 보며 감탄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터치가 보는 이로 하여금 빨려 들어가게 합니다.
어떻게 저런 천재화가의 그림을 이제야 접할 수 있다니 부끄럽고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만약 피카소가 좋으냐 우관중의 작품이 좋으냐 선택을 하라 하면
제가 동양인이라서 일까요?
무조건 우관중 화백의 작품에 서겠습니다.
김은희 선배님!
많이 보는 것도 공부의 한 방법이라는데
훌륭한 작품을 소개해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방은
품격 높은
문화가 산책이네요.
산학아~
그림 올린걸 보고 반가워하는 친구들도 있고
우선 산학이가 좋다하니 더 더욱 기쁘고 고맙구나
조심스러워하던 마음에 용기를 주네.
덕분에 나도 열심히 더 찾아보고 열중하는 시간을 가지니 행복하고
시간이 부족한듯해요 그러니 서너시간은 언제 지나는지 모르게 지나가네
체바퀴돌듯 하는 일상적인 일에 지루해하다가도 말야
우관중화백 작품들이 거의가 마음에 들어서 시간 가는줄 모른다니까.
산문도 잘 쓰셨다고해요 우 화백의 작품 전집에 산문집도 들어갔다고 하니
내가 전집을 구입하게되면 더 공부가 되지싶네.
수십군데에서 조금씩 읽어본 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서도.........................
산학이 말대로 훌륭한 예술가의 진면목을 이제라도 보게되니 행복하다.
그를 소개한 글을 올려볼게 산학아~ 조금전 또 읽은 글이야....감동이다~!!!
...............................
우관중 전집..........물론 그림전집하고 산문집(수필집) 모두 전집에 들어있다는데
한문하고 영어로만 되어있다고해서 고민중이다.
![]() |
장쑤성 이씽(宜興) 출신인 우 화백은 1942년 저장성 항저우(杭州)의 국립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국비 유학생으로 뽑혀 프랑스 파리 고등미술학교에서 유학했다. 신중국 건국 이후인 1950년 귀국한 뒤 중앙미술학원, 칭화대 등의 교수를 역임했다.
중국 전통화법에 서양미술 기법을 접목, 독특한 화풍을 형성하면서 중국화의 현대화에 기여했다. 1992년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리는 등 해외에서도 명성이 높다.
그의 작품은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미술품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1987년 홍콩에서 열린 미술전에서는 그의 작품 '교하고성(交河故城)'이 4070만위안(약 73억원)에 팔려 당시 중국 화가 작품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했다. 최근 열린 베이징 한하이(翰海)경매의 2010년 춘계 경매에서는 그의 1974년 유화 작품 '장강만리도(長 江萬里圖)'가 5712만위안에 낙찰됐다. 순수미술만을 고집한 그는 문화대혁명 당시 척결 대상으로 분류되자 시골에서 분뇨 지게를 이젤 삼아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지난 2000년부터 경매시장에서 거래된 우관중의 그림은 우리 돈으로 무려 3,200억 원. 하지만, 정작 자신은 대부분의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하고 좁디 좁은 방에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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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풍경화 한 점이 휴식을 주었습니다.
<중국 명인 50>의 작품들을 짬을 내서 보면서 감탄도 하고 또는
어지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돌아가 보게되는 우관중화백의 이 그림................평화와 안식...식상한 표현 이지만.........
좀 더 큰 그림으로 만나고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은희 언니,
좋은 화가를 소개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얼마 전 부터 미국사람들이 중국화가의 작품을 마구사드린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동 서양을 매끄럽게 믹스 해 놓은 그림을 본적이 없는둣 합니다.
덕분에 싱가 폴 뮤지움 , 홍콩 뮤지움 사이트에 들어가서
원 없이 우 관중 화백의 그림들을 보았습니다
한 없이 섬세한 세필부터 가슴이 쾅쾅 흔들리는 커다란 붓놀림이
정말 대단하다 싶어요.
몽드리앙 폴락 마티스 피카소가 다 보입니다
유롭피안 미술을 많이 좋아 했다고 특히 고호 를 좋아 했다고 하네요.
리드믹한 라인에서 음악소리가 절로 들리는듯 합니다
볼 수록 재미 있는 그림입니다 소개 해 주셔서 감사 해요.
?혜경이가 그림 올려주었다고
반가워서 산학이와 이야기했어요.
우관중 화백에 관해서는 오히려 유럽이나 미국쪽에서 먼저 더 알려졌더라구요
중국전통화의 대가들은 삼십대때 열중해서 본 적이 있지만
오히려 현대화가들은 이야기를 듣거나 아주 오래전 몇점 본 적이 있었지요.
어느 블로그에서 우즈벡의 화가들 그림을 보다 조카가 전에 중국현대화가들 그림도
한번 기회가 되면 찾아보라는 말을 들은 생각이나서 찾아보았지요.
나라가 부강해지니 예술가들도 대접을 받네요.
그런 사정은 차치하고라도 우관중화백의 그림은 그냥 좋더라구요.
연상 감탄하면서 보았지요.
고호와 고갱을 좋아했다는글을 읽고 ....그럼 그렇지 ....했답니다.
특히 고호의 그림속의 적색(붉은색)을 좋아했다지요.
오늘 모처럼 낮에도 시간이나서 중국싸이트를 어찌어찌 들어가서 우관중생애와 작품이란 동영상을
장님 파밭 헤매듯 한문을 대충 어림짐작으로 해석하면서 찾아왔지요.
그림이 좋아서 찾아보다가 조촐한 화실, 젊은시절 모습에서 노년의 주름진 모습을 보면서
그 마른체격의 어디에서 그런 찬란한 예술혼을 쏟아부었는지
존경심이 저절로 생기더라구요..........참다운 예술가 중 오랜동안 장수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으니
행복한 분이시구요.......비록 다른 국적의 예술가지만 오랜동안 그림을 찾아 볼것같아요.
전집에는 이천여점이 넘는 작품이 실렸다니 대단합니다.
문화혁명당시 손실된 작품하고 본인의 마음에 안들어 파괴한 작품 빼고는 전부 존재하나봅니다.
산문집도 여러권 출간하고 글 솜씨도 뛰어난분인가봐요.
우관중전집 탄생기(번역판)를 주문했더니 내일 배송이 된다네요 책을 받으면 우선 읽어보려구요.
역시 혜경이의 안목으로 찾아 올려 준 그림 너무 멋져요.
그림에 관심있는 동문들이 모두 좋다고 해주고 이곳에 글을 올리지않는 동문들도
좋다고 하니 모처럼 기쁘게 그림을 올립니다.
만리장성 저 멀리 하늘에 날으는 기러기들을 보면 만리장성의 규모를 생각나게 해줍니다.
< 세월>
정말 추상화는 나름대로 유추해 볼 수 있어 재미있습니다.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펴볼 수 있으니........................
어느날 우즈베키스탄의 화가 셋이 함께 공동작업으로 그림을 완성한다는
글을 읽고는 개성이 강한 예술가들이 어떻게 공동작업으로 작업을 할 수 있다는것인지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었는데...........(아트 트리오)
의외로 작품이 마음에 들었읍니다.
아주 긴 글중에 중요부분만 발췌해서 올려봅니다.
.......................
이들이 우즈베키스탄을 넘어 중앙아시아 또는 터키, 두바이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 스타일이 다른 세사람이 모여 각기 다른 아이디어를 통해 최고의 작품을 그리기 때문이다.
리더인 ‘가신모브 후산’ 을 비롯 ‘알림하노브 바흐띠요르’ ‘마를라르호드자에브 무로드’ 는 모두가 40대 초반으로
정물화 분야에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차곡 차곡 세계적 명성을 축적해 나가고 있는 검증된 실력파다.
(사족.....::: 아트트리오가 활동하기에 적당히 노련하고 힘이 왕성 할 나이들입니다.
.....76년생인 더 젊은 화가(우리집막내 나이)도 좋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니 우즈벡의 젊은 예술가들의
활동이 앞으로 더 기대가 되네요)
이들은 지난 2008년 12월에 개최된 우즈베키스탄 아카데미 기관에서 주최한 화가 시상식에서
금상을 받은 아두 하킴에 이어 은상을 수상했고, 2009년 4월에는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금상을 차지하며
명실공히 우즈베스탄을 대표하는 화가로 급성장했다.
그리고 이들 작품이 현 이슬람 카르모프 대통령궁에 전시되어 있을 만큼 그 명성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트트리오’ 대해 익히 알고 있지만 정작 이들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들 개개인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 한점에 세명의 이름을 사용한다면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공식적인 문서에도 세명의 이름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아트트리오’ 를 말할 때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라 말하지만
개인 신상에 대해서는 굳이 알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오직 그들이 사용하는 고유명사는 ART-TRIO 일 뿐이다.
.........................................퍼옴......................................
우리나라가 이젠 단일민족에서 다문화가정이 속속 생겨나고
방송에서도 소개가 되곤 하지요.
그중에서도 시집온 외국여성들이 나오는 프로를 보면
특히 우즈베키스탄의 여성들이 눈에 띄게 아름답더군요.
역시나 우즈베키스탄은 BC6세기 아랍침공시절의 영향으로 88.6퍼센트의 많은 국민이 수니파 이슬람교를 가지고있고
오랜동안 외세에 점령되어 있다가 1924년대에 마지막으로 구소련에서 독립된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이더라구요.
알렉산더대왕시절에도 점령당했었다고 하고 자연스럽게 유럽쪽 영향도 많이 받은듯합니다.
중앙아시아에 속하는 나라이니 아시아쪽 영향도 지니고 있고 소련시절부터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려인이라는 이름으로 이십만명이 살고 있답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예술적 바탕이 견고한 민족인듯합니다.
여행 다녀온 여행후기중 재미있는 표현이 있더라구요.
밭에서 일하는 여성이 돌아다보는 모습을 보니 김 태희를 보는듯하고
길을 가고있는 여성을 보니 한 가인이 서있더랍니다........ㅎㅎㅎ
도처에 아름다운 젊은 여성들이 눈에 띄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