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는 그믐 사리에 잡는 것을  최고로 치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보름 사리엔 달빛이 너무 밝아 게들이 달빛에 취해 신나게 춤추며 놀기때문에 살이 빠지지만
그믐날은 달이 숨어버린 탓에  게들이 어둠 속에서  그냥 푹 쉬기 때문에 살이 통통 오르고 알이 꽉꽉 차기 마련이라
이 때 잡는 게의 맛을 어부들은 일등품으로 친다.

게맛이 정해지는 데도
해와 달과 거기에 따라 밀고 드는 바닷물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오묘함에 그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바로 오늘이 그믐 사리이니
올 봄, 마지막 게 맛이나 보러 오라는 전갈을 받고
김포 대곶면  대명포구 바로 옆에 있는 김은희 선배님 댁을 찾았다.

 

조영선 선배님과 가는 길,
워낙 길눈이 밝은 선배님의 실력을 아는 우리들은 오랜만에 긴 수다를 떨며 토요일임에도 한가로운 길을 달린다.
31도가 넘었다는 폭염임에도 거리의 가로수는 온통 진초록으로 싱그럽기만 하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이렇게 나무도 많고 아름다운 풍요로운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일까?
학창시절 송충이 잡으러 깡통 들고 나무젓가락 들고 송도까지 걸어갔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그 때는 그랬었지" 를 연발한다.
그런데 거의 다 와서 집을 찾지 못 해 헤맨다.
분명 이 쯤인데 하면서 결국은 전화로 위치를 묻는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업은 애기 삼년 찾는다" 라는 속담처럼 바로 코 앞에 두고 집을 못 본 것이다.
얼마 전에 왔을 때에는 나무가 앙상한 초겨울이라 벽돌담이 보였는데

오늘은 나무가 우거져 벽돌담이 하나도 보이지를 않아 집을 찾지 못 한 것이다.
저 만치 최희순 선배님이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우거진 아름드리 나무들 속에 우리가 흔히 육목단이라 부르는 목단꽃도 다소곳이 인사를 하며 우리 일행을 반긴다.
푹신푹신한 잔디를 기분좋게 밟고 현관에 들어서니
주인장은 보이지를 않고

대청마루엔 벌써 교자상 두개에 음식이 가득이다.

 

벌써 눈이 휘둥그래진다.

간장게장, 빨갛게 무친 게무침,  복어찜에 갖은 나물 등등....,..

"어머나 이게 다 뭐야"

우리는 눈은 상위에 둔 채로 서둘러 인사를 나눈다.

옛날 인천에서 유명했던 김내과집 막내따님 김용숙 선배님

그리고 반포에서 오셨다는 모나리자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고 있는   최 화자선배님

그리고 우리 오팔 산악회의 한정자님

이렇게 6명이 초대를 받은 점심상이다.

 

김은희 선배님은 앞치마를 두르고 게찌재 퍼 가지고 오며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이왕 초대하는 것

좋은 날을 택해 부르고 싶어 오늘이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날을 택한 것이라고.

밥을 두솥이나 했으니 마음껏 먹으란다.   

 

이것은 우리집에서 캔 하얀 민들레 나물 

이것은 질경이

이것은 얼마전 척산온천에서 산 부지깽이 나물로 다 귀한 것이니 무조건 다 먹으란다.

살이 탱탱한 참복찜은 먹기도 처음인데 간장겨자소스에 찍어 먹으니 진짜 그 맛이 일품이다.

복어를 쪄서 먹기도 하다니.......

게찌개는 어찌도 시원하고 칼칼하던지 청량고추를 넣었느냐 물었더니

절대 아니고

다만  게를 살 때 게다리가 뜯겨져 상품성이 없는 것을 공짜로 잔뜩 얻어 와  물을 넣고 팍팍 끓인 후

그 물에 된장조금, 고추장만 풀고 게를 넣어 끓여 낸 것이라고.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는 통에 밥을 두그릇씩이나 후딱 비우고 

누룽지가 나오니 열무김치에 오이지에 사양하지 않고 먹어댄다.  

김은희 선배님 댁을 드나드는 제고 8회 어느 선배님의 말을 빌리자면

이 집의 게장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라 하더니만 그저 빈말이 아니다.

특히 오늘 게무침은 어제 대명포구에서 갓 잡아 올린 것으로 했다니 더 말 해 무엇 할까?

게 속에서 알과 살이 그냥 터져 나오는데 정신없이 먹어들댄다.

그리고 나서야

이건 어떻게 한 것이냐

저건 어떻게 한 것이냐 묻기 시작이다.

진정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게장임을 부인 할 수가  없다.

 

배가 부르니

커피에 수박을 먹으며 이야기 삼매경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시골에서 인천 신흥으로 전학을 왔는데

달리기 시합을 할 때

옆에 선 남학생의 얼굴을 보니 너무 잘생겨  다음날 그 집 앞에 가서 그 남학생을 보려고 한참동안 서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훗날 동창회에 나오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총무에게 그 남학생이 나오면 나갈테니 찾으면 연락을 하라고 했고

머지않아 그 남학생이 나온다니 나와라 해서 왠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나갔더니 

옛날의 그 모습은 찾을 수가 없고 다만 뚱뚱한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 있어 엄청 실망하고 돌아섰던 이야기에 깔깔거리고

또 한 선배님은 "그 아이 있지? 우리 학교에서 처음으로 딱 한명 경기중학교에 간 친구 말이야" 하며 말을 잇는다.

기차통학을 하며 좀 괜찮다싶은 여학생들과  즐겨  사귀던 그는 요즈음 말로 선수였나 보다.

결국은 서울대학을교를 낙방하고 다시 유명 사립대학교에 들어가더니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한 결과 모교의 교수님이 되었다고.

그 친구가 선수 생활을 하느라 서울대를 못 간 것이 오히려 인생에 득이 되었을지도 몰라 하면서

" 너도 그 친구랑 사귀었지?" 하니

"얘 말도 마라. 맨날 집에 찾아 오는데 만날 수 밖에 없었어 " 한다.

능력이 출중해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하던 그 남학생이 지금 자기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을지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오늘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 있으니 

같은 사건임에도 추억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최화자 선배님께서 큰수술 후 병문안 온 일로 한바탕 웃었다.

"넌 그 때 안 왔지?"

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김용숙 선배님.

"내가 지금도 네 병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하며  다른 일도 아니고 병문안을 기억하지 못 하다니 억울하다 한다.

그 때 영선이가 병문안을 오면서 김치를 새로 하고 밑반찬을 골고루 해 갖고 와서

먹을 때마다 내가 울었다고 고백하는 모나리자 선배님....

미우니 고우니 해도 끈끈한 우정이 아름다운 2기 선배님들이다.  

 

그리고 갑자기 최화자 선배님이 노래를 무척 잘 했다며 노래를 하라고 부추킨다.

독창이 자연스레 합창이 되고

향수, 보리밭, 등대지기등을 반주도 없이 소프라노로 알토로 자연스러운 화음이 높은 천장을 울린다. 

피아노만 있다면 최희순 선배님이 멋지게 반주를 할텐데

그것이 좀 아쉽다.

 

노래를 하고나니

김은희 선배님이 또 게를 쪄서 내 온다.

"난 더 이상 못 먹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또 게를 뜯어 그 하얀 속살을 쏙 빼서 먹는다 

정말 달다.

 "에라 모르겠다. 저녁을 안 먹으면 되는 것이지" 하며 그릇을 싹 비운다.

도대체 오늘 우리가 먹어치운 게가 몇 마리나 될까 라며   식구들에게 미안해 대명포구에 들러 게를 사기로 하고 서둘러 떠난다.

 

일정에도 없던 대명포구는

그믐 사리라고 몰려들 왔는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바닥에 내팽겨쳐진 "날 것들의 퍼득임"에 정신이 번쩍 난다.

흥정을 하고

한켠에서는 이미 5시가 넘었음에 겨우 점심 한 술을 뜨는지 정신없이 퍼 먹는다.

초입에 위치한 은희 선배님의 단골집에서는 이미 연락을 받았다며 이것 저것 권한다.

게들은 살아서 펄펄 뛰다가 다리가 엉겨붙어 손으로 잡아 뗀다.

은빛으로 빛나는 병어도 오늘이 최고란다.

게도 사고 병어도 사고 덤으로 게다리도 싹쓸이 하니 정말 뿌뜻하다.

 

나는 가끔 인천 송림동에 위치한 오래된 깡시장을 찾는다.

없는 것만 빼고 다 있는 그곳은 배추등 야채등을 경매를 부른다해서 그 옛날 부터 깡시장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이른 새벽에 나가면 지나는 사람들이 흘린 동전이랑 지폐가 있어 그것을 주우러 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직도 있는 곳

그 시장통 속에 허름한 밥집이 하나 있다.

반찬은 나물 3가지, 조그만 조기 구이 2개, 김 그리고 김치와 씨래기 된장국과 밥이 나오는데

무조건 4000원이고

국과 밥은 각자가 알아서 더 먹고싶은대로 먹는다.

그리고 누룽지도 나온다.

시장 상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어와 먹고는 설겆지도 하고 가고 커피도 손수 타서 마시고 가는  그 곳........

 

이곳 대명포구 어시장이나

송림동 깡시장이나

사람이 진짜 살아 있음을 느끼고

한 순간 절망과 우울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내가 얼마나 교만하고 자만하고 어리석은지를  그네들의 낮은 몸짓이 가르쳐준다.

금방 부서지면 그만인 인생

주름투성이의 얼굴과 구부러진 허리를 가진 그네들이 정말 열심히 사는 그곳.....

속물이 득실거리는 거짓 세상에 아직도 순수한 그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는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