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게는 그믐 사리에 잡는 것을 최고로 치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보름 사리엔 달빛이 너무 밝아 게들이 달빛에 취해 신나게 춤추며 놀기때문에 살이 빠지지만
그믐날은 달이 숨어버린 탓에 게들이 어둠 속에서 그냥 푹 쉬기 때문에 살이 통통 오르고 알이 꽉꽉 차기 마련이라
이 때 잡는 게의 맛을 어부들은 일등품으로 친다.
게맛이 정해지는 데도
해와 달과 거기에 따라 밀고 드는 바닷물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오묘함에 그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바로 오늘이 그믐 사리이니
올 봄, 마지막 게 맛이나 보러 오라는 전갈을 받고
김포 대곶면 대명포구 바로 옆에 있는 김은희 선배님 댁을 찾았다.
조영선 선배님과 가는 길,
워낙 길눈이 밝은 선배님의 실력을 아는 우리들은 오랜만에 긴 수다를 떨며 토요일임에도 한가로운 길을 달린다.
31도가 넘었다는 폭염임에도 거리의 가로수는 온통 진초록으로 싱그럽기만 하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이렇게 나무도 많고 아름다운 풍요로운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일까?
학창시절 송충이 잡으러 깡통 들고 나무젓가락 들고 송도까지 걸어갔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그 때는 그랬었지" 를 연발한다.
그런데 거의 다 와서 집을 찾지 못 해 헤맨다.
분명 이 쯤인데 하면서 결국은 전화로 위치를 묻는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업은 애기 삼년 찾는다" 라는 속담처럼 바로 코 앞에 두고 집을 못 본 것이다.
얼마 전에 왔을 때에는 나무가 앙상한 초겨울이라 벽돌담이 보였는데
오늘은 나무가 우거져 벽돌담이 하나도 보이지를 않아 집을 찾지 못 한 것이다.
저 만치 최희순 선배님이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우거진 아름드리 나무들 속에 우리가 흔히 육목단이라 부르는 목단꽃도 다소곳이 인사를 하며 우리 일행을 반긴다.
푹신푹신한 잔디를 기분좋게 밟고 현관에 들어서니
주인장은 보이지를 않고
대청마루엔 벌써 교자상 두개에 음식이 가득이다.
벌써 눈이 휘둥그래진다.
간장게장, 빨갛게 무친 게무침, 복어찜에 갖은 나물 등등....,..
"어머나 이게 다 뭐야"
우리는 눈은 상위에 둔 채로 서둘러 인사를 나눈다.
옛날 인천에서 유명했던 김내과집 막내따님 김용숙 선배님
그리고 반포에서 오셨다는 모나리자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고 있는 최 화자선배님
그리고 우리 오팔 산악회의 한정자님
이렇게 6명이 초대를 받은 점심상이다.
김은희 선배님은 앞치마를 두르고 게찌재 퍼 가지고 오며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이왕 초대하는 것
좋은 날을 택해 부르고 싶어 오늘이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날을 택한 것이라고.
밥을 두솥이나 했으니 마음껏 먹으란다.
이것은 우리집에서 캔 하얀 민들레 나물
이것은 질경이
이것은 얼마전 척산온천에서 산 부지깽이 나물로 다 귀한 것이니 무조건 다 먹으란다.
살이 탱탱한 참복찜은 먹기도 처음인데 간장겨자소스에 찍어 먹으니 진짜 그 맛이 일품이다.
복어를 쪄서 먹기도 하다니.......
게찌개는 어찌도 시원하고 칼칼하던지 청량고추를 넣었느냐 물었더니
절대 아니고
다만 게를 살 때 게다리가 뜯겨져 상품성이 없는 것을 공짜로 잔뜩 얻어 와 물을 넣고 팍팍 끓인 후
그 물에 된장조금, 고추장만 풀고 게를 넣어 끓여 낸 것이라고.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는 통에 밥을 두그릇씩이나 후딱 비우고
누룽지가 나오니 열무김치에 오이지에 사양하지 않고 먹어댄다.
김은희 선배님 댁을 드나드는 제고 8회 어느 선배님의 말을 빌리자면
이 집의 게장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라 하더니만 그저 빈말이 아니다.
특히 오늘 게무침은 어제 대명포구에서 갓 잡아 올린 것으로 했다니 더 말 해 무엇 할까?
게 속에서 알과 살이 그냥 터져 나오는데 정신없이 먹어들댄다.
그리고 나서야
이건 어떻게 한 것이냐
저건 어떻게 한 것이냐 묻기 시작이다.
진정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게장임을 부인 할 수가 없다.
배가 부르니
커피에 수박을 먹으며 이야기 삼매경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시골에서 인천 신흥으로 전학을 왔는데
달리기 시합을 할 때
옆에 선 남학생의 얼굴을 보니 너무 잘생겨 다음날 그 집 앞에 가서 그 남학생을 보려고 한참동안 서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훗날 동창회에 나오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총무에게 그 남학생이 나오면 나갈테니 찾으면 연락을 하라고 했고
머지않아 그 남학생이 나온다니 나와라 해서 왠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나갔더니
옛날의 그 모습은 찾을 수가 없고 다만 뚱뚱한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 있어 엄청 실망하고 돌아섰던 이야기에 깔깔거리고
또 한 선배님은 "그 아이 있지? 우리 학교에서 처음으로 딱 한명 경기중학교에 간 친구 말이야" 하며 말을 잇는다.
기차통학을 하며 좀 괜찮다싶은 여학생들과 즐겨 사귀던 그는 요즈음 말로 선수였나 보다.
결국은 서울대학을교를 낙방하고 다시 유명 사립대학교에 들어가더니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한 결과 모교의 교수님이 되었다고.
그 친구가 선수 생활을 하느라 서울대를 못 간 것이 오히려 인생에 득이 되었을지도 몰라 하면서
" 너도 그 친구랑 사귀었지?" 하니
"얘 말도 마라. 맨날 집에 찾아 오는데 만날 수 밖에 없었어 " 한다.
능력이 출중해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하던 그 남학생이 지금 자기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을지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오늘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 있으니
같은 사건임에도 추억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최화자 선배님께서 큰수술 후 병문안 온 일로 한바탕 웃었다.
"넌 그 때 안 왔지?"
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김용숙 선배님.
"내가 지금도 네 병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하며 다른 일도 아니고 병문안을 기억하지 못 하다니 억울하다 한다.
그 때 영선이가 병문안을 오면서 김치를 새로 하고 밑반찬을 골고루 해 갖고 와서
먹을 때마다 내가 울었다고 고백하는 모나리자 선배님....
미우니 고우니 해도 끈끈한 우정이 아름다운 2기 선배님들이다.
그리고 갑자기 최화자 선배님이 노래를 무척 잘 했다며 노래를 하라고 부추킨다.
독창이 자연스레 합창이 되고
향수, 보리밭, 등대지기등을 반주도 없이 소프라노로 알토로 자연스러운 화음이 높은 천장을 울린다.
피아노만 있다면 최희순 선배님이 멋지게 반주를 할텐데
그것이 좀 아쉽다.
노래를 하고나니
김은희 선배님이 또 게를 쪄서 내 온다.
"난 더 이상 못 먹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또 게를 뜯어 그 하얀 속살을 쏙 빼서 먹는다
정말 달다.
"에라 모르겠다. 저녁을 안 먹으면 되는 것이지" 하며 그릇을 싹 비운다.
도대체 오늘 우리가 먹어치운 게가 몇 마리나 될까 라며 식구들에게 미안해 대명포구에 들러 게를 사기로 하고 서둘러 떠난다.
일정에도 없던 대명포구는
그믐 사리라고 몰려들 왔는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바닥에 내팽겨쳐진 "날 것들의 퍼득임"에 정신이 번쩍 난다.
흥정을 하고
한켠에서는 이미 5시가 넘었음에 겨우 점심 한 술을 뜨는지 정신없이 퍼 먹는다.
초입에 위치한 은희 선배님의 단골집에서는 이미 연락을 받았다며 이것 저것 권한다.
게들은 살아서 펄펄 뛰다가 다리가 엉겨붙어 손으로 잡아 뗀다.
은빛으로 빛나는 병어도 오늘이 최고란다.
게도 사고 병어도 사고 덤으로 게다리도 싹쓸이 하니 정말 뿌뜻하다.
나는 가끔 인천 송림동에 위치한 오래된 깡시장을 찾는다.
없는 것만 빼고 다 있는 그곳은 배추등 야채등을 경매를 부른다해서 그 옛날 부터 깡시장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이른 새벽에 나가면 지나는 사람들이 흘린 동전이랑 지폐가 있어 그것을 주우러 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직도 있는 곳
그 시장통 속에 허름한 밥집이 하나 있다.
반찬은 나물 3가지, 조그만 조기 구이 2개, 김 그리고 김치와 씨래기 된장국과 밥이 나오는데
무조건 4000원이고
국과 밥은 각자가 알아서 더 먹고싶은대로 먹는다.
그리고 누룽지도 나온다.
시장 상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어와 먹고는 설겆지도 하고 가고 커피도 손수 타서 마시고 가는 그 곳........
이곳 대명포구 어시장이나
송림동 깡시장이나
사람이 진짜 살아 있음을 느끼고
한 순간 절망과 우울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내가 얼마나 교만하고 자만하고 어리석은지를 그네들의 낮은 몸짓이 가르쳐준다.
금방 부서지면 그만인 인생
주름투성이의 얼굴과 구부러진 허리를 가진 그네들이 정말 열심히 사는 그곳.....
속물이 득실거리는 거짓 세상에 아직도 순수한 그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는 정말 좋다.
?
완전 한여름의 식탁이네요.
알이 노~~랗게 밴 양념게장이 무쟈~~게 먹고 싶었는데
대리만족하고 갑니다~~~ㅇ!
게에 대한 상식도 배우고 갑니다~~~ㅇ!!
산학아~~~포식하고 너의 아픈 팔이 얼렁 회복되길 바래~~!!!
??고마워~~~산학아~~~~
그런데 게 철은 언제가 적기나?
정월이 알이 노랗게 배고 살도 통통하나?
게장 게 껍데기 가장자리 훑어서 따끈한 밥을 넣고 비비면....
고 놈에 게딱지는 달랑 한 개여서 고거이는 울아버지만 드셨는데
잡숫고 나면 고놈을 들고는 다시 가는 젓가락으로 끝을 후벼내서는 먹던
참으로 비참한(?) 시절이 있었능기라.ㅎㅎ 얼마나 스릴 있고 별미였는지.
잡숫고 남은 게딱지를 차지한 것만으로도 행운이었었는데.
그래도 그 시절로 돌아가란다면? 쫌 생각해 봐야겠네.
울엄마가 양념게장을 맛나게 잘 무치셨었는데 이젠 손맛이 없어지신것 같아.
아무리 배울려고 해도 나의 솜씨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으니.....에고~~~딱한 내신세~~~~
결국 기둘렀다가 맛깔나게 글솜씨, 요리솜씨 좋은 산학에게 신세를 져야될 것같다.
공수표 날리기 없기다~~~?!?!
기대하시라~~~개봉이가 박두여라~~~게장무침!!!
?카나다의 인선후배~
오늘 산학이가 전화해서 정확한 게철을 물어보더라구요.
인천이 고향들이라서 대부분 꽃게를 좋아 하나봐요.
어릴때 꽃게에 관한 애뜻한 추억이 있군요.
물론 나도 바다 출물중에 꽃게를 엄청 좋아하지요.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가 게철만 되면 하는말이 있답니다.
살면서 잘하고 살려고는했지만 잘못한 일도 있을것이고 그중에서도
제일 미안한 일은 살아있는 꽃게를 많이 저세상으로 보낸일이라고 말이지요
요즈음도 살아있는 게를 무참하게 살상을 했답니다.
물론 살아있는 꽃게가 싱싱하고 맛있기 때문이지요.
게 발톱으로 가끔 찔리기도하지만 (버둥거려서요) 용감하게 (요령이 사십년이니) 잘 합니다....ㅎㅎㅎ
게무침은 나는 간장게장담근장으로 합니다. 왜냐면 간장게장달일때 물1 간장1으로 끓여 만든것이니
간장이 짜지도 않고 간장게에서 우러나온 깊은맛이 있어서 그 간장에
태양초인 우리고추가루, 양파, 생강, 마늘, 파, 를 양념으로 넣고 미림(무침이니
게비린내가 나질않게합니다)을 작은컵 반컵정도 넣지요. 간장에 양념을 모두 넣고 좀 기다리면 고추가루가 불어서 걸쭉한 다대기가 됩니다. 무친게장은 오래두고 먹지는 못하니까 무치고 그다음날이면 제일로 맛이 신선하고 좋지요. 한 삼일간은 맛이 좋답니다. 무어니 무어니해도 싱싱한 살아있는게로 부두에서 갓 내려온 놈들로 사서 하면 최고입니다. 물속에 오래 살려둔 게는 좀 맛이 떨어지거든요. 게철은 봄게 5월서 6월까지인데 초기에는 게가 물렁게로 아직 여물지않아 5월 중순이후 6월 중순까지가 최고 적기입니다. 7월이후에는 알이 밖으로 나와 산란기이지요. 그리고 가을꽃게는 9월말에서 10월 까지가 적기인데요 요즈음은 해수온도가 변해서 11월이후에도 꽃게를 보기도합니다. 산학이가 전화를 했기에 내가 그랬어요 " 산학아~ 인선이 친구하고 그냥 우리집에 같이 오렴" 하고 말이지요 꽃게철에 오면 좋겠지만 아니더라도 이곳 강화나 대명포구 구경을 해보면 어릴적 생각도 나겠지요. 지금은 내가 열심한 신자는 아니지만 본명이 루시아이니 공통된 이야기거리도 있을겁니다. 게딱지 한 두서너게 안겨주고싶네요 일부러 게 먹으려 한국에 오지는 말구요....ㅎㅎㅎ 겸사겸사 오시는김에 말이지요.
? 안녕하세요~~ 김은희 루시아 선배님!
게딱지 두서너개에
...
친구 산학이 덕분에 대 선배님의 친필도 받고 영광 대한민국 입니다.
옛날엔 친정아버지께서 생선이 없으면 진지를 드시지 않을 정도로 온갖 생선국에 찌게에
바로 시장 뒤에는 깡마당에, 생선시장으로 도배할 정도로 부평시장안에 살았었어요.
뭔 인연으로 대구남자를 만났는데, 이 사람은 생선에 비린내를 싫어해서 통 생선을 안 먹어요.
그래도 생선회는 먹는데, 한 입에 비린내가 풍기면 다시 내려놓고 안 먹어요.
집에서 생선을 굽거나 요리를 한다는 것은 용납이 안되구요.
그렇게 30년도 넘는 생활을 하다보니 저도 이젠 비린것을 손에 못 대겠더라구요.
그래서 한식당엘 가면 어김없이 고등어 자반구이 시켜서 먹었었답니다.
아이들도 그래서 생선을 별로 안 먹는데, 특히 아들이 제아빠 식성이더라고요.
Daddy's Girl인 딸은 조금 저의 식성을 닮아서 생선을 좋아하는거예요.
아파트에 사시는 친정엄니가 냄새 요란한 고등어를 구어서는 통에
잔뜩 담아서 주셨었어요. 그럼 저랑 딸은 마이크로 오븐에 덥혀서 좋아라 먹어대면
남편이 인상을 잔뜩 쓰고는 씩씩거렸엇어요.
사랑스런 딸이 좋아라~~먹어대는데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잖아요.
고것을 친정엄니랑 제가 이용했던거죠.ㅎㅎ
시댁 식구중에서도 유난히 제 남편이 고렇게 까탈을 부렸던거죠.
십년도 전에 한국에 남편과 갔을 때에 시어머님께서 아침상에 아들이 왔다고
조기구이를 구어 내온거예요. 좋은 소리도 못 듣고 (담부터는 생선구이 올리지 마시라)
결혼해서 첨에는 초기에 기선 제압하겠다고 악착같이 생선요리를 했다가
매번 화를 내고 밥을 안 먹고 하니까 결국은 제가 두손 두발 다 들고는
다시는 생선곁에도 못 갔지요. 친정에나 가야 게장에, 어리굴젓에 신난다고 얻어 먹었었지요.
맛나게, 신나게 딸이랑 열심히 먹어대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없다, 오늘 밤엔 다른데 가서 자라...등등
수모를 많이 당했었어요. 아~~주 유별나게 생선을 싫어해서 은근히 생선으로 남편시집살이를 했었지요.
저는 "참복찜"을 간장계자쏘스에 찍어 먹었다는 것을 읽으면서도
그것을 전복찜으로 착각을 하고는 어제 걷기팀에 가서 전복껍질쩨 찐것을 본 양 떠들었어요.
두 여인들도 경기도 출신들이라 , 들으면서 침을 흘렸었는데 가만히 다시 읽어보니 복어요리 인가봐요.
다시 정정을 했는데 다시 또 더~~어 침을 흘려요. 복어찜이라니까요.ㅋㅋ
노란 알이 박힌 게찜에, 게 무침에 다들 안봐도 비디오 식으로
입맛들을 다시는거예요. 중국시장에 가서 사다가 게장찌개라도 해야겠다구요.
루시아선배님의 말씀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요.
복 받으실꺼예요~~~~!!! 고맙습니다~~~~
한참 오래전에 뱅쿠버에 사는 언니가(3기) 게다리만 가지런히 놓여진 포장한 것을
사줘서 갖고와서 간장게장을 담궜엇어요. 그런데로 먹을만 하더라고요.
딸이 얼마나 좋아했었던지요. 지금은 제가 아예 만질 생각을 안하니까요.
예전에 가끔 친정엄니가 해줘서 얻어 먹었었는데
이젠 엄마도 안 만드시더라고요.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는 소래가 유명하던데, 전 소래도 못 가봤잖아요.
이곳 부페에서도 6월엔 Lobster 랑 King-Crab들을 주말에 내 놓으면서 약간 비싸게 하는데
남편은 한번 가자고 해도 요지부동이라서
큰맘 먹고 성당에 우리구역 특별모임 명목을 내세워서 한 번씩 가서
포식을 하고 오기도 한답니다.ㅋㅋ 그것만 디립디 먹고나면 나중에는 속도 쓰리고
나중에 소변을 보면~~~오~ 마이갓~~! 냄새도 진동을 하더라고요.ㅋㅋㅋ
게장무침 비법을 종이에 써 놓았어요.
언제고 기회가 되면 선배님의 요리법을 해 보아야겠어요.
필히 간장게장을 담궈야겠네요. 그래야 제 맛이 나겠죠?
아~~~유~~~~!!! 노~~오란 알백이 간장 게장이 눈앞에 아른~~아른~~~~
김 은희 루시아 대~~선배님~~~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빕니다!
인선아!
그래도 여자는 결혼을 하면 남자를 따라야 한다는 섭리에 따라
지혜롭게 살아왔으니
천상 너는 조신한 한국의 여인이다.
그런데 비린내가 나지 않는 명태도 싫어 하시니?
명태는 함경북도 명천에 사는 태서방이라는 어부가 처음 잡았는데 생선 이름을 몰라 그냥 "명태"라 불렀단다.
우리 아버지 고향에서 잡은 생선이라
명태가 항상 상에 오르는 우리 집.
심지어 명태를 좁쌀에 버무려 만든 식혜는 우리집의 일품요리로
함경도 친구 분들에게도 선물로 나누어 드리곤 하지.
그래서 음식은 추억이라고도하나 봐.
멀리 카나다에서
고향도 잃고 추억도 잃어버리고 사는 인선아!
은희 언니 말 잘 들었지?
네가 이곳에 오기만 하면 우리 함께 수안산방에 가자.
인선후배~
결혼후 인선후배의 아이들 아버지의 식성을 이야기하니 나도 이런저런
옛 생각이 납니다.
여자는 대부분 결혼후 시집쪽 문화나 식성이 달라서 색다른 어려움을 느끼지요.
양쪽 가정이 모든점이 비슷하면 천만다행이구요.
산학이 말마따나 가장 따라서 마추어가다보면 여자들은 식성도 바뀌기도 하나봅니다.
우리집시댁도 시어머니께서는 생선류는 잡숫지를 못하셨어요
난 인천출신이라 바다가 가찹게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친정에서는 친정할아버지께서 온갖 생선을 좋아하셔서 사시사철 생선이나 조개류를 떨어지게 하지않으셨지요.
지금은 구도시인 용동이 친정살던곳이라
중앙시장도 가깝고 야깡이라 이름불려진 야채과일시장도
가까웠고 할아버지께서는 직접 부두에 가셔서 민어니 조기니 꽃게 준치 등을 사다
직접 생선을 다루시곤 하셨는데 어릴때 할아버지께서는
생선 회칼은 항상 날카롭게 손질해놓으시곤 생선포를 떠서
특히 어린아이만큼 큰 민어로 민어포를 만들어 말리시곤 하셨지요.
조기도 가마니로 사오셔서 지금은 구경도 못하는 크기에 조기를 말리시곤하셨는데
생각해보면 우리 어린시절엔 냉장시설이 없어 그런 건어물이 많았지싶네요.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내가
시집와서 서울에 살림을 차리고 처음으로 시골서 올라오신 시부모님 대접을 한답시고
시장서 싱싱한 생선을 사다 생선조림을 해서 올렸다가 시부모님 식성도 알아보질않고
성의없이 상을 보았다고 꾸지람을 듣기도했는데
이십대 중반인 그때 주부로서의 현명함이 하나도 없었던 초짜 시절이니
좌충우돌 한동안 주부수업이 바뻤지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구요.
시어머니께서 비린것을 안잡수시니 시누이들도 물론 생선을 먹지않다가
얼마 시간이 경과한후는 내가 가끔 만든 생선요리를 먹기시작했지요.
지금은 간장게장을 제일로 좋아들합니다.
게장담가 선물하면 너무 좋아해서 우리집에 오면
하나뿐인 오라버니의 애뜻한 마음과 함께 들려보내기도하지요.
이젠 손아래 시누이들도 육십이 내일모레거나 육십을 훨 넘긴 나이라서
같이들 늙어가네요........................막내시누이는 초등육학년인가 했었는데 말이지요.
문화가 다르고 식성도 다른 두 가정에서 만나 사는 남녀 부부들의
갖가지 사연들이 있을거란 생각입니다.
이런저런 쉽지않게 사는일을 무사히 잘 이끌어 가는 모두에게 행복한 날들이
이어지길 기도해야겠지요.
은희언니댁의 그 소문난 꽃게 파티, 정말 멋집니다.
산학후배 덕분에 무슨 무슨 나물이 올라왔는지도
보이는 듯 하구요. 나물에 욕심이 많은지라,
얼마나 맛있게, 즐겁게, 보내셨는지
덩달아 군침이 돕니다
달빛아래에서 꽃게들이 신나게 춤춘다는 말은
금시 초문인데
어느 기분좋은 애니메이션 작가가 들었다면
"달빛아래 춤추는 꽃게들"의 그림이 황홀하겠습니다.
덕분에 한참 웃었습니다.
감사하구요.
건강하신 모습들 뵐수 있어서 기뻐요.
김혜경 선배님!
제 둔한 머리로는
달빛 좋은 보름에 잡는 게가 훨씬 속이 차지 않을까 했더니
달빛에 홀려 노느라고 진들이 빠져 속이 좀 엉망이라 캄캄한 그믐에 잡는 것이 훨씬 영양가 만점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얼마나 놀아댔으면 살이 빠질까 해서 "춤추는 꽃게"라 표현을 했습니다.
당연히 금시초문일 수 밖에요.
얼마전
선배님과 소래포구에 갔을 때
생선가게에서 주는 명함을 받아들고 의아하다 하셨지요?
조금, 사리 시간등을 명시한 명함을 주고
물때를 맞춰 오라는 친절함이었습니다.
태양과 달 사이에서의 바닷물의 쏠림 현상은
오랜 바닷가 생활에서 터득한 자연스러운 지혜이니
우리는 앉아서 언제 고기가 들어오겠구나 하며 명함대로 찾아가기만 하면 그만이지요.
그리고 하얀 민들레는
약이라고 다 캐어버린 까닭에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멸종 상태라는데
희한하게도 선배님 댁에는 아직까지 있는 모양입니다.
그 민들레 나물....
약이니 다 먹고 가라 했지만
다 먹지도 못하고 남기고 온 것이 지금도 아쉽습니다.
이런 말은 하나마나 이지만
선배님께서 이곳에 계시면 당연히 함께 동행했을텐데요.
선배님의 빈 자리가 아쉽습니다.
와........
너무 멋있네요......
난 간장게장은 못 먹지만 양념게장은 잘 먹은데
양념게장 상에 올라온 것을 보니 입맛이 막 당기네요...
그리고 맛나개게 생긴 오이지랑 나물류들을 보니
침이 절로 꿀떡 삼켜집니다.
보고픈 희순언니랑 영선언니의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도 너무 반갑구요.....
꽃게찌개 .......
여긴 한국꽃게 살아있는게 없어서 청게를 가지고 게찌게를 하는데
껍데기가 너무 딱딱하고 살도 별로 없고 장도 별로 없어서 맛이 별로에요....
게찌게 정말 너무너무 먹고싶어요..
산학후배!!
책임져야겠어....
김춘자 선배님!
어떻게 그렇게 하나같이 맛이 일품일 수가 있을까요?
어느 한가지가 맛있었다고 말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혹시 선배님께서 자신있는 음식만 준비한 것은 아닐까 할 정도로요.
그러나 이미 여러 통로로 검증된 실력이니 어떤 화려한 말도 구차합니다.
먹는라고
1800평이나 되는 정원은 구경도 못하고
거실에 은행을 비롯 각종 말린 나물이랑 생선들은 다 보지도 못 하고 왔습니다.
황토방도 물론 못 보았고요.
어느 눈 많이 나리는 날
선배님네 절절 끓는 황토방에서 군고구마를 먹으며
눈 나리는 소리를 들으며 긴 이야기에 하룻밤을 보내고 싶습니다.
물론 그 자리엔 선배님이 계셔야 하겠지요?
도산학 후배!
불과 몇 초 전의 일도 송두리째 까먹어 버리는
요즘의 희한한(?)기억력을 유지하는 지라
산학 후배님의 질서 정연한 글을 메모장에 옮겨 놓고 싶네요.
울창한 숲에 감춰진 벽돌담을 찾지 못해 코 앞에서 뱅뱅 돌던 모습
불볕 같은 때이른 무더위도 은희네 집에선 달아나고 없었죠.
손님 대접을 어쩌면 그토록 푸짐하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땅에서 자란 나물
바다에서 건져 올린 꽃게와 참복
친구들의 동심으로 돌아간 화기애애한 대화
무엇보다 자연의 섭리를 터득한 듯한 은희의 공해 없는 심상
모처럼 사람사는 모습을 만끽한 하루였어요.
혜경 후배!
춘자 후배!
도산학 후배님의 글 마당에서 두 후배님을 만나니
반갑고도 반갑습니다.
불현듯 보고 싶어 지네요.
언제 다시 함께 만날 수 있을 때까지 항상 건강하길 기원할게요.
김포 은희네에 관심을 가져주고 함께 참석해 주신 특별 초대 손님
제고 오팔 산악회 회장님의 한정자 사모님께 감사드리고
은희야~ 난 시원했던 열무김치를 추천하고 싶어. 그날 정말 수고했고 고마웠어~!
영선아~
그날 오고 가는 운전을 먼길임에도 마다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송도 신도시를 들러
주안꺼정 들러 들러 갔다니 네 그 마음씀에 다시 한번 감탄했단다.
모두 집앞에서 집을 못찾는것은 이삼년전부터 더 숲이 우거지고 담쟁이가 이젠 전부
담을 뒤덮었으니 말야 ..........담이 안보이네그려......
그래 오늘 아침 일찍 사진기 들고 담장에서 보이는 전경을 찍어보았네.
2,3년생이나 5,6년생 묘목나무를 심은지 이십여년이 되니 메타세콰이어는 아파트높이 4층높이가 되는것같더라
참~!!!........세월이 빠르기도하지
그리고 음식솜씨라고하면 네 솜씨를 따라가겠냐
그저 이몸은 삼시세끼 거의 매식을 안하니 밥아줌마 노릇을 하다보니 김치도 일주일 열흘 간격으로 하게되고
시골아줌마 밥상이나 차리는거지뭐...........ㅎㅎㅎ.....생각하는것도 시골아줌마 수준이고말야.
2005년 6월 21일에 전 영희 후배가 우리집에서 우리들 2기모임때 찾아와 찍어 올려준 사진하고
오늘 아침 일찍 찍은 사진 어떻게 변했나 대조해보았네
네가 집앞에서 들어오지 못한거 이해하고도 남더라.
2005년 6월 21일 우리집 담장 전경 지금은 뺑둘러 담장전체가 모두 담쟁이하고 개나리가 덮었다네.
이 사진은 삼년전인가 찍은 길건너편에서 본 우리집 대문앞쪽의 전경일부분이다.
2012년 7월 24일의 담장 사진이고.....
2013년 오늘 6월 10일 이른아침 앞쪽담장 사진이다.....이러니 못찾았구나. 담장보고 집을 바로 찾았었는데...
나무 자라듯 사람들의 건강도 푸르렀으면 싶네.
?내 동생은 일찍이 눈이 떠져서
한양으로 학교를 다녔다네. 서울역근처에 있는 신광여,중고를 나오고(비올라 장학생?)
이대에서 비올라전공했는데, 10기에 친구들이 아마 국민학교때 친구들 같어.
권 칠화, 유 혜동 등등 함께 어울리는것 같더라고.
칠남매에 내가 둘째인데 울언니가 몸이 약해서리
내가 맏이노릇을 했었어. 나만 유일하게 캐나다에 올때까지 집을 떠나 산 적이 없어.
언니랑 내 동생들은 아현동 판자촌에서 자취를 하면서 학교에 다녔던것 같아.
그때 그동네에 집을 삿었으면 부자되었을것 같아?
가끔 엄마가 밑반찬 해주면 고놈 들고 서울귀경 했다는것 아녀.
벌써 희미한 옛일이네.
울언니가 혼났겠지. 여동생, 남동생 건사함서 학교엘 다녔으니.....
지금은 성격이 참 좋은데, 그 당시는 울언니 성격이 까칠했거든.()
끝으로 둘만 서울엘 갔나 고것은 잘 모르겠구먼.
이번 주일은 "아버지의 날"이거든.
딸이 주말에도 일 한다고 가족모임에 못온다는 전화가 좀전에 왔어.
한식당에 가게되면 짜장면 시켜오겠다고 하니까 좋아라!!하고 끊었어.
남편이 딸이 어렸을때, 애물단지~~애물단지!~~해서 말이 씨된다 하면서 나랑 말싸움도 많이 했었는데
역시나 말이 씨가 되더라고. 그래서 깨달았지.
요 세 치도 안되는 혀를 잘 놀려야 되겠구나~~~하고......ㅎㅎ
좋은 주말 보내시길.
팔은 아직도? 하기야 좀더 깁스를 대고 있어라.
풀면 자꾸 쓰게 되어서 훗날에 좀 지장이 있고, 자주 붓기도 하더라.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그래서 좋은 글도 많이 쓰길 빈다.
ㅎㅎㅎ~
대명포구를 두번 세번 들락거리면서 오는사람 싱싱한 게로, 참복도 곁들이려~~
삼 사일전엔 게장 몫으로, 초대전날엔 게 무침용을 싱싱한거로 크기따라 사들이느라~~
은희의 그 푸짐하구 손 큰 인심은 갑자기 더워진 무더위도 아랑곳 안했네!!~~
재미있고 구수하게 펼쳐진 산학의 은희네 방문기를 읽고,
헤경이도 들어오고, 춘자도 가만 못 있고!!~~ㅎㅎㅎ~~
재삼 강조하지만 은희의 지성으로 대접하려는 만만대(?)의 마음씨를 누가 따라가리!!~~
혜경이의 입맛다시는 모습도 선하고, 춘자가 한달음에 달려와 게무침을 한입 가득 넣고 좋아라하는 모습도 선하고!~ㅎㅎ~
참!~~춘자가 해외지부에 올린 "벨라지오 가든"영상에 흐르는 쇼팡의 감미로운 곡들은 음악감상실에 앉아있는 기분이었어!~~
퓨렐류드, 녹턴, 스켈죠등등, 쇼팽곡이 거진 다 올라 올 정도로 담겨져 있더군!!온종일 들을 수 있겠드라구!!~~~
참으로 오랫만에 화자, 영선이와 한자리에 모여 옛날얘기에 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다!~얘들아!~~
그러구보니, 우리 2회들과 제고 5회 부인들과의 (산학, 영선, 회장사모님) 만남의 장도 된 셈이지?~~~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한쪽에선 노래를, 다른 한쪽에선 넓은 거실 바닥에 누워 요가를 배우느라 정신없고!~~ㅎㅎ~~
영선아!~~
며칠전 김추강 부군 부음듣고 분당 서울대 병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마침 일요일 저녁이라 귀경차량으로 붐빌 88대로든,강변북로든 막힐 껄 걱정해서 외곽순환도로가 나을려나하구 쭈뼛쭈뼛하구있는데
구세주처럼 길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네가 동승하는 바람에 얼마나 편하게 왔는지!!~~
도곡동고속도로로 해서 강남~88로 해서 집으로오니, 하나도 막히질 않아, 확실히 길박사와의 동승은 행운이더구나!!~~땡큐!!~~
또!~참!~~
산학이가 싸온 떡 보따리!!~~~
모싯잎 떡 한 보따리!~~~고소한 콩고물 묻힌 두툼한 모찌 한 보따리!!~~
너무 맛있어서 실은, 식사도 전에 용숙이와 나는 벌써 맛을 봤다는 거 아냐!!~~
다시 되돌려 생각해도 너무 즐겁고 행복한 날이었어!!~~모두들에게 감사!!~~은희야!~그날을 위해 너무 수고가 많았다!!~~~
...ㅎㅎㅎㅎㅎ.........오랜만에 홈피에서도 글도 서로 주고받고말야
늙막에 희순아 네가 이웃에 살아서 행복하다
네 맑은 웃음소리에 만사 걱정이 눈녹듯 살아지고 덩달아 밝아지곤하지.
용숙이도 초등학교서부터 고교시절까지 학교를 같이다니면서도
네 진가를 이제서야 알게되었다고 지난일은 기분 나쁜일도
금새 잊어버리는 너의 쿨한 모습에 이뻐죽겠노라 하더라.....ㅎㅎㅎ
넌 모든일을 결국은 긍정적인 면으로 전환해 생각하려하잖아.
"그렇지 않을거야.........그럴리 없어" 하곤하지.
걱정이 많은 내가 배워야 할 부분이지.
고맙다.
밥한번 같이 먹는일도 행복하다 하니말야..........................................................................
잘 늙자.
최희순 선배님!
피아노 치는 그 고운 손으로
설겆이도 후딱후딱 해 치우고
깁스한 못난 후배때문에 게도 발라서 앞에 놓아주시니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실은 제 사촌은 전공이 피아노라고 어찌나 손을 위하는지 걸레질 한번 안 하고 살기 때문에
대부분 피아노 치는 사람들은 그리 살고 있으려니 했거든요.
털털하고 깔끔한 선배님!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창영동 모찌떡과 전라도 모싯잎 떡을
선배님들도 좋아할까 하고 준비했는데
맛있다 해 주시니
그것도 감사합니다.
평소엔
길 눈 밝은 조영선 선배님을 따라갔으나
대명포구 갈 때만은 우리가 선배님 차를 따라갔지요.
친구와 이웃한 죄로
끝까지 길안내까지 해야만 했던 선배님!
그것도 감사합니다.
선배님과 함께 있으면 왠지 나도 클래식이 되어가는 느낌은 왜일까요?
김은희 선배님의 음식 솜씨는 저도 몇 번 맛본 적이 있답니다.
작년에 대명포구 어시장에서 게를 사서 꽃게 찌게를 해주셨고
올 해는 태어나서 첨으로 먹어 본 메생이에 다진 연근을 넣어 부친 부침....
선배님은 부지런하신데다
정성을 다해 대해주셔서, 푸근하고,
조영선 선배님의 은희 선배님에 대한 '자연을 닮은 공해 없는 심성'이란 말에
공감하며, 그래선지 음식도 그 맛이 일품입니다.
산학 후배~
제가 그 자리에 있는 듯,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 깔깔 웃는 웃음이 느껴져
그 자리가 그리워요.
제게도, 2회 선배님(최희순. 김용숙)들과의 만남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이수인 선배님!
편안하시지요?
오늘 이곳은 매일 30도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지친 몸과 마음이
오랜만에 내리는 비로 말끔이 가시고
진초록의 나뭇잎과 진한 아까시 향기 속에 몸과 마음이 긴호흡을 합니다.
선배님을 답글을 읽고 있노라니
강화 고려산을 지나 당도했던 김금화 큰만신의 굿당.....
내림굿을 보고
선배님은 김은희 선배님 댁으로 가고
우리 일행은 급한 일때문에 그냥 인천으로 왔습니다.
이 때가 벌써 2년 전인가요?
바로 엊그제만 같은데요.
음식이란 것이 추억이 깃들어 있어 더 그리운 법입니다.
"엄마가 끓여 준 된장" 을 두고두고 최고라고 말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은 절대 모르는 엄마와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지요.
선배님 댁의 음식을 못 잊는 이유도
바로 김은희 선배님의 "자연을 닮은 공해없는 심성"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수인언니도 은희언니의 게찌게를 먹어봤다고요???
나는 왜 ?.........
산학후배!
담엔 날 꼭 은희언니네 집에 데려다 줘야 해. 꼭...
내 음식도 먹고프지만, 은희언니네 마당에 피어있는 진달래랑 과일나무 꽃들도 많이 보고파요.....
저 사진을 들여다보니. 그 방의 분위기가 보이는듯 들이는듯 하네요...
은희언니의 나누기 좋아하는 후덕한 마음때문에 맛난 밥상이 차려졌고
동기간의 사랑과 선후배간의 사랑얘기가 아름답게 꽃 피운 것 같습니다.
차암 좋습니다....
산학이가 올린 우리집 이야기 덕분에
거슬러 올라가 홈피 생긴 이후 기록된 우리집에서 모였던 9년전의 기록들을
2기 모임서부터 갖가지 모임을 찾아 보았네요.
우리집가장 건강 때문에 내려온 김포 수안산밑자락에 터를 잡은지 십사녀년
오늘 오래전 올려진 글들도 읽어보고 언제 내가 이런 글들을 썼나 싶었읍니다.
모두 수집해 정리해서 요긴하게 다시 쓰여질것같군요.
9년전 전 영희 후배가 올려준 사진을 찾다가 다시 추억에 젖었읍니다.
2기 친구들의 9년전 모습들입니다.
제일 앞줄왼편 첫번째친구는 얼마전 "세상에 이런일이"이란 SBSTV프로에
지고지순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나온 김 영애란 동기입니다.
우연히 프로를 보게되어 놀랐었지요 여고시절 노래도 잘 부르던 재주많은 친구였지요
이날 서 순석, 김 재옥, 선생님도 참석하셨었지요
이날 37명이 아마도 참석했었을겁니다. 2기방 오른쪽 상단에 항상 나오는 사진입니다.
몇명 친구는 지금 병원서 어려운 병으로 치료중이지요.
가슴이 아픕니다.......친구들아 기운내렴~!!!
2005년 6월 21일 정기모임이였지요.
2006년 10월 11일에는 44명이 모여 환갑기념 동창회를 가졌었읍니다.
내 후년 칠순이 다가오는 몇몇친구들과 함께 또 다른 꿈을 꾸어보게됩니다.
희순아!
그날 길잡이가 된 건 순전히 니네 강아지 밥과
내 건망증의 합작품이었어.(하하하)
세상에 어쩜 내가 분당 정자역까지만 타고 가기로 하고
네 차 뒷좌석에 앉아 운전석 가까이 놓인
너의 귀중한 강아지 밥이 들어있었던 핸드백을
안전하게 내 손에 잘 모시고 있었지.(용숙이가 지시했지)
거기까진 아주 모범생이었는데,,,,(우하하~~)
정자역에서 신분당선을 타려는 순간
어마나~ 내 왼쪽손엔그 귀중한
니 핸드백이 태연하게, 얌전하게 나를 올려다 보고 있는 거야.
정자역 플랫홈은 내 큰 웃음소리에
내리고 타는 사람들이 힐끗 힐끗하며 지나치는 광경.(ㅎㅎㅎ) 치맨가?
벌써 외곽순환도로 타고 멀리 가버렸을 텐데... 이 일을 어쩐다?
은희네 집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 전해 줘야 하나?
만약 급히 중요한 서류라도 빽 속에 들었다면?
일단 전화부터 해보자!!!
조수석에 앉았던 은희에게 재빨리 다이얼!
은희 목소리 들리자 마자 터져 나오는 폭소때문에 횡설 수설.
은희 ," 뭐.핸드백이 뭐라구?" "얘, 영선아! 우리 아직 정자역에 있어."
'뭐, 정자역?' ' 아니, 왜?'
" 내비 찍고 있어. 근데 잘 안 되네."
역에서 빠져 나와 극적 도킹!
우린 그날 행운이었지? 핸드백도 돌려 주고 일사천리로 여의도 도착 - 김포 도착!
김은희 선배님!
선배님 댁은 벌써부터 만남의 장소였네요.
집에서 해 주지도 않는 환갑 잔치를 선배님 댁에서 열기까지 했고요.
그러하니 당연히
칠순잔치도 친구 분들이 고대하고 있지 않을런지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정말로 2기 선배님들은 대단하십니다.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부자도 있고
방송에서 소개할 정도로 지고지순한 사랑의 주인공도 있고
친구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주는 친구도 있고요.
아하!!
"봄날"이 태동된 곳도 선배님 댁에서 라고 들었는데요?
맞습니까?
어이구~! 산학아~
"봄날" 이 태동 된곳은 물론 홈피에서 만난 선후배들간의 모임이니
홈피가 태동 된곳이고....처음에 봄날원조 몇명이 용문산에서 만났고
우리집에서 많은 선후배가 만나 얼굴을 익히고 봄날회원이 되었다면 맞는걸거야
역사는 바로 알아야지.
소모임 으로는 봄날이 처음으로 결성되었고
우리봄날모임에 참석한 2기 이춘희가 전영희 그당시 홈피만든 본인이였는데
전 영희후배에게서 그린사랑 골프모임을 만든다는 소개를 전해들은 내가 이 춘희동기에게 권유해서
그 소식을 듣고 그린사랑에 들어가 그린사랑 회장을 다년간 했었지.
그다음 2기가 시월말 십오박 십육일 걸린 남미여행중에 박 춘순동기가 여사모를 만들자하면서 회장이 되었고
소모임 역사는 바로 이렇게 이루어졌다.
소모임이 생겨난 순서는
봄날이 첫번째로 그다음이 그린사랑 세번째로 여사모라면 맞는다.
산학이가 봄날이야기를 해서 봄날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나서
얼마전에 봄날의 역사를 보긴했는데 오늘 다시 찾아가 보았네
봄날이 처음 이름이 확정된날은
관리자 이름으로 이렇게 올라왔고
오늘은 IICC출사에 대한 사전답사를 다녀올 요량으로 목요일을 비워둔 오전입니다.
이것저것 뉴스를 읽고 검색하면서
저는 참 복이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2기선배님들과는 인연도 많고 사연도 참으로 많음을 떠올리게 되거든요.
한번도 뵌 적없는 2기선배님들 모임을 찾아 길치인 제가 김포까지 방문해 찍어드린 사진을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연이어 한복 입으신 환갑기념 사진을 찍어드렸는데 제가 조금 있으면 환갑 나이가 되었으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사진을 찍을 당시는 선배님들께서 꽤 연세가 드셨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환갑을 맞이할 이즈음에 윗 사진을 보니 너무도 곱디고운 선배님들입니다.
그 때의 정열은 사그러들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사진이 이렇게 귀한 자료가 될 줄 알았으면,
더 심혈을 기울인 마음으로 찍어드릴 것을... 하는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제가 사진을 찍을 땐
최선을 다한 저의 마음도 사진 속에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흘러
지금도 저를 찾아 기억해주시는 2기선배님들을 생각하면
담쟁이로 덮힌 붉은 담벼락의 기억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다른 나무로 뒤뎦혀 있어서 붉은 담이 보이지 않는다해도
두바퀴로 달려 지나던 길에 선배님댁 대문 앞은
마음으로 기억되어져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있답니다.
선배님은 홈피 歷史 10년의 산 증인 중 한분이십니다.
영희도 왔네................
영희야 말로 우리들 인생후반에 만남의 장을 만들어 인연의 끈을 줄줄이 만들어가게 한
중요한 사람이다.
사람이 살면서 잊어버릴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이 있지.
사람이기 때문에 잊지말아야 하고.
인일홈피 때문에 모르고 지나칠 선후배들의 인연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그러면서도 사람이기 때문에 감정에 굴곡이 생겨 우여곡절도 생기고
작은 사연 큰 사연이 만들어지는것이지만
결국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욕심을 버리고 포기하는법도 배우는 또다른 학습장이기도 하다는 생각이야.
컴퓨터를 알고 인터넷세상을 접한지 십오육년이 되어 인일동기모임을 갖다
알게된 인일홈피 덕분에 인생후반에 많은 부분 영향을 받았으니
개인의 역사에도 이런 저런 사연이 엮어졌다면 맞지않을까싶다.
작년인가 불현듯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영희의 대단한 능력에 또다시 놀랐었다.
오십대후반에 자전거 라이딩으로 곳곳을 다닌다니..............................
인천에서부터 모든길이 자전거길이 아님에도 그 위험한 자동차길도 불사하고
강화도 동검도까지 왔다 들렸노라고 이곳까지 지나치지않고
달려온 영희의 그 용기를 보고 또다시 끝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되었지
부담 안드리려고 그냥 와보았노라던 마음씀에도 고마웠고 준비없는 조촐한밥상도
내다리 불편하다고 본인이 스스럼없이 차리는 수고를 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네.
사연을 거름삼아 돌아보면서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살면
노년을 그런대로 잘 살아가는것이라는 생각이야
그리고 시어머니 되심을 축하해요~!!!
그 날
정말 중요한 사실을 깜빡 했습니다.
잠시 영상물을 하나 보았는데 충격이었습니다.
몇년전 일본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로 방사능의 유출이 어디까지 왔는가 하는 자료이었습니다.
일본해는 물론 태평양까지 오염된 지금까지
우리나라엔 아직 오염이 되지를 않았는데
시간상으로 따져보면 2년 내지 3년 사이에 우리나라도 오염될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요.
요즈음
일본에서 잡히는 물고기들을 보면 기형이 많다는데
다 그런 이유때문이라고요.
물고기도 기형이 되는데 그것을 먹고 사는 우리는 어찌 될까요?
원전 사고 하나에
바다, 소금, 생선등이 몽땅 방사능에 오염이 된다는 이야기.....충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사능 너무 의식하면 신경이 너무 쓰여져서
살아갈 수 가 없으니 그냥 저냥 지내겠다 하더라.
일본에서 그중에도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
식물중에도 과일 야채 등등...........기형이나 변형된 것들을
올려준 사진들을 보면 더 끔찍하더구나
걱정이지만.............어제도 말했듯
어쩌겠어 지구가 내일 망한다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어야지
다만
죽는 줄도 모르고 순간에 사라지는 생명이라면 불가항력이지만
알면서 서서히 고생길로 들어가야되니
고것이 문제로다.
일본............참!!! 참!!!참!!!(밑에 검은바 플레이부분 소리표시를 눌러 소리를 죽이세요...노래가 어울리지않아서리)
어제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에 "생선에도 번호가 있다"라는 칼럼이 실렸습니다.
12월엔 제주 모슬포에 가서 눈발 날리는 바다를 보면서 묵은 김치에 방어를 싸서 먹어야 하고
1월에는 추자도의 삼치회
2월엔 통영의 시원한 대구탕
3월에는 도다리 쑥국이 제격이고
4월엔 신안군의 도초도에서 잡히는 간자미가 좋고
5월엔 흑산도의 홍어
6월엔 임자도의 병어를 깻잎에 싸서 먹으면 어울린다.
7월 8월엔 민어
9월엔 홍도의 볼볼락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섬이 대략 3000개가 있는데
이 가운데 전남지역에 2000개가 모여있고
다시 신안군에만 1000여개가 집중되어 있으니, 오로지 섬으로만 이루어진 특이한 군이다.
신안군에는 도초, 비금, 하의, 장산, 암태도 를 비롯 1004개의 섬이 있어 "천사의 섬"이라 불리니
천사의 섬이 포진한 신안군은 생선의 천국이라고....
그런데
그 날, 은회색의 병어를 대명포구에서 사 간 김용숙 선배님은
그 맛이 얼마나 담백한지
100만원짜리 김치 냉장고를 새로 구입하고
다시 수요일 대명포구에서 병어를 20만원어치 사서는 새로 산 김치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고 해서 놀랐는데
조용헌 칼럼을 읽으니
그 선배님이 다시 생각이 나서 컬럼의 일부를 적어 보았습니다.
산학아~
용숙이 친구가 120만원짜리 김치냉장고를 사서 냉동고로 사용하려고 하는거는 맞고
병어가 24일 월요일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아직 많이는 못샀거든
그래................월요일 물때 마추어 올거야.
서해바다는 그래도 조금 시간이 늦게 오염이 된다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나는 어제 봄 간장게장을 마지막으로 담갔고
내일모레 20일서부터 게는 산란기라서 포획을 못한다고 하더라.
전에 보면 팔월 중순서부터 한달간 출어못하고 바다고기는 잡지못하는거지.
가을이 오면 가을게를 기다려야지..............
풍요롭던 서해바다가 중국어선들이 저인망으로 싹쓸이를 한다더니
이젠 이래저래 바다속 모든 생물에게 미안하네.
체르노빌 사건보다 열배더 더 될수도있다고 하기도하고
방사능 오염이 된다니말야................
아하!
살림이라면 똑 소리 나게 하는 우리 선배님들........
본 받을 점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긴 여름 장마,
입맛 잃을 식구들을 위해 오이지 아삭아삭하게 담그고 열무김치 담그고 오이 소배기에 부추김치까지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음식을 적게 하면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친정에서 많이 담근 김치를 먹으면
사이다 맛같이 톡 쏘고 시원한 느낌의 감칠 맛이 나는데
식구가 적으니 몇 포기 하는 김치는 똑같은 재료로 하는데도 불구하고 맛이 별로인 것이
아마도 많이 하면 지네들끼리 몸을 비비며 섞이기 때문에
그런 맛이 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여럿이 먹어야 맛이 있듯이 말입니다.
옛날 어린시절.....
아이가 8명이나 되니
아침이면 전쟁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아침이면 큰 양푼에 콩나물 밥을 해서는 밥상위에 김치랑 올리면
그냥 먹는대로 엄마 앞에 앉고 엄마는 머리를 땋아주고 그리고 싸 논 도시락 들고 학교로 가곤 했습니다.
그래도 그 때 질리도록 먹던 콩나물 밥이 왜 그렇게 맛이 있었을까요?
오늘은 오랫만에 궁진해서 뭐 좀 먹을 것 없나하고 이 방에 들어왔어요....
양념게장 뚜껑에 따근한 밥 넣어 비벼먹고 싶어요.
열무김치에 국수 말아서 먹어도 맛 있겟어요....
오이지에 물 말아서 먹어도 좋겠고....
오늘은 바삐 오느라 점심 도시락을 안 싸가지고 왔더니
아......
그립다....
저 그득한 밥상이....
만약에
선배님께서 한국에만 계시다면
오이지 담근 것, 갖다 드릴텐데요.
그런데 그곳에서도 열무 물김치에 국수 말아 드세요?
제가 정말은 국수는 무엇이든지 자신이 있답니다.
왜냐하면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께서 들어 오시면 무조건 국수를 내 오라 하시니까요.
우리는 아버지 덕분에 국수를 간식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국수도
국물은 멸치로
고명은 바지락 빨깧게 볶고 양파도 볶고 계란지단도 부쳐 얹었지요.
손이 많이 가도 깨끗하고 담백하고 얼큰하니 간식으로는 최고였습니다.
덕분에 딸들이 국수는 다 잘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 "백년의 유산"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가내수공업 국수집이
우리 친정동네에 두 집이 있답니다.
길거리에 국수를 주렁주렁 말리느라 널어놓고 있는 진풍경을 언제나 볼 수 있지요.
정말은
그렇게 뽑은 국수가 더 싸고 맛나답니다.
저도
오늘 저녁엔 열무김치에 국수를 말아 먹어야겠습니다.
산학아~
이렇게 자유게시판에 우리이야기 올려도 되는건지 모르겄다.
허긴 홈피 아니면 산학이나 우리들이 이렇게 만나 선후배 정을 알기나 했게냐만서도
정 때문에 모든일이 이루어지는 우리들이니말야.
하도 짠것에 민감들 해서 원래보다 좀 싱겁게 해서 깊은맛이 덜 한듯해도
그리들 맛있다 해주니 이몸 기분은 좋았네.
내 솜씨보다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텐데 글 내용이 송구하다
무슨 인연인지
서해바다 포구 가까운곳에 살아 제일 좋아하는 게를 맘껒 먹어 볼 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이야.
이번 만남의 친구들도 내가 다리다쳐 집에 모여 보질 못했네.
보자보자하다 몇번이고 미루다 모였지.
오시던 산이 할아버지 친구들도 발길도 뜸하고 모두들 서운해하고 했었네.
올 몇번의 모임으로 다시 활기를 찾아 사람사는곳에 사람들이 드나들고
내손으로 지은 밥 같이 먹고 노는일 보다 좋은일이 어디 있겠냐는 생각이였거든
조금이라도 즐거웠다면 나도 행복하네.
사진 몇장 기념으로 찍자해서 찍은것 올려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