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이상한 피아니스트 "미로슬라브 꿀티체프"가 그제 밤에 우리 성당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다.

러시아 사람인데 차이코프스 콩쿨에서 1등한 유명한 천재 연주가란다.

우리가 앉아있는 의자 뒤쪽에서 부터 아주 소박한 외국인이 성큼 성큼 걸어들어왔다.

보통 연주회때는 연주가가 박수 받으면서 무대뒤에서 나오는데 일반 신자와 다름없이 뒷줄에 서 있다가 앞으로 나온 모양이다.

바가지 같은 이마와 푹 꺼진 눈매가 미소년의 모습이다.

연주 곡은 쇼팽의 발라드였다. 중간에 아는 소절도 있었지만 슬프고도 아름다운 쇼팽의 다른 곡과는 좀 달랐다.

그러나 건반 위에서 춤추는 손의 모습에 한동안 꿈을 꾸는 듯 했다. 유난히 큰 손과 긴 손가락이 왕거미를 연상시켰다. 왕거미 한마리가 건반 위에서 날기도 하고 발짓을 하기도 하면서 엄청난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큰 소리를 낼 때는 의자에서 뛰는 듯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했다.

악보도 없이 손이 자기 스스로 움직이고 그는 단지 감상만 하는 듯 음악에 빠져 있었다.

가까이서 피아노 거장의 연주 모습을 보고 감격해 있는 동안 곡이 끝났나보다. 연주가는 기진맥진했는지 의자 위에 앉은채 몸을 뒤로 젖히고 팔도 뒤로 늘어뜨린채 한참을 앉아있다가 일어나서 인사했다. 기립 박수는 말할 것도 없고...

 

중간 휴식시간에 옆자리에 앉았던 젊은 남자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들어와서 앉았다.

나의 독백: "커피 냄새 좋다"    옆의 남자: "네?"    나: "냄새 좋다고요"  

옆의 남자: "아, 이거요?"라더니 조금 웃는다.   그 옆에 앉아있던 그 남자의 부인 : "뭐래?"    옆의 남자: "커피 냄새 좋대"

그 남자도 웃고, 그의 아내도 웃고, 나와 함께 구경갔던 여인도 웃고, 나는 빵 터져서 2부 연주할 때 까지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았다.

왜 웃으웠을까?  나의일행: "냄새 좋다고 하면 그 남자가 먹어보라고 좀 줄것 같아?" (그럴 리는 없지, 생판 모르는 늙은 여자에게...)

얻어먹으려고 한 건 아니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느낌대로 냄새가 좋다고 말한 한 할머니의 모습이 웃으웠을 뿐이다. 그 남자의 아내는  주책없는 할머니라고 얼마나 흉봤을까?   흉봤으면 어때?

커피 얻어먹으려고 한 게 아니라도 나이가 드니 재지 않고 가리지 않고 느낌대로 생각나는대로 말하게 되더라.

 

앵콜 (아니고 부라보!란다) 연주도 좋고, 미로 슬라브의 일본인 아내도 아름답고, 깊어가는  봄날 밤에 촉촉해진 가슴을 안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