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총동창회를 마치고 잠시 시간을 내어 우리가 오르내렸던 인일동산에 올라갔다.
봄날씨도 화창하니 여기저기 푸른싹들이 눈에 띠는데
인옥이가 여기는 냉이가 많이 보이네 하며 냉이를 캔다.
현숙이랑 같이 ~
(옆에 담이 제고와 경계담이야. 건물이 새로 들어서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담은 여전히 그대로네)
오늘 인일동산에서 캔 냉이로 저녁에 된장국을 해서 먹었다.
맛이 다르네 ^^
내 기억 속 인일여고
?교문을 들어 서면 언덕 약간 왼 쪽 원형교사에
왜?가 붙어 있다.
어느 시점 부터 어떻게에 끌려 왔다.
이제 그냥~~에 끌려 가기를 바란다.
정면에는 장미 아치 아래 계단이다.
빨간 장미가 아치를 이룬 계단에
층층이 서서 합창대회를 열었다.
꽃 사세요~~~
왼편으로 더 걸어 가면
원형 분수가 있었다. 책을 읽고 있는 소녀상도 떠 오른다.
계속 가면
도서관이다. 까만 밤에 유난히도 밝았었다.
도서관 오른 쪽에 인일동산이 남북으로 길게 자리했다.
인일동산 남쪽 끝에 있는
담 너머에서는 옆 학교에서 기르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옆 학교 친구들은 개가 지키고 있는데도
밤에 담을 넘어 와서는
칠판 한가득 낙서를 해놓기도 했다.
여학생 방석을 가져 가면
예비고사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다고
가끔은 방석이 없어진 친구들도 있었다.
어떤 때는 게시판에 붙여 놓은
모의고사 성적표를 떼어 갔던 것도 같다.
청소시간에는 머리수건과 앞치마를 하고
인일동산에 숨어서 친구들과 종알이 하기도 했다.
인일동산과 학교 건물 사이가 운동장이었다.
운동장 북쪽에 화장실이 있었다.
우리가 화장실에 가는 걸 보신 선생님께서
"니들은 화장실 갈 때도 손잡고 가니?"
하셨던 기억이 난다.
현숙아! 너도 내가 부천 너의 신혼집에 갔던 걸 기억하는구나?
여럿이 모여간 게 아니고 너와 나 둘뿐이었던 걸 보면 퇴근길에 우연히 만나 네가 데려간게 아닐까싶네.
갓 결혼한 신혼 살림살이가 전혀 허술함이 없어서 시집을 짭짤하게 잘 갔구나 생각했지. 한 삼십 년 살아보니 어때?
간이 잘 맞게 시집을 잘 간거 같어? 난 지금도 잘 모르겠더라. 내 팔자가 펴진건지, 오그라진건지, 더 오그라들건지.
죽어서 관뚜껑 덮힐 때나 알란가.
다행히 나는 뻐기고, 나대고, 으시대고, 떠벌리고 그런걸 별로 안 좋아해서 분수껏 잘 지내고 있다.
윗 사진은 그전에 우리가 통일동산이라 불렀던 곳? 옆으로 보이는 담이 제고와 경계담장이야? 그네는 없어졌나보다.
그네가 있었고 제고 경계 담장 있는 곳이라면 나의 기억 속 ~
몇 년전 호주에 가있는 박응원의 글에 댓글로 썼었는데 나중에 찾아볼께. 지금은 시간이 없다.
?찾았어. 2006 .5. 7 박응원의 주말을 기다리며 의 댓글로 올렸던 짧은 글.
그 글의 배경이 너희가 냉이를 캐던 그 주변이 아닌가싶네. 나는 그 때 일본에 살고 있을 때였어.
가 본지가 언젠가? 이맘때면 등꽃도 필텐데?
생각 나는 게 있어.
고등학교 1학년 식목일에 우리집에서 해당화 한줄기를 뿌리에서 쪼개다 심은 데가
통일동산의 그네가 있는 뒤쪽 , 붉은 흙이 그대로 드러나는 담 옆이었어.
그 해는 꽃을 봤는지 생각이 안나고 이듬해 그 척박한 땅에서 살아 남은 것도 제법인데,
가느다란 가지도 치고 꽃을 피웠지.
그 해당화가 보통 해당화 보다 꽃이 크고 진한 다홍색으로 우리 엄마가 목단꽃 같다고하셨거든.
다음해엔 더 줄기가 퍼지고 탐스러운 꽃이 피었는데 동산 외진곳에 있는게 아까워서
이민호 생물 선생님을 모시고 가 보여 드렸지. 그래서 꽃이 진 후 옮겨 심은 자리가 교사 뒷편
외벽으로 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아랫쪽 화단이었어.
졸업하고 몇 해 후인가 학교에 가보니 그 나무가 무지하게 울창해진데다가 잔가시가 많은 해당화라
지나다닐 때 피해 다녀야 할 지경이 되어 맘 속으로 얼마나 미안하던지 통일동산 한적한 곳에 그냥 놔둘걸
그 후엔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긴 해두
한번 가볼 맘도 못 먹은 채 멀리 멀리 와 버렸네.
아직 있을까?
있다면 지금 쯤 꽃을 피우지 않았을까?
미라야... 넘 맛있었겠다...
너의 이쁜미소 자주 볼 수 있을거같은 예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