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오후 5시

부평에 위치한 김혜숙님의 음악학원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조용한 음악회가 열렸다.

하늘도 오늘의 축제를 축하해 주려는 심사인지 그동안의 맹추위도 물러나고 따사한 햇살이 퍼진 겨울 오후다.

 

그래도 혹시 오는 분들이 추울까 주인은 난로를 곳곳에 피우고 따끈한 차와 집에서 손수 구운 과자를 준비해 실내는 아늑함이 더하다.

미리 1시부터 멀리 부산에서 달려온 5기의 유명옥 선배님과 

김포에서 오신 2기의 최희순 선배님은 그동안 한번도 맞추어보지 못했다며 피아노연탄을 연습하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

바로 전날 귀국을 했다는 신애양은 첼로를 안고 비장한 얼굴이고

그 옆에서는 바이올린의 김혜숙님의 따님 유정양이  같이 장단을 맞추고 있다.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김은희 선배님은 친구때문에 일찌감치 오셔서는 시집 두권을 앞에 놓고 내가 들어서자 건넨다.

오늘 "밤"이라는 주제로 김정웅시인과 마종기시인의 시를 낭독하신다고.......

남편이 시인인 선배님을 곁에서 보면서

바람이 불어도 아파하고 하늘의 별을 보고도 아파하는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랑 사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남편의 시를 낭독하는 아내가 오늘은 왠지 멋지다. 

뒤이어 17기의 이주향님이 울상이 되서 들어온다.

왠일인가 했더니 매번 같이 음악회에 동행해 커피 시중등 봉사활동을 하던 아들이 오늘은 절대로 가기를 거부했다고.

이유는 엄마의 연주가 아슬슬해 차마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고....

아마도 오늘이 이주향님의 첫무대인 모양이다.

 

 

드디어 5시

음악회의 시작이다.

첫무대라는 이주향님은 너무 긴장해서인지

처음에 조금 벅벅대다가 제 자리를 찾고는 무사히 차분하게 연주를 마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첫사랑, 첫경험등 처음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두렵고 설레이는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정말 멋진 것은 즐긴다는 사실이다.
7기의 유순애는 음악이 단지 너무 좋아서 자진해서 쫓아다니며 부른다니 이렇게까지 음악을 사랑할 수가 있을까?
대전에서 서울에서 인천으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무대의상까지 챙기는 등,  관객에 대한 매너 또한 최고다.
인하대에서 독문과교수로 재직 중이신  현양순님의 부군되시는 김종은교수님 또한 아내의 동문들을 위해 기꺼이 노래를 선사했는데
원래 이런 물꼬를 터 주신 분이 한치화박사님인 것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아내의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박사님의 아내사랑...

 

아 참! 한치화 박사님께 좋은 일이 생겼다.

MBC에서 한치화 박사님을 모델로 드라마를 만들려고 지금 3명의 작가가 계속 박사님을 곁에서 취재하고 있다고요.

아마도 모래시계가 홍준표 의원이 모델이 된 것 처럼 박사님을 모델로 한  의학드라마인 모양이다.

처음이 어렵다고 하는데 오늘은 박사님의 고교 동문의 아드님인 카이스트 재학생까지 출연을 자청해 모든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이문세의 "빗속에서"를 멋드러지게 불렀는데 진 선 미를 다 갖추었으니
누구의 아들인가 다들 부러워한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빛난 이들이 있었으니
12기 임옥규님이 가르치고 있는 농아학교 학생들의 수화였다.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저렇게 맑고 고운 얼굴을 간직할 수 있다니
저 아이들은 분명 하늘이 보낸 천사가 아닐까 했다.
천사이기에 세상은 온갖 소리를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엄명을 받은 것은 아닐런지....
그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임옥규님 또한 누가 있어 따를까?
분명 작은 음악회는 누가 무어라해도 아름다운 음악회이다.

또한 초등4학년인 동네 꼬마가 키타를 가야금처럼 눕혀놓고 치는 것에 반해 데리고 와 "작은 로망스"를 들려준 임옥규님은

선생님들이라면 꼭 본 받아야 할 스승의 표상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장이이신

2기의 윤순영 선배님은 오늘도 들어오자마자 따끈한 커피 한잔 할 새도 없이 카메라 앵글을 맞추느라 여념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 보지도 못하고 줄곧 서서 오늘을 몽땅 카메라에 담는다.

훗날 이 동영상을 보고 우리는 모두 오늘을 그리워 하겠지요?

플릇 팀도 이제는 자리를 잡아

5기의 박화림님, 현양순님,  김연옥님의 삼중주가 듣기가 참 편한데

할머니를 따라온 박화림 선배님의 발레리나 손녀딸 눈에는 할머니가 어떤 모습으로 각인 되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3기의 송미선 선배님의 시낭송도

선배님의 멋스러운 모습과 조화를 이루어 듣기가 좋았는데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시작이 되어 끝무렵만 듣게 되어 좀 아쉽다.

여담이지만 혹 나같은 경우의 관객을 대비해

사전에 낭독할 시를 복사해서 한장씩 나누어 주면 어떠할까?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도 될테고 말이다.

 

오늘을 누구나 조금은 기대를 하고 왔다면 

2기의 최희순 선배님의 피아노 연주임을 부인 못 한다.

왜냐하면 전번 작은음악회 때 잠깐 선배님의 연주를 청해 들었는데 다들 깜짝 놀랄 정도로 청중을 숨죽이게 했으니까...

그동안 유명옥 선배님이 공을 들이고 들여 이번 정식으로 연주를 듣게 된 것이다.

처음 작은 음악회에 선을 뵈는 자리이니

귀에 낯익은 드볼작의 슬라브무곡과  브람스의 항가리무곡1번 등, 선배님들의 연탄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두 손이 스칠 듯 엇갈리면서 춤을 춘다.

올 한 해 우리는 이 곡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7기의 유순애가 정성껏 준비해 온 악보를 들고 다 함께 소리높여 합창을 한다.

인일여고 동문이

동문 가족이

동문의 이웃들이 한마음이 되어 함께 부르는 노래가

2012년 안녕하며 널리널리 밤하늘에 메아리 되어 퍼져 나간다.

 

특히 잔칫집을 방불케 한 

14기 조인숙님의 정갈하게 차려진 미역국을 곁들인 저녁은

역시 14기인 허인애님이 몽땅 냈다고 하니 황송한데

유자차 역시 14기 박찬정님이 손수 만들어 거제도에서 부쳐온 것이라 하니 더 더욱 미안하다.

올 때에는 누가 해 왔는지 떡까지 챙겨  싸서 주니

봄날의 인심이 봄바람처럼 훈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