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무더웠다.

더이상의 표현은 군더더기가 될 정도로 무더위란 말이 키워드였다.

요즈음 무더위를 짙게 경험한 뒤에 맞는 소슬한 바람이 그래서 더 소중히 여겨진다.

 

라디오에서 가을편지라는 노래가 흐른다.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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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이면 흔히 듣던 노래의 가사가 오늘따라 귀에 박힌다.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모르는 여자가 아름답다구?

많이 들었던  노랫말이 이렇게 시니컬하게 들린 건 처음이다.

그렇다면 아는 여자를 시인은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아는 여자가 어떻다고 시인은 아무말도 안했건만

모르는 여자의 상대어인 아는 여자에 대한 시인의 정의가 나홀로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아는 여자와 모르는 여자, 그 사람에 어디까지를 알아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속속들이 알고있는 사람을 아는 여자라한다면 그런이들 중에

온전히 아름다운 여자라고 부를 수 있는 무결점 여인이  몇명이나 있을까?

 과연 있을수는 있는 것인지 끊임없는 물음표가 꼬리를 이어 생긴다. 

그러다보니 사람이란 무엇인가?로 물음표의 영역이 넓어진다.

 

 지난 여름에 음악회에 갔었다. 지휘자의 해설이 있는 음악회였다.

드비시의 `목신의 오후`를 연주하기전에 말한  지휘자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여러분 목신은 반인반수(半人半獸) 같은 거예요. 왜 있잖아요 사람도 어떤 때 너무 사람같지 않으면 짐승이라 하고,

개나 고양이도 사랑스러울 때면 친구 같기도 하고...뭐 그런 것으로 이해하세요"

 

사람 모습의 극단적 표현이 반인반수일까?

상황에 따라 180도로 바귈 수있는 사람에 대한 서늘한 표현인가

음악을 들으며 사람에 대한 물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었다.

 

지인들이 보내주는 카톡 글중에 매끈,질끈,따끈,화끈,발끈 다섯가지 끈을 가지는 사람이 되자라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끈끈한 사람이 되자라고 살짝 방향 튼 결론으로 웃음을 주는 글인데,

끈끈한 사람이라는 것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평소 점액질을 담백한 맛을 해치는 느끼한 조미료 정도로 여겼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없었다

점액질형의 끈끈함과 담백질형의 깔끔함을  두루 갖춘 사람,이런 사람 저런 사람.

사람, 참 어렵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물음은 안하는게 상수인가

 

다시, `모르는 여자가 아름답다` 를 생각한다.

몇년 전 작고한 수필가, 그의 글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깔려 있어 읽으면서 미소를 짓게하였다.

그런데 그를 아는 몇몇 사람들의 얘기가 전혀 글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직접 대한 것은 아니니 반산반의(半信半疑) 하면서도  아직도 모르는 그녀가 아름답다.

 

모든 아는 그녀들이 아름답다고 생각될 정도로만   모르는 그녀들이었으면 좋겠다는 궤변적 사고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