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소리.......정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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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밤에 고향을 지키고 사는 친구한테 연락할 일이 있어서

전화기 앞에 앉았다.

 

한참 신호를 보내고서야 저쪽 편에 친구가 나왔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느냐는 나의 타박에 친구는

행랑방에서 새끼를 꼬고 있었노라고 했다.

 

그런데 수화기에서는 친구의 정겨운 목소리 너머로

아득하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웬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자 친구는

우리 복실이가 하도 달이 불근께 달 보고 짖는갑다.”고 대답했다.

 

내가 참 오랜만에 들으니 고향의 개 짖는 소리조차도 듣기 좋다고 하자

친구는 좀 기다리라 하고선 아예 전화기를 마루로 들고 나가서

복실이 쪽으로 수화기를 돌려 댄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땐 이미 주인을 알아본 이집 복실이가 짖기를 뚝 그치고

꼬리를 흔드는 모양이었다.

 

수화기에서 친구의 , 이놈아, 짖어! 짖으란 말이여.”하는 소리만

반복 되는 것이어서 나를 웃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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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지난 늦가을 어느 밤이었다.

전화벨이 울려서 받았더니 이 고향 친구가 다짜고짜로

들어 보라잉.”하고선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웬일인가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였더니

또르륵 또르륵하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가.

나는 친구한테 시외 통화료의 열 곱 어치의 술을 사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섣달 그믐날 밤이었다.

텔레비전으로라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려고 앉아있는데

고향의 이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해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기다리고 있다고

했더니 술을 한잔 하였는지,

단 번에 욕지거리가 얹혀 나왔다.

염병허네. 야 종소리가 울린다고 먼동이 튼다냐? 닭이 울어야제.

첫닭이 울어야 새벽이 온단 말이여.

자라. . 나가 우리 동네 첫닭이 우는 소릴 전화로 들려줄 텐께.

그 소리로 새해를 멋들어지게 열으란 말이여. 알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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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도 옳겠다 싶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잠자리에서 눈을 떠 보니 창이 훤하게 밝아있지 않은가.

 

 

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마디 해줄까 하다가 11일 아침이라서 참았다.

그런데 초이튿날 꼭두새벽이었다.

전화벨이 울려서 받았더니 고향친구 목소리였다.

 

미안타잉. 염병할 술이 병이다. 일어나 본께 해가 엉덩이에

떠뿌렸지 뭐냐. 시방 첫닭이 멋지게 운다.

이 소리로 유감 있으문 풀어 부러라. !”

 

 

 

 

 

Memory of love - Yuhki Kuram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