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스무 살 어머니

회사에 여고를 갓 졸업한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키도 작고 얼굴도 복숭아처럼 보송송하다.
어쩌다 사원들끼리 우스갯소리라도 하면 뺨에
먼저 꽃물이 번진다.
한번은 실수한 일이 있어서 나무랐더니
금방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우유를 더 좀 먹어야겠군."
혼자말을 하면서 돌아서다 말고 물어 보았다.
"올해 몇 살이지?"
그러자 신입 사원은 손수건으로 눈 밑을
누르면서 가만가만히 대답하였다.
"스무살이에요."

여자 나이 스무 살......
소녀에서 성인으로 턱걸이를 하는 저 나이.
무엇이거나 그저 우습고 부끄럽기만 한 저 시절.
나는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키웠다.
우리 어머니가 하늘의 별로 돌아가신 나이가
바로 저 스무 살이었던 것이다.
열일곱에 시집와서 열여덟에 나를 낳고
꽃다운 스무 살에 이 세상살이를 마치신
우리 어머니.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 얼굴은 기억하지 못해도
어머니의 내음은 때때로 떠오르곤 한다.
바닷바람에 묻어오는 해송 타는 내음.
고향의 그 내음이 어머니의 모습을 아련히
보이게 한 날을 기억한다. 유년 시절,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던 날이었다.
이웃 민주네 할아버지한테서 <장화홍련전>을
들었다. 이야기가 끝나서 나오니 저녁밥 짓는
연기가 골목을 자욱이 덮고 있었다.
먼 바다 쪽으로부터 물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으로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돌을 차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할머니가 군불을 때고 있었다.
부엌 문설주에 기대서 있는데 해송 타는 연기가
자꾸 나한테로 만 몰려들었다.
그때 기침을 하면서 눈을 비비며 서 있는
내 앞에 막연히 어머니의 모습이 다가오다가는
사라졌다. 해송 타는 연기와 함께.
그 뒤부터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면 해송 타는
내음이 생각 키웠다. 해송 타는 내음을 만날 때면
어머니가 조용히 떠올랐다.
중학생이 되고 2학기가 시작된 9월 어느 날이었다.
들녘에 나가서 토끼풀을 뜯어 가지고 돌아오니
이불 홑청을 깁고 있던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너 없는 사이에 너그 담임 선생님이 다녀가셨다.
작문 시간에 '어머니 냄새'라는 제목으로 글을
지었다면서?"
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바늘귀에 실을 꿸 양으로 계속 거기만 주시하면서
말을 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해송 타는 냄새에
네 에미가 떠오르다니.....
허긴 너의 외가 가는 길이 솔밭길이긴 하다.
솔띠재라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꽉 찬 고개를 넘어야 했거든.
너를 업고 네 에미가 친정을 몇 번 다녔으니
그 솔냄새가 너의 모자한테 은연중에 배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네 에미 얼굴을 보여 주랴?"
할머니는 일어나서 장롱 위에 있는
부담을 끌어 내렸다.

그때 처음으로 할머니가 뚜껑을 열어 보여 준
그 부담 속에는 여러 벌의 여자 옷이 있었다.
남치마며 인조 저고리며 단속곳이며,
그리고 색이 바래지 않은 흉배도 있었고
나막신도 있었다.
나는 부담위 맨 아래에서 한지로 싸여 있는
사진을 보았다.
그 사진 속의 어머니는 내게 참으로,
참으로 여리다는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둥근 턱에 솔순 같은 눈.
바람받이에 있는 해송 같은 낮은 코에 작은 입.
정말 명이 든 데라곤 어디 하나 보이지 않는,
하얀 박속같은 여인이었다.
"네 에미는 너한테서 엄마라는 말도 한번
들어 보지 못하고 죽었다."
"세 살이었다면서 내가 그렇게 말이 늦었던가요?"
"아니지, 너희 삼춘들이 형수라고 부르니까 너도
덩달아서 형수라고 했어. 형수 젖, 형수 물 하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울음보다도 짙은 회한의 것이었다.

그때 문득
내 앞에 환상의 지구역(地球驛)이 떠 올랐다.
순간마다 무수한 사람들이 떠나가고
대신 어린 아기들이 내려오는 곳.
떠나는 늙은 분들 틈에 끼어 앉았을 스무 살의
우리 어머니........
쪽찐 머리를 보고 혹시 남겨 놓고 가는 아이가
없느냐고 물어서 울린 사람은 없었을까.
서른 한 살 때 나는 아이 하나를 얻었다.
아이는 우리가 낯선 듯 처음엔 울고 보채기만
하더니 예닐곱 달이 되면서부터는 이쁜짓을
하기 시작했다.
우스운 일이 하나 없는데도 괜히 저 혼자
방글거리곤 했다. 나는 그러는 아이가 귀여워서
입을 맞추다 말고 해송 타는 내음을 느꼈다.
언젠가 고모가 한 말이 환청처럼 살아났다.
"네 에미처럼 무심한 여자는 드물 것이다.
너가 배고파서 울어도 좀체 젖 줄 생각을 안 하는 거야.
보다 못해 우리가 재촉하면 그때서야 일손을 놓고 가서
젖 한 모금 찔끔 주고 금방 돌아오곤 했단다."

그제야 비로소 스무 살 우리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짚었다.
아이 우는 소리에 타지 않을 어머니 속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달려오고 싶은 마음보다도 시누이들한테 눈치
보일까봐 자리를 얼른 뜨지 못했을 우리 어머니.
아무리 울보라고 소문난 나였대도 때로는
어머니 품에서 웃어 보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볼까 봐 내 어린 뺌에 볼 한 번 비비는 것도
우리 어머니는 참 어려웠으리라.
오늘도 하얀 박속 같은 스무 살 우리 어머니는 그 앳됨
그대로를 지니고 사진틀 속에서 당신보다 더 늙어 가는
아들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계신다.
풋콩에서와 같은 비린내 나는 부름이 들릴 듯도 한데....
그러나 이제는 해송 타는 내음마져도 점점 엷어져
가는 것 같아 나는 참 가슴이 아프다.
흐르는 음악은,
Sigmund Groven / Jean De Florette
어머니 그리고 엄마 맘 은 이 세상에서 가장 10000 이 불리워 진다는군
글을 읽으니 그리움에 범벅이 된 이 밤이네
박속 같은 형수를 그리는 그 맘에 그만 모니터가 흐려지네
2기 은희 언니네 박속은 요즘 티브를 타서 절정에 있는데
내가 첨 미국에 왔을때 이웃에 독일 소녀가 나를 자꾸 '여보'라고 부르기에
? 여보라고 부르냐고 했더니 그 아이 왈 자기네가 독일 살때 이웃에 한국 부인이
두명 살았는데 미국 남편들이 부인을 여보라고 부르고
따라서 미국 친척 조카들도 그 한국 부인을 여보라고 부르 더라는거야
그래서 그 아이 왈 우리 한국 여자들은 모두 여보라고 불러주나 생각 했다는거야
수인 이번해도 빨간 백일홍이 만발 해 요즘 한창이야
지난해는 추석에 가장 예쁜것을 꺽어다 엄마와 언니가 나란히 누워 계신곳
화병에 장식 했단다 지난주엔 교회 강대상도 화려하게 했고
올해도 엄마와 언니께 한 아름 꺽어 올려야겠지
이젠 해마다 그 색을 심어야겠어 기쁨조가 되였네
자다 화장실 가는 길에도 밖을 내려다 본단다
글 잘 읽었어 사진 음악 모두 인일인들에게 잔잔한 기쁨이네 아까 전화 목소리도 고맙고 총총
오늘 일요일 조용한 오후시간 무심히 들어온 5기방
정 채봉......................
우선..........긴 한숨이 나오네
동국대 국문과출신이라서 우리집도 두어번 다녀갔고
전화에서 꼭 "형수님....선배님 계십니까~" 하던
날보고는 형수라 부르고 산이할아버지께는 왜 선배님이라 하는지
궁금하지만........묻지는 않았는데
보내준 자기책속에 간간이 보여지는 외로움이 읽혀져
이해가 되기도했었네.
벌써 돌아간지 십년이 넘어가는군.
돌아간뒤 "오세암"이 영화로 나오기도 했으니
어릴때 간직한 외로움이 승화되어 한국에서는 동화작가로는 굴지의 작가이기도하니
특별한 어린시절을 보낸것이 큰 감성을 품고 작가로 거듭나게 한것이지싶네
저 세상에서 어머니와 어떤 만남을 가졌을지 말야....................
엄마께 한 가지 감사드릴 일이 있어요. 그것은 하얀 눈이 소복소복히 내리는 음력 동짓달에 저를 낳아주신 것입니다. 엄마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엄마를 만나러 그쪽 별로 가는 때도 눈 내리는 달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엄마,
끝으로 하나 고백할 게요. 엄마가 못 견디게 그리울 때는 해질 무렵이라는 것입니다. 엄마 나이 스물에 돌아가신 산소 앞에 가서 마흔이 넘은 나이로 가서 울고 온 적도 있으니까요."
수인~!
괜시리 가슴이 쩌~엉 하네.
언니들도 오시고....
울엄니의 넘쳐나는 사랑을 받아
배가 터질것 같았는데...
오늘 모처럼 엄마를 생각케 하는 글일세.
내가 얼마나 복많은 인간이었는지
비로소 알겠네.
마빡값은 넘치도록 톡톡히 받았지
오늘...
수인 생각하며 울릉도 미역취를 삶아
물에 담궈 놓았다네.
낼 새벽에 그대 생각하며 먹을라구
순호야~
엄마 생각 나지?
나는 엄마 생각보다 아버님 생각이 더 많이 난단다.
계실때 잘할껄~ 하고.
음악이며 글이며 너무 슬퍼.
화림아, 순호야 이 분의 책을 읽고
소박한 무대가 되는 시골 풍경과 그분의 따뜻한 마음이
녹아나는 글이 좋아서, 또 한 권 사왔어.
빌려읽기의 명수가 된 내가
이런 산문류는 두고두고, 생각 날때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지.
이 분의 글중, 지금까지 내가 읽은 것 중에서
'스무 살 어머니"가 제일 잘 된 것 같아.
괜히...마음 짜안한 글을 하나 갖다놓고, 여러사람 심금을 건드리네.
그래도 좋지?
나누어 읽고 싶은 글이었단다.
수인아 ~
마흔 아홉에 "난 왜이리 아홉수 넘기기가 힘든지 모르겠다 "며
힘든 병마와 싸우시던 우리 엄마는 뻐꾹새 울음소리가 봄을 재촉하던 날 먼 길 떠나셨어
그래서 난 지금도 중년 여자들을 보면 엄마를 느끼곤한다.
스무살 엄마라니 ?
한참 피어오르던 꽃송이였을 텐데....
그리고 그렇게 일찍 떠났으니
정채봉님의 엄마는
해송타는 내음으로
박속같은 해맑음으로
작가에게 순수하고 따뜻한 감성을 남기신것 같애.
이 아침
문득 꽃 바람 부는 봄이면 부쩍 보고프던 엄마가
초 가을 바람깃에 품속을 파고든다.
수인아 ~
세월이 이만큼 흘러
내가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었어도
엄마는 언제나 넉넉하고 푸근한 그리움으로 내 곁에 계시더구나.
난 가끔씩 나이드신 부모님과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부러울때도 있단다
한번만이라도 그 따뜻한 음성과 손길을 느낄수 있다면 ....
좋은 글 올려줘서
잠시나마 엄마와의 추억으로 행복했어
고마워 ~~
영순아~
엄마가 너무 빨리 가셨구나~
많이 힘들었겠네.
살기 바빠 엄마를 많이 잊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엄마 생각 많이 난다.
선후배님들 이방 주인공 수인후배는 남다른 매력 소유에 얼굴입니다
오늘은 우리들을 애잔의 늪으로 끌었군유
수인 그제밤 정 채봉 님을 써치하다가 날밤을 새우고
교회를 갔다네 그라나도 그날밤 꽃을 올리려는데 못 올라 가더군
은희 언니는 실제 그 분을 가까이에서 뵌적이 있으시네요
지는 사진으로 만 뵌 것으로는 글쓰는 분 이라기 보다는
똑 떨어지는 도덕 선생님 했으면 하는 인상을 받았지요
지는 해 질 무렵이면 수없이 찍었던 것인데도 또 찍느라고 가던길 멈추기를 자주 했는데
이제는 정 채봉 님과 친정 어머님을 떠 올릴것 같아요
지금 해가 지고 있군유 한국 태풍 조심 하셔유 총총
또 함박 같이 웃것네 이꽃 내음 대단하지 목단이라고도 하고 ~
이웃것을 찍은것일
고마워 ~ 고희 간직해 두었던것 그때 받을께 그때 만나자구 총총
아~ 너무 예뻐요.
위의 꽃은 백일홍?
어릴적 화단에 있던 꽃을 만나면 그때로 돌아가 추억에 잠기게 되요.
방이 훤해지네요.
아 ! 화리미~
다시 더 휀하게 해줄까~
이꽃 이웃에서 찍은것이야 접시꽃
전에 내가 어릴땐 의숭화라고 불렀는데 ~
흰색 뿌리는 약초라네
참 전에 올렸던 분꽃 향 고향 그리며 잘 맡았다네
여기는 기후가 뜨겁지 않아 나팔꽃도 온종일 피여 있고
분꽃 또한 때도 없이 피고
국화는 봄부터 갈까지 피고 대신 향은 훨 덜 하지
분명 내 사진 저장함엔 사진이 세로 로 서 있었던것을 보냈는데 사진이 모두 누워 버렸네
수정을 하려 했는데 영 딴것이 떠서 그냥 올리네
수인이가 보면 또 함박 웃겠네 수인이는 언제나 질서 정연하고 테두리까지 둘러주고 하니 말일세
그런 정성은 아마 애기가 태여나면 쬐끔 힘들걸세ㅎ 총총
ㅋㅋ
호문언니~!
저위에 접시꽃은 언니를 닮았네요.
푸근하면서...
환하고....
뭐든지 안아줄것같은...
누워 있어도 좋아요.
우리가 누워서 보면 되니깐.
질서정연,
테두리.
이런것 못해도 아가 끌어안는 그맛에 비할까요.
수인에게도 빨리 그런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선배님~
아~ 어릴적 생각에 가슴이 촉촉해지네요.
의숭아 ~ 생각나죠.
우리집 화단에 다알리아, 칸나, 채송화, 의숭화, 봉숭화, 백일홍, 함박꽃, 그런 꽃이 피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니 맘고생 많으시던 우리엄마가 그런 꽃을 보며 맘을 달래지 않으셨나 싶네요.
추억의 꽃 ~감사합니다.
예상을 넘어 할일이 많아 오랫만에 들어왔더니
음악과 그림과 글... 아련함과 그리움이 묻어나네.
어제밤 늦게 모임 끝나고 나와보니,
둥근달이 휘엉청청
그래선지
늘 음성으로만 달래던 그리움,
엄마의 손을 잡고 싶었단다..
일주일에 한번씩 하던 전화를 두번으로 바꾸게 만든 정채봉님
수인아! 고마와..
정례야~
일이 많았구나~
이 방에 들어와서 음악도 듣고 꽃향기도 느끼고 엄마 생각도 하니까 좋지?
쉬며 쉬며 해.
음악이 너무 애잔해.
화림이~
꽃을 그리는 맘들을 위하여 엄마 생각하며 미국 채송화 올려볼까
이것은 실제는 솔잎 국화이고 ice plant 인데
한국분들 사이에서 미국 채송화라고 지어짐
시애틀에서 자란것 보다는 사철 꽃을 볼수 있는 엘에이 것이
더욱 강렬한 색과 함께 탐스럽고 크더군
지난 1월 동문모임에 가서 찍은것일세 여기는 7월이 되어야 피는데 ~
어머나 선배님~
어쩜 색이 저렇게 고울까요?
예전에 주택에 살때 저 꽃이 있었는데 (그땐 소국이라 불렀어요) 어찌나 잘 번지는지 나중엔 여기 저기 듬뿍 무리져 피어있어서
아주 예뻤어요.
그런데 저렇게 예쁜 색은 아니었어요.
소국이랑 조금 다른것 같기도 하고~
꽃잎이 좀 더 긴것 같기도 하네요.
암튼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때요.
우리에게 기쁨을주고 향기를 전해주면 되지요.
예쁜 꽃이 너무 많아요.
8월에 함백산 들꽃 축제 갔는데 말이 들꽃 축제지 꽃도 몇종류 피어있지 않고 곰배령 보다 못하더라구요.
그래도 찍어온것 몇개 올려 볼까요?
미국선 또 한국의 꽃들이 그리우실테니까~
아! 뭐니 뭐니 해도 고냉지 배추가 고소 하겠네
겉 저리해서 밥에 서리서리 언져서 씩씩하게 먹는것을 상상! 하게나 ~
헌디 그 나리꽃과에 속하는것은 여기도 10000 지
원추리라고 그꽃이 동상이 위에 올린것과 흡사한데 그 꽃 파일 찿다가 못 찿겠기에
대신 지난해 찍은 초코렛 색 해바라기를 올리네 신기한 색이긴 하나 눈에 뜨이지는 못하고
매해 동래 아이들이 산보 하면서 자연 학습장 모양 올해도 이집 해바라기가 피였네 하기에
동래 아이들보다도 우리 정원을 보고 그냥 지나칠까봐 내가 섭섭해서 해바라기는 매해 심는다네 총총
수인아~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기억 안나고 어렴풋이 해송 타는 냄새 만으로 어머니를 기억하는 시인의 가슴 아픈 사연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음악도 꽃 사진도 글과 어울려.
아직 엄마가 살아계시니 좋겠네.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 다 돌아가시니 가끔 아주 쓸쓸할때가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