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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오인숙

                                                

 대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처럼

누에들이 뽕잎을 먹고 있네

새파란 나뭇잎만 먹고도

곱고 부드러운 실을 뽑아

비단이 되는 삶이 있다니

 

온갖 기름진 음식에

철철이 단내 풀풀 나는 과일을 먹고도

독한 말만 쏟아내는 사람아

꿈틀거리는 누에만도 못하니

어쩌면 좋으냐

 

오늘 나는 스승을 만났네

밥을 먹고 잠자는 것조차

어느 누군가의 따스한

한 벌 옷을 짓기 위해 살아온

손가락보다 작은 성자를 보았네

 

곡(哭)을 하듯 지극한 몸놀림으로

고치를 짓는 누에여

사람은 말의 고치를 짓고

그 속에 들어가 살아가는 것을

진작 알았어야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