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이 모두 끝난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닌가?
김혜숙 악장님의 소개로 최희순 선배님(2기)이 무대에 올라 피아노 앞에 앉는다.
슈베르트의 방랑자 2악장이 실내를 뒤흔든다.
갑자기 소름이 쫙 돋는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확인을 한다.
어마나! 주인공은 백건우가 아니라 분명 최희순 선배님이 맞네.


한번인가?
최희순 선배님의 피아노 연주를 우연히 듣은 적이 있었다.
유정희 선생님과 함께 한 자리에서 선생님이 우리의 요청에 못이겨 노래를 부른 것이 발동이 걸려 인일여고로 이동을 해
강당에서 선생님은 노래를 하고 그 반주를 악보도 없이 선배님이 한 것이다.
학창시절...
선배님은 늘 유정희 선생님의 반주자일 정도로 연주 실력이 출중해서
음악을 하는 동문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도 "인일의 전설" 로 불린다고 했는데
오늘 이 소리는 그 말을 진정 실감케 하고있다.

늘 큰 소리로 웃기를 잘해 성격이 털털한 줄만 알고 있었는데
어디에 저런 섬세하고  낭만적인 면이 숨어있었다는 말인가?

다들 숨을 죽이고 듣고있다.
오늘만 해도

연주를 할 때마다 왼손으로 음반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는 선배님께 "선배님도 연주하고 싶으시지요?"라고 묻곤 했는데 말이다.

 

봄날의 작은 음악회...
나에게는 이번이 세번째이다.
맨처음 임경선 선배님이 플루우트를 연주한다고 해서 오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가 조금은 서툴러도 인간적이다 싶어 끌리기 시작했다.
유명옥 선배님과 너무 잘 맞는 우유빛깔의 한유정양도 이제는 익숙하고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면  아 이제부터 프로의 무대이구나 정도는 알게되었다 할까?
특히 이번엔 유명옥 선배님의 사단이 좌중을 휘어잡는다.

부산에서 인천까지...

음악회가 있다하면 만사를 재치고 달려오는 유명옥 선배님의 음악에 대한 정열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그러나 이번에 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달란트가 있었으니
집안이 음악가족으로
오빠, 올캐(인일8기 박은숙), 조카, 남동생이 몽땅 등장해 놀라게했다.
엄마의 피아노 연주에 노래를 하는 아름다운 딸의 모습은 어느 유럽의 귀족 집안을 보는 듯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인기는 유명옥 선배님의 오빠였다.
경쾌한 아코디언 선율에 모두의 어깨가 들썩이더니
드디어 오빠부대의 환호에 이어
이번 태백여행에 오빠를 모시고 가자 라는 즉석 제안이 나오기도 한다.
앞에서 키타연주를 수줍게 한 봄날식구의 남편되시는 분은 계속 수줍은지 웃기만 한다.

 

오늘은 본의 아니게
오랜만에 얼굴을 보여주는 김은희 선배님과 최희순 선배님(2기)의 도착이 늦어지는 관계로 20분 늦게 시작을 했다.
선배님들이 늦는 바람에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을까?
이미자 총동창회장님이 김자미 사무국장과 작은 음악회를 찾아와 격려를 주시니 다들 기분이 좋은지 이야기꽃이 활짝 폈다.
전임 총동창회장이신 유명숙 선배님도(2기) 오셨으니
2기에서 17기까지가 한자리에 모여
자리가 비좁아 터질 지경이니 앞으로는 좀 더 큰 무대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다.

 

시낭송을 한

임경선 선배님과 김은희 선배님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오간다.

인터넷의 발달로

나도 모르는 요상한 한국말이 판을 치고

청소년들의 입에서 나오는 상스러운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데

우리 모두가 시를 사랑하고 아름다운 말을 쓰는 날은 과연 언제나 올까? 

시인이 죽은 사회.....

그래도 여기에는 이처럼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린봐 라는 특이한 악기를  연주하는 김광숙 선배님의(5기) 따님은
어제 카나다에서 왔다는 약혼자의 오보에와 듀엣을 했는데 얼마나 재미있게 설명을 하는지 우리는 그녀의 매력에 빠졌다.
"엄마는요, 내가 미국에 가서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있는 줄 알았지만 저는 딴 짓을 했어요" 라며 약혼자를 소개하니 얼마나 귀엽던지...
우리 세대는 저러고 못 살았으니 완전 부러움의 대상으로
한순간 영화 속의 한 장면인가 했다.

이 모든 장면을 카메라에 담느라 좁은 공간을 비집고 다니는 멋장이 윤순영 선배님(2기)과 바지런한 김자미님(8기)

 내일이면 어김없이 이 분들 때문에

오늘이 다시 그리워지겠지요?

 

너무도 맛난 뷔페식은 쫀숙이 표라 하는데

오이지가 얼마나 입에 착착 붙는지 밥을 두그릇이나 먹었고

또 김은희 후배(9기)의 딸이  손수 구웠다는 과자

그리고 선물로 나누어 준 호박꽂이 시루떡과 수건까지 받아들고 오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역시 인일이구나!

마지막으로 합창을 하는데 연습을 해 본 적도 없건만 그냥 2부로 자연스레 화음이 나오는 우리들...

음식에서 부터 척척 못 하는 것이 없는 우리들...

어디에 내 놓아도 빠지지 않는 재주들을 가진 우리들...

그리고 자식을 잘 키우고 무엇보다 가정이 화목한 우리들....

이 모든 것을 보여준 김순호 대장님을 비롯,  총지휘를 한 김혜숙님(12기)등 "봄날"의 모든 분들께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