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박물관이 2층에 있는 하우스 정문을 열며 들어서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프로이드 생전에 여기를 드나 들었을까 싶으면서
그들 중에서도 구스타프 말러가 심신이 지쳐 여기를 찾아왔었을 것을 생각하니
그의 음악이 온몸을 싸는 듯하다.
박물관 입구는
벨을 눌러야 안에서 열어준다.
벨소리가 옛날식으로 "땡그르르~~~" 울리는데
어느덧 나는 살아보지도 못했던 그 먼 옛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오는 방문자들을 위해
안내도와 오디오 가이드가 설비 되어있다.
박물관 숍을 지나 옛날의 현관이 있던 곳에는
그가 지녔던 모자와 지팡이 등이 유리장안에 보관되고 있다.
윗안내판의 2와 3번사이가 현관이었으나 지금은 문이 막혀있다.
당시 환자대기실로 이용하던 응접실로 들어서는데,
맞은편 창가에 놓인 화병이 언제나 정겹다.( 3번방)
계절따라 올적마다 어울리는 꽃들이 놓여있다.
프로이드가 지낼 때도 항상 화병에 꽃이 있었다고 전한다.
벽면에 여러학회에 참석했던 기념사진과
그의 동료직관계자와의 기념사진이 즐비하다.
창가에 놓인 의자는 방문자를 위해 허용된다.
시간이 넉넉한 이들은 여기에서 독서 하기도 한다.
임상치료를 하던 방으로 들어간다.(4번 방)
최면술을 걸고 사용하던 그 시절 카우치 쇼파가 없다.
런던 박물관에 있다.
그가 살던 시절 찍어두었던 사진들로 그의 수집 소장품들을 상상해 볼 수있다.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모았던 외국의 민속품들이 많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치료실 옆으로 조용한 마지막 방은
프로이드의 연구실이던 곳이다.(5번방)
또한 이곳에서 친밀한 사람들과 만났던 곳이므로
그 시대의 유명인사 사진이 즐비하다.
이 윗벽 왼쪽 모퉁이의 두번째에,
독일 근대 철학자인 니체의 친구이자,
릴케의 연인 이었던 루우 살로메( Lou Andrea Salome)의 모습이 보인다.
이 여인을 우상처럼 여기며
수필집에 여러번 언급했던 전혜린이 떠 오른다.
루우는 프로이드를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누었었을 까?
오늘도 연구실 귀퉁에에는 Freud의 동으로 만든 얼굴상과
창가에는 그가 즐겨 보았다던 거울이 어김없이 걸려있다.
그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자취는 곳곳에 남겨있어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창가를 넘어 보이는 마당의 나무가 청청하다.
참조: 전시장, 서재( 6,7,8 번방은 나중에 올리겠어요...지금 외출해야해서요^^)
또한 사진기를 소지하지 못하고 갑짜기 방문한 까닭에
휴대전화 사진기로 찍어 화질이 선명하지 못해서 죄송하지만
눈을 스르르 감고 분위기만이라도 느끼시기를 바래봅니다.
선배님 덕분에 프로이드 박물관을 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프로이드 하면 우선 무의식의 세계가 생각납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무의식의 세계에 깊이 관심을 보였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 주를 시작하는 기분이 매우 행복합니다.
요즘 강의 듣는중 히틀러와 예수를 비교하는내용을 들었었는데
하여 인간의 인격형성의 발달단계에 열정을 보인 그가 더욱 궁금해지는 아침입니다
여행 잘 하시고 항상 건강도 챙기시길 바랍니다.
행복한 한 주 되세요*^^*
사진들이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세계처럼 생각되어서
더욱 아스라했습니다.
프로이드는 내담자(클라이언트)와의 상담에 빨간색 의자를 사용했네요^^
특이합니다.
게다가 늘 꽃(화병)을 놓았다고 했는데
마침 탁자에 놓여있는 꽃분홍색의 꽃이 참 아름답습니다.
루 살로메의 사진은 왜 걸렸을까 생각합니다.
아울러 전혜린도 생각하게 되구요...
선배님의 멋진 아우라에 또 감탄을 합니다!!
신영후배 그리고 인희후배 반가워요.
저는 지금 슬로베니아 휴양지 BLED에 있어요.
집을 떠나 여행하면서 후배들의 글을 대하니 더 반가웁네요 ^^
집떠나기전 부랴부랴 올렸어요.
작년2011년 7월 8일에 프로이드 대학을 방문하고 나서 9기방에 썼던
심리치료실의 글귀... 휴양단상 이란 제목의 글중에서
몇자 옮겨 답글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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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곳이 비엔나라
종종 나는"my love vienna~"라고 말해왔어요.
그리고 정말 좋아하고요^^
비엔나! 하면 우선 음악이 떠오르지요?
맞어요..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살아갈수록 알아집니다.
우선 문학의 정수가 곳곳에 흐르고 있어요.
하루밤에 대,중,소 연극이 250여군데에서 열리지요.
지금 부터 100여년전의 비엔나는
세계의 지성인이 거히 모여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러한 가운데,
바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
떠오르는 혜성처럼 세기를 흔들었었지요.
스위스 출신 "융"과 처음에는 같은 뜻을 갖었으나
점차로 뜻이 달러지며 공개서신으로 회자되었던 시절도 있었지요.
그 시절의 음악가중에 프로이드와 교분관계를 맺었던 사람이
"구스타프 말러"에요.
첫 딸애를 잃은후 정신적 혼돈을 프로이드를 찾으며 풀었었지요.
이런 에피소트를 소재로 해서
독일의 노벨문학가 " 토마스 만"이
"베니스의 죽음"이라는 단편소설을 썼었어요.
그후 1970년대에는 동명의 이탤리 영화가 히트를 했었고요.
그 영화의 주제음악이
바로 " 구스타프 말러" 의 심포니 5번 "아다지에토"라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지요
'토마스 만'은 생전에 비엔나를 종종 방문하여
프로이드와 교분을 맺고 강연도 같이 하였었습니다.
저는 100년이 넘은 21세기에 이곳에 살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때가 종종 있어요.
..............................................................
작년 그때나 이제나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나중에 여행마치고 귀가하면 프로이드 박물관 의 나머지 부분도 올릴께요.
지금 여기는 밤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어요.
밤비 내리는 슬로베니아......
다시 한번 가보고픈 그곳,
작은 스위스 같은 그곳.
옥인은 축복 받은 사람이예요.
평생에 한번 가볼까 말까한 곳을 내집 드나들 듯 하니...
부러버라 ~
비엔나는 잘있지요?
프로이드에 대해 다시 한번 공부하게 하는 이 아침.
방랑벽이 있어 그런가...?
주1회 껀수 잡아 바람처럼 다녀도
풍선 쪼그라들듯 효과가 며칠 못가고
또 어디론가 떠나고파 보따리를 싸고 싶으니,ㅉㅉ
대신 옥인의 사진과 글을 보며 달래야겠지 ?
아~ 그리운 순호 선배님!
여행 떠나 오기 전 한밤중에
선배님께서 공수해오신 쑥떡을 먹으며( 냉동해서 아직도 야금야금^^)
선배님께 글 드려여야지 생각하다가 시간에 쫒겨 그냥 이곳으로 왔어요.
3월 말일에서 6월초가 되었으니 정말 세월이 달려가는 듯해요.
이번 여행은
저에게 다른 때보다 여러 상념에 자주 젖게 해요.
특히 프로이드에 대해서 생각하다 떠나와서 그런지
그가 정신분석을 초자아, 자아, 잠재의식으로 분석했던 것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군요.
앞으로 지내는 여행동안 단순히 보고 느끼고 맘에 담아 돌아가
비엔나를 더 사랑하는 나날을 가지려고 이밤에 작정하는 중이에요. ㅎㅎ
돌아 갈 곳이 있으니 여행도 즐길 수 있는 것이 겠지요?
옥인 후배님 덕분에 프로이드 박물관을 가 보는 귀한 경험을 했어요.
누구에게나 어떤 생각이나 행동 뒤에 어린 시절에 형성된 핵심감정이 작용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데
프로이드 박물관을 간접 체험해 보니 카우치에 누워서 프로이드에게 분석을 받고 있는 느낌이 나네요. (카우치 사진은 없지만...)
저도 대학 시절에 전혜린에 미쳐서 검정색 코트와 검정색 머플러를 매일 입어서 친구들이 지금도 기억하곤 한답니다.
어쩐지 우울하면서도 어쩐지 열정적인 그녀의 무드가 좋았어요. 그게 멋있는 거라고 생각도 했고요...
프로이드와 전혜린을 만나면서 이 아침 오랫만에 아릿하고도 멋있는 듯한 감상에 빠져봅니다.
김암이 선배님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인사 드려요.
전혜린은 갔으나 그녀가 남긴 것들이 아직도 선연해지는 때가 있지요.
아마도 제가 같은 독일어권에 살아서 그럴 수도 있을 거에요.
프로이드 박물관은 제가 사는 집에서 3정거장 전차로 가면 있고요.
천천히 걸어 15분 정도면 당도하는 곳에 있어요.
저의 가까운 친구 하나가
몇년전에 성공한 '메디아 디자이너'직업을 버리고
프로이드대학에 나이들어 뒤늦게 들어가 작년에 공부를 마치고
임상심리연구실을 차렸어요.
그래서 그런지 프로이드가 몇년전 부터 저에게 가까히 느껴 왔었어요.
들려주셔서 말씀 주시고.. 고마워요.
제가 여행 다녀와서 답글이 늦었어요.
내내 건강하세요.
다음 주 월요일에는 파보 예르비 지휘로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의 연주회에 갈 예정이에요^^
힐러리 한 이라는 미녀 바이올리니스트의 멘델스존 협주곡을 감상할 것이고
다음으로는 말러의 교향곡 5번을 들을 거예요^^
요즘 계속해서 말러의 교향곡 5번을 들으면서 지내려고 노력하는데
쉽게 머리에 쏙 들어오진 않는군요^^ㅠ.ㅠ.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을 들으면서
5번의 곡의 이해를 돕기위해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는데요,
독일의 <토마스 만>이라는 작가와 그의 소설인,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연관지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거기에 말러의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죠^^
<위에서 선배님이 다 말씀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며칠 후에 현장의 생음악으로 만나는 말러 교향곡 5번!!
아직 1악장과 아다지에토만 귀에 들어 오고 있습니다만.....
더불어 선배님 덕으로 말러와 프로이드, 그리고 토마스 만까지 차례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나름 관련있는 것들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참 흥미롭고 좋습니다.
비록 잘 모르고 잘 외워지진 않지만요....ㅠ.ㅠ
참고로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란 영화와 관련하여 몇 점 올립니다.
작가 토마스 만
<베니스에서의 죽음>포스터..1971년 작품이라고 해요^^
아래 사진은 주인공과 미소년의 응시입니다.
영화의 스틸이래요^^
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 & 파보 예르비 & 힐러리 한~내한연주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까~~~후기를 쓰려니
가닥을 잡기가 혼란스럽습니다.
그 혼란은 진한 감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연주를 다 보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로비의 배너를 찍지고 못하고 집으로 그냥 왔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팜플릿에서 급하게 사진에 담았네요^^
말로만 듣던 힐러리 한!!!
역시 그 명성에 걸맞게 무척 좋은 연주를 들려 주더군요^^
차분하고 침착하게 시작을 하더니
역시 끝까지 긴장을 놓치 않고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아주 세련되게 잘 담아냈습니다.
악단은 그녀의 독주를 얌전하고 차분하게 뒷받침하고 있었습니다.
1악장도 좋았는데
3악장의 빠른 템포까지 매우 침착하고 절묘하게 표현을 합니다.
얼음공주의 절제미를 가득 살려준 연주였습니다.
박수를 많이 치는 청중에게 앵콜곡을 선사합니다.
무려 두 곡이나....
바하의 바이올린 소나탑니다.
힐러리 한이 처음 음반을 낸 것이 바하의 곡이라고 하더니
그녀의 연주를 들으면서 역시!!~~하고 감탄을 했습니다.
첫 번의 앵콜은 바이올린의 섬세한 기교를 살려내는 연주였고
두 번째의 곡은 바하의 서정을 잔잔하게 표현하더군요^^
두번 째 곡에서는 청중이 숨을 죽이고 그녀의 연주를 들었어요^^
멘델스존과 바하의 바이올린 곡을 힐러리 한으로부터 들으면서
오랜 기간 꾸준하게 공부하며 절제와 균형을 내세운 그녀가
갈수록 더욱 큰 진가를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으로 어땠을 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떨지 않고
교과서같이 차분하게 연주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강렬한 인상의 연주가도 좋지만 그녀처럼 차분하고 진지하게 연주하는 것도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또한 그것은 품위와도 직결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오오~~~~~힐러리 한~~~브라보!!!
이제~~어제의 백미인 말러 교향곡 5번입니다!!!
1부에선 힐러리 한의 바이올린 독주를 받쳐 주느라
음전하고 차분하게 연주를 했지만
말러의 교향곡에 와서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폭풍과 질주와 세밀함이 다 들어 있었죠^^
1악장부터 5악장까지~~무려 75분의 연주!!!
폭풍의 질주와 아주아주 연약하게 들리는 세밀한 음색까지.
말러의 교향악 5번은 악단도 청중도 모두 집중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곡입니다.
어제~~~~파보 예르비의 미리 정확하게 계산된 지휘로
악단과 청중이 혼연일체가 되는 연주를 선사했습니다.
금관과 목관과 퍼커션이 유감없이 연주를 해 주었구요,
탄탄한 현악기군은 4악장 아디지에토에서 그들의 실력을
기막히게 드러내 보였습니다.
현악기의 정점이었죠^^
물론 하프의 독주도 정말 천상을 나타내는 연주였구요^^
4악장은 말러가 알마 쉰들러에게 구애를 했던 악장으로 유명한데
저는 이 부분을 들으면서 마음이 짠해지면서 울컥해서
좀 참아내느라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또한 4악장은 영화,<베니스의 죽음>이 떠올랐습니다.
4악장의 아다지에토가 이 영화의 중요한 배경음악이었으니까요..
이 영화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어제의 음악회를 위해서 미리 공부할 때에 <베니스의 죽음>이란 영화의 몇 장면을 보았고
거기서 음악을 들으면서 더욱 익숙해진 악장이죠^^
독일의 작가인 <토마스 만>의 소설,<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영화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관계들이 연상이 되었던 악장이기도 했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이 베니스에서 만나 첫 눈에 반해서 사랑을 느끼기까지 한
열입곱의 미소년은 알마를 은유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더욱 새삼스러웠습니다.
물론~주인공은 구스타프 말러를 일컬었구요...
또한 작년에 제천 국제영화제의 일환으로 상영된 <말러의 황혼>이
다시금 떠올랐는데
이 영화는 어렵고 다소 지루해서 많이 졸면서 보았기 때문에
다시 보았음 했던 기억이...
5번 교향곡을 들으면서 내내 떠올랐습니다.
에고고...
이야기가 옆으로 많이 샜습니다...ㅠ.ㅠ.
암튼~~~~~다시 본론으로 돌아 갑니다.
어제의 말러 5번!!!
정말 최고의 연줍니다.
저는 말러 5번은 현장에서는 처음 듣습니다만~~~~
아니...이렇게 연주를 잘 하다니요.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과 지휘자인 파보 예르비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연주를 멀리 프랑크푸르트에 가지 않고도
예술의 전당에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또한 참 좋았습니다.
우스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요~~우리나라 만세!!!ㅎㅎㅎ
어제 75분의 숨가뿐 연주를 마치고도
앵콜을 무려 세 곡이나!!!
정말 기막히게 감사했지요^^
두 곡은 브람스의 헝가리 댄스였고
애잔하고 아련한 다른 한 곡은 얀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라고 합니다!!
<슬픈 왈츠>는 파보 예르비와 함께 작년에 왔던 파리교향악단과도
앵콜로 연주한 곡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곡을 들으면서 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의 명성이
하루 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파보 예르비라고 하는 멋진 지휘자의 역량과 실력이 괜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어제~~~~참으로 수고가 많았어요^^
당신들 덕분에 참으로 행복했고
어제의 연주가
저의 연주 추억에 커다란 획을 긋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연주한 열정...오래도록 기억할게요!!
고맙습니다!!
인희 후배 고마워요~
제가 여행 다니는 중에도 위에 토마스 만과 구스타프 말러에 대한 것을 올려주고..
오늘 아침에는 감성이 넘치는 연주 감상문까지...
저는 며칠전 여행에서 돌아왔어요.
딸애가
제가 여행다니는 사이 많이 아퍼 한밤중에 응급의사가 다녀가기까지 했었는데,
엄마가 걱정할 까봐 연락도 못하고 지내고 있었더라고요...
출장에서 돌아와 아직도 병석에 있는 딸을 보며 요즘 제맘이 너무 아프고 겁이나
두문불출하며 아무 글도 못쓰고 있었는데,
인희후배의 글을 보니 그냥 있기가 미안해서 몇자 적어요.
힐러리 한이 연주하는 것을 보니
저의 딸애가 한때 즐겁게 바이올린 연주하던 모습이 떠오르며 눈물이 앞을 가리는 군요.
토마스 만의 작품중에 "부덴브루크 가"( 원제:Buddenbrooks) 이라는 것을 읽으며
독일의 산업혁명후의 부호가문이 서서히 침잠하듯 몰락하는 것이 안타까웠던 때가 있었어요.
그 소설은 토마스 만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하지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문의 업을 이어가지 않고 문학의 길을 찾었던 그였어요.
그의 형 하인리히 만도 문학가이였으나 동생 그늘에 있어야 하는 운명을 가졌었지요.
그의 6명 자녀들도 문학, 연극 등.. 모두 예술가 들이었구요.
그중 한아들이 동성 연애자 였는데, 어느 날 자살을 하였어요.
이러한 상황을 참작하여
베니스의 죽음에서 ....
여러가지가 혼합된 애정을 동성애로 표현했다고도 합니다.
인희 후배가 언급한
알마 말러 (결혼전 알마 쉰들러)의 얘기도
그 시대를 무궁무진 장식하지만요...
그림, 소설, 음악등등 예술은
작가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청중과 독자의 감상도 더불어 중요하지요.
그런의미에서 인희 후배가 느낀 감명이 저에게는 참으로 기쁘고 가깝게 닥어왔어요.
인희 후배!
토마스 만에 대해서는 그냥 제 머리속에 있던것을 적어보았어요
나중에 제맘이 안정되면 좀더 자료 찾아보고 얘기 할께요.
잘 지내요. 반가웠어요.
여기 컬럼의 내용이 프로이드박물관인데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거론이 되면서
제가 지금 올린 사진과 이야기가 빗나간 느낌이 듭니다만...
토마스만,말러,힐러리 한을 다시 거론하게 되는군요^^
송구한 마음도 들어요^^
선배님이 말씀하신 토마스 만의 자전적인 소설 <브란덴부르크가 사람들>이란 책도 많이 궁금합니다.
전부터 토마스 만을 알고 있었는데
이제야 그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관심이 있어도 이렇게 계기가 되어야...
김옥인선배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꾸벅........^_^
이 추운 날씨에 내일이면 프랑크프르트로 떠나게 됩니다. 연초라서 여러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여서 표정관리하느라 미안하기만 합니다.ㅎㅎㅎ
사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뭘 잘 모르던 고등학교시절부터 무척 좋아하고 동경해마지 않았던 곳이라 티켓을 끊어 놓은 다음부터는 가슴이 떨릴 정도로 흥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대학교 방송국 지도교수님이 독일사를 전공하셔서 안식년에 독일 뮌헨대학에 갔다오신 터라 호기심은 더욱 증폭되어 갔었습니다 또 한군데인,체코의 프라하는 아주 훌륭한 보너스인 셈입니다...
독일에 가서 살아보진 않았지만 독일사람들의 근면함이나 깨끗함이 늘 부러웠구요. 스산한 날씨로 인해 자연 파생되는 철학, 법학, 의학의 발달도 무척 부러웠습니다 특히 저는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독일의 가곡인 리이트가 제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었습니다 슈베르트, 슈만의 연가곡을 사랑했고 그 노래를 부르는 피셔 디스카우,헤르만 프라이 등도 무척 좋아해서 내한공연을 빠지지 않고 보곤 했습니다 또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를 좋아했는데(실제 많이 보진 못했지요.) 해마다 여름, 그의 탄생지인 바이로이트의 와그너 축제를 너무나 그리워 했었지요... 이뿐이겠습니까, 철학의 칸트, 문학의 헤르만 헷세,괴테,쉴러 루이제린저, 토마스 만등의 책을 통해 독일을 사랑하곤 했습니다. 쌍둥이칼이 생산되는 도시인 졸링겐 남성합창단이 왔을때 백발이 하얀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공연같이 모시고 갔던 어머님이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눈에 선하게 아로새겨져서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한국사람으로는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가 정말 좋은 책이구요,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에 도취되어 뮌헨의 대학로라는 슈바빙을 아주 열광했었지요... 슈바빙의 가스등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미치도록 종아했었습니다. 닥종이 인형을 만드는 김영희씨의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와 뮌헨의 노란 민들레도 바이에른주의 뮌헨을 사랑하게 했습니다
쓰다 보니 독일~~~참 좋아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네요.
오스트리아는 싸운드 오브 뮤직의 짤츠부르크를 참 보고 싶어 했는데요 미라벨정원,아이들이 뛰놀던 강과 산보 나갔던 산들이 궁금했습니다. 비엔나는 빈소년합창단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고2때 아버지가 티켓을 사 주셔서 갔던 이대강당의 빈소년 합창단의 공연이 어찌나 좋던지 그 때 정말 황홀해 했었습니다. 빈소년합창단의 영화도 환상적이었구요... 오스트리아는 조그맣고 아주 예쁜 도시가 많다고 합니다 비엔나에는 음악가의 무덤이 많다네요... 베에토벤, 슈베르트, 요한 쉬트라우스, 하이든..등등...
체코의 전 하벨대통령은 작가라고 하는데요, 그네들의 수준높은 예술의 감각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조국 몰다우를 작곡한 스메타나, 신세계교향곡을 작곡한 드보르쟉이 프라하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프라하에는 이들의 기념관이 볼 만하다고 합니다 카를대제때 만들어진 카를교의 정취도 아주 좋다고 하네요...
가기도 전에 마치 간 것처럼 쓰게 되었는데 짧게 보는 주마간산의 여정이지만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내일까지 열심히 열심히 책을 보면서 갔다 오겠습니다 눈치는 보이지만 이렇게 좋은 곳의로의 여행을 정말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려 합니다 나의 가족 나와 연계해서 일하는 모든 분께......
예전에 썼던 글입니다. 많이 부끄러워요^^ 유치하죠?
거기에도 토마스만이 있었죠^^ㅎㅎ |
인희 후배의 글을 읽으며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어요.
두달전 이곳으로 여행 오기 전의 심경이 잘 나타나는군요.
다녀간 지금은 어떨까 ? 좀 궁금해 지네요.
개인여행이 아니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겠지만,
상상의 곳을 실제로 보았으니 그래도 좋겠지요.
저는
여기서 살면서
기회가 닿으면 닿는데로..
아니면 훌쩍 찾아가는 곳들이에요.
그래도 갈적마다 조금씩 감정이 다르곤 하지요.
인희 후배 글을 읽으며,
이제부터는 좀더 첨 보듯이 정성껏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고마워요.. 주신글 잘 간직할께요.
(본문 박물관 계속)
위의 안내도 6번 방으로 가면
현대 예술품으로 프로이드가 최면술을 이용해 정신분석할때 사용하던
카우쳐를 상징하는 철제로 만든 조각작품이 놓여있다.
원래 이방은 프로이드 가족이 살때는 어린이 방이었으나,
옆방과 연결하여 Anna Freud 기념실로 이용하고 있다.
Anna Freud (1895 Wien- 1982 London)
(1913년 이탈리아 돌로미테 여행중 부녀모습)
안나는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6명 자녀중 막내딸로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신 분석학을 전공했다.
그녀가 1922년 부터 어린이 정신분석 임상실로 사용 하던 방에는 여러 자료가 있다.(7번방)
한 벽면에 어린이 정신분석학에 대한 글이 붙여있다.
제임스 조이스 시집과
안나 프로이드의 어린이 정신 분석학 저술집
또한 각종 기념사진들이...
8번 방은 현재 서재로 사용 되고있으며
한쪽에는 또한 전시품들이 있다.
원래 가족들이 살때는 거실을 겸한 식사하던 방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의 의학자이자 문학가 아더 슈니츨러에게 보낸 서신자료
이 문학가는 의사집안의 아들로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를 직업을 가졌었으나,
문학가로서 더 오스트리아의 중요한 위치의 작가이다.
당대의 비엔나의 지적모임의 심리적 양상을 나타낸 소설이
미국에서 현대적 감각으로 영화를 만들기도 하였다.
"Eyes Wide Shut" (USA/GB 1999)... 원제:Traumnovelle(꿈이야기)
이 방에서는
천정에서 조절되는 벽면을 넓게 펼쳐 이용하여
심포지엄, 낭독회, 특별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박물관 숍은 들어 오는 입구 쪽에 연결되어 있다.
임상치료하던 카우쳐의 사진도 팔리고 있다
또한 당대의 이 곳 모습이
커다랗게 흑백사진으로 준비되어
멀리서 온 방문자들에게 반가움을 주는데..
판넬용으로 판매된다
인희 후배 잘지내지요?
프로이드 박물관 다녀온지 한달이 지나가는데,,,
그 사이 발칸여행 다녀오고
이래 저래 바쁘고 맘 못잡는 일이 생겨서
마무리를 못지고 뜸을 오래 들였었어요.
오늘 저녁부터 주말에 동알프스에 쉬러 다녀온후 다음,
월~수요일에는 그라츠와 스타이어마크주 곳곳 출장 나갈꺼고..
그러다 보면 훌쩍 7월이 되겠길래
서둘러 박물관사진 올리고 마무리 했네요^^
시간이 나면
더 보충참고 얘기를 올려보려고 해요..
프로이드 생존 시대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며
참으로 세계적으로 역사적인 일들이 많잖아요?
(저는 가끔 그시대에 살았던 것처럼 착각이 들때도 ㅎㅎ)
인희후배가 일찌기 2001년에 이미 여기를 다녀갔었군요.
그 때는 홈피연결이 안되었을때라 못만났었네요.
언제 또 오면 꼭 미리 연락 주세요.
프로이드 박물관 모실께요~~
FREUD MUSEUM은 비엔나 9구 Berggasse 19번지에 있다.
프로이드( 1856년~1939년)가 1891년부터 1938년 6월 영국으로 나치를 피해 망명하기까지
가족과 살면서 최면술을 통해 임상치료와 연구하며 수많은 인재들과 교류를 했던 곳으로
정신분석학의 메카라고 하는 곳이다.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많은 수집품을 가져갔으므로
수집 소장품은 런던에 더 많이 있으나,
그가 런던에서 살았던 기간이 일년남짓 짧았으므로
이곳이 많은 방문자에게 그의 숨결을 더 느끼게 한다고 할수 있다.
이 박물관은 1971년부터 개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