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회 - 게시판담당 : 구창임
친구들 잘지내지?
나는 요즘 바쁘~ !바쁘~!하며 지낸단다.
얼마전에 선배님 방문하신후
사이 사이 사진 정리해 해외지부에 올리고
물론 일도 하고,
근교에 나가 지내기도,
그리고 요기 조기 모임에도 다니다 보니
우리 방에 소식을 뜸하게 되었네.. 미안해.
( 한모임에 갔다가 사진기자가 찍은 것 ㅎㅎ
인터넷 메디아 비엔나 소사어티에
올려진 것을 옮긴후,
나만 보이게 짤른거야ㅋ)
토요일 아침일어나
우리방에 들어오니 빨간 등이 꺼져있어서
어제 해외지부에 댓글로 올렸던 음악을 이곳에도 올려 보거든
그쪽에는 안 들어와 보는듯한 우리친구들에게 편히 들으라고 ㅎㅎ
WAGNER의 '탄호이저 ' 3막 두번 째곡 Wolfram의 아리아 에서 나오는 곡이야.
한국제목으로는 "저녁별의 노래"라고 하나 봐.
원어 독일어에서는 O du, mein holder Abendstern 이라고 하지.
내 느낌을 적어볼께.
전반곡 ' Wie Todesahnung ( 죽음의 예감 같은 모색..)과
연결된 곡으로 'Abendstern(저녁별)'이 나오는 곡의 구성으로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곡이라고 생각해
전반부의 곡이 어둠이 잦아드는데
후반부의 곡은 떠오르는 저녁별처럼
O du,.... 밝아지는 음성이 더 환하게 들려지는 듯하네..
그래서 그런지 이음악이 끝나갈 무렵, 내마음도 환상적으로 부드러워 진단다.
꼭 내곁에서 불러주는 것 같애 ...( 이런 착각은 가끔 필요하지? ㅎㅎ)
클라우드 아바도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 반주에 맞춰
Bryn Terfel 가 노래하는데, 이곡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같구나..
친구들 음악들으며 내 맘을 받어 주세요~~~~~~~ㅇ
참~!요즘 안보이는 몇몇 친구들이 많이 궁금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믿으며
모두들 잘지내기를 바라고....
2011년 11월 12일 아침에
(지난 여름이 막 시작되던 즈음, 낮이 일년중 제일 기~인 날이라는 때에 저녁별이 뜨기 전이야.
석양에 물들어가던 비엔나 구시가지 전경을 내려보는 곳에서 식사했었는데,,,,
말로 표현하기 쉽지않은 at the moment ^^)
너희들 나를 얼마나 아니?
그러니까 인천여중, 인일여고때 말고,,, 졸업후 통털어서 말이야.
아마도 잘 모를것 같아..
사실 지금은 잠자야 하는데( 여기는 0시가 지났어)
다시 여기 들어오니 갑짜기 가깝게 말하고 싶어져서.
언젠가 장선화가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었어 . 기억나지?
나는 고백까지는 아니고... 그냥 갑짜기 옛날 생각이 떠 올라서.
미국의 전성숙이는 나보다도 더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 주어서 놀라기도 했었는데..
2009년에 김영희를 비엔나에서 첨 만나고는
그때부터 여기에 들어오면서 갑짜기 세월을 뒤집어 10대로 돌아갔었단다.
고등졸업후 계속 연결되던 ㅁㅁ친구가 있는데 ,,걔는 잘아는데.. ㅎㅎ
우리 홈피에 안들어 오니 여기서는 전혀 못만나고.
가끔 눈팅한후 나보고 조심하라고 주의는 주더라고 ㅋ
공개적인곳에 나를 너무 보여주지 말라고.
그런데 말야.. 나는 글을 쓰며 이것 저것 가리다 보면 답답하더라.
그래 그냥 여기다 이글 저글 쓰다 보니,
잘 모르는 사람은 궁금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자 ~ 그럼 어디서 부터 얘기를 할까?...
와~~ 정말 내 나이 참 많이 들었네..
정말 제대로 쓰자면 한참 걸리겠는데 ㅎㅎ.
좀더 생각해 볼께.
직접 물어 보는 사람도 없는데 급한것도 아니고 말이야...
참 ! 이말 먼저 해야겠다.
고녀시절 장래희망이 '글쓰는 사람'이었어 ^^
그래서 홈피들어와 그 못이룬 꿈을 풀어내듯 글을 쓰고 있나봐.
40년가까히 지난 후에 고녀시절로 정말 돌아 가는 기분이었나봐.
여고시절 꽁뜨 내지는 단편 몇편과 편지형식의 독후감등등... 썼었는데,
교지에 고2때 "수선화'라는 단편을 올렸었는데... 기억나니?
나는 지금 그 교지를 안가지고 있어.
누구 갖고 있는 사람 나에게 쪽지로 알려줄래?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기까지 한 주제로 글을 썼었단다.
주인공은 여고생 또래와 서점주인 30대여인이었는데,
여고생에게 비친 그 30대여인의 모습을 그렸었어.
주로 30대 그녀의 대화와 그녀가 남긴글을 찾아내는 여고생의 시각 이런거야.
부부간의 기대감, 허무감,상실감, ,,, 등등 이혼에 이르는 얘기가 나오거든..
참 내나이 10대에 결혼, 이혼 등등을 어떻게 상상했던지...
오로지 문학소설속에 나오는 것을 읽었던 간접경험이 전부였는데 .
한참전에 ㅁㅁ친구가 스켄해서 메일로 보내주었었는데
컴퓨터가 망가지면서 그것도 사라졌단다...
하여튼 그때 내가 나름대로 문학에 심취했었어.
황연자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신 것 같았어 .. 내 느낌에.
이과 반 2학년 6반에서 공부에 몰두 하는 것 같지 않아서 였는지..
( 참고: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고 2때 이과 6반에 들었다가
고3때 부모님에게 의논도 안드리고
내마음데로 '걍 ' 문과 1반으로 옮겼음.. 나중에 자세히 쓸께..사연이 길어서 )
나중에 대학가면 황선생님 찾아뵙고 진진하게 대화를 해야지 내심 생각 했었는데,
그런 기회는 없었지... 선생님께서 저 먼 나라로 가셨으니..
내인생에 중요한 역활을 한 사람중에 한분을 꼽자면 우리 아버지야.
일제시대때 14살 나이에 일본으로 유학가서 성장후 법학을 공부하셨는데,
할아버지가 보내 주신 유학비가 여유 있었는지
공부보다 문학에 심취 하셨었거든..
할아버지 몰래 도쿄에서 예명으로 씨나리오도 당선되고..
그러다가 해방 되기직전 학도병 징병을 피해 귀국...
우리 나라의 민족사와 더불어
본인의 꿈은 접고 공무원 생활을 하셨지.
어린 날에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문학얘기를 내가 참으로 열심히 들었단다.
그런데,
내가 대학 진학으로 문학을 한다니까
제일 먼저 반대하시드라고...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 할께..
지금 자야하거든...
너희들은 일어났겠구나.
그럼 안녕~!
옥인아 안녕~
생각해 보니 너와는 초등 6학년때 짝궁도 했었는데
그때 넌 키도 크고 그야말로 부자집 딸로 보여졌고 활발했었지.
난 얼굴이 하얀 약하디 약한 모습의 내성적인 편이었고..그저 공부나 했다고 해야겠지.
중고등학교에선 한반이 됐던 적은 아마 ~ 없었지.
네가 문학을 꿈꾸던 그 시절을 잘 모르고 지냈구나.
지금 중년의 아름다운 모습, 너의 지금 자랑스럽단다.
건강 잘 지키며 행복하게 살 수있도록 하자....
순애야 오랫만이야
우리가 정말 오래된 친구구나..초등학교부터
내가 그때는 참으로 바쁘게 지냈었어. 친구들하고 놀지도 별로 못하고.
울 엄마가 나를 이것 저것 배우라고 보내는 바람에 ㅎㅎ
(음악은 모두 잘 아는 브람스의 자장가~~~)
엄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해지네.
울엄마는 유복녀로 태어났어.
어린시절부터 성장해서도 오빠( 나에게는 외삼촌)를 아버지 마냥 대하셨지.
내가 외삼촌집에 가면 외숙모가 엄마의 어린시절 얘기를 해주셨어.
엄마는 별로 나에게 안해 주셨는데, 맘속에 꽁꽁 묻어 두고 싶었었나봐..
이제 나도 스스로 엄마가 되어서 생각하니 왜 그러셨는지 이해가 되네..
나도 내 딸에게 알리고 싶지않은 것이 있거든, 특히 아리리한 추억,,,
그러니까 황해도에서 태어나셨는데,
외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뜨시고는 외삼촌이 가장이 되어
외할머니, 이모, 그리고 막내 동생이었던 울엄마를 부양하기 시작했다는구나.
외숙모가 시집왔을 때 울 엄마가 10살도 채 안 되었었단다.
우리 외사촌 오빠들,즉 아들만 4형제를 두었었는데
울 엄마는 누나처럼 조카들하고 같이 성장을 했단다.
그때는 일제시대여서 저절로 학교에서 일어를 배우던 시절인데,
엄마가 한국어 점수보다 일어 점수가 높아서 외삼촌에게 야단도 맞었었다고도...
공부를 참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했데네, 국민학교를 두번이나 월반하고,,
그러는 차에 외삼촌이 어린여동생의 공부계속하고 싶어하는 내심을 파악하시고
황해도에서 평양으로 중등부터 유학을 보냈데.
그 시절에는 여자는 국민학교 졸업하고 집에서 지내다 출가를 하는게 보통이었는데..
울 엄마는 외삼촌에게 항상 고마움을 가지시고 사셨어.
외삼촌도 생신에 내가 가서 고전무용 추어 드리면 참으로 기뻐하셨지 .. 딸이 없었거든.
조카들이 대학가면서 외숙모가 경제적으로 부칠 때 엄마가 많이 도움을 주었다고
외사촌들도 울엄마를 '인천고모' 하면서 용돈이 필요하면 우리집에 다녀가고는 했었어.
한참후에 울엄마가 56세 나이 1982년에 돌아가셨을 때 , 외사촌 오빠들이 얼마나 슬피 울었던지 아직도 생생해.
우리 형제들이 아직 어릴때라 외사촌오빠들이 장례식도 주관하고
엄마 묘지도 외삼촌 묘지가까운 곳에 마련해 주었어. 참 고마운 외사촌 오빠들이야.
아 ~ 벌써 30년이 되어가네...
외사촌오빠들이 학교 다 마치고 성장해서 결혼도 하고 유복해졌어.
울아버지가 엄마보다 20년간을 더 사시면서 홀로 지내실때
오빠들에게는 막내고모부인 울아버지에게 참으로 잘 해주셨어.
내가 비엔나 온 다음에는 내대신 시시 때때로 울아버지를 찾아주며 울엄마를 애도하여주었단다.
그리고 나보고는
"아버지 걱정 말고 너나 열심히 살어라,
네 엄마처럼 세상 일찍 떠나지 말게 건강지키고 어린 딸 잘지켜주어라
애들에게는 엄마가 제일 필요한 게야..
너를 막내고모가 얼마나 정성들여 키웠는데..
네 딸애는 외할머니 얼굴도 모르고 크는구나..."측은지심으로 대해주었지.
울 엄마는 어릴적 자기가 누리지 못했던 것을 동생같은 조카들이나 자식들에게 맘 껏 해주고 싶었던 게야.
그 혜택을 내가 고스란히 받은편이지.
고전무용, 미술화실, 피아노,,등등 학교 마치고 다니느라 친구들하고 놀 짬도 없었어.
방학때 되면 서울 외삼촌 집에가서 고명딸 노릇하고 ㅎㅎ
나의 국민학교 시절은 이렇게 보냈었단다.
너랑 짝궁하던 6학년 때 울엄마가 아퍼서 한참동안 서울로 요양을 갔었어.
그때 첨으로 "이별의 슬픔"을 만났었지.
아마 그래서 내가 학교에서 말이 별로 없었을 거야.
엄마를 만나러 주말에 서울 갔다가 돌아 올적에는 정말 집에 오기 싫었어.
내동생은 헤어지기 싫어 운동화를 마당 물통에다 집어놓고 안오려고 울다가 기절까지 했었단다.
울오빠는 나 보다 네살 위로서 제고 1학년이었었는데,
남자라고 묵중하였지만 그 때 내면적으로 더 많은 상처를 받었었나봐.
참~ 울 오빠 얘기를 하려면 몇날 며칠을 해야돼.
한가지만 할께.
그시절 오빠는 사춘기 였었잖아..
제고에서 소설책들을 빌려 와서는
시험준비하느라고 옆으로 밀어놓은 것들을
내가 무턱대고 읽었었어.
담날 학교쉬는 날은 밤새고 읽기도 하고 ..
그리고는 오빠에게 밥먹을 때 조잘 거리며 얘기하면
신기한듯 아니면 기가 찬듯 쳐다보며,
" 야! 나는 안 읽어도 되겠다.
근데, 너 이해는 하는 거야. 외우는 거야? " 했었어 ㅎㅎ
순애야!
너 이런얘기 첨듣는 거지?
내가 그때 학교가면 반 친구들이 모두 어려보였어..
왜냐구?내 머리 속에는 소설에 나오는 어른주인공들이 들어 있었으니까.
미안해 지금이라도 사과해 ^^ .. 이제 생각하니 내가 참 유년스러운 유년기를 못보낸것 같네.ㅠㅠ
너랑 지난 얘기를 하다보니 정말 좋다.
우리는 참 편리한 시대에 살지?이렇게 시공을 초월하고...
종종 보자 그리고 너 건강 조심하고
그리고 담에 내가 한국가면 꼭 만나자. 보고 싶어~
가을에 쓰는 글에는 늘 모두의 외로움이 묻어있다. 누구에게 인가 말하고 싶고 솔직해지고 싶은~
옥인의 그리움이 바람에 흩날려 내 책갈피에 사뿐이 내려앉은 단풍잎같구나.
세월은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는 소녀가 되어 지난날을 노래하네~.
우리는 다 외롭다.
선화야!
네가 와서 너무 기쁘구나.
어젯밤 잠자기 전에 글을 올리구는
아침에 일어나 지워버릴까하고 9기방에 들어오니
너와 순애가 다녀가서 그냥 놔두고 교회에 다녀와 이제야 답글을 쓴다.
지난 얘기를 하려면 뺄 수없는 국민학교 시절.
특히 우리는 일학년 때 같은 반이 었잖아.
언젠가 우리의 어머니들 얘기
우리들의 공통기억도 썼었으니 다시 할 필요는 없고...
축현국민학교를 다니다 학구제로 송현학교로 전학하면서 얼마나 슬펐던지 너는 모르지?
오빠는 6학년이라고 그냥 축현다니는데,
나는 2학년이라 옮겼었어. 아침에 같이 학교 가면서 조잘되던 시간이 없어진 거야.
전학한 다음 나는 이방인 같은 기분을 한참 가졌단다.(물론 나중엔 잘 적응했지만..)
전학 몇년후 전동으로 피아노 공부하러 갈때,
가까운 길을 놔두고 축현국민학교를 지나 문방구 주욱 늘어진 언덕을 넘어 돌아 갔었지.
아마 그시절 이미 무의식중에 "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일어나는 인간사"를 감지했었는지도...
이곳 비엔나에 와서 첨에 여러번 이사를 했었는데,
딸애가 초딩때 전학하는 것을
" 엄마! 한국유치원친구들과 헤어져서 여기 온것도 슬픈데,
이제 또 여기 초등 친구들과 헤어져야해요?"
이러면서 싫어해서 그냥 전차,버스통학을 시켰단다.
내 어린날의 기억이 저절로 떠올라서.
나의 글에 양쪽 국민학교 친구들이 글을 달어주니 그 시대로 다시 달려가 보았네.
선화야.
그래~ 내가 옛그리움이 넘쳐 윗 얘기들을 꺼냈나봐.
너랑은 초,중,고,대까지 연결된 인연이네..
오늘 네모습 보여주어서 고마워~
( 위의 쇼팽의 왈츠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야. 너도 우리 친구들도 좋아하면 좋겠네...)
옥인아~~
마치 네 옆에 앉아서, 두런 두런 얘기듣고 있는 것 같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주 열심히 살아서
여한없이, 후회도 없이
이제는 언덕위까지 오른 너는, 조용히 뒤를 돌아보며
펼쳐 보는 서사시의 한편을 우리는 듣고 있구나.
아픔과 슬픔은 승화되고
아름다움으로 번진다.
지난주 내내 서실공사로 바빴고
주말, 경주여행 다녀 오느라 이제야 들어 왔네.
비엔나에서의 첫 전화후(너는 약간의 경계심을 가졌었다구?~ㅎㅎ),
우리의 첫 만남에서 그대로 맘을 열었지?
역시.
친구들을 만나는 우리들의 방에서
이렇게 옥인이는 편한 마음으로 얘기 할 수 있구나~~
너무나 고맙지~~!
떨어져 있지만 맘은 더욱 가까이 있음을 느낀단다~~^*^
노을빛이 아름답고
단풍색이 고움을
친구의 모습에서 또한 실감하는 벅찬 가을 날이네~~
선화야~
넘 오랜만이구나! 많이 궁굼했네~
영희야~
우리가 몇번 만나면서 얘기를 나누어 그런지 정말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네^^.
일요일 새벽에 잠자기전에 윗글들을 단숨에 써내려 간다음
낮에 바깥을 다니는데 자꾸 아주 오래전 일들이 점점 더 떠오르더니
둑이 무너지듯 겁잡을 수가 없더라고..
누군가의 전화를 받는데 현재가 흔들리듯 이상하기도 하고
어제는 정오가 지나도록 침대에 누워서 이생각 저생각 하다보니 한도 끝도 없더라고..
그래서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린후 이제야 우리방에 들어왔어.
그리고 지금 곰곰히 정리 해보니
내인생을 3단계로 나눈다면
1. 인천의 유청소년기
2. 서울의 대학생활 ,결혼, 성인으로 성장기.
3. 비엔나 생활시작부터 현재까지로 나눌 수있는데..
첨 너의 전화를 비엔나에서 받고 너를 만나러 가면서 경계심이 난 것은
너무 오랫동안 인천과 연결이 단절되었던 이유였을 거야...
그러나 그것은 모두 헛된 우려였어.
너는 참으로 나보다 훨씬 성숙한 여인으로 나를 푸근하게 해주었거든^^.
37년의 공백은 어느덧 사라지고...
이곳에서 내또래 한국 친구 없이 지내다
너랑 반말로 한국말을 얼마나 했었던지
집에 돌아 오면서 부터 머리가 어질 거렸단다 ㅎㅎ
너를 통해 홈피에 들어와서 ... 그해에 무척 이방을 들락 거렸네 ㅎㅎ
그때도 가끔 과거속에서 허우적 거리기도...
시간이 갈수록 안정이 되어갔지.
작년에는 한국, 그리고 비엔나에서 너를 두번이나 실제로 만나면서 내가 스스로 많이 오픈시켰지? ㅎㅎ
영희야 많이 고맙다~
나의 어제 하루 고백록
치장도 허위도 체면도 고스란히 내려놓고 이글을 쓴다
이 많은 인연속에 하느님과 나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
난 주로 여러 사람속에 있다
그래도 이 불안,슬픔은 어데서인가?
혹시 아주 먼 예날에 나를 잉태했던 어머니는 나를 유산시키려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가끔씩 이유없이 슬퍼지는 걸까?
내가 태어나던 날을 기억해내려도 한번도 그기억은 안난다
대신 한살 반정도 되었을때 무서운 열병을 앓았을때 꿈처럼 하얀 할아버지가
와서 나를 데려가려 던 악몽이 기억 된다
우리 엄마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거의 정확한 기억보다는 혼란에 빠진다
뉴욕이라서 여러 동창들이 꽤나 많다
그런데 국민하교,여중친구는 최은희가 살고 잇다.
여기서 만난 친구들,이웃들, 여러 동창등 별로 사람이 고프지는 않다
그런데 은희가 이사했다고 오라고 한지가 몇달이 된다.
어제 드디어 둘이 만나서 아주 먼데까지 드라이브하며 밤에야 돌아왔다
아직도 남은 낙엽을 보며 소요산, 광능,속리산 하며....
서로 가슴에 꼭 파묻은 수다를 순서도 없이 했다
점심은 스시와 김밥을 사 먹었다
그리고 커피집에 가서 신 라면에 더운 물을 부어 달라해서 남들이 보던 말던
컵라면으로 보신을 하고 사과를 먹었다
김금옥,김옥연
황인숙 선생님이 마시던 커피를 우리들도 한 모금씩 마시게 했던 이야기 하며
마침내는 만석에서 인천여중을 누가 갔나를 세어냈다
김금옥
김옥연
변옥희
홍영자
주인숙
지춘실
방영옥
최은희
김석순
황정순;이 애는 잠시 과외는 우리와 했지만 신흥 인가 교대 부고인것같다
내 고향 남쪽 바다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은희는 추수감사절 끝나고 또 만나자고 한다
나도 그래 하고 말했지만 인간은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든다
조물주한테 하루 하루 삭월세 내어서 사는 인생
이 밤이라도 부르면 가야 할것을 약속은 무슨......
그래서 나는 심지어 가장 아끼는 사람들한테도 마음을 비우고
정을 비우고 원수같은 사람에게도 원망보다는 측은함을 남기는
연습을 해간다
하고 싶고 멋 부릴 것도 많으나 문득 문득 아프리카 오지의 삶을 생각하며
자제를 해본다
지금 연애하는 이들은 마음에 담겨진 열렬함등을 금방 문자로 보내니
편리함도 있으나 별로 멋은 없을 것 같다
또 하나의 비밀; 난 살아 남으려고 발버둥치느라고 진실로 참된 사랑을 해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모든 기억과 억제 할수 없는 심정들을 모두 하느님께 드리고
나 자신도 타인도 다 용서하고 싶다
은희가 우리 둘이 살빠진 다음에 사진 올리자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그때에는 살은 빠졌으나 이도 빠지고 지팡이 들지도 모르는 데.........
석순아
네가 생각난다는 노래 올렸어.
석순이는 오래 된 친구를 만날수 있는 곳 뉴욕에서 사니 좋겠구나.
네가 열거한 여중 동창생들의 이름을 읽다보니
참으로 기억이 점점 나면서 단발머리 모습들이 보이네...
정말 우리 그동안 살아온 것이 참으로 귀한 은총이야.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현재에 머무는 것이니까
너무 세상 떠나는 것을 염두에 안두고 그냥 사는게 좋다고 생각되네
친구랑 약속도하고 .석순이 생활 설계도 하고 ...
나는 몇년후의 일을 너무 미리 계획은 안하지만
몇개월 정도는 미리 약속도 하고 계획도 세운단다.
그러면서 그 날을 향해 하루 하루 손꼽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ㅎㅎ
누구나 다 사는 방법이 다르지만
그래도 이 나이가 되어보니 살아 있슴에 감사한 것은 우리 모두 같겠지?
너의 글 아주 반갑게 잘 읽었어.
잘지내고 종종 소식 나누자
꼬리를 무는 친구들의 옛이야기를 읽고있으려니
나도 잠시 철없던 어린시절이 떠오르고
우리가 지난날을 돌이켜 볼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긴 숨을 쉬어본다
무사히 자알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숨??
남은 시간도 자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하나 숙제일쎄~~~
확실히 가을이 깊어가나보네~~
옥인이와 친구들의 해묵은 옛 추억이
새록새록 새롭게 머리가 끄덕여지고~~
동질감이 느껴진다~
석순이의 글을 읽노라면~
슬며시 미소가 머금어지고~
친구들 모두~~
정신세계가 건강해 보여서 좋아라~~*^^*
옥인아 ! 넌 참 기억력도 좋다.
어찌 그리 세심한것도 다 여직 알고 있을까 ?
난 벌써 치매에 걸렸나봐, 통 생각이 안나네....
그당시 피난민으로 살면서
아이들도 사귈만하면 이사하고
또 이사하고 자리 잡힐때까지
국민학교 , 선교사들이 만들었던 공민학교 등등.. 다니다보니
얼굴조차 생각도 나지 않아.
아무튼 네 글을 읽으면서,
넌 그래도 이렇게 쓸수라도 있으니 , 언젠가 한번
책을 만들어라.
그래 영희 말대로 옛날 이야기 듣는것 같다
옥인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그렇구
석순이의 이야기도 그렇구
깊어가는 가을밤에 정겹다
나도 어린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구
순덕이도 이사를 많이 다녔구나
나도 초등학교를 세군데 다녔단다
마지막이 인천이여서 우리 친구들을 만난거지~~
다들 이야기 풀어 놓으면 재미있을것 같네~~
옥연아!
가을 밤이 정겹다는 너의 글을 읽으며
저절로 정겹네..
아 군고구마가 먹고 싶다
여기는 그것이 없으니
군밤이라도 먹어야 겠네.
잘지내지?
지금 나가야 되서 나중에 보자 안녕~
금년 여름 생일 즈음의 단상.
................호호... 뜸을 듬뿍 들였시요~~
슈베르트 피아노 삼중주 작품번호 99... 2악장... Beaux Arts Trio
Piano Trio in B flat, D 898, Op. 99
II. Andante un poco mosso
사실, 제일 위의 본문 올리는 날
지난 여름을 떠올리며 내생일날 사진을 올리려고 했어..
본문 올리다 보니 피곤하여 중단했다가,
한밤중에 들어와 엉뚱하게 옛날 얘기를 해버렸네
사람의 생각영역은 참으로 무진장하나봐^^
그러니까 여기서는 여름 시작하는 날이 6월 21일이야 .
내생일이 23일인데, 가까운 친구가 그날 시간이 없다면서
이날 선물을 미리 해주고 생일축하 식사도 미리 했단다.
비엔나의 디자이너 의상실에 가서 맘에 드는 옷을 고르라는데 ㅋ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비싼 걸 턱 고르냐고요.. 망설이며 고르는데 시간이 걸리더라고..
그랬더니 평소에 친분있는 디자이너가 자기도 선물대신 옷을 염가할인 해주겠다고 ㅎㅎ
하여~~~~적당한 선에서 잡았단다.
어느 것을 골랐을 것 같니?
두개를 고르고는 어떤것을 택할까 고심을 하니
모두들 오른 쪽 것으로 추천하더라고.
왼쪽것은 자주 입기에는 부담스럽고
입고 다니면 사람보다 옷만 보이겠다고 ㅎ
그래 오른쪽 카키색 얌전한 것으로 봉착 ^^
그리고 저녁 8시에 초대한 식당에 갔어
바로 본문에 보이는 전경이 펼쳐지는
요즘 비엔나의 NEW -VIEWSIDE SOFITEL HOTEL 18층꼭대기에 있는
불란서식 레스토랑이야.
(에레베이터에 내려서 안쪽으로 발을 옮기자 마자 이런 전경이 펼쳐지는데...)
(예약된 자리에 앉으니 아래에 다뉴브 유람선,,,전차,,, 사람도 보이는데,,, 모두 장난감 같더라고^^)
여름에는 섬머타임이 있어서 저녁 8시에도 훤하단다.
석양에 물들어 가는 건물들을 보면서
아~! 그동안 내가 살어온 날들이 주욱 떠오르더라고.
아마도 인생을 하루로 견주어 본다면 내나이도 석양의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하고 말이야.
나도 딸아이도 첨 올라온 그곳에서 서로 사진 찍느라고 해프닝을 좀 벌였었지 ㅋ
한국에서 주욱 살았다면 별것도 아닐 고층 건물인데,
우리가 낮은 건물만 있는 구도시에서 살다보니 그렇더구나.
(천정의 그림을 스위스 미술가가 디자인 했는데, 주위가 어두워 질수록 빛을 발하고
유리창에 비쳐진 것이 꼭 하늘에 달려 있는 것 같애~)
온 천정에는 여러 문양들이 있어.. 이것들이 위에서 비쳐주는 불빛에 선명히 보여진다고..
사람이란 그런 것 같애.
자기가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기 마련이지.
올봄 5월에 영국에 가서도
오랜 역사와 오랜 전통을 느끼며 방문하다가도
런던시가 잘보이는 TATE 현대 박물관 꼭대기에 올라가
카페에서 템즈강을 보며 쉬었을 때도 꼭 이런 기분이 들었단다.
재작년 뉴욕에서 록펠러 센타나 여러 고층위에서도,
작년 서울,부산 제주등등 20~30층 고층호텔에서 지낼때도...
이것은
내가 백년넘은 오래된 아파트생활을 하다보니
또다른 새로움을 이런 현대건축에서 느끼는 것이겠지.
그런데, 역시 편안함은 오랫동안 익숙함에서 오는게야.
아무리 이것 저것 신기해 하다가도
내가 사는 공간인 집에 돌아오면 제일 좋아.
친구들아 너희들도 그렇지?
6월에 우리 홈피가 잠깐동안 어수선해서
올리지 않했던 것을 금년이 가기전에 올리는 거야.
이제 11월도 얼마 안 남았고 12월에 내가 성탄휴가를 다녀오는데,
이래 저래 바뻐지면 그냥 내저장고에 묻힐 것 같아서.
예전에는 생일을 맞으면
어머 내가 이렇게 나이가 많어?.. 조금 쯤은 기가 죽을라고 했었는데,
이젠
아~! 올해도 내생명이 연장되었네... 내년에도, 그후년에도,,, 얼마나 더 누릴지 모르지만
제생명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가 저절로 나와.
할아버지,아버지, 엄마 그리고 등등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해지고 .
귀여운 생일 케잌이지?
식사마치고 커피타임인데 종업원이 들고 나오더라고
친구가 미리 그렇게 주문했었다고 ㅎㅎ~
많이 기뻤단다.
맛? 물론 좋았지 ㅎㅎ
모두 돌아가는 시간에 우리도 그곳을 떠나왔지.
(호텔앞 연도...)
조금 더 걷고 싶어 호텔 바로앞 다리건너편 유람선 선착장주위를 돌아보았네.
작년부터 여기도 신축공사를 하여 젊은이들이 밤에 많이 나오는 곳이거든,,,
나도 그러면서 젊은 기분내~보았지 ㅋ
금년의 생일행사를 마친 우리모녀는 발걸음도 가볍게^^
그리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왔어
뒤늦게 오늘 5개월전 사진을 올리면서
내년엔 어떨까? 궁금해지네 ㅎㅎ
옥인이와 딸의 생일파티 분위기가 너무 아름답다.
파티 장소인 스카이 라운지도 너무 멋지고~
주위 친구들로 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옥인이도 행복해 보이고
호텔식당 천장의 작품은 정말 멋지다~~~
옥인아~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없어도
네 옆에 한쌍으로 머무는 딸 하나가 모든 허전함을 채우고
서로 나누는 사랑의 교제가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구나~
맞아요~~
우리는 지금 오후 6시....
누군가가 내게 그렇게 말해줬는데
잠깐 띠잉~했어요..
허나 썸머타임 일 지라도 8시에 비추이는 석양빛도 아름답기만 하다.
그렇게 고운 빛깔로 남은시간 물들여 가야지..
나도 요즈음은 아침에 눈 뜨면서 감사하고
자리에 누워 하루를 무사히 보냈음에 감사한다
예전엔 보이지않던 작은 풀꽃이 예쁘고
봄날 아기손처럼 여리게 돋아나는 연두빛 나뭇잎이 예쁘고
곱게 물들어가는 가을에 감동하며
우리집 베란다에 서서 오렌지빛 노을을 바라보며 또한번 감사하지..
나이 들어간다는것도 나쁘지만은 않은것 같애
네가 이렇듯 지난 기억들을 풀어낼수 있다는것도 6시의 힘이 아닐까??
네 얘기를 들으며 같이 웃으며 같이 아릿해하며 공감하는 우리도..
암튼!!!
네 생일을 그렇게 완벽하게 만들어준 친구가 고맙군..
케잌은 왜그리 침 넘어가게 맛있게, 예쁘게 생긴거야??
지금도 행복해보이지만 계속 행복해라 옥인아~
성당김장 도와주고 왔더니 눈이 시고 아프네..
떨어진 체력을위해 운동은 해야하는데..게을러서..
오랜만에 들어왔다가 술술 읽히는 걸림없는 네 글을 읽고
아픈 눈을 가늘게(반쯤 감고)뜨고 댓글 쓰고있네~눌리는 어깨도 한번씩 만져가며..
그래서인지 중언부언 말이 이상하게 된것 같기도하고
저녁 하기전에 잠깐 누워야겠다
나중에 보고 이상하면 어쩌지??
안뇨~~ㅇ
영혜야~
그 누군가가 한말... 우리는 지금 오후 6시라는 말... 참으로 싯적이네.
나의 표현,석양을 비유한 산문적인 것보다 더 잘 나타내는 듯...
네가 감사함으로 매일 매일 지낸다니 기쁘다.
네 말처럼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이 나쁘지 만은 않은 것 같애"...동감이고.
올해는 내가 몇몇 친구들과 모두함께하는 저녁식사 초대를 생략했더니,
그래도 기억하며 만나자고 하는 사람을 거절하기가 뭐햐서 ^^
개인 적으로 따로 따로 3차까지 기념식사를 했단다.엑기스로 ㅎㅎ
미역국도 딸애가 만든다고는 하던데,
못 미더워 내가 코치해서 같이 끓여 먹었고 ㅋ
내가 적은글을 반쯤 눈을 감고도 제대로읽었구나 ㅎㅎ
네글 반갑게 잘 읽었어.. 그리고 네 목소리도 들렸고 ^^
김장얘기를 들으니 향수가...
영혜야~몸살 안나게 조심하고 또 보자
가사를 보면서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애서 적거든...
Lyrics:
Wie Todesahnung D?mmrung deckt die Lande,
umh?llt das Tal mit schw?rzlichem Gewande;
der Seele, die nach jenen H?hn verlangt,
vor ihrem Flug durch Nacht und Grausen bangt.
Da scheinest du, o lieblichster der Sterne,
dein Sanftes Licht entsendest du der Ferne;
die n?cht'ge D?mmrung teilt dein lieber Strahl,
und freundlich zeigst du den Weg aus dem Tal.
O du, mein holder Abendstern,
wohl gr?ßt ich immer dich so gern:
vom Herzen, das sie nie verriet,
gr?ße sie, wenn sie vorbei dir zieht,
wenn sie entschwebt dem Tal der Erden,
ein sel'ger Engel dort zu werden.
영문: 후반 부분
O you, my lovely evening star,
I always greet you with such pleasure:
from the heart which never betrayed,
if she greets you of if she moves past you,
if? she floats to the valley of the earth,
to become a lovely angel there!
한글 전문
죽음의 예감처럼 어둠은 땅에 내려
검은 옷자락으로 골짜기를 덮는다.
그의 조롱을 탐하는 영혼은
어둠과 공포의 비행이 두렵다.
이때 너는 나타난다! 귀여운 별이여
너는 부드러운 빛을 멀리서부터 던져
그의 반짝임은 밤의 불안을 물리쳐
산속의 길을 은은히 가리킨다.
아, 나의 다정한 저녁별아
나는 언제나 밝은 인사를 보낸다.
그녀가 너의 밑으로 지나갈 때
그녀를 믿는 마음으로 인사를 보내라
천국의 천사가 되기 위하여
지상에서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