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것이라고 했던 어느 사람의 말이 생각납니다.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 생로병사의 길을 가야만 하는
인생은 한마디로 고통이니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무기수라는 말이지요.
이 허무주의적인 말을 들었을 때
원죄이구나 했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길고 무더운 이 여름
이 말들이 새삼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요?
늘 마음 한 켠에 묵혀두었던 일들을 이제는 처리하리라 마음먹고 서울대병원을 찾았습니다.
이것저것 의심했던 것들의 MRI 결과 엉뚱하게도 다른 곳의 병명이 나오고 "이까짓 것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시술을 했습니다.
투시 MRI에 선명하게 찍힌...3번과 4번 사이의 까만 물체가 선명하게 에메랄드처럼 박혀 있는 디스크!
신경이 내려가는 혈관에 1mm의 가는 주사바늘을 50cm정도 밀어넣어 약 15분정도 스테로이드 용액을 주사하는데 흔히들 신경성형술이라고들 하나봅니다.
이곳에서는 혈관조영술이라고 쓰여있는데
창경궁이 마주보이는 암쎈타내에 시술실이 있기에 다른 곳과 달리 너무 조용해 기분이 좀 묘합니다.
앞으로 5시간을 기다려 시술을 받으니 커피점에서 한잔의 커피를 뽑아들고 하릴없이 경복궁을 마주하고 앉아 우두커니 시간을 죽이고 있다 이곳저곳을 둘러봅니다.
최근에 지어진 암쎈타는 굉장히 신경을 쓴 흔적이 곳곳에 역력합니다.
특히 한쪽 벽면에 동판으로 새겨진 후원자들의 명단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5억원 3억원 1억원 1천만원을 기준으로 죽 나열된 명단이 벽을 채우니 이런 후원자들의 정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요.
이런 후원자들이 있기에 MRI 찍으러 들어갈 때에도 빳빳하게 풀멕인 환자복을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후 3시30분 드디어 내 차례입니다.
과장님과의 면담후, 대기실에 앉아있다 시술실로 들어가니 4명의 의료진이 영상을 보면서 마취를 하고 시술을 합니다.
마취때문일까요? 끝나고 곧장 가지 못하게 하고 10분간 쉬었다 가라합니다.
걸어나오는데 다리가 가뿐합니다.
이 시술이 요술방망이인가? 했더니 마취때문이라나요.
5일간은 아프고 20일이 지나야 약이 완전히 스며든다는 설명서 한장을 들고 귀가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만약 3주가 지나도 차도가 없으면 다시 예약을 하고 오라고요.
3주! 그 날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5일까지는 그럭저럭 아팠고
그 후 3일은 허벅지가 터져나가는 듯한 통증에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고
10일 동안은 조금씩 나아지는지 어떤지 일어나서 발을 디디는 순간 통증에 일어서서 걷는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으니
통풍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 실감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자기들의 생활에 불이익이 되는 것을 원치않아 냉정하니 그 설움이 또한 가슴 아팠습니다.
통증을 잊으려 하루에 한권의 책을 읽어대는 나에게
"엄마는 행복한 줄 알아. 아파도 밖에 나가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편하게 누워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으니......."
얼마전 시술을 끝내고 귀가길에 동생의 타박이 떠 올랐습니다.
"제발 미련스럽게 아픈데도 기어다니면서 일 좀 하지마"
"무조건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 못 일어난다고 해. 다 큰 아이들이 밥 하나 해결 못 할까?"
그 말을 안 듣고 질질 끌고 다니면서도 밥을 해 주니 결국 이런 말까지 듣게 될 줄이야......
병원에 갈 때마다 새벽 6시에 나와
하루종일 이리저리 예약을 하고 수납을 하고 보호자 역활을 한 동생에게 새삼 고마왔습니다.
딸이 서울대병원에 근무한다는 그 죄 하나로 방학임에도 제 볼일도 못 보고 따라다녔는데 아이들이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이렇게 말을 하다니요.
모든 것이 다 겪어봐야 아는 이치인가 합니다.
물론 나도 예전엔 당연히 그리했겠지요.
그러면서 인생을 알아가고........
큰 산을 넘으면
작은 산을 넘을 땐 수월하다는데
산 너머 산이라고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듯 구비구비 한숨쉬듯 세월은 갑니다.
회심곡의 한 구절도 생각납니다.
문밖을 나서니 벌써 저승길이라고.
일직사자 월직사자 내 말 좀 들어보소.
잠든 날, 병든 날 다 빼고나니 인생이 몇년이냐고요
물론 이 또한 언젠가는 지나가고 말겠지요?
5월 말, 제주도 여행을 함께 한 선배가 갑자기 쓰러져 입원을 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궁암 대장암으로 긴 투병생활을 끝내고 3년전부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활기찬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3개월 전에 다시 재발을 하고 고심끝에 절대로 치료를 안 하겠다고 선언을 했답니다.
그냥 이대로 즐겁게 살다 가겠다고요.
그래서 올레길을 함께 걷고 깔깔거리며 웃다 왔는데 아마도 힘에 겨웠던 모양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재발 소식을 그동안 전혀 몰랐습니다.
치료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포기를 했을까요?
그 선배를 위해 도대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이래저래 힘든 여름이 가고 있습니다.
암 선고를 받고 포기할 수 밖에 없는 분도 있는데
이까짓 허리디스크로 아프다고 날밤을 새우는 내 자신도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이들 말대로 그래도 나는 행복한 축에 속할까요?
얼마전에 타계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도 생각이 납니다.
"내가 행복했다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학은 불행의 편이고, 문학은 끊임없는 단련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 불행을 일부러 자초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문학보다는 삶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1969년 작가는 토지를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한 이래 무려 25년, 온갖 불행과 맞서 싸웠습니다.
43세, 용공이라는 이름 아래 행방불명된 남편
암과의 투병(토지를 쓸 때 아픈 가슴을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썼다)
그리고 남편을 형무소에서 잃은 작가는 형무소에 들어가 있는 사위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외손자를 업어 키우며 썼던 토지.......
결국 작가의 시대적수난, 가족사의 불행은 "한의 미학"을 뛰어넘어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문학의 한 핵심적인 길을 우리에게 던져 놓았습니다.
고통이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원죄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김춘자 선배님
궂은 일로 선배님과 만나게 되네요.
죄송합니다.
만약 이 시술이 효과가 있어 완쾌만 되면
제일 먼저 선배님께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무지해서 그동안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제는 .....꽤 알고 있답니다.
염증치료가 안되면 그 다음은 신경마비술 그것도 안되면 신경차단술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좋은 것은 꾸준한 운동이랍니다.
간밤엔 빗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오늘이 벌써 중복인데 더위를 몰아내는 비가 이렇게 고마울수가요.
한 사나흘 푹 내렸으면
사방이 비단안개에 싸인듯 아련한 아침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산학아!!!!
얼마나 아팠니?
정말 아무도 대신 할 수없는 것이 내몸 아픈거구나.
앞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세월중에 아프면서 지내야 될
시간이 얼마만큼 일까?
네가 아픈데도 위로도 못해주고 미안하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쓸 수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야 되나?
너무 아프면 생각이 정지 되는거 같드라.
너의 가녀린 몸 때문에 항상 건강이 걱정이긴 했는데
이렇게 고생 하다니......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너의 쾌유만 빌 뿐이다.
기운내!!!! 산학아!!!!
윤순영 선배님
백두산 이야기를 보면서도 답글을 못 드렸습니다.
몸이 불편하면 하고싶은 일을 못 하니 얼마나 답답하던지요.
백두산 천지를 보셨다니 축하드립니다.
몇번을 가도 못 본 사람들이 있으니 선배님은 행운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9.11 테러가 나던 날
우리 일행 38명은 백두산으로 향했습니다.
그 날 새벽 여행의 설레임으로 잠 못 이루고 CNN을 보고있던 우리 남편이 소리를 쳤습니다.
"테러다"
그래도 그냥 강행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 당시 엄청난 홍수로 장백폭포는 통제가 된 상태라 우리는 다른 루트로 백두산을 올랐습니다.
그 힘들었던 10시간의 산행을
선배님의 백두산 이야기를 따라 저도 추억에 젖어 행복했습니다.
행복하다는 느낌은
그 어떤 진통제 보다도 강한 진통제입니다.
??
산학후배!!~~
지난번 우리친구 교통사고로 갈비 부러지고 타박상 여러군데로 입원한 병원찾아가느라,은희와 동승하며
문학터널 넘어가면 연수구가 나오냐고 묻느라 통화할때 은희가 전화끝더니 산학이가 요즘 디스크로 아파서
누워있다는 소릴 해 줘 알았어!~~마음으로만 빨리 낫길 바랐더니!~~그랬구나!!~~그렇잖아도 약한 산학인데!~~~
이 푹푹 찌는 여름에 몸이 불편해 누워있다니!!~~어찌하나!~~~
신경성형술이라는 치료를 받나봐!!~~받는 과정도 힘들꺼구!~~
물론 친정조카가 있는 병원이니 마음은 많이 든든하겠지만 고통은 누가 대신 못해주는거니!~~ㅉㅉㅉ~~
어디가 아프든 아픈사람 심정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되어있어!!~~더구나 딸이 아닌 아들들은 더 더욱!!~~~
동생말이 백번 맞아요!~~이것저것 챙겨 줄 마음에 환자가 꿈지력거리는 걸 식구들은 아마 괜찮은가보다 하게돼!!~~
나 죽었오!!~~하고 몸 사려요!!~~~쪼금만 움직이면 되는데~하지말고!~~~아프면 서럽다우!!~~~
본인도 제대로 먹지 못하겠네!!~~~입맛이 있겠냐구!~~~큰일났네!!~~어서 툭툭 털고 일어서야하는데!!~~~
말로만 걱정 해주는 척 하네!!~~~미안!!~~~많이 좋아지고있다는 소릴 하루빨리 들어야하는데!!~~~~~
?아니이???이게 무신 말씀???
아니이,,,세상에에,,,얼마나 고통스러우실까아???우리 산학후배님...
할말을 잃을 정도로 드릴 말씀이 없군요오,,,
최희순선배님 말씀 그대로가 다 맞는 말씀,,,
다 내가 닥쳐보지 않고는,,,,
이 무더위에 더욱 더 힘들 줄로 압니다...
회복기에 들어가셨을 줄로 믿고 그런 중에도 용기와 희망 잃지 마시길,,,
언제나 웃음을 선사하시는 정순자 선배님!
말씀대로 회복하는 중으로 컴퓨터앞에 앉아 글을 쓸 정도입니다.
물론 제 고통 정도는 엄살이라고 보아도 좋겠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암이나 불치병으로 투병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쓴 이유는
제가 홈페이지에 들어오지 못 한 이유를 이리저리 마음대로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서랍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런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각자 건강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기도 했고요.
선배님께서도
얼마전에 큰일 날 뻔 하셨지요?
매사 조심하시고 건강하십시오.
도산학 선배님 17기 이주향입니다.
선배님의 너무 큰 칭찬 막내에게 전하면서
예리하신 직관으로 여러 표면에 내세워진
이 번 여행의 핑게들에
저의 세 아들들을 키우면서 그래도 아직은
나를 찾는 막내와의 미국행 잘 하고 와서
밀린 엄마일에 학원 수업에 정신없이 보내면서도
잊지 않고 있었어요, 선배님의 귾어질듯 이어지는
미소와 단호한 말씀들이
그런데
그 동안 그리 혼자서 아프셨군요.
글을 다 못 읽고 찔금댔어요.
저와 막내가 미처 준비해 가지 못한 신발을
사러 나가 보스톤 시내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의
안내가
지금도 감사하고 고마웠듯이
제게는 미처 놓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셨던 선배님이십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미소밖에는 없지만
힘이 되신다면 얼마든지 쓰시고
얼릉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짜이 티 사왔어요!
짜이라떼 달콤하게 타드릴께요.
이주향님을 처음 보았을 때
"즉심"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즉심"이란
내가 저 사람에게 물 한잔 꼭 주고싶은데 저 사람이 그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렇게 망설이는 마음이 내 속에 있습니다. 그러다 시기를 놓치고 실행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고싶을 때에는 아기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그냥 행하면 그 빛이 천리를 간다는 말입니다.
물 한잔의 공덕이 이러할진대 다른 것은 말 해 무엇할까요?
아이하고 여행을 하고싶으면 처음 먹은대로 그냥 떠나면 그만입니다.
걸림이 없기에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됩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 꼭 사고가 나고 말지요.
오랜만에 걸림이 없는 순수한 마음에
진초록과 연초록으로 뒤엉킨 여름날이 더욱 싱그럽습니다.
짜이 티.....고마와요.
' 이 철 없는 사람같으니라고...
아프다는데
무슨 아이와 다녀온,
그것도 그리 멋지지도 않은 사진으로
맹한 인사를 하누'
하실까픈
잠깐의
저의 걱정을 안아 가시기라도 하듯
이리 두곳에 다 좋은 글로 답해 주시니...
이 곳에서야 아직은 나이 어린 사람으로
말을 앞세우기 보다는
많이 들으려 하지만
아이들덕에 한 활동에서는 왕언니까지 되곤 해요.
그때 제가 잘 하는 말이 있네요.
앓아보지 않은 사람과는 말하기가
버겁다구요.
짜이 티 한 상자 벽장에 깊이 넣었어요.
그리 멀지 않은 날에 뵙고
우유랑 레몬 넣어서 타드릴께요.
얼.릉.쾌.차.하.세.요.
어머나!
맞네 맞네
결국 허리병도 뼈가 휘는 것도 있지만 결국에는 순환의 문제더라구.
내가 디스크로 고생할 당시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불만과 분노로 온 몸이 경직되어 있었단다.
단학선원에 등록하러 가면 기 점검을 하는데 명치를 누르면 기절할 듯 아픈 사람은 다 화병으로 기가 막힌 사람들이거든.
내가 그랬었는데 요즘은 눌러도 아무렇지가 않으니 오히려 신기해 한단다.
지난 번에 벌침 맞으러 갔을 때 그러더라구.
'어머나 스트레스 안받는 체질이신가봐요!" 래나?
이런 저런 일 겪다 보면 슬슬 도사가 되어 가는 거지.
산학이도 뭐든지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어깨에 힘을 빼야 허리병이 낫는단다.
산학아!
그렇게 아픈 와중에 우리집까지 챙긴 거야?
아프다는 표현도 엄살도 다 연습을 해봐야 되는 모양이야.
암튼 낫기 위한 과정이라니 그래도 약간은 마음이 놓인다만 나도 허리 디스크 환자였어.
객지 생활에 이사는 자주 다니고 하다 보니 어느날 허리 삐끗!
그럭저럭 다니게 되니 또 무리하게 되고......
이걸 반복하다가 진짜루 집수리 하고 난 다음 해 아픈 허리 받쳐 가며 음력 설차리고 나서
좀 쉬려고 누웠더니
가족 다 데리고 나타난 졸업생 왈!
"선생님! 떡국 먹으러 왔어요!!!!!!!! "
암튼 그 다음날 완전히 좌골 신경통으로 되어서 일어나지도 걷지도 못하게 됬단다.
결국 병원치료는 한계가 있고 단학 선원다니면서 다 나았는데 지금도 조금 무리하면 조짐이 보여.
그럼 얼른 스트레칭하고 주무르고 암튼 병하고는 사이좋게 요령 껏 살아야하더라구.
아들놈들 무심한 이야기!
몇 년 전 수술하고 누웠을 때 난 아예 독실에서 간병인 데려다놓고
남자들은 한번씩 들러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
그래도 일요일이면 간병인도 쉬고 싶어 하니까 아들이 와서 자곤 했는데
이 녀석이 간병차 왔는지 놀러 왔는지?
심심해서 산책이라도 하려면 "다녀 오세요!'랜다.
딸이 온 집은 나란히 손잡고 도란도란인데..............................................
그런 거 슬퍼하다가는 나만 힘드니까 혼자서 생전 안하던 네잎 클로버도 찾고
(실제로 두장이나 찾았고 그 이후로 내 삶이 많이 편해졌단다 ㅎㅎㅎ)
에그 이것아!
사람 마음 좀 애리게 하지말고 지 몸 좀 챙겨라!
신경 안써도 될 꺼까지 다 하려고 하지말고!!!!!!!!!
명옥이 언니
어려운 일을 치루시느라 많이 힘드셨지요?
보기에는 꼭 막내따님같이 집안일은 아예 모를 것 같은 인상인데도 그래도 척척 일을 알아서 하시니 대단하십니다.
역시 맏이는 하늘이 내는 것일까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가끔 인간의 한계를 생각합니다.
얼마전엔 고인이 된 연인 고미영을 위해 에베레스트에 오른 김재수대장의 다큐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들을 죽은 연인을 위해 하는 사람....
작가 박경리도 얼마나 대단한지요?
암도 이겨내고 시대의 아픔도 이겨내고 가난도 이겨내고 대하소설을 25년에 걸쳐 마감한 우리 대한민국의 작가.
베이토벤
헬렌켈러 등등
불행이 어떤 이들에게는 분명 나를 벗어나는 계기에 불과했음을 듣고 보고 배워서 알고 있는데
그 배움도 하찮은 인간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네요.
그냥 그릇대로 사는 수 밖에요.
?에구, 가만히 있어도 통증에 눈물이 나왔다고,,,,그렇게 까지.
나도 오래전에 3,4번에 무리가와서 디스크로 고생한 적이 있어.
기어 다녔지 뭐. 약 6개월 을 물리치료 하고 그 후에
수영을 몇년간 해서 지금은 거의 안 아퍼.
그때 나도 힘이 드니까 누워만 있어서
살도 엄청 쪘었어. 첨엔 수영도 무서워서 " 구심"
먹고 했단다. 그래도 치료가능하니까
잘 참고 견디길 바란다. 견딜 수 있지?응?
?
명옥선배님 말씀대로 가슴이 애려오네.
설대 병원가서 50센티나 들어갔다니 에그
끔찍해라. 큰 치료를 했구나.
어서 잘 걷게되면 맛있는 것 사줄께. 약속.
오늘 성당 북카페에서 서너시간 책 정리하고
답글이 좀 늦어졌네.
?친구에게
이 해인
부를 때마다
내 가슴에서 별이 되는 이름
존재 자체로
내게 기쁨을 주는 친구야
오늘은 산숲의 아침 향기를 뿜어내며
뚜벅뚜벅 걸어와서
내 안에 한 그루 나무로 서는
그리운 친구야
때로는 저녁노을 안고
조용히 흘러가는 강으로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메마름을 적셔주는 친구야 <중략>?
오늘 주일 이틀째 성당 "북카페"에서 책정리하다 문득
들어온 글귀,,,,, 안타까운 맘을 글로써 올려본다.
산학아, 빠른 쾌유를 빈다.
산학아~그렇게나 많이 아팠구나!!!
평상시에도 넘 많은 고생했을텐데.....
네가 아프다니까 내 가슴이 아려지네.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나의 아픔인데.....
나의 건강이 최고란다.
그저 움직이지 말고
의사샘이 하라는대로 꼭 지켜.
산학아~힘내고 빠른 쾌유를 빈다.
늦은 저녁 식탁도 치우지 않고 거실에 노트북 켜고 앉아 인일 홈피 첫 글 읽고 로그인 바로 했어요..
선배님 얼마나 힘드세요...
왠지 아련하게 다가서는 공감대가 글을 쓰게 하네요.
몸아프니 마음도 섦더라구요..
저도 한 해 한 해 넘는것이 육체의 나이도 같이 넘느라 어느새 늙고 있음을 깨닫고 건강을 입에 달고 살고 있습니다.
깨끗하게 늙기 입니다...
물론 마음대로 되느냐가 문제지요...
육체보다 마음의 건강이 우선이겠지요..
긍정적인 마음과 나쁜일 빨리 잊기....등등으로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섭섭함이 느는게 늙어 가는거라는데 자식들한테 섭섭함이 표현은 않해도 속으로 쌓이고 여운도 오래 가더군요.
그애들도 독립체로 떼어 놓는 연습을 해야하는데요..
아마도 엄마는 아프지 않아야 하는, 만날 철인 같은 사람인 줄 아나봐요..
교감을 나누는 표현의 부족일 수 있겠지만 한마디로도 마음의 기폭이 큰것 같아요..
선배님...........
마음으로 이기실 수 있을꺼예요..
자그마한 체구에 숨겨진 다부짐으로 이겨낼 수 있으실꺼예요..
인일모임에 건강한 모습 뵐께요...
조인숙님
항시 활달한 폭넒음으로 주위 사람을 미소짓게 하더니
벌써 그런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계셨네요.
혹시 마음공부에 빠진 적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답글을 보며 그런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어쩌면 버리기 연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몸의 일부도 아파서 차츰차츰 죽어가는데 자식이니 돈이니 권력이니 다 부질없음을 깨달으라고요.
맞아요.
산너머 흘러가는 구름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요?
그러니 온갖 욕심을 버리라고요.
얼마전 유정희 선생님과의 만남에서
선생님이 부르시던 "하숙생"이 생각납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 몸으로 풍기던 허무의 짙은 그림자.....
선생님께서는 음악을 통해 인생을 달관하셨구나 라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우리 산학이....
어차피 인생이란 아무도 나를 대신해 주지 않지요.
내 인생은 나의 것~~!!! |
힘내시고 조리 잘해서 빨리 완쾌하시기 바랍니다.
여리디 여리고 가냘퍼서
혹시나 아플까 걱정도 되었지만
그래도 강단이 있어서 더욱 건강할꺼야 했는데...허리 아펐네.
늘 무었보다 항상 몸을 먼저 챙겨
건강하시게나!
아들한테 엄살도 좀 피우고...
그래야 좋아하는 독서 늘 하고, 글도 쓰고.... 그래야지
산학아!
???산학아!!!!!
우와!!!
나는 나만 산학이 좋아 하는줄 알았지.
이제보니 산학이를 아끼는 동문들이 아주 많다.
산학이 안지는 얼마 안되었는데......
아마 작년 겨울 홈피 망년회에서 처음 보았을꺼야.
그런데 금방 마음이 통하게 되어서 십년지기 같은 마음이 드는구나.
이렇게 많은 동문들이 걱정해주고 있으니
훌훌 털고 일어나서 밝은 모습 보여주길 기대한다.
선배님~
이 더운 여름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통증과 씨름하고 계시는군요.
얼른 시간이 흘러 그 고통 훌훌 털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어쩌다 총동창회 홈피에 들어와 선배님 글 읽을 때마다 마음 속에서 아련함을 느끼곤 했는데 드디어 몇자 올립니다.
수십년전 선배님께서 교생 실습 나오셨다가 실습 마치고 가시던 날 서운한 마음에 한없이 울기도 했었는데, 홈피에서 선배님 성함 보고는 반가웠고 총동창회 때 뵈온 모습이 아직도 당시의 모습만 같아 더욱 반가웠답니다.
어쩌다가 가끔씩 홈피에 들어와 선배님께서 올리신 글 읽을 때마다 뭔가 깨달음을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 가득입니다.
선배님,
이 더운 여름에 부디 건강하시기를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조병섭님의 글을 읽으니
반가움에 저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철없던 그 시절,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졌을까 생각하면 쥐구멍이라도 찾을만큼 부끄럽습니다.
얼마전 게시판에서 누군가가 빨간 부츠를 신었던 저를 기억할 때
"맙소사...어떻게 내가 그랬단 말인가?"했지요.
그럼에도 이런 소식에 설레이는 것은 돌아갈 수 없는 그 추억이 그리워서이겠지요.
그 짧은 기간
한 친구는 독일어선생님의 소개로 남자를 만나 결혼해 지금도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아마 기억이 날런지도요
송도유원지에서 첫번째 데이트중 보트를 타다 미끄러져 다리에 깊스를 하고 다녔으니까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교생시절이었습니다.
병섭님은
어찌 살고 있을까요?
가끔 이렇게 만나 인사라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언제 모임에서 만날 수 있는 행운을 기대해 봅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하고 행복하셔요.
산학아 안녕?
그렇게 많이 아팠구나.
여러 선, 후배님들의 사랑에 빨리 회복 되리라 믿어.
나도 왼쪽 L4-5. 허리 디스크 환자이지. 그고통을 너무나 잘 이해해.
일년에 2-3번 씩은 기어서 화장실 다닐 정도로 상태가 안좋아서 조심조심 살았었어.
몇 해 전에 물리 치료 받으러 갔었을 때,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환자들을 보니 모두 7- - 80대 노인 들 사이에 새 파란 내가 끼어 있드라구.
그 때 정신이 번쩍들었어. 다시는 저 노인들 틈에 끼어서 물리치료 받는 일은 없다!!!!!!!
지금도 여전히 가능하면 무리가 되는 일은 피하면서 살고 있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시술이 도움이 되어 고통에서 자유로와 지길 기도할게.
김은희 선배님
폭우에 피해는 없으신지요?
아침엔 또 거침없이 퍼붇더니만 이제는 해가 나고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하늘의 일을 어찌 알 수 있을까요?
자연앞에 속절없이 나약한 인간의 본모습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원래 웃음이 많은 분이셨지요.
"산학아, 이 마아가렛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다. 이쁘지?" 그러면서도 웃고
"우리 아들이 연대 응원단장이었어. 잘 생겼지. 나 안 닮았어" 그러면서 또 웃고
그랬던 분인데 웃음이 싹 사라졌습니다.
저희 집에서 유정희선생님이 노래 부르는 것을 컴퓨터로 보여드렸드니
"김포에 사는 김은희네"
"쟤는 지성소아과 김혜경이고"
"최희순이 피아노 잘 치던 애"
덤덤하게 말씀하시길래 "다들 아세요" 했더니 "그럼" 그리고 그만이었습니다.
원래 말씀이 많던 분이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멍하니, 딴 세상에 있는듯한 느낌을 제가 받았다면 억지일까요?
교장선생님을 잃은 상실감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 해 그러실까요?
여하튼 가슴이 아팠습니다.
정이 많은 선배님도 벌써 눈치를 채셨네요.
올 해 수첩에 "김재옥선생님 찾아 뵙기" 넣으신다니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함정례 선배님
얼마전에 이인선 선배님이 올리신 "미국교회 탐방기"를 보고 감동한 어느 제고분이 제고넷에 올린 글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좋은 글과 그림인데 왜 종교란으로 옮겼나고요? (물론 우리 홈페이지를 잘 모르고 썼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건 인일 홈페이지의 규정이라고 또 누가 친절히 알려주더라고요.
아마 선배님의 목회 이야기가 관심이 많고 존경스러웠나 봅니다.
어쨌든 선배님은 멀리서 모르실 것 같아
혹시 아시면 힘을 조금은 얻지 않으실까 해서 제가 본 것을 알려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산학후배
속히 쾌차하여
다시는 허리가 아프지 않을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아무도 대신 할수 없는 일이 많고 말고요.
나는 지금 손주를 보고 있는데 이놈이 어제는 밤에 한시간 마다 깨고 7-8시간을 내쳐 울어서
새벽에는 엄마 아빠 자라고 아이를 안고 밖에 나가서 서성 대었어요.
조금만 누이려고 하면 울어서 안아 주느라 생 고생을 하였답니다.
아기 자신도 잠못자는 것도 얼마나 고생일까 싶어서
세상에는 힘든일이 이렇게 많구나 새삼 느꼈어요.
우리 모두 화이팅!!!
이인선 선배님
치사랑은 없고 내리사랑이라더니
사랑은 역시 내리사랑입니다.
아무리 딸이 걱정이 되어도 손주가 더 예쁘니 얼른 업고 나오셨지요.
한부모가 자식 열을 키워도
자식 열명이 한부모를 모시지 못 한다는 말이 갈수록 현실로 다가오니 큰 일입니다.
어제는 저의 아버님 생신이라 다들 모였습니다.
병으로 바깥출입을 못 하시니 좁고 불편해도 집에서 치른 것이지요.
2살짜리 친손녀에서부터 30여명이 복작복작거리는데도 오랜만에 오래 앉아 계시고 많이 웃으셨습니다.
재롱을 피우는 꼬맹이들이 만약 없다면 어떤 풍경이었을까요?
아이들은 정말 꽃이랍니다.
오늘 이곳 인천은 비가 계속 나립니다.
며칠동안 퍼붓던 비로 유리창이 얼마나 깨끗해졌는지요.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니
옛날 우리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창가가 생각나 가만히 불러봅니다.
"비가 온다. 비가 온다. 창문을 때리며 비가 온다"
"어제도 오늘도 나리는 비, 내 마음을 울리며 나리는 비"
"비가 온다. 비가 온다. 창문을 때리며 비가 온다"
누구의 노래인지도 모르는 창가이지만 어린 딸에게 자장가삼아 들려주던 그 노래를 오늘따라 나도 불러봅니다.
선배님의 손주도 훗날 업어주고 사랑을 주신 할머니의 등을 틀림없이 기억하고 그리워 하겠지요?
그리고 선배님의 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알고 계시지요?
건강하십시오
?산학아 많이 회복되어가고 있겠지?
내가 쫌 돌돌하잖니.
"Get Well" 하고 싶어도 글이 못써지게 한참 생쑈하다가 이제사.....
큰깨달음! 아무도 심지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하는 내 새끼들도
내아픔을 당사자 아니고는 모른다오.
이제 회복되면 쉬엄쉬엄 꾀도 부려가며
몸사려가며 일하길 빌고 또 빈다.
가녀린사람이, 바람만 불어도 휠것같은 몸이 참 많이 고생하네.
재화나 너에게 가깝게 살면
션~한 수박이라도 사들고 문병가련만.....
고저 멀리 사는것이 유죄?
산학아! 몸이 좀 나아졌다고 또 무리해서 고생말고,
쉬는 김에 쉬어 가랬다고 이참에 학(?)실하게
네 몸을 회복시키길 빌고 또 빈다.
이렇게 아프게해 주심에 감사하고
더욱 건강하게 몸회복해서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올리렴!!!!
보고싶은 인선아!
답글이 늦었네. 미안해.
문병을 못 해 안타깝다고?
너의 이런 위로의 글이 문병인데 무슨 그런 말을.....
어제는 승자의 도움으로 영안실엘 다녀왔단다. 김영자와 셌이였어.(승자가 나때문에 고생했단다)
얼마나 오랜만에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인지....
같은 땅, 가까이 있어도 잘 못 만나는 걸 인선이 너는 이해가 될까?
이렇게 궂은 일에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참 재미없게도 살지?
아버님을 보내고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니, 이 또한 나에게도 금방 닥칠 일인지라 가슴이 애이더라.
너의 부모님은 건강하신지?
그리고 "아프게 해 주심에도 감사하라"
그래, 상처는 분명 나를 깊게 성숙시키니 당연히 감사해야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치?
?산학아 안녕?
몸이 아픈중에도 고인을 위하여, 친구를 위하여 다녀왔구나.
?복? 받을껴!!!!
친정아버지 묘소가 토론토에 있고, 80이되신 엄마는 혼자 사셔.
오히려 용순이가 딸노릇을 해준단다.
대구에 사시던 시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이번에 시모님 1주기가 되어서 남편이 한국에 가있어 지금.
담주 월요일에 돌아온단다.
내가 그 틈에 휴가를 즐기고 있잖은감!
지난 주일에는 토론토 칭구들 만나서 즐건시간 보내고 왔어.
최인숙이도 이번 12월엔 할매가 된다더라.
난 은지할매이고.
내가 카드보냈어.
남편에게 부탁하려다가 받는 기쁨누리라고.
선후배 모든분들의 사랑을 듬뿍받고 사는 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 함을 보면서 참 좋은 친구주심에 감사드린다.
그런 친구이니까 친구의 도움받아가며 힘들게 다녀도오고..... 복받을껴!!!!
많은이들의 기도를 먹고 하루빨리 회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재화한테 맛난것 얻어 먹지?
인선아!
이것이 뭔 일이라니?
오늘 네 편지를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까딱 잘못했다가는 속에 붙여놓은 신문이 떨어지지를 않아 북 찢으려 했단다.
본의 아니게 병을 자랑한 것이
난생 처음 대단한 편지를 받게 될 줄이야.....
올 초에는 인숙 수녀님이 성지순례에서 보내온 성모마리아의 카드를 선물받고 기뻐했는데
너에게서 또 이런 편지를 받게 될 줄이야
나는 정말 친구복이 많은가 봐.
또 하나 놀라운 일은 너랑 인숙수녀님의 눈웃음이 어찌 그리도 똑 같은지.......
눈웃음이 예쁜 두사람에게서 이런 선물을 받았다니 놀라울 뿐이란다.
실눈이 예쁜 내친구 인선아
고마워.
너무 쓸고 닦으면 들어올 복도 나간다는 충고 명심할께
그리고, 그리 했더니 돈이 솔솔 들어오고 있는 중이라니 이 또한 감사 감사한 일이고
자고로 사람은 말년이 좋아야 한다고 말들 하더라.
일도 하기 싫은 참에
네 충고가 쏙 귀에 들어온다.
나도 너처럼 살아야지.
?생각보다 일찍 잘 들어감에 감사!
요즘은 감사하며 살 일이 부지기로 많음에 또 감사다.
나처럼 살겠다고라....?
땡큐가 망치데이!
하찮은 나지만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하며 살긴 산다.
태풍이 심하다는데 바깥출입말고.....공연히 바람에 떠밀릴라! (또 오지랍)
내가 이러면서 산다.
난 뱀띠가 아니고 용띠인데도 '사족'을 그리다가 꼬~~옥 일을 그르칠적이 많아.
주일아침에 남편식사 준비하다가,
그반찬이 그반찬? 하며 뭘하나 더?하고 딴짓거리 하다가 맨날 지각.
왜 학교옆에 사는 아이들이 지각하는거 있잖아.
교회주위가 1구역이거든. 내가 바로 그구역이걸랑.
기도회에도 단골 지각생인데, 이번에 내가 봉사자차례가 됬거든.
안 늦으려 무쟈게 애쓰누먼. 이참에 나의 악습이 고쳐질것 같어!
주님께서 오래 기다려주셨어. 날보고 빙그레 미소지으시는것 같아.
산학,재화, 인숙수녀님(친한것도 아녔던것 같기도 하고, 민지홍과는 그래도 쫌)
모두모두 보고싶네!!!!
인선아!
오늘 네 우려대로 강풍에 날라갈 뻔했다.
아들이 보름간 출장을 간다기에 필요한 상비약을 사러 약국에 잠깐 들렀을 뿐인데 바람에 정신이 다 나가버려
얼른 들어오고 말았지.
나같은 사람은 홀라당 날라가 버릴 것만 같더라.
대단한 강풍이다.
오늘에서야 내가 바닷가 인천에 산다는 것을 실감한 날이네.
이 시간에도 서울은 조용히 비가 나린다는데....
아직도 교회에 단골 지각생이라고?
학창시절 멀리서 통학하던 부평친구들이 종종 지각하던 것이 생각나 혼자 웃는다.
그런데 학교 코앞에 사는 친구들도 그 대열에 끼고.......
왜 그랬울까?
풍미당
대동문구를 끼고 오르던 전동길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종일을 재잘대며 오르내렸지.
어느때고 한국에 나오면 그 길을 함께 걸어보자.
?그러자꾸나 산학아!
오늘 드뎌 울남편이 밤에 돌아온다.
지금 대충 집청소 해야되는데 유혹을 못이기고 이앞에 앉아있네.
호숙이가 그 점을 일러줬건만 학(?)실이 중독도 보통은 넘는것 같다.
역전앞에 있던 국민학교가 축현? 창영? 헷갈리네.
학교앞에 새로생긴 문방구가 대동문방구였던가?
박리다매 전략으로 온동네 학생들 상대로.....
그래가지고 3층 건물인가 지어설라무네.....
우리 구멍가게도 그당시의 문구점을 상기시켜서 그 전략을 쫴매 대입시켜서 시도.
그런데로 도움이 되고 있다네.
이곳은 학교앞에 그런 진풍경이 없어서 낭만이 떨어지네.
방과후에 먹던 마탕, 오징어 튀김, 떢볶이 등등등 기억이 새롭네.
너랑 함께 올랐던 자유공원도 기억난다.
홍여문 청관을 지날때의 으스스함 왜 그랬을까?
건강또 건강해서 언제 한번 꼬~~옥!
"O.K? O K!"
낮잠을 쪼매 자두고 가게문닫고
이따 밤중에 공항에 Pick up하러 나가야지!
영육간에 건강하길......
너희들의 수호천사가( 내 '선'이 보통은 착할 선인데, 내것은 신선 선이야).
p.s.:
그래서 내가 아무리 잘나도 결국은 천사밖에 안되누먼!
살면서 내이름값은 하고 가야지....
인선아!
제목은 생각이 안 나지만 이런 유행가 가사가 생각난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면은 시들하고
몹쓸 것 이 내 심사........"
이 가사처럼 오랜만에 해후를 하는 남편이 얼마나 반가왔을까?
인간은 미련하게도 잃고난 후에 소중한 것을 알게되지.
천사뿐이 될 것이 없는 여자를 아내로 둔 남자는 또 얼마나 행복해 있을까?
인선이.....참 좋은 이름이다.
대동문구 앞에 있는 학교는 축현이란다.
그것도 가물가물 하니?
학생수의 감소로 축현은 벌써 송도로 옮겨가고 그 자리엔 다른 건물이 들어섰단다.
대동문구는 그 아들이 대를 이어 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성공을 했고
맛있던 마탕집....
그 마탕과 비슷하게 맛있는 곳을 얼마전에 발견하고는 가끔 그 맛을 잊지못해 찾고는 한다.
팥죽과 우동이 맛있었던 풍미당은 작년까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는데 올해는 가보지도 못 했네.
더 놀랄 일은 풍미당에서 일을 하던 소년이 이제는 애아버지가 되어서 어엿한 주인으로 변모했는데
희한하게도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하더라고.
얼마나 반가왔는지.......
풀빵도 맛있었지.
자유공원도 많이 변했단다.
공원 오르는 한켠엔 물길을 만들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맨발로 첨벙대며 내려오지.
그래도 홍예문은 옛날 그대로야.
참 오래전 이야기이다.
그 길을 예전에 같이 걸었듯, 또 같이 걸을 날이 있을까?
산학후배!
후배의 글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네~~
나도 허리가 안 좋아서 허리 아픈 사람의 심정을 좀 아는데,
혼자서 아파도 아프다고 찡찡거릴 대상도 없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울까 생각하니 맘이 너무 아프네~~
우린 자식들 기르면서 자식이 아플땐 잠도 못 자고 업고서 잤건만
아이들은 엄마가 아프다는 소리 듣기 싫어하지요.
우리 아이들도 아프다면 그저 닥터한테 가라고 해요.
많이 고통스러울텐데.........
내가 위해서 기도할께요..
너무 가라앉지말고 친구들이라도 좀 만나요.
고난과 고통뒤에 오는 평안과 축복이 어서 오길 기도할께요
용기 잃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