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회 - 게시판담당 : 구창임
4일동안 한국의학계의 몇분들과
비엔나 의료기관을 방문하며 통역일을 했다
방문 기관중에 프러이드 대학도 있었다
대학교를 돌아보는중,
프로이드 대학의 임상심리 치료실에
장식없이 붙어있는 손으로 쓴 글귀를
무심히 읽다가
바로 생떽쥐베리와 헤르만 헤쎄의 글귀임에 반가웠다.
대학을 들어서면
평소에 애연가로 알려진
프러이드의 사진이 방문자를 반기는듯하다.
이대학의 홍보용 포스터의 모토가 특이하다
" 영혼적 삶을 연구한다" 라고..
복도에는 여러 포스터가 붙어있다.
정신치료를 받기전의 심리상태를 글로 보여주며
테라피후의 밝은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로고:
Ich hatte Angst
나는 두려움을 가졌었다...
나는 겁이 났었다...
저희대학 총장이 된 동료교수가(독일에서 유학하심)... <연구실 대방출> 공지를 붙여서
가서 책을 고르던 중 저는 독일어 사전(5권 묶음)과 독일러로 된 백과사전을 집어왔읍습니다 (아마 25권 정도).
그런데....프로이드의 책 등 집어오기도 그렇고 안타까웠어요.
좋은 안내에.... 감사드립니다.
유순애 선배님,
이번에 몇곳을 방문하면서
비엔나 의과대학에서 대체의약(학)하시는 분도 만났어요.
선배님 생각이 났었지요.
좁은 지면으로 옮기기는 어렵지만,
세상곳곳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를 위해 소명감으로 연구봉사하시는 분들이 많구나 .. 새삼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이드의 학설과 임상연구는
현재 더욱더 각광을 받으며
세계곳곳에서 이 대학으로 유학오고 있답니다.
이날 저녁 이대학 총장이 방문객을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비엔나의 여러 교수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진심으로 머리가 숙여지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요.
그중,한 교수가 얘기 한것을 옮겨 볼께요.
스스로 선운동이나 단전호흡할 수있는 사람은
정신테라피가 필요 없다네요... 즉 스스로를 조화롭게 조절할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에
가슴이 멍멍하고 쓰리고 힘들때에는
우선 호흡운동으로
깊이 들어마시고 내뿜어서
내면의 화나 분을 즉시 밖으로 내보내야
자신의 육체에 남어서 병을 유발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했어요.
너무나 쉬운 이론 같았지만
실제로 저 스스로 얼마나 잘 할수 있을까 생각 해보니
오랜동안 임상경험의 교수님의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었지요.
유선배님 이제 방학이라 한가하시겠네요..
아니면 연구하시느라 더 바쁘실지...
그래도 건강 조심하세요
5년 후배 허인애 처음으로 선배님들 방에 들어와 인사드립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방을 꾸며 주시는 선배님들께 감사드리고
"Inter net"의 힘으로 이렇게 방에 앉아 음악치료도 받고...
조은일은 제목을 정하는게 아닌거 가타여...
이렇게 저처럼 음악을 들으며 사진을 보며 공감되는 글들을 읽으며
기뻐하면서 치료를 받으니까여...
아름다운 비엔나의 정서가 김옥인선배님글에 뚝뚝 묻어나는게...
정말 아름답고 ... 감사드립니다...
선배님들... 강건하세여...
안녕하세요? 허인애님,
첨으로 여기에서 글로 만나네요.
윗글올리고 며칠간 여행다녀오느라 답글이 늦었어요.
요즘 인터넷상으로 대화나누는데 어색함이 생겨
옛날에 같이 공부했던 9기 친구들과 지냈었어요.
그런데,인애님의 글 읽고 많이 기뻤어요.
저의글에 공감이 있었다니 새로운 각오가 생기네요 ㅎㅎ
여행가서 여러생각을 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이왕 인연맺어진 인일 홈피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나하고요...
허인애님~!
앞으로도 저와 주위의 일들을 그냥 옆에 친구와 지인들과 얘기하듯이 풀어볼께요.
건강하세요~
멋쟁이 비엔나 여사여... 건강하게 여행을 다녀오시게나.
메마른 정서를 보듬어 적셔주는 덕분으로 ....
이렇게 오랫만이지만 댓글을 달수 있어 행복하다오.
만나보고 싶은 친구들이 많이 많이 기다리고 있으니....
한쌍 밖에 없는 무릎을 조끔씩 달래며 보호하며 살아가기를....
나도 그런 의미에서 비를 뚫고 걷기운동을 시작했다오.
옥인이가 보내준 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부슬부슬 비 내리는 창 밖을 내다본다~~
선배님도 후배님도 들어오시고~*^^*
친구 난준이도 방긋 웃게하고~~고맙네~~
옥인아 여행 건강하게 잘 다녀와~~
이렇게 한국 안방에 앉아서 음악을 즐기며 우리에게 지식을 쌓게하는 옥인아!
고맙다. 죽을 때까지 헤아리지 못할 무궁무진한 분야들을 네 덕에 조금씩 알게 되는구나.
즐거운 여행되길 바라며 항상 건강하길.
행복은 먼 데 있는 겻이 아니고 우리들 맘 속에 있는 것이라고 오늘 아침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박난준,구창임, 장선화,,,
울친구들이 다녀가며 글도 남기고 .. 고마워~~~
여행 잘 다녀왔어
딸애랑 다니면서 지난 얘기들을 이번에 많이했단다
딸애의 어린날의 추억을 들으면서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쫘악~ 떠오르더라고.
이제는 성인이 되어서 엄마를 많이 이해하지만
옛날 어릴적에는 이해를 못하면서도 어른의 뜻이라 따라야만 했다고 .. 하는데,
제 자식의 깊은 내면을 이제서야 알아버렸네.
딸애도
엄마의 고충을 좀더 속속히 알게 되니까 속이 시원하다고 하더라고.
그동안 종종 대화를 나누었었지만
이번에는 딸애 위주로,
정말 딸애가 기억하는 유아기부터 시작해서 현재와 미래까지..
그러면서 여행을 하다보니
마지막날은 서로가 정말 하나가되는 기분이더구나.
아무래도 기왕지사 프로이드대학도 방문했겠다
프로이드의 학설을 다시 점검해봐야겠다고 생각도 했지.ㅎㅎ
세상에서 가족은 제일 가깝지만
또한 그래서 애증도 생기고
바로 바로 해소해야 좋을거야...
너네들은 잘하고 있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비엔나라
종종 나는"my love vienna~"라고 말해왔어요.
그리고 정말 좋아하고요^^
비엔나! 하면 우선 음악이 떠오르지요?
맞어요..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살아갈수록 알아집니다.
우선 문학의 정수가 곳곳에 흐르고 있어요.
하루밤에 대,중,소 연극이 250여군데에서 열리지요.
지금 부터 100여년전의 비엔나는
세계의 지성인이 거히 모여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러한 가운데,
바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
떠오르는 혜성처럼 세기를 흔들었었지요.
스위스 출신 "융"과 처음에는 같은 뜻을 갖었으나
점차로 뜻이 달러지며 공개서신으로 회자되었던 시절도 있었지요.
그 시절의 음악가중에 프로이드와 교분관계를 맺었던 사람이
"구스타프 말러"에요.
첫 딸애를 잃은후 정신적 혼돈을 프로이드를 찾으며 풀었었지요.
이런 에피소트를 소재로 해서
독일의 노벨문학가 " 토마스 만"이
"베니스의 죽음"이라는 단편소설을 썼었어요.
그후 1970년대에는 동명의 이탤리 영화가 히트를 했었고요.
그 영화의 주제음악이
바로 " 구스타프 말러" 의 심포니 5번 "아다지에토"라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지요
'토마스 만'은 생전에 비엔나를 종종 방문하여
프로이드와 교분을 맺고 강연도 같이 하였었습니다.
저는 100년이 넘은 21세기에 이곳에 살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때가 종종 있어요.
Gustav Mahler :Symphony No.5 in C Shap Minor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로이트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프로이트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or Sigismund Schlomo Freud, 1856년 5월 6일 ~ 1939년 9월 23일)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파의 창시자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억압의 방어 기제에 대한 이론, 그리고 환자와 정신분석자의 대화를 통하여 정신 병리를 치료하는 정신분석학적 임상 치료 방식을 창안한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또 그는 성욕을 인간 생활에서 주요한 동기 부여의 에너지로 새로이 정의하였으며, 자유 연상, 치료 관계에서 감정 전이의 이론, 그리고 꿈을 통해 무의식적 욕구를 관찰하는 등 치료 기법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뇌성마비를 연구한 초기 신경병 학자이기도 하였다.
신프로이트주의에서 프로이트의 많은 이론을 버리거나 수정하였으며, 20세기 말에 심리학 분야가 발전하면서 프로이트 이론에서 여러 결함이 드러났으나, 프로이트의 방법과 관념은 임상 정신 역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생각은 인문 과학과 일부 사회 과학에서 계속 영향을 주고 있다.
생애
유년기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856년 5월 6일, 오스트리아 제국(오늘날에는 체코 영토이다) 프리보르(P?ibor)의 모라비아인 마을에서 갈리치아계 유대인[1]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이름은 지기스문트 프로이트(Sigismund Schlomo Freud)였으며, 아버지 야콥 프로이트[2]는 당시 41세로 양털 장수였으며, 재혼하기 전에 첫 결혼에서 이미 두 자녀가 있었다. 어머니 아말리에는 야콥의 세 번째 부인으로, 당시 21살이었다. 지그문트는 여덟 자녀 가운데 장남이었으며, 비상한 지력 덕분에 어릴때부터 부모님은 다른 형제 자매보다 그를 아꼈다. 가난 때문에 프로이트 가족은 지그문트에게 적당한 교육을 받게끔 모든 것을 희생하였다. 1857년의 경제 위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였으며, 가족은 라이프치히로 이사했다가 빈에 정착하였다. 1865년, 지그문트는 명문 고등학교인 Leopoldstadter Kommunal-Realgymnasium에 입학하였다. 프로이트는 성적이 우수하였으며, 1873년 마투라(졸업 시험)를 우등으로 통과하였다.
의과 대학
프로이트는 법을 공부하기로 했다가 빈 대학교의 의과 대학에 입학하여 다윈주의자였던 카를 클라우스 교수 밑에서 공부하였다.[3] 그가 의대를 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다윈의 ≪종의 기원≫과 괴테의 ≪자연≫에 대한 독서 때문이었다. 프로이트는 1885년 파리 살페트리에르 병원장 샤르코 밑에서 장학생으로 약 5개월간 연구하면서 히스테리와 최면술에 특히 관심을 가졌는데, 이것은 장차 정신분석학을 창안하는 데 매우 중요한 동기가 된다.
당시 뱀장어의 생애 주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프로이트는 뱀장어의 수컷 생식 기관을 연구하면서 트리에스테의 오스트리아 동물학 연구소에서 4주간 지냈으며, 전임자들보다 별로 많은 것을 알아내지 못한 채 뱀장어 수백 마리를 해부하였다. 1876년에 그는 "뱀장어의 정소"라는 첫 논문을 Mitteilungen der osterreich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에 실었는데, 여기서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음을 인정하였다. 별달리 성공을 거두지 못해 명성을 얻지 못하자, 프로이트는 자신의 연구 분야를 바꾸게 된다.[4][5][6]
1874년, 독일의 생리학자 에른스트 빌헬름 본 브뤽케가 '생리학 강의'를 출간하여 "정신 역학"의 개념을 제안하였는데,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을 공식화했던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물리학자 헤르만 폰 헬름홀츠와 협동하여 연구한 그는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는 에너지-체계이며, 이 법칙에 지배받는다고 주장하였다. 그 해에 빈 대학교에서 브뤽케는 의대 1학년생이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주임 교수였으며, 프로이트는 그의 새로운 "역학적" 생리학을 받아들였다. 브뤽케의 '생리학 강의'에서 그는 살아있는 유기체는 하나의 역학계이며 화학과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급진적인 견해를 내놓았다.[7] 정신 및 정신과 무의식의 관계에 대한 프로이트의 역동적 심리학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였다.[7] 존 볼비에 따르면, 화학과 물리학의 원칙에 기반을 둔 프로이트의 기본적인 모델은 브뤽케, 메이네르트, 브로이어, 헬름홀츠, 헤르바르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8] 1879년, 프로이트는 1년간의 의무 군 복무를 수행하고자 연구를 잠시 접어두었으며, 1881년에 논문 "하급 어류종의 척수에 관하여"(Uber das Ruckenmark niederer Fischarten)로 의학 박사(M.D.) 학위를 받았다.
프로이트와 정신 분석
1885년 10월에 프로이트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신경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와 공동 연구차 파리에 갔다. 그는 나중에 이때의 파리 체류로 재정적으로 가망이 떨어지는 신경학 연구 대신 정신 병리 치료로 진로를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하였다.[9] 샤르코는 히스테리와 히스테리 환자의 최면 감수성을 전공하였으며, 그는 청중 앞 무대에서 히스테리 환자를 자주 시연하였다. 나중에 프로이트는 최면 기법을 가능성이 있는 치료 방식에서 버렸으며, 자유 연상과 꿈 분석을 선호하게 된다.[10] 샤르코 자신도 말년에 히스테리에 대한 자신의 연구에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였다.[11]
1886년에 프로이트는 마르타 베르나이스와 결혼한다. 그 뒤 자신의 신경과 진료소를 차린다. 아내의 아버지 베르만은 함부르크의 수석 랍비였던 이작 베르나이스의 아들이었다. 프로이트는 신경계 환자들에게 최면 기법을 실험하였으나 많은 대상자들에게 최면이 쓸모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이 치료 방식을 포기하였으며, 환자와 본인의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치료법을 썼다. 이 방식은 "대화 치료"로 알려지게 되는데, 대화의 최종적인 목적은 환자가 처음에 거부하고 있으며 무의식에 갇힌 강력한 감정 에너지를 풀어주어 위치짓는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이렇듯 환자가 어떤 감정을 거부하는 것을 "억압"이라고 불렀으며, 그는 이것이 종종 정신의 정상적인 기능에 해를 끼치며 육체적 기능까지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를 "정신 신체증"(심신증)이라고 설명하였다. ("대화 기법"이란 용어는 원래 프로이트의 동료인 요제프 브로이어의 환자인 안나 O.(Anna O.)가 만든 말이었다) "대화 기법"은 정신 분석학의 기초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12]
나이 40대에 프로이트는 수많은 심신증 장애와 더불에 죽음에 대한 지나친 공포, 그 밖에 공포증에 시달렸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꿈, 기억 그리고 본인의 인격 발달의 변천에 대해 탐색하는 데 몰두하였다. 이렇게 자신을 분석하면서 프로이트는 1896년에 죽은 자신이 아버지 야콥 프로이트에 대해 적대감을 느꼈으며,[13] 또 어린 시절 매력적이고 따뜻하며 포근했던 어머니 아말리아 프로이트에게 느낀 성적 감정을 상기하였다. 자기 분석을 계속하여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들을 모아 1900년 <꿈의 해석>을 출판했다. 그리고 정신학 분석을 연구하여 빈 정신 분석 학회를 조직했다.
1900년과 1902년에 책을 출간한 이후로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관심은 점점 늘어났으며, 지지자 집단도 생겼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을 비평하는 지지자들과 충돌하기도 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원래 프로이트의 생각을 지지하던 카를 융이었다. 두 사람이 결별한 이유는 융이 종교와 신비주의에 흥미를 가지고 다룬 탓도 있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비과학적이라고 보았다.[14]
말년
1930년, 프로이트는 심리학과 독일어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괴테 상을 받았다. 3년 뒤에 나치가 독일에서 집권하였으며, 이들이 불태우고 없앤 책 가운데서도 프로이트의 책이 특히 두드러졌다. 1938년 3월에 나치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였다. 그리하여 빈에서 반유대주의 감정이 들끓었으며, 프로이트와 가족의 집에는 비밀 경찰들이 들이닥치기도 하였다. 또 빈 정신 분석 학회가 해산당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책과 재산이 모두 몰수당하자, 프로이트는 "자유롭게 죽기 위하여" 망명길에 오르기로 결심하였다. 그와 가족은 1938년 6월에 빈을 떠나 런던 햄프스테드의 20 메어스필드 가든스(20 Maresfield Gardens)로 이주하였다. 스위스 코티지 근처에 벨사이즈 길(Belsize Lane)과 피츠존 거리(Fitzjohn's Avenue)의 한쪽 모퉁이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지독한 애연가였던 프로이트는 구강암 때문에 생전에 30번이 넘도록 수술을 치렀다. 1939년 9월에 그는 의사와 친구 막스 슈어를 설득하여 자살을 돕도록 하였다. 프로이트는 미완성 원고 <정신 분석학 개관>을 남겨두고 1939년 9월 23일에 죽었으며, 죽은 지 사흘 뒤에 그의 유해는 영국 골더스 그린 공동 묘지에 매장되었다.
나도 며칠 남도 다녀오느라~~~^^
딸애를 바라볼 때 옥인이의 모습은 참으로 사랑가득하구나!
아주 먼 시절에나 접했던 저명한 이름들을 다시 대하게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아주 전문적인 설명까지 해주니.. 접어 두었던 머릿속을 깨워 주네요!ㅎㅎㅎ
잔디위에서 하얀 단화도 예쁘다~~~~^*^
그리운 영희야~~
남도에서 잘지냈시요? 얼굴 좀 보여주세요.^^
인일웹싸이트에 글을 올려놓은 후
나중에 보면 주제가 삼천포로 가는 경향이 있구먼요. ㅎㅎ
두 글귀를 보고
전개되는 연상작용이 점점 넓어지는구만..
친구들 머리아프게 하는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되요.
주말여행을
르네상스 시대의 아담한 성에서 지냈거든..
비엔나에서 가까운 Wachau 지역근처에 있는.
우리 모녀는 흠뻑 그곳 생활에 반했었기도.
앤틱이 무궁무진한 성에서
예를 들면 목욕탕이 커다란 벽돌바닥에
사자다리가 보이는 욕조 ㅋㅋ
마루바닥이 삐걱삐걱거리고...등등
현대적 문화시설도 적소에 조화된 곳이었어
아침 늦으막이 일어나 풀에서 수영하며 정신을 깨우고
아.점 먹고 쉬면서 책도 읽고, 그러다 다시 수영하고...
성 안주인이 따끈따끈 구운 살구케익도 먹고, 싱싱한 살구도 간식으로 먹으며 ..
아무 급함없는 느긋함이라니... 참!~ 이야말로 휴양!^^
오전
중간 휴식
그리고 오후 3~4시쯤에는 외출하여
첫날은 지인이 경영하는 나리꽃 화원을 들렸고 다른날들은 가까운 명소를 드라이브해서 갔다가
저녁식사쯤엔 지인들도 만나 식사도 같이하고...
(바카우 지역 다뉴브강가에 정박한 선상 레스토랑에서 석양빛에....)
며칠동안 성주의 귀빈처럼 지냈던 경험이야요 ㅎㅎㅎ
소설이나 영화속에서 살다가 온 기분.
소설이 실제가 되는 느낌!!!.
떠나오기 싫을정도 ㅎㅎ
1. 마리아 타펠- 성모마리아 성지....
알프스 시작한다는 곳으로 다뉴브 강의 줄기가 보이는 전경이 유명함
2.멜크 대수도원
3. 바카우 계단식 포도원 단지
그리고 또,또,또 요기조기를,,,,,오늘은 요기까지만 ...
딸애가 여름방학이라 얼마있으면 아일랜드로 휴가를 떠나요.
그래서 그전에 오붓이 가까운 근처 여행을 했시요.
예전에는 다른 나라를 위주로 우리 모녀가 여행했었는데
앞으로는 종종 오스트리아 국내여행도 하려고요.
우리에게는 오스트리아도 외국이잖남요? ㅎㅎ
그리고 사는 곳에 더 정을 들일려고요~~
방장님 질문하나!
이런 스스로도 처음 만난 경험과 느낌을 정리해서 영상에쎄이 처럼 쓰고 싶은데,
어디에다 올려야 하남요?
컬럼에다 쓰셔도 손색없으시겠소~~!ㅎㅎ
(딴 방 나들이를 잘 안해서 저두 잘 모르겠사와요! 마님~~ㅋ)
오~~부러워라~~~~^*^
어머 ?영희야 새벽두시가 다 되어가는데 안자고 있었구나..
요즘 컬럼에 첼시 2편을 올리는 중이야..와서 봐봐 ㅎㅎ
저번에 석순이가 어디에다가 나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정학준다고 했었는데 ㅎㅎ아유 무셔버라~~~
우선 내 블러그에다가 적어놨다가 나중에 옮길께.
나는 지난주 일마친후 여행가서도 돌아와서도 이런저런 책보면서 지낸단다
제일 행복해 ㅎㅎ 어제도 책두권 샀더니 마구마구 기분좋고 부자가 된거 같애^^
이렇게 일 안하고 한 1년정도 쉬면 얼마나 좋을까?
야무진 바램이라고?
좀 쉬다가 개미처럼 일해야겠쟈?
그대도 더위 이기고 잘 지내시라요~
( 멜크 대수도원 Parkgarden에서)
위에 올렸던 여행을 다녀온후 여태까지 삥삥 놀면서 지냈다우^^
놀다보니 정말 그냥 이러 이러 살고 싶어지네.
컬럼에 새로운글 올렸으니까 길지만도 읽어들 보세용~~
9기방에는 길게쓰기 미안해서 고기다 올렸거든요 ㅎㅎ
아직 마무리 글은 못올렸는데.. 곧 올릴것이야요.
(마리아 타펄 성모성지에서)
타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언제인가는 누구나 한번맞을 죽음에 대해서 요즘 많은 생각중...
내가 떠난 후 맞이 할 가족을 위해 이제부터라도 정리 정돈 해야지 라고.
20일부터 한엿새 출타중 친지생일 가든파티에 갔었는데
그날보다 이틀전 비엔나 떠날 때보다 비가 오니 추워져서 잠바를 빌려입고
밤에는 이불까지 뒤집어 썼다니까요 ㅠㅠ
26일부터 날씨가 개인다고는 하지만..그래도 두고 보아야지요~~
세계가 이상기온이야요 ...
뷔엔나 특파원 옥인후배 방가방가!!!
오랜만에 9기 방에 들르니 좋은 글이 날 반기고 있네.
딸과의 여행! 참 좋았죠?
이제 성년이 된 멋진 딸과의 대화에서
뭔가를 서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몰랐던 엄마를 알고 딸을 알고
참 뜻깊은 여행 잘 했어요.
나도 딸과의 그런 시간을 가져보도록 노력해야겠네.
항상 멋진 곳 여행하면서
좋은 글과
함께 올려주는 사진보면서 대리 만족하고 있어요.
이곳은장마가 물러갔나보다 했더니만
오늘 새벽에 천둥번개와 게릴라성 호우로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과 강원도 일대가 아수라장이예요.
언제부터인가 국지성호우 주의보가 내려지더니
이젠 귓가에서 자주 맴돌아요.
더 이상의 피해가 없어야하는데.....
옥인후배도 건강 잘 살피면서 즐겁게 지내요~~~
안녕하세요 김광숙 선배님,
오랫만에 인사드리네요...
먼저 작품수상하신것 축하드려요.
제가 요즘 집에서 편히 컴퓨터에 못앉아 있고 출타가 많았어요.
며칠을 돌다 귀가하고 찍은사진 정리도 제대로 못한상태로 또 출타를 하다보니
예전처럼 느긋이 글을 못올리고 있어요.
이번 여름에 딸애랑 많은 시간을 나누니 정말로 좋아요.
내일 모레는 딸 애가 친구들과 아일랜드로 여행을 떠나서
저는 그동안 일을 열심히 하려고 스케쥴이 줄줄이에요. ㅎㅎ
선배님께서 저희 9기방을 찾아주시니
고마우면서도 황송하옵나이다.
종종 왕림하옵소서^^
Um klar zu sehen genuegt oft ein Wechsel der Blickrichtung
(Saint_Exupery)....어린왕자 중에서.
분명하게 보기위함은
보는 시각의 변화를 자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떽쥐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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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Glueck ist ein
wie,kein was
( Hesse)
행복은 어떤 하나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아무것도 아닌 것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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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
내가 며칠간 여행가서
뜸할거야요~
그래,
우연히 만났던 글귀를
같이 생각해보자고
소녀 미약하나마 번역해서 올렸거든요.
모두들 이미 잘 아는 문귀라서
혹,나의 번역이 이상하면 알려주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