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지부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33.허민희
인일의 정신을 드높히는 해외동문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오늘 아침 LA 공항에서 조영선선배님을 만나
총동창회에서 보내주신 감사패와 CD 100장과 50년사 책자 두권을 잘 접수하였습니다.
조영선선배님이 여행트렁크와 함께 카트에 실고나오신 커다란 상자를 가리키면서
“이거야! “ 하셨을때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나! CD 라면서요? 왜 이렇게 보따리가 커요?”
나는 막연히 선배님 트렁크안 어디 한귀퉁이에 넣어가지고 오실수 있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을 했었던거지요.
그래서 물건을 담아올 헝겊가방 하나를 핸드백안에 챙겨들고 나갔던 참이었답니다.
CD 니까 작은물건이니 만만히 보고, 책두권이라니까 또 작은 수량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했던거지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박스포장을 뜯었습니다.
첩첩이 잘 포장된 박스를 열면서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이 물건들을 보내기위하여 일일이 싸고 담고 스카치테이프를 붙이고 운반했을
그 수고와 정성의 손길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었습니다.
궁금했던 감사패는 오히려 자그마하고 아주 검소했습니다.
그점도 맘에 들었습니다. 기부한 사람도 겸손한 마음으로 했겠지만
감사를 전함에서도 요란하지않은것같아서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먼저 책부터 열어보았습니다.
장정도 근사하지만 그안에 내가 쓴 글도 들어있으니 당연히 그것부터 보고싶어지더군요.
특히나 원고가 무단 생략되고 왜곡된 부분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고보니 나도
자연히 얼른 내 원고를 확인해보고싶었지요.
내 글에는 별 변동사항없이 원래 내가 쓴 그대로 올라있었습니다.
다음에 대강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책을 훑어보았습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들이 번번이 꼭 나같고
우리반 아무개같고해서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보면서 혼자 실소를 했습니다.
내가 본 인일여고 50년사 편찬은 매우 훌륭한 작업이었습니다.
그 책을 편집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공이 들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아직 세밀히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첫페이지부터 끝장까지 다 넘겨는 보았지요.
한 제목 한 제목을 정할때 얼마나 여러가지 구상들이 많았을까요.
한 기사 한기사 추려가면서 또 얼마나 여러번 갈등이 많았을까요.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의 순간에서 그들의 노고가 얼마나 심각했을지 눈에 보이는듯 했습니다.
다음에 CD 확인차례.
차곡차곡 25장씩 들어있는 케이스 4개가 상자를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 CD가 50주년 기념 행사를 녹화한 CD인줄로 지레짐작을 했던 나는
컴퓨터로 열어보고는 혼자서 놀랬답니다.
이 CD는 바로 저 육중한 책 한권이 고스란히 고대로 들어있는 Book CD (이렇게 부르는게 맞는지요?) 였던겁니다
책을 펴들고 컴퓨터앞에 앉아 페이지마다 대조 확인까지 해봤지요.
참 좋은 세상입니다. 책 한권이 이 작은 플래스틱 접시안에 다 들어가다니요.
몰랐던 일이야 아니지만 막상 CD책을 처음 접해본 나는 매우 감동스러웠습니다.
이렇게 귀하고 뜻깊은 선물을 보내주신 모교 총동창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먼 여행길에 무거운 가욋짐을 마다않고 기쁜 마음으로 들어다주신 조영선선배님 매우 감사합니다.
D-25, 인일여고 개교 50주년 기념행사일이 25일 앞으로 다가왔다고 ,
한달도 채 남지않았다고 홈페이지 메인페이지에서 카운트다운을 하고있습니다.
바야흐로 50주년 기념축제의 막이 오르려하고 있는 이시점입니다.
돌이켜생각해보면 학창시절이 참으로 오래전이건만 또한편 어느새 50년이 지났나싶은 상반된 감정이 교차합니다.
신설학교라 전통도없고 선배도 없다고 약간은 못미더워하시던 주위어른들 말씀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낯설던 새학교 인일이 이제 개교 50년, 반백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50주년 기념으로 인일 50년사를 편찬하는데 미주동문회장으로서 동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기에
이 기회에 미주동문회에 대하여 이야기 해볼까합니다.
미주동문회는 1984년에 발족이 되었으니 벌써 27년이라는 역사를 기록합니다.
1984년에 인일 2회 선배님들이 주축이 되어 동문 22명이 모여 첫동문회를 발족하면서
2회 전희옥선배님이 초대회장이 되어 동문회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해를 거듭하면서 4회 조경배, 2회 유향식, 3회 유은효, 5회 김인숙, 6회 김춘자, 11회 김영란,
10회 최영희회장을 거쳐 동문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작년에 15대회장으로 제가 추대되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고국을 떠난지는 34년이나 되었지만 미국에 온지는 이제 겨우 만 2년이 되었습니다.
미주에 대하여 아는바도 없으면서 회장이라는 직함을 받고보니 어설프고 미숙하기가 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미주동문회는 전과 다름없이 아무 탈없이 순조롭게 잘 순항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지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미주동문회에는 첫 발족의 날부터 오늘까지 변함없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2회 선배님들이 계십니다.
둘째, 위에 열거한 전임회장님들이 끝없는 책임감과 애정으로 언제 어느때고 동문회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주십니다.
세째, 고국을 떠나 해외에 산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모든 동문들이 서로 잘 이해해주며 매우 협조적입니다.
미주동문회에서는 2006년에 마침 2회 선배님들의 회갑해를 맞이하여
연례행사인 신년총동문회를 개최하면서 선배님들의 회갑연을 겸하였습니다.
회갑연은 당시 회장이었던 6회 김춘자동문의 구상이었으며
2회 김애옥선배님이 전동문들에게 파티드레스를 도네이션해주셔서 첫잔치가 아름답고 의미깊게 치루어졌습니다.
그 이후 해마다 회갑을 맞이하는 기수의 동문들에게 화려한 드레스차림의 회갑잔치를 열어주는것이
어느덧 미주동문회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바로 두달전 1월 15일에 회갑연을 마치고 돌아간 7기동문들이 아직도 그 열기를 다 식히지못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해외이민생활 32년동안
제가 살고있는 거주지에서 인일동문을 만나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에 와서 짧은기간에 갑자기 수많은 동문들을 만나면서
미처 이름과 얼굴과 기수가 매치되지않아서 혼란스러우면서도 얼마나 신기하고 행복한지요.
오로지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그 인연 하나로 금방 언니되고 동생되어 이렇게 정답게 지내니 참으로 신기합니다.
또 오랜 세월동안 동향인을 못 만나고 살아 마치 기억상실처럼
내가 다녔던 학교마저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던 제가 미주 동문회에서 본연의 뿌리를 찾았으니 참으로 행복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미주동문회.
나를 사랑해주는 미주동문회.
미사려구같지만 사실을 표현했을뿐이라고 말하고싶습니다.
50년전 인일이 개교하면서부터 잉태되어온 우리들의 인연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들의 모교, 인일의 개교기념일을 자축하면서
미주 인일인들의 현주소를 새삼 확인하고 다짐 한번 해 보는 바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협조하는 우리들의 현주소를 언제까지나 바꾸지맙시다.
2011년 3월 11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주동문회장 3회 조영희
온 미주동문들이 나중에 CD를 받아보면 다 읽어볼 수 있겠지만
위의 글이 바로 내가 썼던 원고 원본입니다.
내가 정했던 원래제목은 ?바다건너 미주동문회? 였었는데
책에는 ?옛 기억 지닌 소중한 만남 ?으로 달라졌더군요.
무슨 연유인지 나는 아직도 내 제목이 더 애틋하고 좋은데
그렇다고 달라진 제목에 별 이의는 없습니다.
내용에도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더군요.
아마도 쓰는 사람의 개인적 단어구사의 느낌과 읽는 사람의 객관적 느낌이
좀 상이하기에 임의로 약간의 수정을 한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점에도 나는 하등의 불만은 없습니다.
다시 한번 모교의 총동창회 임원진에게 뜨거운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조영희회장님!
'바다건너 미주동문회"
역쉬 우리 미주동문회장님은 작가이심에 분명합니다
어쩜 우리 미주동문회의 연혁을 간력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잘 쓰셨는지 읽으면서 아주 감동스럽군요.
그렇군요~~
저도 그냥 50주년 행사를 우리 신년동문회 CD처럼 그런것인 줄 알았더니
한권의 책이 들어있는 것이로군요.
저도 바다아보면 잘 봐야겟네요.
어쨋거나 그 무거운것 픽업하러 공항가지 가시고
도 그 무거운걸 혼자서 차에 싣고 오시느라 너무나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미주동문회는 각자가 자기 가진 탈란트대로 자기 임무들을 잘 감당하니
우리 미주동문회가 날로 발전ㅐ 나갈 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영희언니!
오늘 너무 수고 많으셧어요.
아직 기침을 콜록콜록 하시던데.......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2시에요.
조 선배님의 글도 차분히 읽어지는 날씨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작년 9월4일 모교에서 바자회하던 때가 주마등처럼 휘~익~휙 지나갑니다.
기적처럼 '걸어서 2천리 나의 산티아고'를 만날수 있었던 날.
감동이였어요.
싸인내용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신나는 돌씽 권칠화에게'
선배님과 3번의 걷기했던 추억도 잘 간직하고 있어요.
2기 선배님들과의 해후도 기대됩니다.
드디어 2회선배님들의 크루주여행이 시작되었네요.
회장님이 공항에 나가셔서 받아오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CD안에 책자가 들어있다니 정말 보고싶군요.
특히 회장님이 쓰신 "바다건너 미주동문회"를 미리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영희 회장님 ~ 짱입니다 !!!
짱? 고마워.
부영이도 짱! 이다. 게시판지기를 얼마나 유연하게 잘하고 있는지...........
마치 본인도 모르고있던 잠재된 천부적인 소질을 내가 계발해낸 기분까지 든다니까.
영자 없을때 부영이 칭찬 막 해줘야지.........hihihi
부영아 , 그 ?CD? 책 정말 보고싶지?
디너있는날 넉넉히 들고갈테니까 그동네 주민들한테 하나씩 전달해주고
열심히 잘 보도록 혀...............
공항 출국장에서 걸어나오는 사람들을 뚫어지게 (혹시라도 조영선선배님을 못보고 놓칠까봐)
바라보고 있었는데 정작
선배님이 가까이 다가와서 "어마! 영희!" 하고 손을 번쩍 들때까지
내가 못 알아봤다는 슬픈 스토리..............
그 여인을 멀리서부터 보기야 봤지. 서로 대칭되는 방향이었으니 안 볼수도 없어요.
근데 난 그사람은 젊은 학생인줄 알고 열심히 딴 여자들만 보고있었다니까...........
흰바지에 산뜻한 짧은잠바, 경쾌한 걸음걸이............ 멀리서보니 그냥 젊은이더구만.
춘자! 나야 쭈루룩 공항에 나가서 잘 포장된 박스 하나 달랑 들고오는 일이었지만
세상에.............
그 시간에 라스베가스에서 오신 1진 선배님들 일행을
자신의 영업장에서 맞이하여 일일이 드레스에 헤어피스에 챙겨드리고
롱비치로 떠나는 배웅까지 마쳤다니
정말로 난 놀래부렀어.
춘자의 동문회 사랑! 그 끝은 어디인가요?
일찌기 온희가 갈파한대로
그대들 없으면 우리는 비틀비틀!!!!!!!!!!!! 맞다 맞아.
참 어제 우연히 마켓에서 한귀동이도 만났는데
2일날 아침 롱비치에 같이 가기로 했어. 모든게 ?Good, Good ?이야요.
밤에 내 기침만 쪼끔 덜 난다면 더 좋으련만.....................
세븐 훌라워. 반가워.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제일 신나는 돌씽, 맞지?
어제 신기한 일이 한가지 생겼다.
글쎄, 내가 인터넷을 주물르다가 (이건 우리 남편의 표현법. 주무르다)
우연히 호모루덴스 라는 곳(?) 을 발견했단다.
와아! 깔끔하고 이쁘고 사랑스러운 곳.
당장 즐겨찾기에 넣어놨지.
세븐 훌라워의 호모루덴스는 어디인고? 빈잔의 것은? 다 밝힐것!!!!!!!!!!!!!!!!!!!
조영선 선배님께서 100장의 CD 책을 갖고 오시는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조영희 회장의 50주년 인사말도 아주 잘 읽었으며 그럼 32년 동안 부라질에서
인일 동문을 한번도 만나적이 없다고? 나도 8년전인가 내 동기가 우리집에 제발로
걸어 들어올줄이야. 바로 이정옥 가족이 우리집 (교회 연관으로) 에 방문했을때
처음으로 3기 동문부터 만났지.
나도 CD 책을 곧 받기를 바라며 수고하시는 미주 동창회장단께 감사를 드림니다.
2기 선배님들의 환영파티에
마침 며느리가 해산을 했기때문에 11기 김영란은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감사패와 책과 CD 를 도로 집으로 들고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만나서 전달하겠습니다.
고마운 영희~!
회장 역할 수행하느라
선배들 모시느라
심한 감기에도 불구하고 공항까지 마중나와 디카 들이대며
열렬히 환영해준 영희 후배의 노고에 가슴 뭉클 했어요.
한국에서 두어번 만나고 LA 공항에서 의젓한 모습으로
미주 동문들의 대소사를 믿음직하게 소화해 내는 영희 후배를 다시 만나 보고
얼마나 반갑고 자랑스러웠던지 인일의 존재를 참으로 소중하게 느꼈던 순간이었답니다.
디너 파티 석상에서도 이런 영희 후배의 모습은 이어졌습니다.
좌중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간결하고 유머있는 환영사는
동문들에게 즐거운 웃음을 선사 했습니다.
아쉬운 짧은 기간이었지만 오래도록 추억에 남게 될 거예요.
모교를 떠올리며 CD와 책 즐겨 보고 읽기를 바랄게요.
한국에 남아 있는 CD 1Box(100개) 도 다음에 미국가는 동문편이 있으면
마저 보내고 싶어하는 박춘순 총회장의 마음입니다.
영희후배, 수고에 거듭 감사 보내고
더욱 건강하고 미주 동문회의 끝없는 발전을 기원합니다.
아이고, 영선언니.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운 행사 잘 치루시고 너무 수고하신 박춘순회장님께 안부 전해주시구요.
이번에 받은 CD, 그날 디너에서 만난 모든 동문들에게 직접 다 전했구요.
또 같은 기수로 가까이 사는 동기끼리 나누어주라고 몇개씩 더 줬어요.
남아있는 CD도 아주 효과적으로 배분을 하려고 고심중이랍니다.
우선 직접 전해주는걸 원칙으로 하려고 하지만
멀리 사는 동문들에게는 아무래도 우송을 해야하는데요.
신년 동문회에 참석한 동문들부터 우선적으로 보내주려고 합니다.
오늘 일단 우리 3기에서 신년회에 왔던 동기들한테는 다 부쳤습니다.
무거운 짐 들고오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어요.
항상 건강하시고 또 놀러오세요.
아침에 공항에서 반갑게 만났던 선배님들은
지금쯤은 이미 바다위에 떠 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