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강남갔던 제비도 돌아온다는
음력으로 삼월 삼짓날이 바로 오늘 4월 5일
춘정에 못이겨 하얀 목련도 게으른듯 망울을 터뜨리고 노오란 개나리도 방긋 얼굴을 빼꼼이 내민
메마른 대지에 한폭의 수채화가 펼쳐진
화려한 봄날 ........
마치 우리의 생일을 축하라도 하는 양 봄기운이 따사롭습니다.
삼월 삼짓날
강남갔던 제비들이 돌아오듯
그동안 뿔뿔이 헤어져 살던 동문들이 속속 인천 송도 컨벤시아로 몰려옵니다.
마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찾아오고
부산에서 유명옥선배님 장은숙선배님도 오시고
김포에서 김은희선배님도 최희순선배님의 도움으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오셨으며
울산에서 여고시절 이후 처음으로 학교행사에 참석한 7기의 이영애도 참석해 친구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씨앗 하나를 물고온 제비처럼 다들 그리움 하나를 물고 달려온 것입니다.
430여명입니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추억의 퍼즐을 맞추며 여고시절로 돌아갑니다.
국민에 대한 경례로 행사가 시작되고
인천시장을 비롯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축사와 격려사를 아끼지 않으니 새삼 우리가 명문이었나 실감합니다.
인일여고 교복을 입은 까마득히 아래인 후배들의 축가를 들울 때에는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하며 아쉬워합니다.
짧은 봄날처럼 우리의 청춘도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갔지요.
이 날 단연 돋보인 박춘순 동창회장님의 단아한 모습도 우리의 격을 높여줍니다.
3억원이라는 발전기금을 모은 동창회장님과 임원진에게 찬사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특히 은사님들을 모시고 임원들이 입장을 할 때에는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집니다.
강순옥 선생님, 김재옥 선생님, 박영애 선생님, 유정희 선생님, 김윤옥 선생님, 홍창기 선생님, 홍래 선생님의 이름을 열호하며 방방 뛰는 이제는 같이 늙어버린 제자들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오늘 아파트에서 우연히 만난 김재옥 선생님은 감격했다 하시며 무슨 선물을 그렇게 했냐며
"받을 자격도 없는데...." 하십니다.
선생님 시끄러워 먼저 가신 것이 아니냐 했더니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치십니다.
80이 되셨건만 예나 지금이나 귀여운 선생님이라 하면 실례일까요?
그리고 화학을 못해 살살 피해 다니는 나를 언제나 "도씨야.."라고 불러주던 강순옥 선생님....
오늘도 "도씨야"라며 어깨를 감싸주던 무서웠던 선생님이 이제는 마냥 좋기만 합니다.
그리고 만약 오늘 유정희 선생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면 우리 모두는 감격의 눈물울 흘리지 않았을까요?
그 시절 장미동산에 울려퍼지던 "들장미"가 귀전을 때립니다.
식사가 끝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2부 행사입니다.
요즈음 쎄시봉 열풍을 타고 65세의 윤형주님이 출연하다고 일부러 온 동문도 있습니다.
더 더군다나 4기 이은성 선배님의 자랑스러운 아드님 팀도 온다하니 이것이 무슨 행운일까요?
우리 인일엔 기가막힌 기라성같은 2세들이 진을 치고 있음에 비록 내 자식은 아닐지라도 더욱 으쓱합니다.
제일 신이 난 것은 인일여고 후배들입니다.
"우리 결혼했어요" 등의 프로에서 잘생긴 외모로 뭇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하던 팀을 직접 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미인인 엄마를 꼭 빼닮은 팀
팀이 더욱 더 건승하기를 기원하며 다들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칩니다.
실상은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의대생이던 윤형주님의 인기는 지금의 아이돌이 울고 돌아설 지경이었으니까요.
5기 유영희 선배님과의 30년 인연으로 이 자리에 섰음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달콤한 목소리를 우리를 한숨짓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들 무대로 나와 손에 손을 잡고 오늘의 만남을 노래합니다.
오늘
2011년 4월 5일
인일의 50년은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올까요?
어떤 정치인의 한마디보다는
우리들 마음속에 새겨진 우리를 이만큼 키워준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감사
그리고 같은 인일의 울타리에서 공부한 선배와 후배 그리고 동기들과의 끈끈한 우정이 돋보인
그래서 우리의 배움을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그런 인일인을 키운 것이 인일의 힘이 아닐런지요.
인일의 저력을 조심스레 내어 보인
오늘은
우리의 50주년 생일입니다.
윤순영 선배님
그 날 잠깐이라도 인사드릴 수 있어 기뻤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보고싶은 얼굴을 볼 수 있어 이런 행사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감히 선배님들을 이런 자리가 아니면 어찌 뵈올 수가 있을런지요.
"나도 누군가로 부터 보고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려깊은 선배님들을 보면서 이런 반성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슨 행사든 아쉬움이 남는다 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자꾸자꾸 발전을 하는 것이겠지요.
어른들의 말씀을 하나라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세월 속에 수없이 시행착오를 하면서 얻어진 지혜를 따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그런 어른이 사라진 요즈음....
참으로 속절없는 세상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괜히 걱정이 앞섭니다.
지식보다는
지혜로운 선배님 같은 분들이 그립습니다.
정화언니
샛골, 우리 동네
생각만해도 다정한 이름입니다.
다들 떠나고 없어도 우리 부모님만이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샛골엔
서울로 통학을 하던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경기여고와 경기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있던 수재 집안이 바로 언니네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숙이는 나랑 친구할 아이가 아닌데 붙어다닌 것이 신기합니다.
결국 지금은 친구 이전에 제 멘토가 되어버린 인숙이....
정화언니가 누구보다도 잘 아시지요?
누가 무어라해도 이런 훌륭한 친구들 나의 자랑입니다.
그리고 동생 친구라고 늘 걱정해 주시는 정화언니
2기 선배님들과의 미국여행이 건강하고 즐거우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도씨야" 하고 불러주셨던 선생님,,,, 훈훈한 정이 느껴지는 강순옥선생님,참석하셨던 모든
선생님께 감사와 축복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그때만해도 어렵던 시절이라 친구가
깍뚜기, 볶은 고추장 싸오면 어찌도 맛있던지,,,,그리고 표시도 안나는 머리는 왜그리
신경이 쓰이고 교문에서 선배님들이 교복,명찰 조사하면 집에까지가서 다시 달고
들어가고,,,그 계단은 왜 그리긴지 다리가 뻐근할때도 많았다.
교실이 반듯하지 않았지 , 원형교사라.청소하기 싫은날은 발로 밀고 다녔지.
그래도 얼마나 윤이 나는지,,,월요일에 조회스면 우리 뺀드부가 나와서 반주하던
옛일이 뭉쿨하구나.나는 독어시간에 성적이 좋아서 박영애 선생님이 이름불러주시고
노래시켜주셨어, 그래서 더욱 언어공부를 하게된 동기야.근데 외우는 과목은
잘되는데 수학이 영 안되드라고,,,그래서 수학책을 달달 외었지. 공식을,,,ㅎㅎ
결과는 늘 안 좋았어.
김윤옥선생님, 죄송합니다, 머리가 안 따라져서요.에유,,,,,
학창시절 추억이 그립고 친구가 그립고 선생님들이 그립다.
선생님, 열심히 지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재화야
네가 참석을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아마 모든 친구들의 마음이 그랬으리라 한다.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인사까지 드릴 수 있어 더 좋았고.
그 시절엔 왜 그렇게 공부하기가 싫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어려운 독일어를 일등을 했을 정도이니 너같은 친구들은 서울교대에 너끈이 들어가고도 남았지.
분명 공부하는 사람은 따로 있지싶다.
아직도 나는 공부가 좋아서 한다 라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간단다.
막내 여동생이 대학에 있는데
앉으면 책을 보는거야.
그것도 원서로 말이야.
공부를 왜 하느냐고 물었더니 재미있다나. 참으로 별의별 일이 다 있다 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졸업을 하고 각자 일에 열심이니 잘 살았다.
내 말이 맞지 ?
감사하다. 출석체크해줘서,,,,
나도 앉으면 책이었다. 그래서 운동을 싫어했다.
교대이후 영시가 좋아서 학교를 더 다녔다.
그때나 이때나 시를 좋아했다.
박영애선생님 영향이 컷었어.
실력도 없으면서 왜그리 원서는 끼고 다녔는지,,,
아주 교만의 원천이었지 뭐. Time 지도 끼고 다니고,,,
수련원도 생각나고 요리실, 무용실 다 생각나. 테니스장,,,,
옛추억입니다.그리고 바보같이 살았다.
도산학, 글이 반가워.
큰 행사가 마무리되고나면 역시 그 행사의 안팎을 돌아보고
소감을 얘기하고 아쉬움도 짚어가며 되새겨 보는 일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50주년 행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고
나름대로 아쉬움과 의의를 남겼다고 느껴진답니다.
시작, 과정, 마무리 이 세 단계를 모두 우리 인일동문들이 해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싶고, 무엇보다 난 그날 아직도 많은 은사님들이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 주심에
큰 감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세월의 흐름에 연로하신 모습에 가슴 저미면서도....
동문들간의 공감대를 더욱 확대 시켰더라면....
재능 많은 우리 깃수별 동문들에게 시간과 기회를, 더 많이 많이 흠뻑 안겨 줬더라면...
그래도 또 다른 아쉬움은 남았겠지요?
인일의 50년~ 함께 걸어 온 우리의 50년~ 자랑스러움의 꽃다발을 안겨 주고 싶네요.
?산학아~
아무리 간다했어도 희순이 친구 아니면 언감생심 참석 할 꿈이나 꾸었겠나싶네
?그날 여중여고시절을 보낸 전동도 지나가고 자유공원 ...구 시가지를 지나가며
잠깐이라도 6년여의 소녀시절을 생각하고
?송도 신도시 컨벤시아까지 가는길은 낯설었지만
반가운 얼굴들 만나 보니 염려했던것보다 오길 잘했다 했었지.
장장 긴 시간 지내면서
나 나름대로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되었었네.
그날은 개교 오십주년기념일 보다는 사람이 우선 돋보이는 날이였지만
오늘.....저 위칸에 전 영희 정보위원장 동영상 올린걸 보며
한참 유쾌하게 웃었으니.......어느 누구보다 동영상의 주인공 후배가 돋보이는 동문이다했네.
어느 누가 우리들에게 이렇게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나싶은것이
이렇게 다시 웃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사람도 고맙고
산학이도 올라가서 봐봐...ㅎㅎㅎ
???
김은희 선배님
행사날 미리 오셔서 추억여행을 하셨네요.
외박까지 하시면서요.
그 날 잠깐 얼굴이라도 뵈었으니 망정이지 미국에 가시면 언제 만날 수 있을까 했습니다.
그래도 오기를 잘했다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선배님 말씀마나 동영상 저정말 재미있네요.
그 날은 무대가 멀어서 못 보았는데 후회할 뻔 했습니다.
김혜숙 50주년 기념사업회 회장님
행사를 치루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늘 인일의 일이라면 함께 하시던 부군 한치화교수님은 그 날 왜 오시지 않았을까요?
바쁘셨나요?
저는 일찌감치 기가 죽었습니다.
모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사회자라고 등장했을 땐 화려한 미모에 놀랐습니다.
"열린 음악회" 사회자 같더라고요.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실수를(해서는 안 될) 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긴장을 한 탓일까요?
우리끼리라면 백번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외부인사들까지 초청된 자리라 부끄러웠습니다.
어느 외부인사가 그러드라고요.
인일엔 사회 볼 사람도 없느냐고요?
제 생각엔 위원장이신 김혜숙님이나 문화위원장이신 문정희님이 했으면 자연스러웠을 텐데...했지요.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일은 "사진"입니다.
외주업체에서 올린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요즈음 초등학교 홈페이지에 들어들 가 보셨는지요? 얼마나들 잘 찍어서 올리는지요.
이번 일로 우리 인일의 전영희 정보위원장이나 정보위원들 그리고 컴퓨터클럽의 사진동호회 회원들의 진가를 새삼 알았습니다
왜 이런 인재들을 활용을 못 했을까요.
우리들이 주인공이라 몽땅 생일상앞에 앉아 받기만 한 것일까요?
여흥시간의 사회도 동영상을 보니
쟁쟁한 끼들의 소유자가 넘쳐나던데
이 부분도 제 개인 생각이지만 우리 동문이 했다면 더 빛이 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요.
여러 신문에서 우리의 행사를 앞다투어 소개한대로
연혁관 설립, 50년사 발간등 굵직굵직한 일들을 이번에 해내었습니다
회장님을 위시해 전 임원들이 애쓰고 일을 했는데
"옥의 티" 라고요
이런 것들이 어쩔 수 없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런 행사가 끝나고나면 항상 뒷말이 있기 마련이고
다음을 위해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발전을 거듭하기에 김혜숙위원장님에게 미숙하나마 제 의견을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정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해도 될까요?
회계보고는 정리가 아직인가 보지요?
저는 아직 내지 않았지만 소중한 마음을 내어준 동문들의 후원금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들 흔히 예식장에 가면 내가 먹은 스테이크 값이 얼마나 하는 것일까 궁금하잖아요.그리고 비교도 하고요.
산학아!!!!!
50주년 행사에 임원진도 아쉬운 점이 많았을거 같다.
나는 사진 찍고 왔다 갔다 하느라고
식사를 별로 안했는데 그 정도 였니?
식사는 임원진에서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구나.
그놈의 컨벤션 센타의 조리장이 후진거지...
좀더 잘 할 줄알고 돈들여 초대한 사회자, 여흥 시간의 사회자,
외주 업체 사진사 등등
모두 기대에 못 미친 것은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 점 같다.
허지만 임원진도 많이 노력하고 잘 해볼려고 했던 것이니
우리 다같이 아쉬웠지만 선 후배가 같이 만날수 있는
자리가 마련 된것에 만족하자.
아마도 다음에 동문 행사가 있으면 다음 임원진들은 많이 참작하게 될꺼야.
그나 저나 나는 윤 형주씨를 본것만 해도 그날 띵호아다.
평소에는 펜도 아니었는데 왜 그리 학생 시절이 생각나고
좋은지 모르겠더라.
우리 다음 동문의 멋있는 행사를 기대해보자.
???산학아!!!!
절절히 가슴에 와 닿도록 잘썼구나.
그래 네말대로 유정희 선생님의 노래를 들을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것이 조금 아쉽다.
언제 우리가 학창 시절을 경험 할 수 있겠니.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무슨 행사든 한가지 쯤은 아쉬움이 남는거잖아.
만일 유정희 선생님의 노래와 우리 모두의 합창이 있었으면
목이메여 눈물 훌쩍일 동문들이 꽤 있었을거 같구나.
55주년 쯤해서 멋진 동창회장이 바통을 이어 받으면
순수한 우리 동문들끼리의 잔치 마당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지.
50주년 기념 경주 여행이 더 좋았다고 말하는 동문들도 있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