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지역사회에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한인교회가 발족한지 33년여가 되도록 서로 반목하며 

원수같이 지내던 이곳에 몇 신세대 목회자들의 뜻으로 

함께하는 모임이 시작되고 서로 대화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고

그리하여 이번 부활절에는 합동예배까지 드리기로 결의가 되었다,

그리하여 지역사회의 미국교회도 합석하여 찬양대가 오고,

또 지역 TV방송까지 오기로 되어 있단다,

심사숙고 끝에 우리 이이- 그날의 설교목사로 선택되어 

영어번역을 해야하는고로 미리 준비된 부활절 설교의 귀한 말씀을 

미리 칭구들과 나누고 싶어서 올립니다, 

많은 은혜 받으시기를,,,,



?부활절 메시지


제목신령한 그리스도인 ( 2:16-20)


기쁘고 은혜스러운 부활절을 맞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Reno Sparks 지역에

처음으로 경사스러운 부활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번 부활절은 1979번째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우리  지역,

한인교회로서는 33번째 부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부활절연합예배는

우리에게는,

 아주 의미심장한 날이 아닐  없습니다.

 

 지역에 한인교회가 설립된지 33년만에 이루어지는

 합동예배는 적극적으로는 주님의 무궁한 은혜요,

소극적으로는  지역교회 목사님들의 지역화목을 위한

끈임 없는 기도와 염원의 성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라 하겠읍니다.

 

 뜻있는 목사님들이 지난 11  모임을 갖고,

매월 첫째  월요일에 목회자부부들이 함께 모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을 도모하고,

 교회의 사역에 성령충만으로 충실할  있도록

 서로 기도로 지원하며,

 나아가서  교인이

주님 안에서 형제요 자매임을 인식하며

서로 사랑할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주님께 간구하므로

오늘의  귀한 모임이 이루어졌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지역사회의 새로운 역사의 첫장을 열었습니다.

  역사가 다시는 닫히지 아니하고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역경을 감수해야 되리라 믿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과거를 청산해야 할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모두가 주님안에서 새롭게 되어

             신실한 주님의 제자로 성숙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과거를 청산할  있을까요?

성경은 말씀하시길그리스도인 속에는

고린도전서 3:3에서 말씀하시는 육신적 그리스도인

고린도전서 2:15절에서 말씀하시는 영적 스리스도인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단면적으로 표시해 본다면

원형 삼겹살(three layers)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볼  있습니다.

 층은 성령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간 층은 생각할  있는 마음과느낄  있는 감정과,

                  선택할  있는 의지로 이루어  있고,

 층은 몸으로 이루어 졌다고 마음속에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은 영은 살아있으나

데살로니가5:1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소멸되어 있고

마음은 이중적이며,

감정은 언제나 불안하며,

의지는 육신을 몸의 정욕을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몸은 주님의 뜻과는 무관한

세상적 삶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2500년전그리스에서  유명한 철학자가 태어났는데

 분이  말이  자신을 알라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우리가  아시는 소크라테스이지요?

 분은 좋은 주제는 제창했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그분의 말에 의해서 자기자신을  사람을

 사람도 찾아  수가 없었습니다.    

 

   500년이 지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셔서 말씀하시길,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마태5:44절에서 말씀하셨죠?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이말씀을 깊히 묵상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어떻게 감히 내가 나의 원수를 사랑할  있으며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할  있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이

예수님 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십니다.

 

여러분누구를 미워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누구를 질투하고시기하고,

저주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더우기 복수하고  원수를 가져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예수님이 의도하심은 누구를 미워하는 사람은

자신을 먼저 미워하지 않고는

절대로 남을 미워할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화내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고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사람에게는 갖은 질병이 찾아 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은

적극적으로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지극히 사랑하면,

소극적으로는,

 결과적으로는 적도 사랑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내가  자신을   있는가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알면

너희가 스스로 너희를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의 주제가 되는 십자가의  것입니다.

신실하고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십자가의  깨달아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날,

제자들을 모아놓고 하시는 말씀이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사랑이 없나니라고

요한복음15:13에서 말씀하시고

 

 말씀하시길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라고

우리를 손수 친구란 관계를 맺어주시고

 크나큰 사랑을 확증해 주시기 위해서

몸소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를 대할  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우리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접하게 됩니다.

 

로마서 5 6, 8, 10절에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접하게 되는데,,,

6절에서는 우리가 연약할  나오고,

8절에서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나오고,

10절에서는 우리가 원수 되었을  나옵니다.

 

이런 원수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사

자기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돌아가시게 하는 극진한 사랑을 접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을  없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하는

바로  순간

나의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예수님이 부활 하시는 ,

나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드리는 순간

예수님은 나를 자기 안으로 영원히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자기 안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를 화해시켜주시고

하나님 아버지는  순간 우리를

자기의 양아들 딸로 삼으시면서

 표증으로 성령으로  치십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인데,

 거듭난  생명은 골로세서3:3절에서 말씀하신것같이

예수님 안에서 절대로 빠져나올  없읍니다.

만약 우리가 타락하면  생명은 예수님안에 남아 있고,

타락한 나는 육신이 되어 세상과 결탁하며 살게되는데

문제는 타락하게 되면  사람의 나중 형편이

누가복음11:24절부터 26절에서 말씀하신것같이

전보다  나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이런 말씀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느날  스님이 제자를 불러놓고 꺠진 항아리를 주며

 꺠진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꺠진 항아리에 물을 채울수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입니다.

 꺠진 항아리를 물속에 풍덩 집어넣으면

 항아리는 물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령도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래

창세기 6 3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아름다운 딸들과

혼합결혼으로 타락이 팽배함에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사람에게서 떠나 가시고 맙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오순절  다락방에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성령은

하늘에서  떨어  것이 아니고

예수님 안에 머물고 있는 성령입니다.

성령은 바로

승천하신 예수님의 영인 것입니다.

 

그래서 정녕 우리가  성령을 받으려면

오직 내가 예수님 안에 머무는 순간받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예수님  -in Christ’이란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보편적으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기를

매일 성경공부하고성경도 많이 읽고주일날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와 목사님의 좋은 말씀을 듣노라면

  사람이 점점 변하여 선한 사람으로 변화되리라 믿는데

이는  성서적이요 잘못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수선공이 아니십니다.

 

 못된 나를 고쳐서 좋은 사람으로 수선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시고

  생명이 예수님 안에서 자라가게 하십니다.

 

나의 문제는 나의  사람이 죽지 않고

변질되어 가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은 이제 성령을 쫓아

성령의 인도아래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성령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신자가 진실로 신령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사람은 죽어야하고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기만 한다면

교회는 다르되 교인들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예수님을 섬기는 크나  변화가 일어나고,

부흥하는 한인 사회를 이루게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소리내어

갈라디아서 2:10 말씀을 암송할  있게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밖혔나니

그런  이제는 내가  것이 아니요

오직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는 언제나 신령한 그리스도인’ 하면

금식기도를 밥먹듯이 하고,

새벽기도를 매일 같이 해야하며,

철야기도를  새도록 해야 하고,

기도원에 가서 사는 사람을 일컬어 종종 말할 때가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앞세워 그리스도인의 척도를 재려할때

문제는 제기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행함을 주장하는 것인데

행함을 주장하게 되면 스스로 자랑하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다시 율법주의자가 되고 맙니다.

 

또한 대부분의 성도들은

목희자는 경견하고 성스러워야 되기 때문에

세상과는 완전히 동떠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에 자유하나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비방을 한다면

 다른사람의 양심을 위하여 삼가할 것을 종용합니다.

 

어쨋든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이 중심에 있어야 된다고

로마서 14 전체에 걸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째든 우리는  예수님 밖에서는

결코  마음으로 경건할  없는 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경건의 본체이신 예수님도

 속세에 오셔서

창기와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세인들이 이런 행위를 비방하고 나왔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이 꾸중하시기를

너희들에게 외적인 경건은 있으되 내적으론 썩었다

바리세인들을 꾸중하셨읍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도

겉으로 경건하는 체하는 사람들은

내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모른는

  죄를 짓고 있는지 모릅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9:20-22에서

복음을 위하여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같이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라

라고 증언하십니다.

 

우리가 경건하여 따로  있기만 한다면

잃은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구호에 그치고  것입니다.

여러분여러분이 모시고 계신 목회자가

설령 때로 그릇된 길을 가는  같이 보이거든

관대한 마음으로  분이 회복될  있도록

기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이럴 나의 신앙이나

우리의 믿음의 공동체가

점점 강건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