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회 - 게시판담당 : 구창임
박완서 별세, 처녀작 ‘나목’과 박수근을 떠올리며
고인의 젊은 시절 사진
담낭암으로 투병중인 소설가 박완서(80) 씨가 오늘 새벽 별세했다. 박완서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세상 모르게 눈 내렸던 새벽녁, 그는 그의 작품 제목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처럼 따뜻하게 떠났을까? 아쉽다. 그의 별세 소식을 듣고 위키백과사사전을 보니 누군가 벌써 그의 죽음을 알렸다. 이렇게 쓰여있다. ' 2011년 1월 22일 토요일 아침 6시 17분 지병인 담낭암으로 투병중에 사망하였다'
늦깎이로 소설가로 데뷔했던 박완서. 대기만성이라는 말처럼 그의 문학적 재능은 뒤늦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대중적 인기도 끌었다. 작고 소식을 듣고 떠오른 작품은 처녀작이자 출세작 <나목>. 1970년, 박완서씨가 40대에 접어들면서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박완서씨의 삶과 문학에 풍경과 상처가 되었던 사건은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도 박완서씨는 서울대 입학하지만,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으로 숙부와 큰 오빠를 잃는다. 그 아픔이 그의 작품 곳곳에 묻어나 있다. <나목>은 전쟁 중 노모와 어린 조카들의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에서 근무할 때 만난 화가 박수근에 대한 내용을. 박수근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한국 미술계의 독보적인 존재다. 그의 작품에 흐르는 회백색 톤과 서민들의 모습. 박수근 또한 작품 속에 는 한국전쟁의 상흔이 아련하게 묻어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절망적이지 않다. 박완서씨의 작품처럼. 박수근의 작품은 국보급이다. 소설 <나목>에서 박수근은 6·25 동란 중 밥벌이로를 위해 PX에서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손수건에 초상화를 그려준다. 그 그림 중에 하나가 바로 박수근이 그린 <나무와 여인>이다. 앙상하게 시들어가는 나무는 죽어가는 고목이 아니라, 모진 추위를 견디며 새봄과 새날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생명력이자 희망의 뿌리를 품고 있는 겨울 나무다.
▲ 박수근 작 <나무와 여인>
한국 미술계의 거목은 빨리 세상을 떠났지만, 박완서씨는 추운 겨울을 이기고 꽃과 잎을 싹튼 한국문학계의 거목이 되었다. 유녀시절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렸내었던 성장소설의 최고봉이라 평가받았던 <엄마의 말뚝>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떠올랐다. 고인이 된 <토지>의 박경리선생도 떠올랐다. 박경리와 박완서는 한국 현대문학을 이야기 할 때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인물. 박완서는 박경리에게 큰 영향을 받기도 했다. 하나, 둘 이름과 기억들이 이내 사라진다. 작품의 내용은 떠오르지지 않고 큰이름만 떠올랐다 명멸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서민들의 모습을 박완서만큼 입담있게 그려내 작가가 있을까. 이제 박완서씨도 지난 상처와 풍경을 뒤로 하고 세상과 이별했다. 이승 넘어 다른 세상이 있다면. 박경리 선생과 만나 배추속에 술 한잔에 담배 한개피로 이야기 꽃을 피우길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박경리와 박완서.......
▲1931년 = 10월20일 경기 개풍 출생
▲1950년 = 숙명여고 졸업,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중퇴
▲1953년 = 호영진씨와 결혼
▲1970년 = 여성동아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나목' 당선, 소설가 등단
▲1971년 = 첫 단편 '세모' 발표
▲1973년 = 단편 '부처님 근처' 발표
▲1976년 = 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발표
▲1977년 =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발표
▲1978년 = 장편 '배반의 여름', 산문집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발표
▲1979년 = 장편 '도시의 흉년' 발표
▲1980년 = '엄마의 말뚝'('엄마의 말뚝' 연작 1, 2편 '문학사상'에 연재된 데 이어 1991년 3편 발표), 장편 '살아있는 날의 시작' 발표, '그 가을의 사흘동안'으로 제7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1년 = '엄마의 말뚝 2'로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
▲1985년 = 장편 '서 있는 여자' 발표
▲1988년 = 남편과 아들 연이어 사별
▲1989년 = 장편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발표
▲1990년 = 산문집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발표,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1991년 = 장편 '저문 날의 삽화' 발표
▲1992년 =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발표
▲1993년 =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 수상,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
▲1994년 =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으로 제25회 동인문학상 수상, 공연윤리위원회 회원
▲1995년 = 제1회 한무숙문학상 수상, 문학의 해 조직위원
▲1996년 = 토지문화재단 발기인
▲1996-2007년 = 동인문학상 심사위원
▲1997년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제5회 대산문학상 수상
▲1998년 = 보관문화훈장 받음, 장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 출간
▲1999년 = 만해문학상 수상, 산문집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 발표,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출간
▲2000년 = 인촌상ㆍ국회 대중문화&미디어상 수상, 장편 '아주 오래된 농담' 출간
▲2001년 = '그리움을 위하여'로 제1회 황순원문학상 수상
▲2004년 = 장편 '그 남자네 집' 출간, 대한민국예술원 신입회원 선출
▲2006년 = 제16회 호암예술상 수상, 문화예술계 인물 처음 서울대학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 장편 '잃어버린 여행가방' 발표, 문학상 수상작 5편 엮은 '환각의 나비' 출간
▲2007년 = 장편 '친절한 복희씨', 산문집 '호미' 발표
▲2008년 = 단편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발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인 옴니버스 영화 '텐 텐'의 변영주 감독 다큐멘터리 '20세기를 기억하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방법' 출연
▲2009년 = 장편 '세 가지 소원', 동화집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나 어릴 적에', '문학동네' 가을호에 단편 '빨갱이 바이러스' 발표
▲2010년 = '현대문학' 창간 55주년 기념해 출간된 소설가 9인의 자전소설집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참여,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출간
= 1월22일 담낭암으로 타계
(끝)
2011년 01월 22일 | 연합뉴스 |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작가 박완서씨가 22일 향년 80세로 타계했다.
항상 진솔하고 담백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 든 선생님의 글~~ 친절한 복희씨를 미국가는 비행기 안에서
감명깊게 읽었던 기억이~~ 문학계의 큰별이 사라졌지만 고통없는 그곳에서 선한웃음으로 가득한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옥인! 자세한글 올려주어 고맙고 추운날씨에 잘지내길~~
먼곳의 옥인이가 더 자세히 박완서님의 일생을 올려 주었네~
ㅠㅠ 별세하셨다는 소식에 책꽂이에 있는 그분의 소설이 3~4권
그중 '그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다시 읽고 있어~~
많은 부분이 자서전적인듯한 그래서 더욱 감동적인~~
높은 곳에서 헤어진 가족들과 영면하시길 빕니다.
묵은 나무가 죽어도 마음이 한동안 아프고 허전한 데..
우리 가슴에 은은하게 멘토로 계셨던 분이 떠나시니
더욱 애절하기만 하다.
유난히 근래엔 훌륭하신 어른들이 떠나시는 것 같다.
아차산 자락 입구에 사시던 자택 앞을 몇년 전에 보고 온 적이 있다.
그 정갈하던 정원을 두시고...
하늘나라 별이 되신 박완서선생님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빌어 본다.
선화, 선애, 영희 그리고 ...~~~
윗소식을 듣고 여러가지 상념의 며칠을 보냈어요..
해마다 딸애의 생일에는
외손녀딸이 세상에 나오기전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그리운데,
바로 딸애 생일전날에 존경하던 분이 떠나신 소식으로
제맘의 평정을 잡기가 어렵더라구요.
딸애는 생일 다음날 스키여행을 떠나버리고...
내나이보다 22년 많으셨던 분의 일생을 보며
나도 언제인가는 저곳으로 갈텐데,,,
다시 주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요.
모든 고통과 슬픔을 글을 쓰면서 다독이셨다는 그분의 말씀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고,
작년 여름 인터뷰중 먼저 저세상떠난 이들에 대해서 언급하신
죽어서 만난다면 더 좋겠지만 먼저 보낸 아들과 남편, 어머니가 계신 곳이면 허무 속으로라도 빨려들고 싶다고...
하셨다는 글을 보고
남은자의 안타까움은 세월을 지나도 여전함에 내맘이 젖었었지요.
머리속으로는 안그렇다면서도
잡아보고 싶고,
체취를 느끼고 싶고,
마구마구 투정도 하고싶고,
보담으고 싶고,
이가 보이도록 함빡웃음을 같이 나누고 싶고...
아~! 그러나 모두가 살아있는 자에게만 할수 있음이
가슴 저리게 아플때가 때로는 있거던요...
오늘은 모두 잊어버리고 이만 자야겠네요.
故 박완서 선생님께,
제가 선생님을 10여년전 2월,
겨울이 꼬리를 내리던 즈음 비엔나에서 뵈었을 때
선생님께서는 수줍은 모습으로 웃으셨어요.
고등시절 선생님의 처녀작 "나목"을 읽으면서
제스스로 경험하지 못한 전쟁의 흔혼으로 떨었던 기억이 떠올랐지요.
그후로도 선생님의 글을 대하면서 살아왔었어요.
어디선가 선생님의 아들 소식들으며
선생님께서 참척(慘慽)의 고통과 슬픔이 크시겠다고 나름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선생님을 직접 뵈오면서 웃음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부터 오히려 제가 많은 위로를 받았었어요.
지금도 선생님은 사진속에서 웃고 계시네요.
이젠, 거기 계신곳에서 웃음을 머금으시겠지요?
선생님의 글은 영원히 살아있을 거에요.
남은 사람들에게 더 없이 위로를 주면서...
선생님 지금 계신 곳에서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