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이어진 송년회에 망년회에
뭐 잊을 것이 많고 보내버릴 일이 많다고 하루도 쉬지않고 서울을 들락거렸습니다.
다사다난 했던 경인년처럼 분주했던 열흘,
부르는 곳마다 굳이 기다리는 사람도 없건만 "그래, 내가 빠지면 무척 서운타 할거야" 하면서 참석을 한 것이지요.
친구 아들의 결혼식
멀리에서 온 친구의 환영식
수녀가 된 친구와의 정기모임
그리고 예술의 전당에서의 "2010년 송년 갈라쑈" 등등
평소에 무심한 척 했던 문화행사까지 교양인인양 챙겼던 것이 결국은 탈이 나고 만 모양입니다.

밤 11시 가까이 끝난 송년 갈라쑈 때문에 겨우 막차를 타고 눈 나리는 밤을 길을 줄였읍니다.

그리고 눈때문에 차들이 몽땅 끊긴 거리를 눈사람이 되어 엉금엉금 걸었고
그 날부터 열이 펄펄 끓는데
다음 날엔 친구 아버님의 부음을 직접 전해 듣고 아니 갈 수가 없어 영안실에서는 이런저런 내설움에 같이 울고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해 첫날인데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 종내는 일어나질 못 했습니다.
친정에서 전화가 오고 놀란 동생들이 데리러오고 겨우 옷만  줏어 입고  따라 나섰지요.
방에 누워 간호사인 동생이 링거에 마이신을 놔주는 대로 몸을 맡긴 채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인기척에 눈을 떠보니
우리 아버지가 시름에 겨운 눈으로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시며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닌지요.
나는 억지로 웃으며 "아버지, 저 괜찮아요" 했습니다.
3년전에 이름도 생소한 파킨슨병에 걸려 점점 힘들어 하시더니 요즈음은 바깥 출입을 아예 접으신 우리 아버지...

첫딸이라 그랬는지 병약한 딸이 안쓰러워 그랬는지 아버지는 유난히 나를 예뻐하셨지요.
이 나이 먹도록 아버지에게 꾸중조차 들은 적이 없이 자랐으니
일곱 동생들은 난처한 일이 생기면 꼭 나에게 "언니, 아버지에게 말 좀 잘 해줘."합니다.
지금도 동생들은 아버지가 화를 내면 "언니, 빨리 가 봐" 합니다.
그런 편애때문에 지금도 동생들은 "우리 공주님 "이라고 빈정대며 나를 놀리지요
아프다고 하면 아버지가 맛난 것을 잔뜩 들고 오고
먹어라 먹어라 해도 나는 도리질을 치고(콩 한쪽에도 인심이 난다고)
그런 후라야 동생들에게 차례가 갔으니 동생들의 원망이 지금까지라도 할 말이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게 사랑을 주신, 이제는 늙어 병마에 시달리는 아버지 앞에 
다른 것은 몰라도 아파 누워 있으면 안 되는데
회한이 앞을 가립니다.

실은
언제부터인가
약속도 없었는데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형제들은 매주 토요일엔 친정에서 모입니다.
딸이 일곱이니 목욕도 엄마랑  같이 하고 파마도 엄마랑 같이 하면서 시끌벅쩍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토요일은 엄마랑 목욕가는 날" 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병환에 들자 일이 많다며 안 오던 사위들까지 몽땅 몰려와 노는 바람에
방 하나는 아예 노름방이 되어버렸지요.

오늘처럼
아픈 사람은 아픈대로 누워 있고
부엌에서는 쉴새없이 음식이 만들어지고
한쪽에서는 고스톱이 한창입니다.
아마 오늘도 미팔군에 복무중인 조카 장혁이가 다 털리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184의 준수한 외모임에도  번번히 이모와 누나들에게 당하는 줄 알면서도 끼어드는 조카가 귀엽습니다.
한쪽에서는
5살 예원이랑 12살 지운이가  사촌임에도 싸우고 울고 난리입니다.
엄마가 일을 하기에
외할머니에게서 10살까지 자란 지운이는
외삼촌이 장가를 갈 때 식장에서 얼마나 울어대던지 모두를 기함하게 했지요.
"어머 누가 보면 딸아이 두고서 새장가 가는 줄 알겠다"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더니 급기야 외삼촌이 낳은 딸 예원이를 지금까지 못 잡아 먹어 난리이니 아무도 못 말립니다.
외삼촌을 뺐겼다는 기분이어서일까요?
돌을 갓 넘긴 예원이 동생 지원이는 벌써 뒤뚱뒤뚱 걸어다니며 말없이 조용히 온갖 일을 저지르고 다닙니다.
한귀퉁이에 앉아 조용해서 가 보면 먹다남긴 김빠진  맥주를 마시고있지를 않나 
종이를 하염없이 뜯어 먹고있지를 않나
여하간 가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풍경이
누워 계신 아버지에게는 위로이고 큰 기쁨인데
그런데 아버지 앞에 새해 첫날부터 아픈 모습을 보여드리니 나는 오늘뿐만이 아니라 평생  불효자 입니다. 

새해 첫날
아프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장자의 말이 떠 오릅니다.
 "곧은 나무는 먼저 잘리고, 감미로운 샘물이 먼저 마른다"라고요.
절대로 잘난 사람을 시샘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잘난 사람은 잘난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대로  살면 그뿐이니까요.
우리 형제들 모두 욕심없고 평범하기에 부모님 곁을 떠나지 못 하고 몽땅 인천에서 살고 있지만 
힘이 들 때 이렇게 곁에 있어 서로를 지켜주기에
감미로운 샘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정은 행복의 근간이니까요.

오늘도
보란듯이 주저없이 
팔짝팔짝 뛰며 다가온 신묘년을 우리는 좌절하지 말고,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희망과 기대로 맞이해야 겠습니다.
혹자는 올 신묘년이 지나간 경인년보다 더 많이 힘에 부치리라 했지만
인생에는 언제나 부침이 있기 마련이지요.
지금 불행한 사람은 언젠가는 오지말라 해도 꼭 행복해 질 날이 오고야 맙니다.

 

 기쁨만 있으면 오만해지고
고통만 있다면 체념합니다.
인생은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조화로운 세상을 수놓고 있는 중입니다.


겨울밤이 자꾸 깊어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