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준비없던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과 마주하고 있을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은 걱정이 앞섰습니다.
어떻해 재화의 얼굴을 볼까?
내가 먼저 울면 안 되는데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들어섰지요
그렇게 다짐에 다짐을 했건만
약속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고
막상 액자속에 환하게 웃고있는 착하기만 한 얼굴과 대하니 가슴이 꽉 막히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집니다.
평생을 예수님같이 살았다는데
유난히 금술이 좋아
평생을 숙명처럼 병을 안고 사는 아내를 위해 순정을 바쳐 살았는데
무슨 까닭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외동아들을 두고 인사도 없이 황망히 먼길을 떠났을까요?
얼마전
우리 7기의 40주년 행사 때에도 친구들이 보고싶어 안달을 하는 아내를 위해 함께 와서는
친구들과 놀게 하고
3시간 반을 답동성당에서 기다리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친구이고 애인이었던 사람, 그런 사람을 보내고 재화가 웁니다.
재화야
울면 안돼.
울 날은 너무 많단다.
지금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의연하게 보내드려야 할 의무가 먼저이란다.
영안실에서는 성자처럼 살았다는 그를 위한 성당식구들의 연도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누구나
어둠의 수렁에 처음 들어섰을 때에는 절망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세월이 지나면 잊혀진다는 말은 제 경험에 의하면 거짓말입니다.
다만 세월은 약은 아니지만 지나다보면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저절로 생기니 그래서 "세월은 약"이 아닐런지요.
억지로 참지말고
많이 울고, 많이 기억하며 살다보면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분명 생깁니다.
하필이면 날씨마저 얼어붙은 오늘이 발인인데
어제 저녁 잠깐 통화를 했습니다.
동기는 물론이고 얼굴도 모르는 선 후배님들이 직접 찾아와 위로를 주는데 뜻밖의 일인지라
어떻게 신세를 갚아야 하는지
이렇게 받아도 되는 것인지 하며 또 웁니다.
"인일" 이라는 홈페이지에 잠깐 얼굴을 비쳤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내 일처럼 걱정을 해주는 동문들을 보니
나는 그렇게 살아 오지를 못했는데 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고요.
김혜경 선배님은 동생인 가수 김광진 부부를 보내 대신 위로를 주셨고
우연히 소식을 듣고 달려온 김광숙 선배님과 함께 온 얼굴도 모르는 허인애 후배님
그리고 아프다는 핑게로 동기들에게도 소식도 주지 못 하고 살아 왔는데 같이 울어 주었던 7기 친구들...
다들 고맙다는 친구에게
"걱정 하지 마, 내가 네 마음을 꼭 전할께" 하며
모든 동문들께 보답하는 길은 네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이라고 했지요.
오늘따라
숭산스님이 입적하실 때
제자인 현각스님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이 귓전에 맴돕니다.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산은 항상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왔다 가는 길이 아니요, 있었다 사라지는 길이 아니다. 자연 그대로일 뿐."
도산학님,
뭐라 위로조차 할수 없을때 함꼐 해 주심은 참으로 귀한 위로이지요.
회재화후배님의 아픔을 가장 함께 할수있는 칭구라 여겨집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삼가 선한 삶을 사시다 가신님의 명복을 빕니다,
정순자 선배님
그동안 평안하셨지요?
이번 일로 홈페이지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글로 만난 선후배님들의 격려가 그렇게 봇물처럼 쏟아질 줄이야.....
같이 울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하고
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겼습니다..
선배님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선배님 가정에 행복이 넘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건강하십시오.
도산학님
이게 무슨 소리에요.
사람이 이리도 쉽게 죽을 수 있나요?
최재화님 부군 저도 인사를 나눠 기억하는데요.
선하고 착하게 사시는 분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진심으로 가신 분의 명복을 빌 뿐입니다.
남은 유족 분들도 더욱 꿋꿋하게 사시라고 산학님이 말씀 전해 주세요.
산학후배가 요즘 홈피에 뜸하다는 생각을 하던차에
여기서 만나니 반갑습니다.
최재화 후배의 큰 위로가 되고 있는 산학후배의 따뜻한 손길에
우리도 동문애에 대한 훈훈한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재화 후배는 지금은 엄청 힘들겠지만 차 차 힘을 얻게 되고
아마도 건강도 지금 보다 훨신 좋아 지리라 믿습니다.
제 친정 어머님이 그려셨고 제 주위에서 그런 예를 여러번 보았지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숙자 선배님
오랜만에 들어와 이런 민망한 일을 쓰게 되니 황망합니다.
올 경인년은 천안함사건, 연평도사건 등 너무 힘들게 힘들게 넘어간다 했더니
결국은 이런 슬픈 소식까지 전하게 되었습니다.
부서지기 쉬운 우리네 육체.......
참으로 별 것도 아닌데, 가면 그만인데, 왜 그렇게 아웅다웅 살고 있을까요?
10시만 되면 골아 떨어지는 저도
이런저런 부질없는 생각에 며칠 잠 못 이루고 뒤척입니다.
이틀밤을 꼬박이 새우고
16일 열리는 목포대 워크샵 원고를 보내고 나니..... 14일 하루종일 죽음처럼 잤습니다.
숭산스님이 입적하실 때
제자인 현각스님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이 귓전에 맴돕니다.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산은 항상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왔다 가는 길이 아니요, 있었다 사라지는 길이 아니다. 자연 그대로일 뿐."
숭산, 현각.......제가 참 좋아하는 분들이어요
이 말씀은 아주 제 맘에 와닿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그....의 손길, 마음과 마음이 맞닿았던 많은 기억들
모두 마음에 품고, 씩씩하게 재화가 살아나가기만 바랍니다.
재화의 어려운 시간에 가장 큰 위로가 되었을 산학이 걸음, 고맙고 감사하고
평생 서로 이토록 위로가 되는 동행을 하자고... 생각해봅니다. (현각스님의 KBS일요스페셜 <만행>, 한국의 산하가 이토록
아름답게 촬영된 필름도 없을 거에요! 유명한 고찰들...이 많이 나오니! 녹화해놓고 가끔 열어보는 10년 된 필름입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있지요.
정신적인 아버지도...있습니다.
숭산스님은.........좌표 잃은 수많은 서양젊은이들의 마음의 아버지가 되어 주신 분이시죠. (물론 국내에도 넘 많은 이들의...)
대전 계룡산 한끝에 무상사라고 외국스님들 절이 있는데
여기 조실스님인 미국인 大峰스님, 마약에 뭐에...그런 정황에 숭산스님 가르침이 넘 좋아 한국스님이 되었다..하죠
미국에 사는 그의 아들은 가족 소개 쓸 때, 아버지 직업 칸에 <한국스님>이라고 쓴대요 ㅎㅎ 이분도 숭산 제자...
숭산스님의 열반 때에...현각스님의 황망함, 헤아려 집니다.
산학 후배,
수고가 많았네요.
아들 하나와 함께 영안실을 지키고 있을 병약한 재화후배를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파요.
세월이 약이란 말, 나도 이젠 믿지 않아요.
해 줄수 있는게 하나도 없는게 정말 답답합니다.
김혜경 선배님
주위에서 가수 김광진이 왔다고 하는데 멍청하게도 "왜 왔을까?" 했답니다.
선배님을 감히 연상을 못 한 것이지요.
많이 놀랐다고요.
늘 걱정을 하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을 하셨네요.
이런 염려와 위로 덕분에
이제는 홀로서기를 잘 하리라 믿습니다.
먹는 약이 하두 많아 남편이 꼭 챙겨 주었다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잘 하겠지요.
선배님
이런저런 이유로 선배님께는 걱정만 끼쳐드렸네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선배님 소식은 가끔 듣고 있습니다.
친구 혜원이 한테서 이지요.
크리스마스엔 식구들이 다 모이겠네요.
즐거운 성탄을 기원합니다.
정말 가슴아픈 슬픈 소식을 듣습니다.
하늘도...
홈피 생일 축하 때 그 성자같은 선한 모습의 부군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시다니요?
여리고 순수하신 최선배님께 뭐어라 위로를 보내야할지..
그 망극함이란..
슬픔을 다스리시고 몸을 추스리시어
부디 힘내시기를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윤용혁님
재화가 가끔 약사님 이야기를 했지요.
참 좋은 분이시라고요.
단 한번 만난 인연으로 이렇게 큰 위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약사님도
건강에 자신 있다고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약사님께 주제 넘은 이야기인가요? 죄송합니다)
어찌 위로가 필요할까요.
그저 산학후배의 글을보니 무어라 하지못하고 눈물만 흐르는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헤어짐은 만남을 약속한다하였으니 ...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산학아~이제서야 네 글을 읽었네.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젖어드네.
여리디여린 재화를 어찌 볼까하면서
목동병원 쪽에서 일이 있어간다는 인애의 길안낼 받으면서
무사히 도착했더니
재화가 누군지도 모르는 인애가 " 여기까지 왔으니 자기도 들어가겠다 "기에
함께 들어갔어.
재화가 안 보이기에
연도하는 팀이 있기에 묵주기도를 드렸단다.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가 되겠냐마는
" 힘내라 "는 말뿐이 못하고 고인의 친구분들이 많이 오셨기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어.
나도 다녀와서 뭔가를 써야겠는데 글솜씨가 없어서
무척이나 안타까웠는데
네가 이렇게
내 맘을 고스란히 내보여주니 가슴이 후련해졌어.
그러나 넘넘 슬프다.
이제 재화는
어찌 살까?
어떻게 헤쳐나갈까???
정말 내가 왜이리 눈물이 쏟아지는지 모르겠어.
이밤 잠이 안 온다~~~
오늘 하루종일 통화를 할까?말까?망설였단다
지금쯤 무척이나 힘들어서 지쳐떨어졌을텐데
단잠을 깨우면 안되지하는 생각에....
세월이 약이라하지만
건강이 항상 염려되는 재화는 누굴 의지하면 사나!!!
야고보형제님~~재화는 아들과 잘 살아갈꺼예요.
눈물이 왜이리 흐르는지 나도 모르겠네.
김광숙 선배님
일정이 빡빡한데도 잊지않고 찾아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순서만 다를 뿐
살면서 한번은 누구나 겪어야하는 일인데,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는 것은 "저게 바로 내일인데" 해서가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만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닐까요?
어려울 때
함께 우는 것은
내가 잘못 살아온 내 자신의 후회의 눈물임을 느겼습니다.
김광숙 선배님
허인애 후배님께도 감사 인사 전해주십시오.
어려운일을 당할때 이렇게 좋은 친구가 곁에 있다는건 참 큰 행운이지요.
갑자기 큰일을 당한 재화후배가 너무나도 안 스럽지만
그래도 곁에 산학후배같은 귀한 친구가 있어 정말 다행이군요.
어쩌다 갑자기 그런일을............
광숙이도 그 자리에 참여하여 위로하였군요.
재화후배!!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할지 모르겠군요.
하나님께서 후배와 항상 함께 하시어
보호하시고 인도하실것입니다.
힘 내세요!!
산학후재!
고마워요~~~
김춘자 선배님
힘든 일이 많으실텐데도 불구하고
저희 7기 일로 동분서주하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느낀 것은 평소엔 이기적인 것 같아도 실상 동문들이 어려울 때는 힘을 합친다는 점이지요.
좋을 때만 언니 동생하는 그런 부류들이 아닙니다.
무심해 보이지만 서로를 아끼는 마음들
저도 그 인일인의 하나라는 사실이 새삼 고마왔습니다.
얼마전 10월에 있었던 창영 가을 체육대회에
미국에 계시는 오동순(인천여고) 선배님이 참석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김춘자 선배님이 인척이라고 말씀을 하셔서 얼마나 반가왔는지요.
전 언제나 유명하신 선배님을 뵐 수 있을까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산학 선배님의 위로는 누가 하는 위로 보다 힘이 되겠어요.
저는 소식을 접하고 입이 다물어 지질 않았답니다,
산학 언니의 글 제목만 보고도 재화선배님의 슬픈 소식일거라 짐작되어 열어 보지도 못했어요.
몇일이 지났다고 처음 접했을 때보다 진정이 되었습니다.
산학 선배님의 황망했던 시간도 예전의 숨막히는 순간은 아니지요?
얼마나 아파해야 슬픔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나,
잘 이겨낸 산학 선배님처럼 재화 선배님도 잘 이겨내실거라 믿어요.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하는 가사가 생각납니다.
최인옥 후배님
정말은 글 제목을 선정적으로 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목만 보고도 놀라셨다니 죄송합니다.
흔히 선정적인 제목을 보면 선데이 서울 등 삼류잡지가 생각이 나고 속내용은 깡통이라 속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흔히들
기쁨은 나누고
슬픔은 함께 하라고 했지요
지금 이 순간 누구의 위로도 힘이 될 수 밖에요.
물론 세월이 흐르면
체념도 하고 포기도 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지만 못 살고 말지요.
29일 날 아주 오랜만에 만날 수 있겠네요.
윤순영 선배님께 저도 가려고요.
김은희 선배님이 오시면 간병인도 할 수 있고 최희순 선배님이 아이들 데리고 오시면 보모 노릇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 날 우리 만나요.
??산학씨!
재화후배님이 누군지 몰라 안타까운 마음으로만 들여다봤는데.....
예정된 사별이라도 정신이 없을진데,이렇게 황망히 일을 당하면 ~~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산 사람은 살아야죠 어떻게해서든!!
산학씨의 위로를 비롯, 주위 따뜻한 분들의 심려에 많은 힘을 얻었으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간병인,보모노릇을 자청해주니 이 노릇을 어찌할꼬~~나~~
은희하고는 개인적으로는 '우린 어렵지 않겠니?' 그냥 집에 있자했는데....
암튼,그 마음씀이 대견해마지않네 ~~~땡큐~~~
여러 날 컴퓨터가 갖은 오작동을 다 하기에 속절없이 그저 지켜보다가
친구 아들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복구를 한 후
떠나온 친정집이 궁금하듯 인일홈피에 들르니...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너무나 기가 막혀 아무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손이 되고 발이 되고 귀가 되고 보자기가 돼주던 부군이 그리 어이없게 가시다니...!!!
정말, 정말 말을 잇지 못하겠습니다.
아!
재화 후배!
힘 내십시오.
용상욱 선배님
별 일은 없으신지요?
재화하고 여동생이 친구이고(재화가 용상욱 선배님이 친구 오빠라고 엄청 반가와 했지요)
재화 남편도 알고 계시니
당연히 충격이 더 크셨겠습니다.
얼마나 착한 분인지 알고 계시지요?
그런저런 이유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무심한 척, 안 하던 걸음까지 하셨네요.
한번 맺은 우리들과의 인연인데
가끔 오셔서 소식을 주시면 안 될까요?
많은 동문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슬픔을 당한 친구를 위해
이렇게 나서서 일하는 도산학후배에게
감사하단 말 하고싶습니다.
그 슬픔을 당해보았기에 그 아픔을 헤아릴 수 있고
위로할 수 있는거겠지요?
그러기에 우리에게 당한 아픔과 슬픔은 나중에
아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해 줄 수 있고
그 아픔에 동참할 수 있으니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는것이겠지요?
언젠가는 어디에서든 우리 만날이 분명 있을겝니다.
용상욱씨!
오랫만입니다.
용상욱씨라고 부르는것 처음이지요?
어째 더 친근감이 있는것 같지요?
그 쑥개떡 영원히 잊지못할 것입니다.
???사랑하옵는 선배님, 친구들, 후배님들,
저희집 "哀事" 에 많은 동문님들께서 찾아주시고
힘이 되시는 말씀들로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셔서
고맙습니다.해외에서 연락준 친구들 고맙습니다.
같이 슬픔을 나눠주신 모든 분께 깊이 고개숙여
인사드립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남편에게 꽃다발과 음악 함께 보냅니다.
웃음이 많은 그때문에 별 일도 아닌 것을 두고서 대판 싸웠다.
"그래, 관 둬" 라며 전화기 내동댕이 치는 무너지는 소리
그래, 이제는 마지막이다.
나를 이렇게 해놓고 너는 맘 편히 살 수 있을까?
분해서 울고 또 울었다.
전화벨이 계속 울린다.
전화기를 빼 버린다.
그에게서 메세지가 날아온다.
"미안해, 그리고 나는 너 뿐이라고....." 퉁퉁 부은 눈에 웃음이 번진다.
연애는 상대를 곱게 싸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은 것인 동시에
발가벗긴 채 불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하는 묘한 동거.
내가 사랑에 빠졌나 봐.
?이 글은 내가 얼마전에 끄적거린 시로 연애라 이름을 붙였다.
우린 한때 이런 감정에 휩싸이면서 살기도 했지
??산학씨~
사랑에 빠졌을때의 심리~
상대를 곱게싸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고싶은 동시에, 발가벗긴 채
불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하는 묘한 동거~~
어쩜 그리 표현을 잘해요? 혀를 내두르겠네요!!!
섬세한 감성이 충만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죠?
여인네들이 많이 경험하는 느낌이지만 주로~
남성들의 질투감정도 상상을 넘는 수준이라고 들었어요~
우리 여성들은 모성이라는 본능이 원초적으로 자리잡고 있으니 왠만하면~~
아마도 남성들은 죽을때까지 여자의 속내를 모르지 싶으네요.....
최희순 선배님
저를요... 산학씨가 아니라 산학아 라고 불러주셔요.
"산학씨"라고 부르면 남자가 저를 부르는 줄 알고 깜짝 놀라니까요...
그리고 선배님 말씀처럼 감히 남자의 깊은 속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요?
T.S. ELIOT의 황무지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무녀야 무녀야,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나는 죽고만 싶어"
병속에 갖혀 이제는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어버린 무녀는 눈물만 흘리지요.
원래 무녀는 아름다운 여인이라 왕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했습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감동한 신이 여인에게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약속하며 소원을 물었지요.
"저는 영원히 죽고싶지 않습니다"
약속대로 여인은 영원히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늙으니 결국은 키도 쪼그라지고 얼굴은 추해져 괴물이라고 버려졌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병속에 가두고 놀려대지요
"무녀야, 무녀야 너의 소원이 무엇이니? "
욕심으로 추하게 변해버린 우리의 모습을 그리스 신화가 말해주고 있지요.
사랑도 그래요.
받아도 받아도 끝이 없고,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
그래서 티격태격 싸우다 미운정 고운정 들고 맙니다.
행복 뒤에는 반드시 큰 댓가를 치루고 당연히 상처를 입고 아프고 말지요.
항상 나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고싶다던 남자도 그만 날 버렸습니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도 너무도 자연스러운 자연의 이치입니다.
너무 오래 살면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사랑도 가고
사람도 가고
다 가고 맙니다.
최희순 선배님
산에서 남편의 후배를 만났습니다.
제가 인일 출신이라 하니 반갑다 하시며
처음으로 자기가 설레게 한 여자가 인일 출신이라 더 반갑다 하셨습니다.
그 분을 보고 생각했지요.
인일 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이유는
이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그 순수함이 그리워서라고요.
지금도 깨끗한 분인데
인일 여학생을 사모하던 그 때는 얼마만큼이나 순수한 청년이었을까요?
그래서 인생은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다시 오지 않기에 더욱 설레입니다.
어제 권오인 선배님의 병실을 찾았다.
우연히 입원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갑상선암 이라고) 몇명이 뜻을 모아 다녀왔다.
어제 수술한 뒤는 전신마취 끝이라 아픈 줄을 모랐는데 오늘은 여기저기 안 좋다며 자고 있는 선배님대신
사모님과 따님이 우리를 맞았다.
그 와중에도 노트북과 카메라가 눈에 들어온다.
암수술 한 분이 왠 카메라?
선배님이 이 병실에서 내가 제일 경중환자라며 웃는다.
매주 북한산엘 오르는데 평소와 달리 너무 힘이 들어 쉬다가 오르고 하면서 오기로 올랐단다.
그 다음 주도 혹시나 하고 올랐는데 역시나 힘에 벅찼다.
어지럽고 식은 땀이 쏟아지며 꼭 쓰러질 것만 같았다.
같이 동행하던 의사인 친구가 검사를 꼭 해야 한다는 말에 검사를 한 결과가 암으로 나왔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행운의 결과를 가져 왔으니
검사 도중 대장에 폴립을 5개나 떼어내기도 했다고.
물론 갑상선 암은 예우가 너무 좋으니 앞으로 10년은 끄떡 없을 정도로 청소를 말끔히 했다고요.
더 더군다나 세브란스의 갑상선 전문의가 선배님의 진명여고 제자로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니 이 또한 행운이라고 감사해 합니다.
통상 암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는 6개월 내지 일년을 기다려야 함에도 몇일 만에 했으니 제자 덕을 톡톡히 본 셈이지요.
그리고
카메라는 왜 여기 있는냐고 물었더니
원하던 카메라를 샀는데 써 보지도 못하고 들어왔기에, 이참에 공부 좀 하려고 갖고 왔다 합니다.
카메라 이야기만 나오면 있는 병도 잊어버리는 감히 카메라 광 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실에서 카메라를 들여다 보고 계실 권오인 선배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빨리 쾌차 하셔셔 카메라 메고 산으로 들로 열심히 다니시기를 기원합니다.
가신 님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그리고 동문님들........ 위로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멀리에서 가까이에서
마음의 기도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요.
다시 한번
머리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