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없던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과 마주하고 있을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은 걱정이 앞섰습니다.

어떻해 재화의 얼굴을 볼까?

내가 먼저 울면 안 되는데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들어섰지요

그렇게 다짐에 다짐을 했건만

약속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고

막상 액자속에 환하게 웃고있는 착하기만 한 얼굴과 대하니 가슴이 꽉 막히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집니다.

 

평생을 예수님같이 살았다는데

유난히 금술이 좋아

평생을 숙명처럼 병을 안고 사는 아내를 위해 순정을 바쳐 살았는데

무슨 까닭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외동아들을 두고 인사도 없이 황망히 먼길을 떠났을까요?

얼마전

우리 7기의 40주년 행사 때에도 친구들이 보고싶어 안달을 하는 아내를 위해 함께 와서는

친구들과 놀게 하고

3시간 반을 답동성당에서 기다리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친구이고 애인이었던 사람, 그런 사람을 보내고  재화가 웁니다.

 

재화야

울면 안돼.

울 날은 너무 많단다.

지금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의연하게 보내드려야 할 의무가 먼저이란다.

영안실에서는 성자처럼 살았다는 그를 위한 성당식구들의 연도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누구나

어둠의 수렁에 처음 들어섰을 때에는 절망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세월이 지나면 잊혀진다는 말은 제 경험에 의하면 거짓말입니다.

다만 세월은 약은 아니지만 지나다보면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저절로 생기니 그래서 "세월은 약"이 아닐런지요.

억지로 참지말고

많이 울고, 많이 기억하며  살다보면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분명 생깁니다.

 

하필이면 날씨마저 얼어붙은 오늘이  발인인데

어제 저녁 잠깐 통화를 했습니다.

동기는 물론이고 얼굴도 모르는 선 후배님들이 직접 찾아와 위로를 주는데 뜻밖의 일인지라 

어떻게 신세를 갚아야 하는지

이렇게 받아도 되는 것인지 하며 또 웁니다.

"인일" 이라는 홈페이지에 잠깐 얼굴을 비쳤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내 일처럼 걱정을 해주는 동문들을 보니

나는 그렇게 살아 오지를 못했는데 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고요.

 

김혜경 선배님은 동생인 가수 김광진 부부를 보내 대신 위로를 주셨고

우연히 소식을 듣고 달려온 김광숙 선배님과 함께 온 얼굴도 모르는 허인애 후배님

그리고 아프다는 핑게로 동기들에게도 소식도 주지 못 하고 살아 왔는데 같이 울어 주었던 7기 친구들...

다들 고맙다는 친구에게

"걱정 하지 마, 내가 네 마음을 꼭 전할께" 하며

모든 동문들께 보답하는 길은 네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이라고 했지요.

 

오늘따라

숭산스님이 입적하실 때

제자인 현각스님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이 귓전에 맴돕니다.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산은 항상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왔다 가는 길이 아니요, 있었다 사라지는 길이 아니다. 자연 그대로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