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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년 만에 한국에 나왔다.

아니 36 년 만에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네 번 나왔지만 처음으로 마음을 놓고 여행을 다니며

고국 땅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으므로.

 

처음 귀국 했던 것은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경황없으신 엄마를 위로하러 나왔던 몸이어서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래도 한가지는 김포공항에서 나와 보니 시장통같이 무질서했던 것이 기억난다.

좁은 길에 우마차, 자동차, 자전거, 아이들이 다 함께 밀며 다니던 모습과 한없이 성급하고 거친 운전행각..

 

두 번째는 어린 딸 둘을 데리고 나왔었다.

그애들과 우리 부부 양가의 시골 고향을 방문했었는데 그때의 기억은

짐승 오물 냄새나는 시골에서 딸들이 코를 막고 힘들어 하던 것과

재래식 화장실의 고문이었다.

 

세 번째인 지난번에는 인천공항이 생긴 후였는데,

졸업기념 전시회 핑계로 두 주일도 못되는 시간에 쫓겨서 눈부시게 발전하는 모습에 취할사이도 없었고 

보고 싶은 사람도 제대로 다 만나보지 못하고 아쉬워하면서 떠나던 생각이 난다.

 

이번 여행은 그 어느 때 보다 길고(서너 주간)

우리 둘 다 백수가 되어 일에 매이지 않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둘러 볼 수가 있어서 새로운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더 많은 세월을 미국에서 보낸 나로서는 금수강산의 면모를 제대로 볼 기회를 처음 얻었으니 이번 여행 내내

“한국은 참으로 아름답다!”는 감탄을 수도 없이 부르짖으면서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대한항공을 타고 들어 온 것도 처음이었는데

서민적인 미국 비행기와 얼마나 분위기가 다르던지!

날렵하고 어여쁜 한국 아가씨들의 공손한 말씨가 그러지 않아도 오랜만의 고국방문 여행으로 들뜬 기분을 최고로 만들어 주었다.

 

배가 고플만하면 마실 것과 음식을 가져오며

친절한 서비스를 해주는 모든 것이 다 최상급이요,

놀랄 일의 연속이 시작된 것이다.

 

아침 일찍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리무진을 타고 들어오면서 느꼈던 신선함..

먼 바다에서부터 들려올듯한 정겨운 축복의 말들이

아침햇살을 타고 귀를 간질어

그때로부터 나는 실실 웃음이 무시로 나와서 견딜수 없었다.

인선아 잘 왔어!

 

한국에 가기가 겁난다는 이야기를 쓴 것이 스스로 무안했다.

그래, 얼마나 오기를 잘 했는가!

 

빽빽이 둘러싼 빌딩의 숲에 뒤질세라 산마다 숲이 초록색으로 우거지고

어디를 둘러봐도 눈에 익숙한 온화한 능선을 가진 산들이 겹겹이 펼쳐져 있고

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곳을 따라 기름진 논에는

갓 심어 놓은 벼들이 줄맞춰 자라고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섬들이 수도 없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었으니

 

너무나 넓어서 밋밋한 곳 천지인 미국에서 살던 우리 눈에

방방곡곡 아기자기한 산천경개가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오던지!

또한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색다른 요리들과 풍성한 먹거리...

그리고 진심으로 반가와 해주며 보듬아 준 친구들과 친척들..

월드컵 축구 열기로 뜨거운 밤들...

이제는 세상 어디에 내 놓아도 자랑스러운 내 나라임을 새삼 깨달은 기회였다.

 

강남 테헤란로에 한시간 서서 보았는데 미국서 보지 못하던 고급 외제차들과 함께 큼직하고 질좋은 국산차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기죽기 싫어 모두가 큰차만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미국으로 떠날때 선진국을 향해 떠났지만 돌아와 보니

이제는 미국보다 앞선 것도 많고 내가 여러모로 뒤지고 있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하지만 염려할 문제들도 쉽게 눈에 띄였다.

예를들면 농촌도 이제는 아주 잘 살고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는데

문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지 오래된 것이다.

방문했던 남편의 옛 초등학교는 천여명을 수용하던 아름다운 교정에 장미가 만발하여 피어 있었는데

누군가 열심히 돌보고 있는 그 학교에 지금은 재학생이 20명 뿐이고 그나마 일학년은 한명도 없다는 경악하도록 슬픈 소식이었다.

 

남편의 시골 고향은 허리가 90도로 휜채로 밭의 잡초를 뽑고 있는 할머니들과 말라붙은 할아버지 몇이 지키고 있었다.

자녀들은 인근의 도시와 멀리 서울로 다 떠나 버린지 오래된 것.

그리고 일년에 한두번 얼굴을 볼까 말까란다.

 

그렇게 높이 높이 지어가는 아파트들도 틀림없이 문제가 될것 같았다.

이제는 너무나 교육이 힘들어 한가정에 하나 낳으면 다 된 일로 생각하고

아예 아이를 하나도 안 낳으려 하는 사람이 늘어간다니 누가 그 많은 아파트를 채울 것인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상당히 많은 수의 아파트가 미 분양 상태라고 한다.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과도기의 성장통을 앓고 있는 것일까?

 

이번에 부산 해운대, 태종대로 태백 함백산과 정선으로 해서

목포와 홍도와 보성 차밭을 거쳐 담양 대밭까지 들러보며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왔는데

하나하나 조금 더 상세한 여행 기록을 남겨 보고자 한다.

 

이곳에서 한국과 미국의 문화의 차이를 강렬히 느끼기도 하였고

놀란 일도 많았으니까 따끈따끈한 체험의 기록이 될것으로 믿는다.

다만 엊그제 마지막 탄 택시에

그동안 다니면서 틈틈히 느낌을 써놓은 노트를 놓고 내려서

기억만 더듬으려니 아깝기 짝이 없다. (2010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