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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우리 막둥이가 아직 어릴때 한국 방문을 한적이 있었다.

두 아들까지 데리고 가면 택시 한대에 우리 식구를 다 태울수 없고

비용도 많이 든다고 딸들만 데리고 나간 것이었다.

아들들에게 조금 미안했는데 다섯살짜리 막둥이가 그랬다.

"나는 가기 싫어요. 거기는 전쟁이 나는 나라잖아요?"

덕분에 미안하지 않기로 하고 네식구만 다녀왔었다.

지금은 실제 전쟁의 위험을 이야기들 하지만 그것때문에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와서 36년만에 한국에 나가 본 것이 세번 밖에 안되는데 이번에 팔년만에 또 가게 되었다.

갈때마다 가기전에 흥분하고 기대로 충만해서 행복하던 몇달을 지내고

한국에 가서는 고작 일주일 내지 이주일쯤 간신히 지내고 오니 

그리운 내나라의 향수를 충분히 달래기에는 늘 감질만 났었다.

그러니 한국에 자주 나가는 사람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였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한국 나가기가 겁이 나는 것이다.

처음부터 간다고 하지 말았을 껄 하고 후회도 생기고 은근 긴장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젊은 사람이 먼저 한국에 나가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거기서 만나면 저를 몰라보실꺼예요."

나는 성형수술을 한다는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자기 엄마가 즉시 데리고 가서 일류로 옷을 맞추어 입히니까 여기서처럼 시시하고 편한 모습이 아니라

정장으로 쪽 빠진 모습을 볼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우리 고모도 제딴엔 좋은 옷이라고 실크 옷을 입고 나갔는데 언니가 그런 옷은 거기선 안 입는다고

당장 나가서 다른 옷을 사다가 입히더라고 한다.

한국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 하는 분위기가 가득하기에 그렇지 않으면 무시를 당할까봐

어떤 사람은 한국가기 전에 살좀 빼고 가야한다고 까지 고민을 하는 것이다.

 

요즈음 천안함 사태로 남과 북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전쟁이 곧 날듯 겁을 주는 사람들이 있던데

전쟁난다 난다 하는 소리를 한두번 들었던가?

그리 쉽게 큰일이 터질까 싶어 그런 걱정은 마음에 집어 넣지 않고 있다.

 

애초에 날씨가 문제가 되어 싫은 마음은 있었다.

딸들과 나갔을 때 장마철이어서 아무리 하루 서너번 물을 끼얹어도 답답하기가 그지 없어서

다시는 장마철에 한국에 나가지 않겠노라고 결심을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또 장마철에 나가게 된 것 같아 그게 걱정이다.

모처럼 별러서 나가는데 하늘이 청명한 가을에 나가 포도랑 온갖 과실을 다 먹어 보고 싶은게

오래된 소원이었는데 원치 않는 여름에 또 나가게 된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막둥이가 피로연을 거기까지 가서 한다고 하니 따라가는 수 밖엔.

 

백수가 된 마당에 두주일 만에 급히 돌아오지 않아도 되고

이번엔 장장 한달을 보내고 돌아 올 예정이니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마음대로 만나고,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다 다녀 보고 돌아올 예정이다.

그러니 더더욱 즐거운 예감으로 흥분이 되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갈아 앉는 것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에서 좀 살다가 고국 방문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담감 내지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에 가기가 겁이 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곰곰 생각하니 아, 순전히 인터넷 탓이다.

인터넷을 알기 전까지는 한국 사정에 깜깜했었는데

그 동안 드라마요, 뉴스요,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던 것이 문제로다.

무슨 말인가 하니 한국 위상이 올라가면서 대체로 교만해진 모습들,

상반된 의견이 너무나 극과 극을 달리는 정치적 혼란,

외모 지상 주의, 명품으로 과시하는 풍조,  

무례하고 사람 막대하는 듯한 말투와 행동,

돈으로 사람 서열을 정하는 천박함.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아예 상대 해줄것 같지 않은 음주 문화, 등

미국에서 살다온 사람들을 거지 취급하는 실정들을 알고 가기 때문이렸다.

그러니 나의 걱정의 실체는 내 똥배와 빈 지갑 그리고 백수 남편!

 

전에는 그런 사실을 잘 몰라 한국에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었는데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된 한국의 현실은 거리감이 많이 난다.

보이지 않는 계급의식, 돈과 지위가 있는자들이 우월감으로 똘똘 뭉쳐서

조금이라도 자기 계급에 속하지 못하면 사람으로 대우하지않고 함부로 취급하는

"세자매" 같은 울화통 터지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았나 보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해가 도무지 안되는 그런 사람들이 잘난척 하며 사는 한국이라는 괴물의 나라...

이제는 왠만한 선물로는 코웃음이나 받을 것을 생각하면  

영 찜찜해서 가기가 싫을 정도라고 하면, 아니 아무도 모르게 살짝 다녀 오고 싶다고까지 하면  

완전 병신 코메디가 아닌가!

이건 미국에서 출세하지 못하고 근근히 사는 사람의 한결같은 부끄러운 고백이리.

 

그리운 친구들, 친척들, 동창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노트에 써가며

시시한 것들이지만 빈손 보다 나으리라 하며 가져다 줄 선물을 준비하면서

긴장은 되지만 역시 한국, 나의 조국을 그리워 하는 마음으로 떠나고 싶은 것이다.

아직도 다정한 말과 마음씨를 간직하고 사는,

외모나 돈으로 사람 무시하지 않는 사람 냄새 나는, 그런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일찍 떠난 후 한번도 제대로 구경해 보지 못한 방방 곡곡을 차근차근 다니면서

내나라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많이 찍어 오고 싶고

우리 떠난 후에 생긴 여러가지 볼거리를 다 보고 오고 싶다.

남편이 원하는 싱싱한 생선을 만나는 대로 실컷 먹이고 와야지.

혹 무례하고 막무가내인 사람을 만나더라도 다는 안 그렇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와야지.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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