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블란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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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을 떠나 육개월이나 딸집에서 손자를 돌보는 동안

남편은 어찌 살거냐고 걱정하며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아기보는 내가 힘들꺼라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몹시 측은하게 느끼는 사람도 많고

남편을 내버려두고 돌아다니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게끔 유도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남자들이 보통 자립적으로 못사는 사람이 흔해서

여자의 돌봄이 없으면 큰일나는 것으로 아는 것이다.

그런데 내 대답은 "걱정 붙들어 매세요, 아주 혼자 잘 지냅니다!"이다.

지금 두달 반만에 집에 다시 와보니 내말 그대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게 증명이 된다.

 

첫째 이유는 남편이 산을 좋아하기 때문이요, 걷는데 목숨바쳐 열심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시간 내지 세시간을 걷는 것을 수년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지켜내는 사람이니까 시간이 잘 간다.

둘째 이유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요, 내가 하는 음식 보다 짜고 맵게 만들어

아무 간섭없이 마음놓고 먹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있으면 맵고 짜게 먹지 말라고, 고기가 안 좋은 거라고, 콜라 마시지 말라고,

인공 조미료 쓰지 말라고 등등 잔소리를 할텐데...

이번에 집에 와서 보니 다시다를 큰 봉지에 든것도 사놓고, 나 있을 때보다 더 많은 밑반찬을 해 놓고 잡숫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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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 이유는 남편에게 굉장한 새 친구가 생겼고 그 친구를 너무나 좋아 하기 때문이다.

이웃에 사는 남자로..(여자가 아닌 것이 다행이겠지?) 블란서 태생인 그 사람이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 남자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이가 한두살이 많지만 남편보다 더 힘세고, 더 날래고, 더 잘 걷고

산을 좋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산에서 한두번 보던 사람을 같은 서브 디비젼에서 만나게 되니 친구가 되었단다.

독일계 부인과 함께 10년째 은퇴생활을 하고 있는데 부인의 자식은 둘인가 있고 자기 친자식은 없는 외로운 사람이란다.

 

남편은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그 친구 자랑을 하기에 정신이 없다. 미국와서 39 년만에 처음으로 코쟁이 친구라!

그 친구는 이 동네에서 착한 사람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상당히 자기 주장이 센 남편에게 무엇이든지 오케이 오케이,

이리가자 하면 이리가고 저리가자 하면 저리가 준다는 것이다.

거의 날마다 만나서 같이 함께 걷는다는데 먼곳에 데리고 가기도 하고

그동안 몰랐던 곳들을 함께 가는 재미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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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화로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그친구 때문에 알게된 여러 산길을 내게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서 오는 날로 안달을 해대는 남편을 보니

우습기도 하고 참 순진하기도 하고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글쎄 우리집 돈키호테 영감님이 두주일 전에 그 친구와 함께 동네 자주 왕래하는 분들에게 점심 초대를 했단다..

닭고기에 들깨와 된장을 넣고 요리를 해서 먹어보니 아주 맛있길래 그것을 해서 대접을 했다고.

그런데 자기 혼자 해 먹었을 때는 기막히게 맛있더니 여럿이 먹게 많이 해 놓은 이번에는 맛이 아주 이상하더라고.

참 내, 겁도 없지 사람을 여덟명을 불러서 점심을 먹이다니...마누라도 없는데!

내가 그럴줄 알고 극구 말렸건만 어디 내말을 들을 사람인가!

아무튼 다른 이웃이 가져온 김치와 그 블란서 사람이 가져온 케잌 덕분에 살았다나 뭐라나..

 

한 주일 후에 그 블란서 친구가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해서 가 보았단다.

그렇게나 깔끔하게 요리를 해 놓았는데 자기는 닝닝해서 못 먹었지만

같이 데리고 간 한국 사람 친구들은(혼자가기 뭐해서 다른 친구들을 또 데리고 갔댄다.) 모두가 극찬을 하더란다.

알고보니 블란서 요리사로 50년을 일했다는 사람이니, 얼마나 굉장한 사람이고 굉장한 요리었을까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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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부부와 나 여기 있는 날을 맞추어 오늘 아침 또 약속을 해 놓았다는 것이었다.

약속을 하면 한번도 어기거나 늦는 일이 없고 필요한 집안일도 거들어 주기도 한다는 친구..

울 남편에게 꼭 필요한 그런 친구다.

오늘도 정확히 9시에 우리를 픽업해서 한시간 이상 걸리는 곳으로 또 데리고 갔다.

클로오(남편)와 릴리(부인)를 만나고 보니 정말 그런 천사들이 또 없다.

부부 두 사람 다 날씬하고 고상해 보였다.

그들이 데리고 간 곳은 투산 근방의 피카쵸 피크 주립 공원이었는데 그렇게 멋진 곳이 또 있는 줄을 어찌 알았을까!

그들은 애리조나에서 30년을 사는 사람들이어서 아는 곳이 너무나 많은 것이었다.

 

3374피트의 정상까지는 가파르고 오르기 힘든 곳인데 둔해빠진 남편을 붙잡아 주고 격려해가면서

한시간 반을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다 급경사를 다시 올라가는 코스였다.

나는 한시간 지점에서 도중하차를 하고 칲 멍크와 놀면서 기다렸는데 남편은 그들과 더 올라갔었다.

느리게 걸어도 잘 참아 주고 기다려 주기도 하면서..꼭 아이를 돌보듯, 조금이라도 비틀대면 손 잡아 끌어 주는,

그런 인내심을 다한 보살핌을 해 주는 것이었다.

 

피크닉 음식도 얼마나 정성껏 준비를 해왔는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국 사람들만 그런 정성을 부리는 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 예상 밖의 일이었다.

계란 삶아서 반 갈라서 모양낸 것이며, 코울 슬로, 투나 샌드위치며, 두가지 빵과, 크랙커 여러 종류와 쿠키들과

채소 썰은 것과 과일... 포도주와 마실 것과 심지어 소금, 후추와 실버웨어까지 잘 갖추어서 

깨끗한 테이블 보위에 늘어 놓고 먹으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겨우 토마토, 바나나와 삶은 고구마를 가지고 갔는데 얼마나 고구마를 달게 먹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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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7 시간을 보내고 집에다 내려다 놓으면서 내일은 집 근처에서 걷고 수요일날은 울 남편이 픽업하러 간다고 한다.

보통 날은 부인은 그냥 요가를 하고 잘 안 따라 나선다고 한다.

아무튼 두 남자가 이렇게 재미나게 살고 있으니 내가 무어 걱정이 되겠는가?

울 남편이 돈이 많을까 영어를 잘할까? 잘 생겼을까?

정말 볼품없이 늙어가는, 영어도 정말 못하는 사람인데 어찌 그런 좋은 친구가 생겼을까?

 

영어라면..그렇게 자주 같이 다닌 사람 이름도 아직 제대로 못 외우고 있었으니 무슨 말을 하랴!

게다가 대장암 수술 후유증세로 화장실도 자주 가고 쳐지고 귀찮게 하는 사람에게 이게 웬 복인가 알수가 없다.

단지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주신 모양이라고 해석할수  밖에 없는 일!

덕분에 아직 남은 석달 반, 걱정 조금치도 안해도 될 것으로 믿는다.

마누라보다 좋아하는 것들이 이리도 많으니...(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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