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한선민
이 핀도 얼축 한 25년 정도 되였다,
이 핀 자체의 나이로 보면 얼축 백년은 되었겠다.
내가 아무것도 손을 댄 것이 없는 그대로이다.
단지 내가 이것을 선택한 사람이라는 크레딧이나 받아야겠다.
너무 뭐랄까 뚝배기맛 같이 아무 꾸밈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가장자리의
메달테코가 아주 정교하고 전체적으로 품위가 있어서 좋았다,
어느 골동품상에서 한 $40,00주었다,
그 가운데 것이 진짜 스톤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또 알채도 안한다,
나에게 중요한것은 결과적으로 풍기는 멋일뿐이기 떄문에,,,,
모조품 털이 달린 아래의 스웨터재킷은 내가 드라이클리너 할 떄에 어느 잘 아는 손님이,
자기가 이 옷을 누구 줘 버리겠다기에 너무 씸플하고도 리취해서
나를 달라고 하고 클리닝값을 크레딧으로 주었다,
쿵뎅이까지 가리는 재킷이다,
밤색바지에 밤색모자에 밤색구두에 또는 긴 부츠에 밤색가방을 메고 나간다.
아이고,. 우리 아름다운 한귀동후배님이 나와주셨네요.
우리 엘에이에서 만났으니 초면이 아니지요?
사실 이것을 띄우기까지에는 많은 망서림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주제가 무척 야할수도 있고, 자랑같을수도 있고,
사치성을 부각시키는것 같을수도 있고,,,,,,,,,
그러나 우리 여성에게는 어쩔수없이 밀착되어있는 이 훼션이라는 주제,,,,
아주 부유한 여인들에게는 뭐가 문제가 되겠어요,
그저 취향대로 즐기기만 하면 될 쁜만 아니라.,
그 양반들이 경제를 돌려주는것 아니갔시우???
살기 바쁜 우리 부인들, 어머니들, 또 한 직장의 전문인이 돼야하는
멀타이 미션의 오늘의 여성들,,,
그렇튼들, 워찌 그렇게 자기에게 쓸 돈이 충분할수가 어디 있으며,
끝도 끝도 없는 것이 바로 이것 아니겠어요?
그러면서도 초라하게 옆에 나서준들,
남편이, 자식이, 칭구가 누가 알뜰하고 검소해서 그렇다고 감사할리 없지요?
아유, 이번엔 또 어디를 가야하는데 입을 옷이 없어서,,,,
하고 백화점을 또 배회하며, 그 모임/초대만을 가기위해 특별히 샤핑을 해야하는 경우,,
옷이 됐으면, 그 다음은 핸드백, 구두, 뭐가 다 어울리지 않는것 같음,
또 가보면 다들 너무 잘 입고 온것 같은 주눅들림,
그렇든들, 이내 한해가 지나면 또 유행이 지나버린 느낌,,,,
그런것 없이 언제든 저는 저일수 밖에 없는 떳떳함,
어느 값으로 단판을 짓자는 멋쟁이조차도 할말을 잃을수 밖에 없는,
오직 나만의 Timeless////Speechless////Priceless를 일궈낼수 있다면,,,,,?????
그렇튼들, 그것을 어떻게 하면 남편들 목조르고 떄려잡지않고설라무네,
우리의 덕과 지혜로서 해결할수 있느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어요.
또한 제 경우는 어려웠던 시절에도 속에 숨어있는 개성이,
남과 같음을 거부하는 묘한 독선이 잠재하고 있었어요,
그런들 무쳑 어려운 주제였답니다,.
으이, 싸구려,,,,, 천박한,,,,둥등, 공감대를 얻기란 불가능할 정도이죠...
그러나 이곳에서 저를 알 만큼 아시는 정도가 되었고,
또 엘에이 동문회를 통해 저의 취향이 들어났고 한 김에
기회를 놓칠새라 이 주제를 한번 담대히 내어 봤어요.
점점 호응들을 해 주시니 고맙기 그지없고,
우리 여성들의 좋은 나눔의 장이 되기를 바라요.
특히 우리 미국, 어쩜 유럽도 마찬가지겠죠.
양장의 원조의 나라이라, 앤틱샵이나 입던옷 파는 곳에 전혀 기대없이 가면,
기대 이상의 오래된 귀한 것들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러다보면 우리 여성들은 타고난 끼들이 있으니,
요리할떄 소금, 후추, 참기름, 꺠소금치듯 아이디어가 춤을 추게되는
자신만의 끼가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꺼예요...하하하하하
많이 응원해 주세요. 멋쟁이가 동조해 주시믄 신나죠....
순자만의 Timeless, Speachless, 그리고Priceless 정말 멋진 말이네!!
순자 그동안 부로치를 많이 수집하여 순자 특유의, 세계의 하나뿐인
유일한 작품들 만들어 내니 정말 대단하네. 모든 사람들이 다 순자처럼
그러한 탤런트가 있는것이 아니니까 정말 대단하지.
그럼 남미여행 잘 다녀오길 바라며....
순자언니 쪽지는 받았는데요.
이상하게 쪽지쓰기가 안되서 답장을 못드렸어요.
우리 새애기는 오늘 검진에서 건강하다고 그랬대요.
일단 나이들이 있어서인지 앞으로도 두어달은 조심하라고 했다네요.
전 두 주동안 많이 해먹이고 만들고 사주고 해서 지갑은 텅비었지만
아주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됬어요.
이곳은 재료가 없다고 엄살 부렸는데 해보니 얼마든지 싸고 좋은 것들 많이 있길래
시범을 보여주고 있지요. ㅎㅎㅎ
김치도 여기 재료로 몇가지 만들어주고
양희 먹일 것도 만들어서 일회분씩 냉동실에 얼려두고 있어요.
나머지는 입덧만 가라앉으면 지가 하겠지요.
오늘은 집앞에 걸어갈 수 있는 YMCA 어린이집에 등록도 시켰어요.
애들은 역시 추진력이 약하고 뭘 질문을 해도 소극적이더군요.
2월은 지금 다니는데 다니고 3월부터 보내려고 하던데
사실 지금 가는 곳은 우선 양희가 싫어하고 연구소 안에 있기때문에
애비가 일일히 데려가고 중간에 데려와야하거든요.
오늘 양희데리고 산보삼아 저도 갔는데 친구가 많다보니 양희가 너무 좋아하는 거에요.
지 에미도 제가 있으니까 마음놓고 결정을 하더라구요.
역시 나이는 밥만 먹는게 아닌가봐요.
제가 생각해도 너무 유능한 듯 합니다. ㅎㅎㅎ
명옥이
멋진 할머니, 고마운 시어머니,, 사랑스런 어머니 역할을 톡톡히 할
기회를 가졌구나.
그리 많이 보살퍼주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쁘듯 할까?
먹을것도 잔뜩 쟁겨 주었으니 새 아기는 부자가 되여 세상에서
부러울게 없겠네.
가끔씩 갈 수 있으면 양희 하고 학교도 함께 가고 얼마나 좋을까?
역시 문제는 경제네요.
애들이 오거나 우리가 한번 갈 때마다 우수수 살림이 축이나니까요 ㅎㅎㅎㅎㅎ
지금도 애들 수입이 그다지 적은 편이 아니지만 엄청난 세금과 집세로 반이상이 없어지거든요.
수입이 반밖에 안되는 학생들하고 비숫하게 살아요.
학생은 세금을 한푼도 안내거든요.
공무원주택에 들어가면 ( 그것도 엄청 기다려요)
집값은 무지싼데 모든 가구와 심지어 전등까지 자기가 사서 달아야한대네요.
그걸 뽑으려면 2년이 걸리고 3년 째부터 흑자라니 그곳도 선듯 결정하기 어렵고요.
게다가 아주 열악하거든요.
진짜로 웃기는 건 먼저 사람이 살다가 두고 가도 안된대요.
일단 나갈 때는 들어올 때와 같은 상태로 만들어야한다네요.
일본공무원들의 철저하고 융통성이 없음을 그대로 나타내는 발상이지요.
지금 사는 집은 장소도 좋고 아주 쾌적한 곳이라서 아기 키우기는 그만인데 너무 쪼들린대요.
전에 조금 작은 집에 살아보니 아들이 도무지 공부를 할 수가 없었고 ....................................
2년전에 왔을 때 공무원 주택에 가려고 하는 걸 앞날이 불투명한데 가지말라고 만류한 게 영 마음에 걸리네요.
그 때 갔으면 지금부터는 모으면서 살걸 말이에요.
이제 양희에게 돈이 들 시기가 됬는데 이곳은 유치원비가 또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한국같으면 융자를 내던지해서 집을 장만하던지 적어도 전세니까 몫돈이 모일텐데 말이지요.
허지만 언제는 계산하고 살았나요?
다 지켜주시는 은혜로 사는건데도 때때로 이런 바보같은 푸념을 한답니다.
그래도 애들에게는 걱정말라고 큰소리 빵빵 칩니다.ㅎㅎㅎㅎㅎ
유명옥후배, 오랬만이예요. 애들이 오고나 부모가 갈때마다 살림이
우수수 축이 난다고요? 맞어요. 우리 다 그렇게 살아 왔지요.
명옥후배 아들은 결혼에 자녀가 곧 둘에 아주 빨리 발전 하고
있는셈이지요. 아즉도 독신이라고 생각 해보세요. 경제적으로 충분할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모든면에서 뒤처지는 것이지요. 시간이 왠만큼
지나면 부보도 아들 가족도 모르게 아하 인생은 행복하네, 인생은 정말 즐거웁구먼
하고 말할때가 머지 않아 올것입니다.
옆에서 걱정 하지 말라고 큰소리 빵빵 쳐주는 부보님이 얼마나 큰힘이 되는지
아시는지요. 우리도 정확히 그렇게 살아 왔답니다.
그리고 이곳 미국에서는 아파트는 모르겠지만 사업채는 일단 끝나면 떠날때
엄청 돈을 드려 원상 복구를 해야합니다. 게다가 계약전에 나가면 엄청 벌금을
물어야 되고 아마도 그것이 원칙 이겠지요. 그래야 다음 세드는 사람이나
사업하는 사람이 쉽게 원하는데로 디자인을 쉽게 할테니까요.
우리도 학생때는 여유있게 살다가 당장 직장을 갖고 보니 집에 가구에 오히려
가난했던 학생생활이 더욱 여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왜그리 사는것이
빡빡 했던지 명옥후배 글을 읽으니 우리 젊은시절 생각이 고스란히 떠 오르는군요.
숙자언니 글 일본에서 읽었는데 거기 컴이 한번씩 한글이 잘 안될 때가 있어요.
몇 번 시도하다 신경질나서 그만뒀지요.
게다가 낮에는 양희가 달려들고 저녁에 양희 애비가 돌아오면 자기 일 하니까 컴 쓰기가 미안해서요.
암튼 살기는 우리 한국이 제일 편한 듯한데 이 곳은 신경 안써도 될 일들에 시간 너무 뺐기고 사는 단점이 또 있지요.
우리 한국식으로 생각해서 아주 힘들 때만이라도 도우미를 부를 수 없는가 알아보랬더니
아들이 연구소에서 들은 대답은?
"일본은 그런 일 안한다. 총리대신 정도라면 혹 모를까!"
이랬대네요.
대신 남편보고 돌보라고 한대요.
중간에 집에 들락거려도 그런 건 잘 봐준다는군요.
다행이 급한 불은 꺼주고 왔는데 그런 것도 불가능한 사람들도 많쟎아요?
그저 급할 땐 고향이 최고에요.
명옥후배는 정말로 남버완 시어님 이시군요.
원체 노동력이 비싼 일본은 도우미를 구한다는것이 한국같지는 않군요.
이곳도 일본과 같지요. 정말로 총리대신이나 도움이를 쓸가요.
그러고 보면 한국이 정말로 살기좋은 나라 같지요.
요즘 순자가 남미 여행중이라서 왠지 3기방이 쓸쓸한 기분이 드네요.
내심 불 꺼질까 걱정 했는데 명옥후배가 찾아주니 정말 고마워요.
2년전에 동경대학 교수 가족이 우리집에서 몇일을 쉬고 간일이 있지요.
정말로 이 가족들 얼마나 검소한지 부인의 옷차림과 헝겁가방에
놀러가도 카메라를 쓰지를 않아 내가 대신 모든 사진을 찍어 주웠지요.
노 카메라, 노 썬글래스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부인은 일본 3세인 한국인으로 말은 못해도 고사리 가지 깻잎등 음식 문화는
그대로 간직되 있는것이 신기할 정도였지요.
그리고 아들 둘 초등 1-2 년 정도 인데 얼마나 예절이 되있는지
도대체 아무리 피로해도 어른을 조르지 않고 식당에서 엄마의 도움없이
혼자 스테이크를 거뜬이 썰어 먹는데 놀랬습니다. 우리 한국 애들 같앴으면
벌써 칭얼 거리고 밖에 나가 엉덩이 두대쯤 찰싹 했을텐데 말이죠.
아들가족이 일본에 있으니 그래도 자주 방문하셔야 겠지요.
곧 손주가 둘이나 되니 얼마나 좋으실까 그저 내나이엔 손주들
있다는 할머니가 제일 부럽답니다. 내경우를 보면 할머니 된다는
일도 쉬운일이 아니더군요.
요즘은 다른집들도 다 그렇답니다.
저희 성가대는 우리또래가 주류인데 남이 보면 손주들이 그냥 생기는 것 같아도
내심 다들 고전을 한다 그러더라구요.
저희도 1년반만에 임신했는데 주위에서 하도 걱정들을 많이 하는 걸 봐서 미리 보약도 여러번 먹이고 했어요.
1년이 지나니까 지들도 알아서 병원가고 하더라구요.
우리 봄날의 순호대장이 그러는데(순호가 손주 만드는데는 공신이에요)
병원에서 이상없다는 말만 믿고 기다리면 안된대요.
대부분이 이상은 없다는군요.
우리5기에도 7년만에 임신한 이야기가 올라왔답니다.
어제는 교회에 잠깐 다녀온 후로 종일 늘어지게 잤어요.
오늘아침에 마트에도 다녀오고 이제 뭔가 제대로 집이 움직이는 것 같네요.
순자언니 안계신동안 불꺼뜨리면 안되지요.
저도 열심히 들어올께요.
정순자 선배님,
저도 부로우치 를 아주많이 좋아하고 조금 갖고 있긴 하는데,선배님의 수집에
비하면 아주 약소 합니다.그리고 모두 사거나 선물받은 것이어서 선배님처럼 다른것들을 이용해서
모양을 변형시키거나 거의 다시만드는 것하고는 아무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죠..
아주 예쁘고 멋있고 또,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들기 까지 하여서 꽂고 다니신다하니
그냥 지나칠수가 없어서 잠간 들어왔읍니다.
처음에 찍어 올리신 사진을 클릭하고 보니 너무 흥미로워서 계속해서 보게돼었죠.
정말 보석 디자이너가 돼셨다면 얼마나 멋진 작품이 나와서 사람들을 기쁘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계속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