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회 - 게시판담당 : 구창임
영화 필라델피아로 해서 더 많이 알려진 칼라스의 또 다른 노래, 혼자 듣기엔 벅찬 느낌 이지요?
La mamma morta (They Killed my Mother)
엄베르토 지오르다노 의 Andrea Ch?nier에서
선배님 하고 실시간이네요...
어제 하루종일 집에서 음악들으면서 선배님 생각도 많이 했었어요.
뉴욕에서 너무 짧게 만나뵈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음악을 듣다보면 연상작용이 일어나서 감정을 누르기 힘든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 그런상태인지 잠을 놓쳤답니다. 여기는 새벽 4시가 넘었는데요....
칼라스의 매력은 영원 불멸이지요.
그녀의 전기를 읽으면서 제 가슴이 타들어 가는 느낌을 받었었어요.
옥인이의 칼라스를 향한 애수의 마음이 찐~~한
전률이 느껴진다~
혜경선배님의 칼라스곡도~
너무 감동입니다~~감사합니다~~
아~~
이 아침이 행복하네~~~^*^
선애의 도자기와 차,
그리고 옥인이의 센스로, 마리아칼라스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옥인후배! 마리아 칼라스!
또 그녀에게마져도 미쳐 빠져버린 옥인후배!
왜? 그냥 좋아만 할수는 없을까?
미쳐버려야 한단 말인가?
그러기에는 에너지가 마니 소비될텐데,,,
그러기에는 가슴이 많이 아프기도 할텐데,,,
떄로는 그 미침으로 몸지어 눕기도 하나본데,,,,
그녀의 음성도 깊지만,
어찌 저리도 드라마틱하게 생겼을까요?
옥인후배! 예술적 측면에서 논하기에는 솔직히 자격미달이고,,,
그저 저 깊은 음성이 저 밑의/ 내면의 아픔을 뭍어내는 듯 하네요,
지난 어느 하루 테레비에서 오나시스를 논하는 시간에,
어쩔수 없이 같이 오는 칼라스에 대하여,,,
즉 오나시스의 여성관/편력으로 보아지는 칼라스를 보며,,,,
자수성가타입인 오나시스는 항상 모든 것이 자기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지죠.
자신의 첯 결혼부터 그 후의 많은 여인둘도 모두가 그에게는
계획적인 접근이였고, 출세를/치부를 위한 계산된 스텝스톤이었어요.
이미 결혼하고 있는 칼라스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외부에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칼라스건만,
이내 외부로 노출시켜 자기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하며까지 그녀에게
정신적/ 실제적 고통을 안김으로 그녀는 아주 해피하지 않았다해요,
그런중에 얼마후, 혼자 된 재키에게 결혼하여
세계강대국의 가장 유명한 케네디의 미모의 미망인과 결혼을 함으로
최고의 인기/명성과 욕망과 그 모두를 채워보려는,.
끝없는 갈망/욕망의 사나이 오나시스,
그것이 발표되자 너무나한 배신으로 가슴아파하는 칼라스,
그러면서도 오나시스는 그 많은 여인중에 칼라스에게 진심을 준거죠,
그리하여 오나시스가 캐키와 실패하고, 아들을 잃고하며 괴로워하다 죽자,
그 동안 마음의 애인이 되어주며, 그것을 또 마음 아파한 여인이 칼라스,
그 후유증으로 자신도 얼마 안 있다 생애를 끝내는 칼라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예술의 극치/절정속에서만의 행복의 세계는 또 다른건가요?
예술안에서만은 가장 행복한 여인?
옥인후배에게 뭍는 거예요,
거긴 제가 전혀 언급할수 없는 영역이기에,,,,.
그냥 글 속에서 옥인후배를 만나고 싶어서 놀러왔어요.
차은열사모후배님,
그 날, 뵐수 있어 너무나 반가웠읍니다.
역시 덕이 풍겨나오는 참으로 좋은 인상이셨어요,
목사님 내외를 모두 뵙게되어 참 좋았읍니다.
정순자 선배니~~임!!
오매~ 요기까지 왕림하시고 반갑네요 ㅎㅎㅎ
그녀의 예술의 극치/절정속에서만의 행복의 세계는 또 다른건가요?
예술안에서만은 가장 행복한 여인?
옥인후배에게 뭍는 거예요,
선배님의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려운데요...
왜냐하면 여러 설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칼라스가 오나시스와의 파경쯤에 실질적으로 오페라 가수로서는 무대를 은퇴하고
독창이나 중창, 그리고 교습을 했지요.
그녀가 수면을 제대로 못하였다는 근거가 많으므로,
스스로 불안과 초조감이 있었다고 봐도 되겠지요...
제가 몇가지 전기를 보았는데,오나시스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그와 지내고자하며
한아이를 임신했던 그 순간이 그녀의 행복 절정이었을지도 .... 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더라고요.
그러나 태어나자 마자 아이는 불행하게 죽고...
오나시스와 결국은 헤어져 살았지만 그녀의 최대의 관심이 그였고요,
오나시스가 죽은 후 칼라스는 삶에 흥미를 더 잃기 시작했더라구요.
지금 저의 나이보다 적은 53세에 죽은 그녀에게서
음악속의 프리마돈나로서의 여인보다는
같은 여자로서 연민을 갖게하지요.
그녀의 목소리는 20대서부터 오나시스와 파경전까지 녹음된 것들이
지금 재생산하는 CD에 많이 사용되더군요.
비엔나의 김옥인 선배님,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중에서
마리아칼라스가 부르는 아리아 '정결한 여신'
잘 감상했습니다.
가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던가 하면
어떤 음악 보다도 심금을 울립니다.
노르마의 줄거리도 애처롭고
칼라스의 가슴아픈 인생스토리와 겹쳐
더욱 노래가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잘 듣고 감사한 마음에 몇자 올렸습니다.
2007년 겨울 연말 파리에서 지낼때,
그녀의 재가 머물렀던 묘지 Pere Lachaise 한곳 납골당을 찾어갔었어요.
처음 갑짜기 죽은후 그녀의 재는 여기에 머물다
그녀의 유언대로 몇년후 그리스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지금은 빈 곳이지만 그녀를 기념하는 많은 방문객들이 아직도 찾아오는 그곳에
저도 하얀장미를 꽂으며 그녀를 그려 보았지요.....
파리 Avenue Georges-Mandel Nr. 36에 있는 그녀가 마지막 살었던 집이에요
12월에 태어난 그녀가 채 생일이 되기도 전 초가을,
1977년 9월 16일에 세상을 총총 떠났습니다.
옥인 선배님의
문화적 소양의 샘물은
퍼서 마셔도 마셔도 마르지 않는
숲 속의 옹달샘 같아요.
마리아 칼라스의 자취를 찾아
방문하고
한 송이 장미를 꽂으며
추억을 남기셨네요.
혜동씨~
그때 Paris의 Pere Lachaise를 방문할때 장미꽃 몇송이를 들고가서
그곳에 묻혀있는 쇼팽,비제,에띠드 피아프 그리고 등등의 묘지를 방문했었어요.
이사도라 던컨의 납골당은 그 지역이 수리중이라 대신
그녀가 탔던 자동차회사의 가족묘도,,,부자이면서도 단촐한 비석에서 강한 울림을 받었기도...
여행을 하면서 묘지를 찾으면 더욱 더 감회가 깊지요.
타인들 인생의 뒤안길을 더듬으며 저스스로의 과거나 미래를 유추하게되는 기회이기에...
저 스스로가 옹달샘이 필요해서
목마르면 샘가를 찾아 수시로 일상을 벗어나 나그네처럼 떠나지요.
감성이 여린 옥인후배,
속이 뜨거운 여인-옥인후배,
마리아 칼라스,,,이 곳을 통해 보는 그녀는 역시 평범한 한 여성이였구요,
사랑을 무척 하고 싶어했고,
또 무지 받고 싶어 했고,
계산도 별로 할줄 모르는,,,,
가슴이 아플것 뻔하고, 사랑하지 말았어야 했음에도 사랑을 해 버린 여인,
그냥 평범히 학생교습을 했던, 음악을 사랑한 그냥 한 여인,,,,,,,,,,,,,,,,,,,,,,,,,,,,,,,,,,,,,,,,,,칼라스!!!////////////옥인후배!!!
2008년에 죽은 비엔나 전 시장 Helmut ZILK라는 사람이 생전에 저술한 자선적을 읽었었어요.
독일 뮨헨에 약혼녀와 산책하다가 칼라스와 스테파노의 듀엣 공연 포스터를 보고
ZILK씨의 약혼녀가 오스트리아의 성악가 Dagmar KOLLER여서 칼라스를 만나려고 그녀가 묵는 힐튼호텔로 찾아가
오랫동안 기다리다 마리아 칼라스와 만나 그 부부와 스테파노가 저녁식사를 나누었답니다.
그런데, 그녀가 계속 ZILK와 단둘이 대작하며 보드카 술을 마셨지요.
중간에 매니저가 시장 약혼녀에게
"당신 약혼자가 오나시스와 너무 닮아서 칼라스씨가 그를 생각하는지 정도 이상 마시니 약혼자 데리고 이만 돌아가십시요.
내일 공연에 차질이 올 것같아 걱정이라서요..'' 라고 정중히 부탁해서 그날 숙소로 돌아왔답니다.
나중에 신문보고 알았지만 그 다음날 결국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그때 1974년 뮨헨공연을 정점으로 칼라스 연주여행이 마지막 되는 것이어서
이 ZILK 전시장이 그 일을 생각하면 항상 죄지은 기분이 들었다고 회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한결같은 오나시스에 대한 애정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지요.
그런 사랑을 못해 본 내가 그녀를 얼마나 이해 할수 있는지요...
자서전 표지(ZILK 1927~2008) 시장부인(생존:전직 Volksoper 프리마돈나)
옥인선배님
우리가 어릴 적 재클린이 오나시스와 재혼하는 것이 한참 화제가 되었었지요.
그때에도 어여쁜 캐네디 미망인이 늙은 오나시스에게 시집가는 게 이해가 안 되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재클린은 우리보다 훨씬 어린 나이였고,
오나시스는 나름대로 멋있는 남자였던 것 같아요.
세기의 연인인 칼라스가 그토록 흠모할 만한 구석이 있었군요.
경수씨~,
우리가 어렸을 때 그들의 결혼,파경등등 화제가 분분하였지요?
그때 저는 사실 관심이 별로 없어서 " 아~ 그런 일도 있구나..." 정도였어요.
세월이 지나면서 케네디 사후의 일이 거론될 때는 재키얘기도 꼭 덛붙여지고
그 집안의 비극적 남자들의 종말이 거듭되면서 더욱더 화제거리였었고요.
제가 12월에뉴욕의 Centralpark을 산책하다가 본
이저수지에서 재키의 이름과 그녀의 두남편의 성이 따르는 저수지 이름 팻말을 보면서도
또한번 저절로 Maria Callas를 떠올렸었지요.
역시 저에게는 이들의 사생활적인 모든 것을 떠나서
칼라스의 음악이 제일 관심사인가봐요....
나이들어 가면서 흥분보다는 이해심을 가지고 차분해져 가는 저 자신을 보면서
칼라스도 좀 더 늙어갔다면 달렀겠지 상상해본답니다.
하긴 역사에는 "만약에..."라는 설정이 허락되지 않지만요.
오나시스는 사실 칼라스 덕분으로 세계적 명사(?)로 떠오르고,
그 후 재키와의 결혼으로 더욱 더...(모두 다 아는 사실...)
나름대로 여자를 사로 잡는 무엇인가가 있었겠지요?
요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어린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던 말이
가슴에 닿는 때가 부척 늘어났어요.
친구들과 같이듣고 싶어서 음악 올리려다보니 음악이 좀 애수적이지요?
그럼,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하였던 모자가게를 보면서 들어봐용... 그리고 맘에 드는 모자도 골라보고요 ^^